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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11월27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6.11.29|조회수104 목록 댓글 1

  2016.11.27.. 고북의 더러븐 성깔을 보여주는, 안개로 위장한 미세먼지와 부스시시 빗방울



 

 

 

 

  1127,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진지하고도 재미있는 일요법회가 막을 내리고 우리들이 공양간에 느지막하게 내려왔을 때는 벌써 스님들은 공양을 마치고 자리를 뜬 뒤였습니다. 오늘은 순례객巡禮客이나 참배객參拜客들이 없어서 그야말로 일요법회 도반님들끼리 오붓하게 둘러 앉아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밥을 뜨면서 선반 아래를 보았더니 선방 스님 공양물로 들어온 거북빵하고 찹쌀떡이 먹음직스럽게 보여서 접시에 밥을 조금만 담았습니다. 공양을 올리고 나서는 바로 찹쌀떡과 거북빵을 먹어보았습니다. 나는 거북빵을 처음 먹어보았는데 모카향이 가득한데다가 보들보들 부드럽고 은근히 쫄깃해서 입안에 착착 감기는 맛이 있었습니다. 왠지 현대여성인 백화보살님이나 예천동보살님이나 무진주보살님이 좋아할만한 그런 분위기의 빵 같았습니다. 주방에서 막 구어 낸 거북빵을 커피와 함께 먹으면 매우 맛이 있다고 옆에 앉아있던 서울보살님이 말해주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맛이 있다면 왜 그 동안 한 번도 거북빵을 먹으러 가자고하거나 사다주지 않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나도 우연히 먹어본 빵이나 음식이 매우 맛이 있었다고 해서 서울보살님에게 척척 사다주거나 한 번 먹으러가지는 말을 꼭꼭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쓸데없이 자랑은 잊지 않고 하는 편입니다. 찹쌀떡을 두 개째 먹으면서 차실을 건너다보았더니 상이 두 개 펼쳐진 채로 놓여있고 좌복도 상 앞에 가지런히 깔려있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차실의 풍경이 바뀌지 않고 오직 공양만을 올리기 위한 준비된 공양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우리스님께서 지난 달 주지소임을 떠나시고 나서 지난 주 김장비비기까지 이런저런 일에다가 다소 뒤숭숭하기도 하여 사실 차실茶室에서 차분하게 차를 마실 여유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주지스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 차실茶室 안의 상을 정리해놓고 일요일에는 예전처럼 일요법회 도반님이나 참배객들과 차담茶啖을 하거나 쉬는 장소로 사용하겠습니다.” 주지스님은 쾌히 그러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차실을 정리하고 한바탕 청소를 해낸 뒤 모두 차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모처럼 정덕거사님이 다판 안쪽에 앉아 팽주를 보았습니다. 차실에 앉아 누가 팽주를 보느냐에 따라 차 맛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면서 그 맛도 살풋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진월거사님이 빼주는 차와 정덕거사님이 빼주는 차에 차실 안의 훈훈한 분위기가 부드럽게 형성이 되고 혀끝과 코가 익숙해서 좋아라합니다.





 

 

  오랜만에 찻잔이 돌아가면서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꽃이 하늘하늘 피어났습니다. 오늘 일요법회 시간에도 잠깐 논의가 되었던 부처님 최초의 다섯 제자 중의 한 사람인 꼰단냐 비구의 진리를 깨달았다.’ 거나 대부호 상인의 아들로 출가한 야사 비구의 진리의 눈이 열렸다든가 하는 깨달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깨달음도 부처님의 깨달음 즉, 대각大覺과 똑같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하는 궁금증은 누구나 품어볼 수 있는 의문일 것입니다. 또 기도祈禱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음정근을 하는 등 염불念佛을 하고, 삼천 배를 하고, 대비주大悲呪 진언을 하는 것은 석가모니부처님 당대에는 없었던 기도방식일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기도가 만들어지고 기도가 정진의 한 방법이 되면서부터 기도를 하는 궁극적窮極的인 이유는 무엇이일까? 또 누구나 화두話頭를 깨치는 참선參禪을 하면 정말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인지, 수행과 정진을 잘 하신 대덕스님이나 신실한 참선 수행자들은 입적하신 뒤 화장火葬을 하면 정말 사리가 나오는 것인지 하는 등등 의문과 질문이 연달아 이어졌습니다. 어떤 때는 순박하고 천진스러운 질문이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꼰단냐 비구처럼 중도中道와 사성제四聖諦의 가르침을 받아 진리를 깨달아보고 석가모니부처님처럼 연기緣起의 실상實相을 관찰하여 깨달아보았다면 꼰단냐 비구와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해서 쉽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체험해보지 않았던 일을 교리나 경전에 근거하여 설명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손아귀에 꽉 쥐어지는 듯한 쾌적한 파악력把握力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깨달은 큰 스님이나 천장암 근방에 사시는 아라한을 모셔오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려면 그런 분을 찾으러 다니는 일이 더 쉽지가 않을 듯도 합니다. 모든 불자님들이 걱정스러워 하는 것처럼 이런 풍토의 수행력이나 이런 바탕의 정진력이 대세라면 한국불교에서는 깨달음이란 말이 거의 몽상夢想에 가까운 희망사항希望事項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완전히 없앤 것을 깨달았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작금 한국불교는 소유의 맛과 쾌락을 알아버린 판세인지라 부처님께서 몸소 증명을 해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요원遙遠하게, 사실대로 솔직한 심정으로 말한다면 거의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나 기도에 관한 소박한 질문에는 그저 할 수 있는 대답이란 매번 고식적姑息的이 되든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정진과 기도를 해본 적이 없고, 지혜의 눈으로 연기의 체험을 통해 우주의 실상을 깨달아본 적이 없는 마당에 머리를 쥐어짜면서 대답을 해야 하는 쪽도 역시나 보통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오전에는 맑았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갑자기 하늘 한 귀퉁이부터 우그러지면서 흐려졌습니다. 오후에는 제1주차장 옆에 있는 밭에 몇 이랑 남겨놓은 알타리무를 뽑으러 가는 울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검은 하늘에서 희부연 비가 떨어질 듯하자 공양주보살님 얼굴이 울상이 되었습니다. 시골 일이라는 게 시간과 시기가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한번 시간이나 시기를 놓쳐버리면 시골 일은 몇 개월의 노력이 허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천장암이 소재하는 서산시 고북면은 날씨는 별로 좋지 않지만 흙이 전형적인 황토라서 알타리무 재배에는 전국에서 첫손가락 꼽히는 최적지입니다. 인터넷에서 그냥 알타리 하고만 쳐보아도 고북알타리무가 금세 올라옵니다. 알타리무는 1982년부터 서산시 고북면 일대에서 전국 최초로 대단위 재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생산이 되는 알타리무는 고북알타리무로 상표등록이 되어있고 품질도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보살님도 절에서 나누어준 알타리무를 집에 가져와 다듬고 씻고 해서 알타리무 김치를 열심히 담갔습니다. 알타리무의 표준어는 총각무인데 알무 또는 달랑무 라고도 한답니다. 미세한 빗방울이 차실 유리창에 흔적을 남기고 떨어졌습니다. 우리들은 차실에서 화기和氣와 담소談笑로 즐기던 차담자리를 마무리하고 무리를 지어 제1주차장이 있는 밭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실 달리는 것은 차였고 우리들은 차안에 다소곳이 앉아있었습니다. 차창에 빗방울이 투둑.. 투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1주차장에 차를 나란히 주차시켜놓고 밭으로 내려갔습니다. 넓디넓은 밭 한 구석의 다섯 두둑정도에 파란 잎이 있는 알타리무가 심어진 채로 있었습니다. 사람이 십여 명이면 손은 이십여 개가 됩니다. 나처럼 아직 울력에 참여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다른 도반님들은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두둑에서 뽑아낸 알타리무를 흙을 털어 박스와 포대에 차곡차곡 담았습니다. 빗방울이 둥글게 몸피를 불리면서 본격적으로 쏟아질 무렵에는 알타리무 뽑기 울력이 끝나 박스와 포대를 차에 싣고 절로 돌아왔습니다. 공양간 앞 토방에 알타리무를 무더기 무더기로 쏟아놓고 보살님들이 다듬기를 시작했습니다. 일이십 분 안에 끝날 일이 아니어서 엉거주춤 쭈그려 앉은 보살님들이 힘들어보였습니다. 그러자 정덕거사님께서 벽돌에 스티로폼을 얹은 즉석 의자를 만들어 보살님들이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조취를 취해드렸습니다. 어떤 일에 닥쳐서 생각만 하고 있는 사람과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 사이에는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좁지만 넓은 간격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아직 울력 열외자列外者인 나는 뒷짐을 지고 성우당 마당을 슬슬 돌아다니다 보았더니 다른 보살님들은 모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데 예천동보살님만 서서 알타리무를 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정덕거사님 본을 받아 플라스틱 목욕탕 의자를 하나 보살님께 갖다드렸더니 예천동보살님은 서서 일을 하는 게 더 편하다며 앉지를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착한 일도 늘 꾸준하고 평범하도록 해야지 어쩌다 한 번 생각날 때만 하려고 하면 선의가 잘 전달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라면 선의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하기 보다는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을 전달하는 안목이 부족했다고 보아야할 것 같습니다. 착한 일도 자주 해야만, 그래서 하면 할수록 솜씨와 안목이 늘어가는 모양입니다. 세상이나 타인에 대한 선의善意나 배려配慮란 깜짝 행사나 이벤트성이 아니라 숨쉬기나 눈 깜짝임 등의 불수의운동不隨意運動 같은 습관이나 삶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을 닮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공양주보살님은 괜찮다고 말씀하셨지만 일을 할 때 한꺼번에 해놓은 것이 좋다면서 보살님들이 다듬어놓은 알타리무를 씻으러 샘가에 모여 앉았습니다. 고무 다라이로 세 통 가량의 알타리무를 거의 다 씻어갈 무렵 선방 스님께서 저녁공양 목탁을 쳤습니다. 우리들은 서산 시내에서 몇 분을 더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에 울력을 마치는 대로 절에서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일요일 오전과 오후를 비추던 길었던 하루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사시불공과 일요법회를 하고 점심공양을 하고 차담을 하고 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일요법회가 있는 매일요일마다 찾아오는 일요법회의 뒷풀이와 같은, 저녁공양과 차를 마시면서 종교적 성찰과 문화 활동을 하는 시간과 공간이 될 것입니다. 주지스님과 함께 사찰순례를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또 새로운 시도와 활동에 가치를 두고 의미 있는 인생과 종교적 삶에 대한 반추反芻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앵커맨 밸라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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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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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묘광명 | 작성시간 16.11.30 밸라거사님,
    선의를 몰라드려 죄송한 마음이예요.
    저도 집에 돌아온 후, 언뜻 그생각이 나서 이 미안함을 어떻게 전해 드리나 걱정했는데, 이렇게나마 고맙고도 죄송한 마음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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