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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스님과 제자들

혜월(慧月) 혜명(慧命) 禪師 행장기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5.08.07|조회수81 목록 댓글 0

 

혜월(慧月) 혜명(慧命) 禪師 행장기

혜월선사는 11세의 어린 나이로 동진 출가를 하여 평생 11세 나이 그대로 천진을 간직한 천진불이다. '귀신도 천진불 혜월은 속이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리는 무심도인(無心道人) 혜월선사. 혜월선사는 평생 글을 배우지 않으셨으며, 경허선사의 세 제자 중에 '용성스님이 있는 곳에 불경편찬이 있고, 만공스님이 있는 곳엔 중창불사가 있고, 혜월스님이 있는 곳엔 사전(寺田)개간이 있다'라는 소문처럼 평생을 일을 손에서 놓은적이 없다고 한다. 혜월선사의 열반은 참으로 희유하다.
평소에 뒷산에서 솔방울을 줍기를 좋아하시던 혜월스님. 항상 솔방울을 자루 가득히 주워 담고 항상 쉬는 장소에서 솔방울 자루를 메고 반쯤 일어서신채로 그대로 열반에 드신 것이다.

 

출 가

혜월선사의 속성은 평산 신(申)씨로 알려져 있으며 11세의 어린 나이로 덕숭산 정혜사로 출가를 하였다.
15세 되던 해에 정혜사에 머무르고 있던 혜안(慧安)스님을 은사로 계를 받는다. 혜월스님은 곧줄 대중의 밥을 지어주는 공양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
24세 되던 해 경허선사가 정혜사로 찾아와서 법문을 하게 된다. 혜월스님은 경허선사의 법문을 들었으나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 행

경허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사대(四大)가 본래 거짓으로 이루어져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허공도 또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느니라. 다만 눈 앞에 뚜렷이 밝은 한 물건이 있어서 능히 법을 설하고 듣나니, 고명(孤明)한 이 한 물건이 무엇인고?"하시더니 재차 다그쳐 물으셨다.
"알겠느냐? 대체 어느 한 물건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느냐? 형상은 없되 뚜렷이 밝은 그 한 물건을 일러라!"
혜월스님은 앞이 캄캄하여 이 순간부터 오로지 이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몰두했다.앉으나 서나 일할 때나 잠잘 때까지도 '대체 이 한 물건이 무엇인가?' 하는 일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일념에 잠겨 참구하는 가운데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그리고 어느 날 혜월스님은 짚신 한 켤레를 다 삼아놓고서 잘 고르기 위해서 신골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깨달음

무심삼매에서 짚신을 다 삼아놓고서 신골을 치는데 '탁' 하는 그 망치 소리에 '이 한 물건이 무엇인가?' 하는 의심이 환하게 해소되었다.
혜월스님이 그 길로 경허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께서 간파하시고 물음을 던지셨다.
"목전(目前)에 고명(孤明)한 한 물건이 무엇인고?"
이에 혜월스님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 섰다가, 다시 서쪽에서 걸어와 동쪽으로 가서 섰다.
"어떠한 것이 혜명(慧明)인가?"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천성인(一天聖人)도 알지 못합니다."
경허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옳고 옳다."하시며 혜월스님을 인가(認可)하셨다. 이 때 혜월스님은 24세였다.
그 후 1902년경허선사께서는 혜월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셨다.

付 慧 月 慧 明
了 知 一 切 法
自 性 無 所 有
如 是 解 法 性
卽 見 盧 舍 那
依 世 諦 倒 提 唱
無 文 印 靑 山 脚
一 關 以 相 塗 糊
水 虎 中 春 下 澣 日
萬化門人 鏡虛 說

해월혜명에게 부치노라
일체법 깨달아 알면
자성에는 있는 바가 없는 것
이같이 법성을 깨쳐 알면
곧 노사나 부처님을 보리라
세상법에 의지해서 그릇 제창하여
문자없는 도리에 청산을 새기니
고정된 진리의 상에 풀을 발라 버림이로다
임인년 늦봄에
만화 문인 경허 설하다

혜월선사께서는 24세 때 깨달음을 얻으신 후 27년 동안 덕숭산에 주(住)하시다가, 51세 이후로는 남방의 제선방(諸禪房)을 두루 유력(遊歷)하시면서 납자를 제접(提接)하셨다. 당시 선사의 법기틀 쓰심은 '신(申) 혜월 미투리 방망이에 80여 남방 선지식이 모두 다 빙소와해(氷消瓦解)되었다.'는 유행어가 생겼을 만큼 독특했다.

 

 

행 적

혜월스님은 항상 어린애와 같았으며 철없는 아이와도 같았다.
선암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시내에 볼일을 보기 위해 산을 내려가던 혜월스님은 지친 발걸음을 쉬어가기 위해 산 밑 오막살이에 들르기로 하였다. 산 밑에는 과부 혼자 살고 있는 오막살이가 있었는데, 이 오막살이는 절에 오르는 길목에 있었고 절에 딸린 밭을 빌려 과부가 부쳐먹고 살면서 이따금 절의 허드렛일도 돌봐주곤 하여서 절 식구들과는 무관하지 않은 사이 였던 것이다.
툇마루에 앉아 쉬던 혜월스님은 무심코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심상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낮인데도 방안에는 이불이 깔려 있고 벌거벗은 부목과 과부가 나란히 누워 있는 장면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 그 부목은 선암사에서 고용하고 있는 일꾼으로 몸이 건장하고 일도 열심히 해 혜월스님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었고 그날 아침에는 소를 끌고 장에 가서 물건을 사오기 위해 일찌감치 절을 나섰었다. 물건을 사러 새벽 일찍 절을 나선 부목이 과부의 집 안방에 벌거벗은 채 누워 있고 과부도 평소에는 밭에 앉아 김을 매고 있을 대낮에 이처럼 벌거벗고 누워 있다니. 이 모습을 보고 놀란 혜월스님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자네는 소를 끌고 장을 보러 나갔는데 장에는 안 가고 왜 여기에 있는가."

그러자 벌거벗은 부목은 기겁을 하며 일어나 앉아 말하였다. 그는 당황하고 겨를이 없었으므로 엉겁결에 다음과 같이 거짓말을 하였다.

"장을 보러 가다가 갑자기 배가 아파 이 집에 들렀습니다. 스님. 너무나 배가 아파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벌거벗고 누워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네는 배가 아파 그럴 수 있다지만 과부댁은 왜 밭에 나가 있지 않고 대낮에 방문을 닫고 누워 있는가."

과부도 할 수 없이 대답하였다. "저도 배가 아파 누워 있는 것입니다. 큰스님."

"야단났군."

방문을 닫고 혜월스님은 볼일로 시내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헐레벌떡 다시 산을 올라 절로 돌아오면서 연신 중얼거리고 있었다. '야단났다. 두사람이 배가 아파 야단났다. 야단났다. 야단났어.' 시내로 나가려던 볼일을 포기하고 헐레벌떡 선암사로 되돌아온 혜월스님은 절문을 들어서기 무섭게 공양주를 불렀다. 공양주가 부엌에서 뛰어나오자 혜월스님은 당장에 말하였다.

"빨리 횐죽을 쑤라구."

영문을 모르는 공앙주가 혜월스님에게 물었다.

"갑자기 횐죽을쑤라니요. 스님께서 어디 아프십니까 "

그러자 혜월스님이 대답하였다. "내가 아픈 게 아니라 부목이 아파 죽을 쒀서 갖다줘야겠다. "

"부목이 배가 아프다니요. 아침까지 멀쩡하던 사람이요." 어이가 없어 공양주가 말을 하자 혜월스님이 걱정스런 얼굴로 대답하였다.

"부목만 아픈 게 아니다. 아랫마을 과부댁도 배가 아프다. 그래서 두 사람이 벌거벗고 함께 누워 있다. 빨리 두 사람에게 횐죽을 쒀서 갖다줘야겠다. "

그제야 혜월스님의 말을 듣고 있던 대중들은 혜월 큰스님이 아랫마을 과부집에서 무엇을 보고 왔으며, 과부집 안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었으므로 모두들 입을 씰룩거리며 웃기 시작하였다. 건장한 부목과 과부댁 간의 심상치 않은 관계에 관한 소문은 파다하였으므로 사중대중들은 혜월 큰스님의 말을 듣자 아니 웃을 수도 없고, 웃자니 큰스님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웃음을 참느라고 야단법석이었다. 할 수 없이 공양주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면서 죽을 쑨다. 곁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죽이 될 때까지 지켜보고 있던 혜월스님은 죽이 다 되자 그릇에 담아들고 자신이 직접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행자를 시키면 되겠지만 막상 아파 벌거벗고 누워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나 가련하였으므로 혜월스님은 자신이 직접 날라주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산길을 반쯤 내려가는데 배가 아파 과부와 함께 누워 있던 부목이 소를 몰고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얼굴에는 언제 배가 아팠었느냐는 듯 전혀 아픈 기색이 없어 보였다.

부목은 오히려 혜월스님에게 묻는다. "큰스님 어딜 가십니까." "자네한테 가고 있는 중이네 ." "아니, 왜요." "자네와 그 젊은 과부가 배가 아프다고 하기에 죽을 쑤어가지고 가네 , "

부목은 순간 할말을 잊었다.

"자네 배는 다 나았나? 과부댁은 어떤가? 배가 아프면 횐죽을 먹어야 하길래 죽을 쑤어 왔어. 여기서라도 훌훌 마셔두게."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믿어 버리는 천진불, 혜월스님. 그 자신 한번도 남에게 거짓말을 해된 적이 없으며, 도대체 거짓말이라는 낱말의 의미조차 모르는 무구(無咎)의 성인. 그 사람의 이름이 바로 혜월스님인 것이다. 혜월스님을 속인 부목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한 후 출가하였다던가.

 

혜월선사는 평생 글을 배우지 않았으며 때문에 일자무식의 까막눈이었다.

무식한 혜월스님이 내노라하는 젊은 강사들을 골탕먹인 일화 하나가 있다. 젊은 강사들은 혜월스님이 아무리 도를 이룬 큰스님이라 해도 글자를 전혀 모르는 문맹이었으므로 은근히 마음속으로 무시하고 깔보고 있었다.

그런 젊은 강사들이 많이 모여 앉아 있는 강원에 어느 날 갑자기 혜월스님이 나타났다. 그는 손에 죽비를 들고 있었는데 혜월스님은 난데없이 죽비를 손바닥 위에 대고 내리쳐 벼락과 같은 소리를 내면서 말하였다.

"내가 수수께끼를 하나 낼 터이니 여러 강사 스님들은 이를 풀어 보시오."

그렇지 않아도 문자에 유식하고 아는 것이 많다고 자부하고 있던 강사들은 일자무식 혜월 큰스님이 나타나 수수께끼를 낸다고 하니 모두들 흥미롭게 혜월스님을 쳐다보았다.그러자 혜월스님은 죽비를 장판 위에 힘껏 굴려보면서 말하였다.

"내가 방금 장판 위에 죽비를 굴렸소이다. 그러하면 이 자가 무슨 자입니까. 여러분들은 유식하여 문자에 밝고 교리에 통달하고 있으니 말들 하여보시오. "

사람들은 한 대 얻어맞은 듯 장판 위에 굴러떨어진 죽비를 쳐다볼 뿐이었다. 불쑥 나타나서 수수께끼를 내다니. 그리고 '장판 위에 죽비가 구르는 글자'가 무슨 글자냐고 난데없이 묻다니, 내노라하는 젊은 강사 스님들은 혜월스님이 낸 수수께끼를 풀려고 갖은 궁리를 다해 보았지만 결국 아무런 답도 떠올릴 수 없음이었다. 마침내 젊은 강사 스님들은 항복을 하고 나서 혜월스님에게 물었다.

"장판 위에 죽비가 구르는 글자가 도대체 무슨 글자입니까."

그러자 천진불 혜월스님은 어린애처럼 깔깔 웃으며 말하였다.

"이 사람아, 그렇게 쉬운 글자도 모른단 말인가."그리고 나서 혜월스님은 말하였다.

"임금왕(王)자 아닌가."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장판 위에 죽비가 굴러가는데 그것이 임금왕자입니까."

"땅 위에 한일(一)자가 누웠으니 임금왕이지. 땅이면 흙토(土)이 고 흙토 위에 한일자면 임금왕자이니까. 자네들 유식하다고 잘난체들 하지 말게. 자네들이야말로 임금왕자도 모르는 까막눈들이니까 말이야."

 

혜월선사께서 경상북도 팔공산에 있는 파계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혜월 큰스님의 소문을 듣고 송광사에서 젊은 스님 하나가 친견하기 위해 전라도땅에서 경상도땅으로 찾아왔다. 객승이 혜월선사께 큰절을 올리자 혜월선사께서 물어 말하였다.

"어디서 오셨는가?"
"조계산 송광사에서 왔습니다."
"전라도 부처는 요즘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어떠하던가?"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것(行住坐臥)이 여일(如一)합니다."
"그러하면 그대는 뭣하러 이곳까지 찾아오셨는고?"
그러자 객승이 대답하였다.
"참선하려고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큰스님의 시절인연을 보려고 왔습니다."
객승의 대답소리에 혜월선사께서 대뜸 물었다. "참선해서 뭣하려고?"
"그거야 부처가 되려고 그러지요."
"참선은 앉아서 하는 건가, 서서 하는 건가?"
"물론 앉아서 하지요."
그러자 혜월선사께서 깔깔웃으면서 말하였다
"그 놈의 부처는 다리병신인 모양이지 앉아서만 있으니."
어리둥절해진 객승이 혜월선사에게 물었다.
"좌선은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앉아만 있는 것이지 부처되는 작업은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혜월선사는 소리질러 답하였다.
"명색이 먹물옷 입고 시주밥 먹는 중 노릇하면서 그것도 모르시나."
"그래서 큰스님을 찾아와 문안드리지 않았습니까."
혜월선사는 벌떡 일어나면서 말하였다.
"아이구 나도 모르겠네. 점심 공양이나 하시게. 나는 시장에나 다녀 와야겠네."

혜월선사는 객승을 남겨두고 시장에 가려는듯 서둘러 경내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방안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는 난데없는 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혜월선사는 바삐 나서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방문 앞으로 다가가 큰절을 올려 합장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큰스님, 큰스님, 저 시장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자 방안에서 칭얼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아니, 내 점심은 안 차려주고 너 혼자 간단 말이냐."

"곧 다녀오겠습니다. 큰스님. 심심하시면 객스님과 재미있게 노십시오."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이제 갓 열 살이 넘은 듯한 동승 하나가 고개를 내밀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아닌가.

"빨리 다녀와라, 해지기 전에,"

무심코 열린 방문을 통해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풍경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젊은 객승은 너무나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법격이 높은 큰스님 혜원에게 명령을 내리고, 그 큰스님 혜월선사로부터 큰스님으로 호칭받는 더 큰스님이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하던 차에 열린 방문을 통해 나타난 더 큰스님이 정작 이제 열 살남짓한 동자승이라니. 그뿐인가, 혜월 큰스님은 그 동승에게 깍듯이 합장 배례하고 문안 인사 드린 후 절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젊은 객승은 어리둥절하여 그 동승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동자승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객승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쳐 말하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오라, 알겠다. 우리 절을 찾아온 객중인 모양이로구나. 그런데 도대체 어디서 온 객승인데 건방지게 눈이 마주쳐도 앉아만 있는고, 우리 혜월스님은 아침 저녁 내게 문안 인사를 올리는데."

객승은 기가 막히다 못해 분노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열 살 남짓의 동자승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 간신히 분노를 가라앉힌 후 객승은 조용히 동자승을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마침 한낮의 적요가 심심했던 듯 그 동자승은 좋아라고 객승이 머무르고 있는 방으로 당당하게 들어와 앉았다.

"날 왜 부르지 ."

그러자 객승은 문을 닫고 나서 꾸짖어 말하였다.

"네 이놈, 도대체 어디서 그러한 무례를 배웠는고."

동승은 생전 처음 당하는 힘의 우위 앞에 마침내 두려움을 느낀듯 벌벌 떨고 있었다.

"내 너를 당장 옷을 벗겨 절문 밖으로 쫓아내버릴 것이다. "

그러자 비로소 동승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스님,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리 와 앉거라.

자리에 앉는 법조차모르는 동자승은 무릎을 꿇지 않고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늘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알겠느냐."

"네."

생전 처음 힘과 폭력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마침내 천진을 파괴당한 동자승은 예법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고분고분 말을 듣고 있었다.

객승은 동승에게 무릎을 꿇고 앉는 법, 혜월선사 큰스님이 어디 갔다 오시면 '스님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인사하는 법과 같은 기본적이고 간단한 예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였다.

"시키는 대로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옷을 벗겨 절문 밖으로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내버릴터이니까 알겠느냐. "

"알겠습니 다."

울먹이면서 동자승은 대답하였다.

그날 저녁 늦게 혜월선사선사께서 시장에서 돌아왔다. 그는 절에 도착하자마자 그 동자승이 머무르고 있는 방문 앞에 서서 큰소리로 문안 인사를 하였다.

"큰스님, 시장에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방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젊은 객승은 그 동승이 자신이 시키는 대로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인가를 지켜보기 위해 방문을 열고 이를 살펴보고 있었다.

"큰스님,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혜월선사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방안에서 동자승이 울먹이며 혜월선사를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큰스님, 이제 다녀오십니까?"

혜월선사는 순간 자기가 시장에 가고 없는 사이에 어떤 일이 절 안에서 벌어졌는가를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날 밤 혜월선사는 자신의 방으로 그 젊은 객승을 은밀하게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객승이 오자 혜월선사선사께서 물었다.

"내가 시장에 가고 없을 때 그대가 동승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그렇습니다."

자랑스럽게 객승이 대답하였다.

"도대체 무엇을 가르쳤는데 ."

"하도 무례하고 무도하여 간단한 예법과 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꿇어앉는 법, 공경어 쓰는 법, 인사하는 법과 같은 간단한 예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

순간 혜월은 분노의 얼굴로 객승을 쳐다보면서 소리쳐 말하였다.

"그대는 내가 예법을 몰라서 그 어린아이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천진 그대로의 모습이 하도 좋아 이 세상의 때가 묻지 않도록 가꾸고 있었는데 그대가 무슨 연유로 그 천진을 깨뜨렸단 말인가. 그대는 예법을 가르쳐 중으로써 천진 그대로의 부처를 죽이고 말았네. 한 번 잃은 부처는 다신 샅았날수 없는 노릇. 이제 큰스님 동자승과는 시절인연이 다 됐으니 내일 아침 그대가 산문을 떠날 때 그 동승을 데리고 함께 가게."

하는 수 없이 하룻밤을 머무른 객승은 다음날 아침, 열 살 남짓의 동승을 데리고 산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객승을 따라나서는 동승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면서 혜월선사는 크게 절하고 두 손을 모아 합장배례한 후 이렇게 작별인사를 하였다고 전해진다.

"큰스님, 어디를 가시나 부디 건강하시고, 어디를 가시나 공부 잘하십시오."

산문을지나 산자락을 타고 멀리 멀리 사라져가는 동승의 됫모습을 쫓아 혜월선사는 산짐승처럼 뒷산을 오르고 올라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던가. 바라보는 혜월선사의 두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던가.

 

혜월스님은 묶인 소만 보면 풀어주곤 하였다. 혜월스님이 가장 싫어한 것은 소를 매두는 것이었다. 실컷 일을 부려먹고 쉴 때에도 왜 소를 묶어두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혜월스님은 길을 가다가도 매인 소를 보면 다짜고짜 풀어놓곤 하였다. 그래서 절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은 혜월스님이 동네 앞을 지난다는 소문이 들리면 다투어 뛰어나가 먼저 소부터 감시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소를 풀어놓아 콩밭으로 들어간 소가 마음놓고 콩밭을 작살내놓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콩밭을 소가 다 파먹어 화가 상투 끝까지 오른 소 주인이 절까지 찾아와 혜월스님에게 덤벼들자 혜월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사람아, 콩밭은 누가 제일 애써 갈았나. 이 소가 아닌가. 그러면 먼저 소부터 먹여야지 안 그런가."

혜월스님이 이처럼 소를 사랑하였다면 모든 소들도 혜월스님을 사랑하였다. 이상하게도 마을에서 소만 잃어버렸다 하면 그 소는 제 발로 어슬렁어슬렁 혜월스님이 머무르고 있는 절로 찾아오는 것이어서 소를 잃어버린 마을 사람들은 소를 찾으러 절로 달려오곤 하였는데 절에만 오면 잃어버린 소를 찾을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혜월스님과 소에 얽힌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혜월스님이 말년에 부산 선암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경허선사의 세 제자 중 '용성이 있는 곳에 불경 편찬이 있고, 만공이 있는 곳에 중창 불사가 있고, 혜월이 있는 곳에 사전(寺田) 개간이 있다'는 소문처럼 혜월스님은 절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하여 밭을 개간하고 스스로 나가 농삿일에 부지런히 정진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농삿일이 크게 되니까 자연 소가 필요하게 되어 혜월스님이 직접 소시장에 나가 '얼룩이'라고 불리는 소 한 필을 사와 기르기 시작하였다. 이 얼룩소에 쏟는 혜월스님의 정은 남다른 것이었다. 손수 소먹이를 끓여 주기도 하고, 또 깨끗이 몸을 닦아주기도 하였다. 농삿일을 많이 한 날이나 먼 시장에서 장을 보아 짐을 많이 싣고 온 날이면 혜월스님은 밤 늦게까지 소의 등을 쓰다듬으며 수고했다고 위로하곤 하였다. 몇 해를 두고 계속되는 혜월스님의 정성이 지극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얼룩소도 혜월스님의 말씨를 알아듣게 되었으며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깊은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봄날 그 얼룩소가 감쪽같이 없어졌다. 소도둑이 들어 밤새 몰래 소를 끌고 간 것이었다. 이른 새벽 외양간 문이 열려 있는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행자가 소를 잃었다고 고함을 치자 온 절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원주스님이 혜월스님의 방으로 뛰어와 다급한 어조로 말하였다.
"큰스님, 얼룩이가 없어졌습니다. 간밤에 도둑이 들어 소를 몰래 끌어 갔습니다."
방안에서 이를 들은 혜월스님은 묵묵부답이었다. 이어 온 사내 대중들이 소를 찾으려고 아직 날이 밝지 않은, 마을로 내려가는 여명의 새벽길을 달려가기 시작하였는데 혜월스님은 방을 나와 뒷짐을 지고 뒷산으로 산보나 하듯 올라가고 있었다.

산정에 오른 혜월스님은 주위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두 손을 입가에 대고는 소리쳐 외쳐댔다.
"얼룩아, 얼룩아아- "
이때 마침 소도둑은 됫산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는 마을길로 내려가면 들키게 될까봐 일부러 뒷산쪽으로 비탈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멀리서 자기를 부르는 혜월스님의 목소리를 듣자 끌려가던 얼룩소가 제자리에 멈춰 서서 이에 화답하듯 소리쳐 울었다.
"음매- 음매 애-. "
소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도둑은 끌어가려고 고삐를 잡아 끌고, 혜월스님은 소리쳐 얼룩소를 부르고, 얼룩소는 이에 울면서 화답하고, 그러는 사이에 날은 밝고 마침내 행자들이 그 소도둑을 잡게 되었던 것이 었다.

소도둑을 붙잡아 절로 끌고 온 행자들은 다투어 도둑을 때리기 시작하였다. 소도둑의 비명을 들은 혜월스님은 뛰쳐나가 다음과 같이 소리를 질렀다던가.
"소가 다시 왔으면 되었지 무엇 때문에 사람을 때리느냐."
그리고 나서 그 도둑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밤새 소를 끌고 가느라 한잠도 못 자고 얼마나 수고하셨는가. 자, 어서 빨리 일어나 돌아가시게."
그러면서 그 도둑의 손에 용돈까지 쥐어주었다던가.

 

혜월스님 항상 가는 곳마다 거친 땅을 일궈 논밭을 만들어놓곤 하였다. 그래서 혜월스님을 '개간(開墾) 선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혜월스님은 항상 손에서 괭이를 놓지 않았는데 그가 말년에 머무르던 부산시 부암동 선암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고 있다.

그는 선암사에 머무르고 있을 때 손수 황무지를 개간하여 이천평의 논을 만든 적이 있었다. 이 옥토를 마을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노리고 있었다. 그는 혜월스님의 천진함을 이용하여 싸게 사기 위해 밤마다 절로 혜월스님을 찾아가 논을 팔라고 졸라댔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혜월스님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뭘하려고 논을 사실려구 그러시나."
"농사를 지어 밥술이라도 먹을까 해서 그렇습니다. 스님. 시세대로 쳐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파십시오."

혜월스님은 마침내 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주막으로 따라가 술과 고기가 차려진 술상 앞에서 계약을 하고 말았다. 혜월스님은 교활한 마을 사람의 꾐에 빠져 세 마지기 논을 두 마지기 값으로 팔아 넘기곤 논값을 가지고 밤늦게야 절로 돌아온 것이었다.
혜월스님은 들고 온 논값을 제자들에게 내놓으면서 말하였다
"옛다. 여기 돈이 있다."

원래 혜월스님은 돈에 대해서는 백치였다.
신도들이 이따금씩 용돈을 주면 봉투를 뜯어보려 하지도 않고 요밑에 넣어 두었다가 사중 스님들이 외출할 때 방문 앞에 다가와 다녀오겠다고 문안 인사를 하면 봉투째 용돈을 집어주곤 하였다. 어쩌다 재수 좋은 행자는 용돈을 듬뿍 타는 수도 있었는데 그렇듯 혜월스님은 돈과는 아예 인연이 없고, 도대체 산술을 모르는 스님이었다. 그런 스님이 갑자기 엄청난 액수인 논값을 내놓으니 앞뒤 사정을 모르는 대중들은 놀랄 수밖에.
"이게 웬 돈입니까?"
그러자 혜월스님이 대답하였다.
"내가 논을 팔았다. 마을 사람 박 아무개가 밥술이라도 먹겠다고 졸라대 팔아 주어버렸다."
느닷없는 혜월스님의 말에 제자들은 논값을 헤아려 셈을 해보았다. 그들은 돈을 세어본 후에 비로소 그 마을 사람이 혜월스님을 속인 것을 알게 되었다.
"스님, 스님은 속으셨습니다. 논은 세 마지기인데 이 돈은 두 마지기 값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일제히 힐난을 퍼붓자 묵묵히 앉아 있던 혜월스님은 마침내 소리쳐 말하였다."
"이놈들아, 그게 무슨 소리냐. 저 논 세 마지기는 아직 그대로 절 앞에 있고 여기에는 두 마지기 논값이 있으니 다섯 마지기 논으로 불어버렸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혜월스님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놈들아, 장사는 나처럼 해야 한다."

 

당시는 일제치하였으므로 총독이 곧 왕이던 시대였는데 남차랑(南次郞) 총독이 남방에 선지식이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수하 몇 명을 데리고 혜월선사를 방문하셨다.
총독이 인사를 올리고는, "스님, 부처님의 아주 깊고 높은 진리를 한 말씀 일러주십시오."
"부처님의 깊고 높은 진리? 귀신 방귀에 털 난 게지."
귀신도 허무한데 귀신이 방귀를 뀐다는 것 더군다나 그 방귀에 털이 난 것이라고 하니 대체 이 무슨 소리인고?
남차랑 총독은 여기에서 당황하여 그만 물러갔다. 이 소문이 일본까지 전해져서 분분했다.
여기에 분개한 남차랑의 한 무사(武士) 제자가 혜월선사를 단단히 혼내주리라는 보복심을 가지고 일본에서 당장 건너왔다.
그는 혜월선사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선사의 목에 칼을 들이 대었다.
"그대가 혜월인가?"
"그렇다. 내가 혜월이다."
대답과 동시에 혜월선사께서는 손으로 그 무사의 등뒤를 가리키셨다.
뒤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해치려 하는 줄로 알고 무사가 급히 뒤를 돌아보는 찰나, 혜월선사께서는 벌떡 일어나셔서, "내 칼 받아라!" 하시며 그 자의 등을 쳤다.
그러자 무사는 칼을 거두고 큰 절로 예를 올리며, "과연 위대하십니다." 하고는 돌아갔다.

선사의 지혜의 기봉(機鋒)이 아니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부딪쳐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은, 그러한 기틀을 쓸 수 없다. 만약 혜월선사께서 그 상황에서 두려움을 일으키고 공포심을 냈던들 즉시에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한여름이 되면 깊은 산속의 절에는 여러 가지 짐승이 많이 몰려들게 마련이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뱀이나 구렁이 같은 파충류들은 언제나 절 근처를 맴돌고 있다. 비만 오면 뱀과 구렁이들은 절 마당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여 비가 개면 온 마당에서 마치 운동회라도 하는 것처럼 득실거리게 마련이었는데 혜월스님은 그들 앞에 나타나 조용히 타이르곤 하였다.

"사람들이 너희들을 싫어하니 사람들의 눈에 띄기 전에 자리를 피해 도망가라"고 타이르면 거짓말처럼 뱀과 구렁이들은 풀숲으로 스르르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그래도 못 알아들은 뱀이 있으면 혜월스님은 어린애 다루듯 "왜 이리로 오느냐"고 타이르면서 아무렇게나 뱀을 손으로 집어 숲속에 던져 놓아주곤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뱀들은 절대로 혜월선사의 손을 물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혜사에 있을 무렵 하루는 도둑이 들었다.

양식을 훔쳐내 지게에 지고 가려던 도둑은 가마니가 무거워 홀로 지게를 지려 하였으나 힘에 부쳐 쩔쩔맸다. 이때 누군가 밤도둑의 지겟짐을 들어올려 슬며시 밀어주는 것이 아닌가. 놀란 도둑이 돌아보니 혜월선사였다. 그는 놀란 도둑에게 소리를 내지 말라고 입가에 손을 대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쉬잇,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조용히 내려가게. 양식이 떨어지면 또 찾아오시게나."

 

 

열 반

수많은 선지식께서 수행 오도한 후 열반을 하셨지만, 일생을 천진함과 무심으로 모든 중생들을 제접한 혜월선사 만큼 특이한 열반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은 드물다.
노년에는 시간이 있을 때는 항시 뒷산에 오르셔서 솔방울을 주어 자루에 담아 내려 오시곤 하셨다.
열반에 드시기 전에도 솔방울을 줍기 위해 산에 오르셨다.


항상 오르내리실 적마다 잠시 앉아서 쉬는 장소가 있는데 솔방울을 한 짐이나 지고 쉬고 계시던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시다가, 그대로 몸을 벗어버리고 열반에 드신 것이다. 참으로 희유한 열반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때가 세수 76세, 법랍은 6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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