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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12월04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6.12.10|조회수140 목록 댓글 1

  2016.12.04.. 비 온다던 밤 서산 시내에, 있으라고 이슬비가 솔솔 내렸다




 

 

 

  1204,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1204일 일요법회에서 공부를 한 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1208일입니다. 오늘 아침도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울보살님이 컴퓨터 책상으로 다가오더니 카톡을 보여주었습니다. 선원에 불이 나서 전소되었다는 문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염궁선원에 불이 났다는 것입니다. 미얀마에 계시는 우리스님과 정덕거사님 글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갑자기 처한 상황이라 어리둥절한 기분에 새로운 소식이 카톡방에 올라오기를 눈여겨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마음만 분주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덕거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화재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을 주고받은 뒤 정덕거사님께서 일단 천장암에 다녀와서 연락을 다시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서울보살님과 잠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해서 오전에 해야 했던 일은 오후로 미뤄놓고 오후 약속은 내일로 연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충 책상만 정리해놓고 서울보살님과 함께 천장암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서울지역은 미세먼지 농도수치가 100을 넘나들 만큼 높았습니다. 그런데 서산지역의 수치는 30전후로 상당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미세먼지 농도수치부터 확인을 합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수치에 따라 양재천 천변 걷기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헬스클럽에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집에서 일을 할 것인지 밖으로 외출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품질 불량한 메이드 인 차이나 중에서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가장 저품질, 고비용, 극독성의 통관절차도 세금도 없는 막무가내莫無可奈인 완전체의 전형입니다. 주중이라 오히려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는데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서울 시내를 빠져나가자 그 다음부터는 공기가 맑아 시계가 양호한데다 도로교통상태가 좋아 빠르게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서해안고속도로 화성휴게소에 들려 차에 연료를 가득 넣은 뒤 바로 출발을 했습니다. 아마 겨울 문턱에 들어서는 오늘 하루 동안에도 전국에서 여러 군데 화재사건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재사건의 현장으로 어떤 이유로든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이 경찰관아저씨나 소방관이 아니라면 그 장소나 건물과 상당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거의 해미IC를 지나고 있을 무렵 운전석 옆 자리에 서울보살님이 앉아 있다가 지금 절에 있는 태평거사님이 카톡방에 올려놓은 염궁선원 터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층 홑집이었던 염궁선원 터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뭔가 남아있기는 좀 있었습니다. 잔뜩 구겨진 샌드위치 패널과 까만 숯으로 변해 쓰러진 기둥의 흔적들이 고작이었습니다. 대략 삼십 분 뒤쯤 몇 분 도반님들과 함께 서서 염궁선원 터를 바라보고 있던 주지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원이 있던 자리가 텅 비어있으니 도량이 좀 넓어 보이기는 하네요.” 옛날, 그러니까 경허스님께서 수행할 당시인 백여 년 전의 천장암 도량을 나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지금 도량과 비교를 해보기가 쉽지는 않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좁고 경사가 심한 곳이었을 겁니다. 성우당 마당도 축대를 쌓아 만들어놓았고, 염궁선원도 축대를 쌓아 그 위에 선원을 지어놓았고, 인법당 마당도 축대를 쌓아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옛날에는 산비탈에 걸려있는 손바닥만한 땅위에 인법당 한 채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천장암 여래자 숲길로 들어서서 차를 몰아 비스듬한 경사 길을 올라가는데 여래자보살님이 저 앞에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산 밑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보살님에게 오늘 새벽에 있었던 화재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글씨 소방서랑 경찰서에 신고전화를 해놓고 마당에 나와 천장암 쪽을 쳐다보니께 시뻘건 불이 하늘로 치솟아 금세 금세 산 아래쪽으로 밀고 내려와서 우리 집까지 올 것 같드란 말이여이~ ” 아마 백여 년 전 천장암 인법당 후원에서 아궁이에 군불을 때던 수월스님의 방광放光하던 모습도 어쩌면 그런 풍경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월스님은 그 뒤로도 정진하던 도중에 여러 군데에서 방광放光의 이적異蹟을 보여주었습니다. 수월스님의 마음씀씀이나 성향으로 봐서는 자신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고 빛을 내뿜는 이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하려고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저절로 그리 되는 일이니 조금 불편한대로 참으셨을 것 같습니다. 경사 길을 올라 성우당 쪽으로 들어가는 천장암 입구 산비탈 오른편에는 화강암 연꽃 좌대위에 수월선사 기념비가 서있습니다. 그리고 기념비에는 수월선사 법어가 쓰여 있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 겨. 하늘천 따지를 하든지, 하나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든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로 달통한 사람이여.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 마니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 모으기를, 워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해도 생각을 안 할수 없는 맨큼 혀야 되는 겨.’





 

 

  무학無學이자 정진에 별로 힘을 쏟지 않아 천장암에 온 처음 5년 동안은 부목負木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천수대비주를 듣고 이를 외운 뒤 천수대비주 염송에 힘을 쏟아 천수삼매千手三昧를 얻어 평생 잠을 자지 않고 수행정진을 하셨다는 수월스님은 경전을 읽지도 글을 쓰지도 못했으나 경전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기념비에 적혀있는 수월선사 법어를 보아도 수월스님의 경력이나 성향이 잘 나타나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수월스님처럼 가장 단순하게 천수대비주나 어느 한 가지를 지성으로 외우고 송경誦經해서 마음을 모으면 도가 닦아지고 도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나도 복잡하고 현학적인 경전상의 교리나 진리체계를 우선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법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보다는 ---을 따라야한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깨달음으로 가는데 지식이나 문자가 필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나 문자에 얽매이지 말라는 숨겨진 의도가 맞는 것이라면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믿음이야말로 흔들림 없이 진정한 믿음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수월스님의 은사스님이었던 경허스님도 젊은 나이에 당대의 대강백大講伯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식과 문자만으로는 지극한 간절함에 미치지 못하자 지식과 문자를 떨쳐내고 화두를 통한 참선에 몰두하셨던 것입니다. 경허스님께서 먼저 동학사에서 견성을 하시고 난 뒤 보림을 했던 터가 바로 천장암입니다.





 

 

  주차장까지 마중을 나오신 태평거사님의 차를 얻어 타고 성우당 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주지스님을 만나 효원스님과 길상스님과 함께 돌계단을 올라 염궁선원 터 앞에 섰습니다. 카톡방에 올라온 사진 속의 그림보다 실제로 바라보는 염궁선원의 텅 빈 공간은 훨씬 넓어 보이고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아직도 한편 구석에서는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솟아나고 있었고, 화목보일러의 땔감으로 쌓아놓았던 나무둥치들이 그대로 한아름 숯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돌 축대위에 홑집으로 지어놓은 염궁선원은 뒤켠 창고의 물품이나 샌드위치 패널과 주변에 쌓아놓은 화목보일러 땔감나무 들로 인해 한 번 불이 붙자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을 것입니다. 다행이랄까 새벽녘에 바람이 없어서 불이 산으로 옮겨 붙지 않았고, 선방 스님들께서 무사 온전하신 것만 해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염궁선원 빈 터에는 소방차 호스로 물을 많이 뿌려놓아 못 느꼈는데 부처님께 참배를 하러 법당에 들어갔더니 그 안에서는 그을린 연기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법당에서 나와 돌계단을 내려가 공양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양간 미닫이문을 열자 일요법회 도반님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해주었습니다. 아마 공양간에는 태평거사님과 정덕거사님 정도 있으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요즘 일이 바빠서 일요법회에서 뵙기 힘든 길상화보살님부터 일요법회 도반님들이 빠짐없이 절로 달려와 한 자리에 모여 있었습니다. 한 분 한 분 두 손을 마주잡아보면서 괜히 코끝이 찡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족家族이라든가 도반道伴이라는 말은 이럴 때 딱 들어맞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말보다 멋진 식구食口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가족家族이란 한 집에서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도반道伴이란 영원한 진리의 길을 함께 가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에는 믿음직하고 자랑스러운 도반님들이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답니다. 바로 천장사 일요법회 도반님들입니다. 이상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앵커맨 밸라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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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리사랑 | 작성시간 16.12.12 눈앞의 현실은 망연자실,
    우째이런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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