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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11월27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6.12.01|조회수139 목록 댓글 0

  2016.11.27.. 고북의 더러븐 성깔을 보여주는, 안개로 위장한 미세먼지와 부스시시 빗방울




 

 

 

  1127,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오늘이 맑은 날씨라면 하늘에 있던 해의 행방이 묘연해지려는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풍경을 쳐다보면서 서산으로 향했습니다. 이럴 때는 매직아워magic hour’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매직아워란 일몰 후 수 분에서 수십 분 정도 체험할 수 있는 황혼 때 촬영을 하면 광원이 되는 태양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림자가 없는 상태여서, 색상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사물이나 풍경이 금색으로 빛나는 상태가 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매직아워라는 동명同名의 영화가 여러 편 있지만 그중 2008년도 미타니 코키 감독의 연출작품인 매직아워가 으뜸입니다. 영화 매직아워는 코미디 영화로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코미디 하면 다소 과장된 행동과 억지웃음이나 슬랩스틱만을 생각하게 되는데, 본래 의미의 코미디는 민중을 대변하는 영화장르입니다. 결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다른 진지한 장르보다 사회 비판적 주제나 정치적 이슈를 보다 수월하게 공론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코미디는 인간사회의 평등주의 신념과 계급제도의 부정에서 출발합니다. 코미디는 인간미와 유머에 기반을 둔 엉뚱한 이야기를 통해 현 사회체제의 유쾌한 전복을 시도하며 유토피아적 사회공동체의 재건설을 꿈꿉니다. 따라서 코미디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한 사회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매직아워라는 영화를 한 번 보게 되면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코미디와 코미디다운 코미디가 서로 어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느끼게 될 것입니다. 코미디도 그 코미디를 봐주고 이해하는 관객과 지지자들에 의해서 코미디의 품격이 결정됩니다. 누구라도 코미디를 만들 수는 있지만 아무나 코미디를 대중들이 공감하도록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라도 조직과 인기, 권력과 자금을 동원하여 대통령이 될 수는 있으나 아무나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에 뽑히는 자격과 대통령을 수행하는 자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때 대통령을 뽑고 대통령직을 품격 있게 수행하도록 하는 정치의식이 안정된 수준에 도달한 성숙한 민주사회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천장암에서 서산 시내까지 내비게이션을 켜서 확인해보면 보통 예상시간이 37분이라고 찍혀있지만 실제로 어두워질 무렵에 가보면 50분가량 걸립니다. 우리는 일단 서광사 앞까지 갔다가 일행들에게 연락을 해서 음식점 위치를 확인한 후 다시 U턴을 받아 약속장소에 도착을 했습니다. 저녁식사는 쌈밥이었습니다. 쌈밥 중에서도 우렁 쌈밥이라는데, 우렁 쌈장이 짜지도 않게 고소한 듯 맛나고 푸짐한 계란찜도 좋았습니다. 나중에 태평거사님이 일부러 시켜준 벌건 제육볶음 쌈도 아주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쌈밥집에 사람이 만원이었습니다. 일요일 저녁시간대에 단체손님들로 가득한 게 무척이나 장사가 잘 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 만해도 8명가량이나 되는데, 실내에 가득한 손님들이 백여 명은 족히 될 듯합니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니 주인 양반도 좋을 것이고, 연신 음식을 만들어 내가는 주방도 신바람이 날 것이고, 실내 공기가 훈훈한 게 사람 사는 집 같아서 덩달아 흥겨워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도대체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정신이 산란할 만큼 시끄럽고 소란스러워서 강경 장날 우시장 옆에 앉아 국밥을 말아먹고 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백여 명가량 모여앉아 있으면 소란스러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마주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면 그 소란을 뚫어가면서 말을 건네줘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주변의 소란보다는 몇 데시벨 높은 소리를 내야합니다. 그 높은 소리는 이내 주변 소란으로 합류가 되고 저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또 몇 데시벨을 더 얹어 높은 소리를 내야만 자기 일행들과 이야기가 가능해집니다. 몇 차례의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한정된 공간에서 식사를 할 때 가장 시끄러운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이고 대체로 조용한 편인 사람들이 일본사람들이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이라고 해서, 일본 사람들이라고 해서,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있을 때는 그랬던 것 같았습니다. 외국 사람들은 그만두고 문제는 한국 사람입니다. 식사 분위기가 중국 사람만은 덜 하지만 일본 사람보다는 다소 소란스러웠던 듯합니다.





 

 

  좋은 관습은 아니지만 우리들은 예전부터 식불언食不言이라는 공자님 말씀대로 음식을 먹는 동안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식사예법食事禮法이었습니다. 물론 이 공자님 말씀은 다시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식불언食不言이라 했으니 남의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침불언寢不言이라 했으니 남의 누행을 따지지 마라.’ 이 말씀의 출전出典은 논어論語입니다.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식불언食不言이니 밥을 먹으면서 말하지 마라.는 뜻보다는 남의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침불언寢不言이니 자면서 말하지 마라.는 뜻이 아니라 자리에 누워서 남의 누행을 따지지 마라.’ 라는 뜻으로 새겨야 옳은 뜻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식불언食不言의 예법에 따라 과묵하게 밥을 먹던 한국인들의 관습은 언제부터인지 아주 속 시원한 대화의 광장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일요일 하루를 즐겁게 함께한 일행들과 따뜻한 식사에 한 잔 술이 긴장감을 풀어주었겠지만 바로 긴장감이 풀어지고 자세가 느슨해지려고 할 때 비로소 작동을 시작하는 것이 공공公共에 대한 규칙과 예절입니다. 버스나 비행기 안이 좁고 답답하다고 해서 와이셔츠를 풀어 헤치고 양말을 벗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언제나 공중도덕심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말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것이 에티켓이고 말의 크기를 조절할 할 줄 아는 것이 매너라고 한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익혀야 할지를 자주 연습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소란 통에서도 일요법회 보살님들께서는 저녁식사를 의연하게 잘 하셨습니다. 참 아름답고 신실한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입니다.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 음식점이라면 뒤에 올 손님을 위해서라도 자리에서 부지런히 일어나야했습니다. 밖으로 나와 보았더니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모여앉아 차를 한 잔 하러 자리를 옮긴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찻값이 식사 값 못지않게 비싸서 대화의 즐거움도 돈으로 사야하는 집약적 자본주의 현상에 가까운 현대생활이 되버렸습니다. 물론 커피나 찻값이라는 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나 분위기까지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부담이 큰 편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찻집으로 갔습니다. 커피나 차보다 더 중요한 대화와 감정의 교감을 마시러 가야 일요법회의 진정한 하루가 마무리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상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앵커맨 밸라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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