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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7월5일 열 가지 형이상학적 질문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5.06.28|조회수39 목록 댓글 0

열 가지 형이상학적 질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왓티의 기원정사에 계셨다.

그 때 말릉꺄붓따 존자는 홀로 명상을 하고 있는 동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부처님은 이와 같은 추론적인 견해들은 말씀하시지 않고 재쳐 두고 배척하셨다.

① 세상은 영원한가?

②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③ 세상은 유한한가?

④ 세상은 무한한가?

⑤ 영혼과 육체는 같은가?

⑥ 영혼과 육체는 다른가?

⑦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⑧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⑨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가?

⑩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이런 견해에 대해 부처님이 내게 말씀하지 않는 것이 못마땅하고 흡족하지 않다. 그러니 부처님께 가서

그 뜻을 여쭈어 보아야 겠다. 만일 부처님이 이런 질문에 대답하시면 나는 수행생활을 계속할 것이고,

만일  대답을 하지 않으시면 나는 수행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서 저녁 나절 말룽꺄뿟따 존자는 명상을 끝내고 부처님께 가서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그대

로 말씀드렸다. 그리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은 영원하다'고 생각하시면 '세상은 영원하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두 가지 다 모르시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 나는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생각하시면 '세상은 유한하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유한하지 않

다'고 생각하시면 '세상은 무한하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두 가지 다 모르시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 나는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영혼과 육체는 같다'고 생각하시면....., '영혼과 육체는 같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여래

는 사후에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여래는 사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시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시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두 가지 다 모르시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 나는

보지 못한다.' 고 말씀하시는 것이 솔직할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말룽꺄뿟따, 내가 그대에게 '나를 따라 청정한 수행생활을 하면 그대에게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또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를 말해줄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없습니다. 부처님."

 

 

"그대가 나에게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또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

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를 말해 주신다면 나는 부처님께 출가하겠다.' 하고 말한 적이 있

는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룽꺄뿟따, 나도 그대에게 '나를 따라 출가하면 세상은 영원한가 등을 말해 주겠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대도 나에게 세상은 영원하다 등을 말해 주면 출가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리석은 사

람아, 누구에게 무엇을 버리겠다는 것이냐?

 

어떤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께서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또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를 설명해 줄 때까지, 나는 부처님 아래 출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것들은 결코 여래에 의하여 그에게 설명되지 않은채 남아 있을 것이므로 그

러는 동안  이 사람은 아마 죽을 것이다.

 

(독 묻은 화살의 비유)

 

말룽꺄뿟따, 어떤 사람이 독이 잔뜩 묻은 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그래서 그의 친구와 동료와 친척들이

그를 치료하기 위해 외과의사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독화살 맞은 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쏜 사람이

 

- 계급이 왕족인지, 브라흐민인지, 상인인지, 노예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이름이 무엇인지, 어느 종족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피부색깔이 검은지, 갈색인지, 금색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시골에 사는지, 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활이 긴 활인지, 격발식 활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활줄이 섬유인지, 갈대인지, 힘줄인지, 대마인지, 나무껍질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화살대가 거친지, 또는 잘 다듬어졌는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화살의 깃털이 독수리 깃털인지, 까마귀, 매, 공작새, 황새 깃털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화살대를 묶은 힘줄이 황소 힘줄인지, 들소, 사자, 원숭이 힘줄인지 알기 전에는 이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 화살이 뽀족한지, 굽었는지, 가시가 있는지, 송아지 이빨 같은지, 협죽도 잎 모양인지 알기 전에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는 이것들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며 그러는 동안에 그는 죽고 말 것이다.

 

(세상이 영원해도 영원하지 않아도 생로병사는 여전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룽꺄뿟따, '부처님이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또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를 설명

해 주실 때까지, 나는 부처님 아래 출가하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래는 그에게 결코 설명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러는 동안 그는 죽고

말 것이다.

 

 

 

말룽꺄뿟따, 청정한 삶이란 '세상은 영원한가 또는 영원하지 않은가'와 같은

견해에 따라서 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영원하다.' 또는 ' 세상

은 영원하지 않다.'하는 견해가 있어도, [이것과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는

여전히]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이 있으며, 슬픔, 한탄, 괴로움, 절망이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것들의 부수어 버림을 가르친다.

 

 

 

말룽꺄뿟따, 청정한 삶은 '세상은 유한한가, 또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

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와 같은 견해에 따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유한하다'고 해도 또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하고 해도 [이것과는 관계없이 이 세상

에는 여전히]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이 있으며, 슬픔, 한탄, 괴로움, 절망이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이것들의 부수어버림을 가르친다.

(단언하여 말하지 않은 것)

그러므로 말룽꺄뿟따, 내가 단언하여 말한 것은 단언하여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단언하여 말하지 않은 것은 단언하여 말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여라.

 

 

어떤 것을 내가 단언하여 말하지 않았는가? '이 세상은 영원하다.'고 나는 단언

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고도 나는 단언하지 않았다.

 

'영혼과 육체는 같다'고 나는 단언하지 않았다. '영혼과 육체는 같지 않다' 고도

단언하지 않았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고 나는 단언하지 않았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

는다.'고도 단언하지 않았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나는 단언하지 않았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고도 단언하지 않았다.

 

 

나는 왜 그것들을 단언하여 말하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이것들은 목표와 이어져

있지 않으며, 청정한 삶의 근본에 적합하지 않으며, 깨어있음으로 이끌지 않으며,

욕망의 버림, 갈애의 소멸, 평화로움, 최상의 지혜,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

지 않기 때문이다.

 

 

 

 

(단언하여 말하는 것)

그러면 나는 무엇을 단언하여 말하였는가?

 

'이것이 괴로움이다.' 라고 나는 단언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근원이다.'라고

나는 단언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단언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단언하여 말하였다.

 

나는 왜 그것들을 단언하여 말하였는가? 왜냐하면 이것들은 목표와 이어져 있으며,

청정한 삶의 근본이며, 깨어있음으로 이끌며, 욕망의 소멸, 갈애의 소멸, 평화로움,

최상의 지혜,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룽꺄뿟다, 그대는 내가 단언하여 말한 것은 단언하여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단언하여 말하지 않은 것은 단언하여 말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여라. 이것이 붓다의 말이다."

 

 

말룽꺄뿟딴 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에 만족하고 기뻐하였다.

 

 

※주석: 90) 형이상학 :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철학적, 초경험적, 관념적인 것에 바탕을 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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