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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스님과 제자들

[스크랩] 구름 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아라, 만공선사 - ② 숨결 4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1.08.09|조회수117 목록 댓글 1

 ② 숨결 4

 

 

 

구름 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아라, 만공선사

연암산 천장사(4)

 

 

 

 

 

 

 

 

천장사 인법당의 주련들을 살펴보고 절마당의 오른쪽으로 돌아가자 경허선사께서 보임을 위해 천장사에 머물던 당시 사용했던 작은 방이 나왔다. 그 방문 위에 걸려있는 경허선사가 쓰신 작은 친필 현판이 눈길을 끄는데, 초서체여서 원성문(圓成門)인지, 원구문(圓求門)인지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가운데 글자가 이룰 성자의 초서로 여겨지는데, 구할 구자로 판독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그것을 찍어온 사진을 보며, 곰곰 따져 보아도 정확하게 어떤 글자를 쓰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룰 성(成)자의 초서체가 구할 구(求)자를 흘려 쓴 것과 차이가 없다. 이럴 경우 대개 앞뒤 글자와의 어울림을 통해 해독하는데 이룰 성이나 구할 구 중 어느 것으로 읽어도 뜻은 대동소이하다. 원만함을 이루기 위해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해석하나, 원만함을 구하기 위해 보임을 하고 있는 방의 문이라고 하나 별 차이기 없기 때문이다.

 

알쏭달쏭할 때 전라도 사투리로 아리까리 하다는 말을 쓴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여 얼른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을 이를 때 북한에서는 까리까리하다는 말을 쓴단다. 까리까리한 것은 현판뿐이 아니다. 시대를 넘어 우뚝솟은 선의 산맥으로 추앙되고 있는 대선사가 거처했던 방의 크기가 채 한 평도 될 것 같지 않은 초미니 사이즈였는데, 이 점도 예상을 뒤짚는 것이어서 까리까리하다 못해 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기습이었다. 6척 장신인 경허선사가 잠을 자기 위해 그곳에 누우려면 고치 안에 움츠리고 있는 누에처럼 등을 휘어서 발을 꼬부린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 새우잠을 자며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은 거인이었던 경허선사로써는 고문을 받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이다. 방은 잠을 자지 않고 장자불와를 했으며, 일상생활을 영위한 것이 아니라, 구도승의 보임터였다는 것을 설명 없이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정리되자 아리까리하던 생각이 비로서 명료하지며 대선사이기에 너무도 당연한 선택을 했던 것으로 이해 되었다.

 

비좁은 그 방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벽에 걸려있는 경허선사의 영정을 향해 경배를 드린 다음 잠시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보았다. 마치 무덤속 같았다. 관을 넣으면 안성맞춤일 정도의 넓이니 달리 실내장식을 할 공간도 없는 셈이다. 출입문이 그 방에 달려있는 유일한 장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경허선사 같은 도인도 다리를 뻗기조차 힘든 작은 방에서 보임을 했는데, 마치 거처의 규모가 위신력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산문(山門)의 조실이나 주지쯤 되면 경쟁적으로 궁궐이 부럽지 않은 전각을 짓는데,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초라한 누옥의 작은 방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데, 속빈 강정임을 광고라도 하듯 주지에서 조실로 나 앉으며, 암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궁궐같은 건물을 짓는데, 온갖 편의시설과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그런 곳은 이미 수행처도 뭣도 아니다. 나는 경허선사의 방을 본 후 자연스럽게 수행력에 비해 과한 방을 차지하고 살았다는 자책을 했다. 다구(茶具)를 놓아둔 면적만도 선사의 거처 방 전체보다 큰 것이었음을 진심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것 같았다.

 

경허선사의 방보다 그 옆에 있는 시자승 만공당(滿空堂) 월면(月面)스님의 방이 어림짐작으로도 몇 배는 더 커 보인다. 허긴 도인은 가부좌를 틀고 앉을 수 있는 넓이면 족하겠지만 시봉은 아직도 공부가 멀었으니 경책(經冊)이나 불구(佛具)들을 놓아둘 공간도 있어야 하고, 스승을 모시는데 따른 소도구들을 보관해야 하니, 당연히 더 넓은 공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방이 작을수록 공부가 많이 된 상태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새삼 공부라는 것이 버리는 일을 하는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가진 것이 많은 물질적 풍요를 향유했다는 것은 베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결국에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임에도, 착을 버리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도(道)가 무르익겠는가. 거기다가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탈만한 고급승용차까지 끌고 다니며 거들먹거리는 작태라니, 마땅히 종지(宗旨)를 흐린 과보를 받을 것이다.

 

경허선사가 천장암(현재는 천정사지만 당시에는 암이었음)에 머무실 때 수월과 혜월이 같이 했었지만 수월은 주로 땔나무를 했었고, 혜월은 사전(寺田)을 가꾸는 소임에 전념했으므로, 스승 경허선사의 수발은 막내인 만공의 차지였다. 그리고 수월과 혜월은 나이가 든 상태에서 사제의 인연을 맺고 법을 이은 것이지만, 만공은 열네 살에 경허선사와 만나 그림자처럼 붙어서 근접 시봉을 했으므로, 서열로는 세 번째 제자지만, 경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으면서 온전하게 경허의 가르침을 통해 득도한 진정한 의미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계룡산 동학사에서 였다.

 

만공당 월면선사의 속명은 도암(道岩)이다. 한문으로 이름 풀이를 하면 도를 이룬 바위다. 이름처럼 된 셈인데 어릴 때는 도와 상관없이 그냥 바우라고만 불렀다. 속성은 여산 송 씨다. 전북의 태인군 태인읍 상일리에서 고종2년(1871) 신미(辛未) 3월 7일에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송신통(宋神通) 씨다. 어머니 김 씨가 바우를 임신할 때 용이 찬란하게 빛나는 구슬을 토하는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열세 살이 되던 해 겨울 바우는 전북 김제에 위치해 있는 금산사를 방문할 기회를 잡았다. 그 동안 바우는 부선망(父先亡) 독자가 되어 있었다. 수명장수를 빌기 위해 금산사를 찾아가면서 바우를 대동한 것이 바우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갈림길이 된 것이었다. 바우는 이때 처음으로 부처님의 등상(等像)과 스님들을 보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환희심이 샘물처럼 솟아올랐고, 그 때부터 출가하여 스님이 될 마음이 간절했었다는 것을, 생전의 월면스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바 있다. 어머니가 아들을 놓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낌새가 이상하다고 여긴 어머니가 바우의 사촌형에게 부탁하여 엄중하게 감시토록 하였기 때문에 좀처럼 출가하려는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우는 궁리를 거듭하다가 나무하러 가는 것처럼 지게를 지고 집을 나와서 그길로 전주의 봉서사를 찾아 갔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송광사로 간다. 여기서의 송광사는 승주군 조계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주에 위치해 있는 동명이사(同名異寺)다. 바우는 이곳에서도 머리를 깍지 못하고, 진암스님 같은 큰스님을 은사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말만 듣는다. 바우는 다시 진암스님이 계신다는 논산의 쌍계사로 향한다. 그러나 진암스님은 그곳에 없었다. 충청도 계룡산 동학사로 가셨다는 말을 듣고 동학사로 진암스님을 찾아 갔는데, 바우 소년이 법기(法器)임을 알아보신 진암스님이, 행각중 동학사를 찾은 경허선사에게 바우를 의탁시킴으로써, 마침내 1884년 10월 당대 최고였던 경허선사와 열네 살 바우 소년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었다. 바우는 그 해 12월 8일 연암산의 천장암에서 태허스님을 은사로, 경허스님을 계사로 하여 사미계를 수지하고, 월면(月面)이라는 법명을 받은 다음, 경허스님을 시봉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수월의 나이는 30세, 혜월은 23세였으며, 월면은 14세였다.

 

경허선사는 한동안 월면 사미승을 운수행각이나 탁발 시에도 데리고 다녔다. 경허선사께서 영특했던 사미승 월면을 몹시 아꼈다는 반증이다. 참선을 직접 지도해 주기도 하였다. 하루는 사미승 월면이 경허선사께 묻는다.

“도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이옵니까?”

“도가 대체 무엇이냐?”

“예, 스님?”

“도라는 것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고, 천지사방에 있는 것이다.”

“천지사방에 도 아닌 것이 없다고요?”

“그래. 꽃피는 것도 도고, 꽃이 지는 것도 도다. 바람이 부는 것도, 불지 않는 것도 역시 도니라. 그 오묘한 도리를 알면 누구나 부처를 볼 것이니라.”

“부처가 어디 있는데요?”

“벽에 걸려있는 저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거기에 부처가 있다.”

거울을 향해 눈을 주었던 월면이 말한다.

“이 거울 속에는 제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데요?”

경허선사의 죽비가 사정없이 월면의 등을 내려쳤다.

월면은 기겁을 했다.

“아니 왜 때리십니까요?”

“아직도 부처를 보지 못하였느냐?”

“스님, 거울 속 어디에 부처가 있단 말씀이에요!”

다시 죽비가 작열한다.

“왜 자꾸 때리기만 하십니까요!”

“거울을 다시 보아라. ”

”제 얼굴밖에 안보인다니까요!“

‘잘 보아두어라. 그 얼굴이 바로 부처니라.“

“예? 제 얼굴이 부처라고요?”

“그렇다. 그러니, 다른 곳에서 부처를 찾지 말거라.”

 

스승은 사무치게 가르치기 위해 애정의 매를 드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지만 경허선사가 월면을 가르칠 때 굳이 경학과 염불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어린 제자를 데리고 운수행각이나 탁발을 다니면서 그저 흰 구름, 피고 지는 꽃, 흐르는 물, 솔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거기에서 도를 구하고 부처를 찾도록 유도하였다. 말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제자가 저절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한국 불교사에 수많은 조사(祖師)가 있고, 제자가 존재하지만, 경허와 만공당 월면의 사제지연이 가장 돋보인다. 경허가 있기에 만공이 있고, 만공이 있기에 경허가 빛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두 사람 사이니 전하는 일화도 많다.

 

월면의 나이 스물두 살이 된 어느 날 사제는 함께 탁발을 나섰는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시주를 많이 받았다. 두 사람의 바랑에는 곡식이 가득찼다. 기분이 좋은 중에도 무거운 짐을 지고 걸으니 해질녘이 되자 월면은 녹초가 될 수밖에 없었다.

참다못한 제자가 입을 연다.

“아이고, 스니임~! 무거워 죽겠습니다. 좀 쉬었다 가요?”

“그게 뭐가 무겁다고 그리 엄살인고?”

“엄살이 아닙니다요. 다리도 아프고 어깻죽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습니다. 바랑이 너무 무겁습니다요.”

“그러면 한 가지를 버려라.”

“네에!”

“바랑을 버리던지 무겁다는 생각을 버리던지 둘 중 하나를 버리면 될 일을 왜 그리 끙끙거리느냐?”

“참 스님도, 시주받은 것을 버리면 어떻게 해요?”

“그럼 무겁다는 생각을 버려야겠구나.”

“그거 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요.”

“그럼 내가 버리도록 도와주마.”

두 스님은 한 마을로 접어들어 우물가를 지나가게 되었다. 이때 물동이를 인 젊은 아낙을 만났다. 경허스님이 그 젊은 아낙에게 다가가서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고는 냅다 달아나기 시작했다. 느닷없는 날벼락을 맞은 아낙은 물동이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달아나고 있는 경허스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저 놈 잡아라!”

앙칼진 여자의 비명소리를 들은 마을 사람들이 일하던 그대로 괭이나, 쇠스랑, 지게작대기 같은 것을 들고 달려왔다. 월면은 달아나고 있는 스승을 쫒아 뛰기 시작했다. 잡히면 도매금에 맞아 죽을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줄행랑을 놓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사위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잡혀서 치도곤을 당할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걸음을 늦추며, 숨을 몰아 쉬었다. 대체 스님은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월면은 슬그머니 부아가 치미는 것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이때 어둠속에서 경허스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하하하, 용케 안 잡히고 도망쳐 왔구나!”

“스님 대체 이게 무슨 망측한 짓입니까요!”

”도망칠 때도 등에 진 바랑이 무겁더냐? ”

”무거운 것을 느낄 사이도 없었습니다요. "

두 사람은 천장암으로 오르는 연안산 기슭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소리 없이 떠오른 달이  짙어지는 어둠을 밀쳐내는 가운데, 스승과 제자 사이에 침묵이 찾아온다. 월면은 어째서 바랑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는지 곰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적막을 깨는 스승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바랑이 무거워졌느냐?”

“.....”

“인석아, 바랑이 무거우냐고 물었다?”

“아닙니다요. 스님. 무겁다는 생각을 할 새가 없었습니다.”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무겁지도 않다?”

“네, 스님!”

“무겁다고 하던 놈, 붙잡히면 죽는다. 도망치라고 하던 놈, 그 놈들이 하나던가 둘이던고?”

“모두 저에게서 나온 하나입니다.”

“이제 무겁지 않다고 하는 놈은 어떤 놈인고?”

“그것도 한 놈입니다요.”

“꽃을 보고 예쁘다고 하고 벌레를 보고 징그럽고 하는 놈도 다 같은 놈이다, 대체 이놈들이 다 무엇인고? 그것이 무엇인지 내게 일러라?”

“모르겠습니다요. 스님. “

”웃었다가 울었다가 화냈다가 풀어졌다가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루에도 변화기를 무쌍하게 하는 그것이 바로 마음이다. 도를 얻으려면 그 마음을 바로 보아야 하는 것이니라."

 

월면수좌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 되던 계묘년 11월 1일에 한 청년이 천장암을 찾아 왔다. 그가 월면에게 물었다.

“스님, 여기서 머문 지 얼마나 되세요?”

“9년째인데 왜 그러시오?”

“부처님의 묘한 가르침이 많고 많지만 한 가지만 바로 알면 도를 깨우쳐 부처가 된다 하더군요. 스님께서 그걸 아시나 싶어서요? “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

 

월면은 이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여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들었다. 월면은 의문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어른스님을 시봉하면서 공부하기가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는 슬그머니 천정암을 떠났다. 온양 봉곡사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던 중, 을미년(1895)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고 있는데, 홀연히 벽이 공(空)해지며,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 예불을 올리기 위해 법당으로 들어간 월면수좌는 쇳송(鐘頌)을 할 때, 화엄경의 사구게 즉 만약 사람이(若人欲了知) 삼세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할진댄(三世一切佛) 응당 법계성을 관하라(應觀法界性) 일체를 마음이 지었느니라(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문득 법계성을 깨달아 화장세계(華藏世界)가 홀연히 열리는 법열을 체득하게 된다. 그때까지 그를 짓누르고 있던 의심이 눈 녹듯 살아지던, 이것이 월면의 일차 득도 순간이었다. 스스로 지은 오도송(悟道頌)이다.

 

空山理氣古今外

白雲淸風自去來

何事達摩越西天

鷄鳴丑時寅日出

빈산의 이치와 기운은 고금 밖에 있는데

흰 구름 맑은 바람은 스스로 오고 가누나

무슨 일로 달마는 서천을 건너 왔는고?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네.

 

월면은 그 후 봉곡사를 떠나 공주 마곡사에서 옹사(翁師) 보경화상의 도움을 받아가며 토굴에서 용맹정진을 하게 된다. 그곳에 온지 3년 째 되던 병신년 7월 보름날 은사인 경허선사가 행각 중에 마곡사에 들렸다. 월면이 토굴에 있다는 말을 듣고 불러내니, 실로 몇 년 만에 사제가 대좌하게 되었다.

경허선사가 묻는다.

“나에게 등(藤) 토시와 좋은 부채(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해야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네가 일찌기 다비문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다비문에 '돌사람이 눈물 흘린다(有眼石人齊下淚)‘고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고?”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경허선사의 주장자가 월면의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친다.

“돌사람이 눈물 흘린다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깨닫지 못하고 아는 척 하는 것을 엄히 경계하신 것이었다.

경허선사가 말한다.

“만법귀일 일귀하처로는 더 이상 나아가기 힘들 터인즉 이제부터는 조주스님의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하라! 그리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지으라.”

 

스승은 올 때처럼 또 홀연히 떠나갔다. 월면수좌는 그로부터 무자 화두를 참구하는데, 좀처럼 진전을 이루지 못하자 날이 갈수록 경허선사를 경모(傾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무술년(1898) 7월에 수소문 끝에 선사가 서산의 도비산 부석사에 계신 것을 알고 찾아와서, 날마다 법을 물어 현현(玄玄)한 묘리를 탁마(琢磨) 하였다. 그러던 중 부산의 동래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선사를 청하므로 원행하는데 따라나섰다가, 그곳 선원에서 하안거를 마치고, 스승과 헤어진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에 빗소리가 자자든다 싶더니 새벽 종소리를 듣게 되는데, 울려 퍼지는 종소리와 더불어 사방에서 현란한 광명이 쏴아~ 쏟아지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백천 삼매와 무량묘의(無量妙義)를 걸림 없이 통달하여 생사의 큰일을 마친 것이었다.

 

신축년 7월 말 월면은 스승을 찾아뵙기 위해 천장암으로 향했다. 8년 만에 돌아가는 것이고 열네 살에 머리를 깎아서 서른한 살이 되었으니, 17년 만에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된 것이었다. 스승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월면은 그곳에서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자면서 소요자재 하였다. 3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경허선사가 천장암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그의 나이 서른네 살 때였다.

스승이 묻는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던고?”

제자가 대답한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서 지났습니다.

“월면의 깨달은 경계는 어떠한고?”

“도를 깨달음에 지혜가 명찰하여 일체법을 하나도 모를 것 없이 안다 하였으나, 월면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고, 지혜가 없어 가히 한 가지 법도 아는 것이 없고, 또한 모를 것도 없사옵니다.”

“생과 사는 어떠하던고?”

“도를 깨달으면 살고 죽는 것이 없다던데 월면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여 살기도 하고 혹은 죽기도 합니다.”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고?”

“얻은 것도 없거니와 잃은 것도 없습니다.”

더 이상 물을 것이 없는 제자에게 스승이 만공(滿空)이라는 법호(法號와 더불어 전법게를 내린다.

 

雲月溪山處處同

叟山禪子大家風

慇懃分付無紋印

一段機權活眼中

구름 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의 대가풍이여

은근히 무문인을 부촉하노니

한 조각 권세기틀이 눈 속에 살았구나.

 

그런 다음 스승이 간곡하게 말한다.

“불조의 혜명을 이어 가도록 그대에게 부촉하니 부디 불망신지(不忘信之)하라.”

1904년 7월 보름의 일이었다.

제자 만공당 월면에게 법을 전한 경허선사는 이튿날 어디 인근에라도 다녀오는 듯 천장암을 떠났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서는 다시 만나지 못하는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다. 경허선사는 만공이라는 제자 하나를 확실하게 가르쳐놓고, 그동안 자신이 누렸던 모든 지위를 일임하고는,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기로 결심했음인지, 훌쩍 미련을 두지않고 떠나간 것이었다. 구름도 쉬어넘는 첩첩산중 함경도 산수갑산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세속일에 관여치 않고 자내다가, 선사는 그곳에서 홀연히 원적에 드시었다.

 

스승과 이별하고 몇 년동안 보임을 하던 만공당 월면선사는 을사년(1905) 봄에 덕숭산에다 조그만 암자를 짓고 금선대라 이름하였는데, 그곳으로 제방의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설법을 청하니, 사양하다 못해 법좌에 올라 개당보설(開堂普說)을 한다. 그로부터 스님의 문하에서 용상대덕이 무수히 배출되었다. 그 뒤 스님은 수덕사, 정혜사, 견성암을 중창하여 많은 사부대중을 거느리고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 마하연선원에 가서 삼하(三夏)를 지냈다.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의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한 칸 띠집을 지어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하고 홀로 둥근 달을 굴리시다가 어느 날 목욕 단좌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중얼 거렸다.

“자네와 내가 이제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

껄껄 웃고 문득 숨 한번 크게 마시고 다시는 토하지 않음으로서 열반하시니, 때는 병술년 시월 20일이었다. 다비 중 흰 연기 위에 홀연히 백학(白鶴)이 나타나 공중을 배회하고, 오색 광명이 하늘에 닿았다. 이 광경을 본 대중은 환희심과 기이한 생각으로 다비를 마친 후, 영골을 모아, 석탑에 봉안하였다. 세수 75세요 법랍은 62이며 석존 후 76대로 꼽는다.

 

 

가운데 글자가 이룰 성자의 초서체로 보이나 구할 구자로 읽는 사람도 많다.

원만함을 이루는 것이나 원만함을 구하는 것이나 뜻은 차이가 없다.

 

경허선삭 보임을 하시던 방의 크기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도 비좁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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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토정비결 | 작성시간 12.08.21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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