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아난다 존자는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있었다. 그때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얼마 되지 않았
을 때이다. 아난다 존자는 브라흐민 고빠까목갈라나의 작업장에서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가다국의 대신인 브라흐민 왓사까라가라자가하에서 공사를 감독하다가 아난다 존자를 찾아왔
다. 그는 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앉아 여러 가지를 질문한 후 다시 이렇게 물었다.
“아난다 존자님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 죽림정사에 있습니다.”
“아난다 존자님, 그 대나무 숲은 쾌적하고, 조용하고, 인가와 떨어져 있고, 외따로 명상 수행하기에 적합
한 곳이지요?”
“그렇습니다. 브라흐민, [더구나] 그대와 같은 관리인과 보호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난다 존자님, 그리고 그곳은 명상가인 훌륭한 분들과 명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대나
무 숲은 쾌적하고, 조용하고, 인가와 떨어져 있고, 외따로 명상 수행하기 적합한 곳입니다. 그전에 고따
마 존자님이 웨살리의 큰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서 계실 때였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저에게 명상에 대
하여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고따마 존자님은 명상가였고, 명상을 수련하셨고, 어떤 형태의 명
상이든 찬탄하셨습니다.”
“브라흐민이여, 부처님은 명상을 어떻게 하든지를 막론하고 무조건 찬탄하지 않았고, 무조건 비난하지
도 않았습니다. 부처님이 찬탄하지 않은 명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 장애를 경계하심)
여기 어떤 사람이 감각적 쾌락에 붙잡혀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감각적 쾌락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감각적 쾌락을 마음속에 가지고 명상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악한 마음에 붙잡혀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악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그
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악한 마음을 품고 명상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
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게으름과 무기력에 사로잡혔
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게으름과 무기력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
을 하고 있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들뜸과 회한에 붙잡혀서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들뜸과 회한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그것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들뜸과 회한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
지만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심으로 가득 차서 의심을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의심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그것
에서 벗어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이 의심에 빠져서 명상을 하면 그는 명상을 하고 있지만 명
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브라흐민이여, 부처님은 이런 종류의 명상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떤 종류의 명
상을 찬탄하셨을까요?
(4선정을 찬탄하심)
브라흐민이여, 감각적 쾌락과 바람직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사유와 숙고가 있으며 홀로 명상함
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사유와 숙고를 멈추고 안으로의 평온함과 마음의 집중됨이 있으며, 사유과 숙고가 없이 삼매에서 오는
환희와 기쁨이 두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환희가 사라진 후 평정한 마음과 분명한 알아차림과 육신의 행복을 느끼며 머뭅니다. 거룩한 이들이 말
하는 ‘평정과 마음챙김에 머무는 사람은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고통도 쾌락도 버리고 전에 있던 행복도 불행도 버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고, 평정에 의하여 도달한
마음챙김의 순수함이 있는 네 번째 선정에 머뭅니다.
부처님은 이런 종류의 명상을 찬탄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아난다 존자는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