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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12월1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6.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6.12.16|조회수54 목록 댓글 0

  2016.12.11.. 천장사 집웅이 된 하늘, 파랑이 용궁龍宮처럼 쌓여있었다




 

 

 

  1211,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6.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되는 학문은 역사歷史와 철학哲學입니다. 그래서 어느 학문이든 그 뒤에 역사나 철학을 살짝 가져다 붙여놓으면 그 학문의 역사나 철학됩니다. 를 들면 과학에 역사를 붙이면 과학사科學史가 되고, 철학을 붙이면 과학철학科學哲學이 됩니다. 종교에 역사를 붙이면 종교사宗敎史가 되고, 철학을 붙이면 종교철학宗敎哲學이 됩니다. 물론 역사에 철학을 붙이면 역사철학歷史哲學이 되고, 철학에 역사를 붙이면 철학사哲學史가 됩니다. 재미있으니까 더 만들어볼까요. 언어학에 역사를 붙이면 언어학사言語學史가 되고, 철학을 붙이면 언어철학言語哲學이 됩니다. 문화인류학에 역사를 붙이면 문화인류사文化人類史가 되고, 철학을 붙이면 문화인류철학文化人類哲學이 됩니다. 이렇게 학문은 몇 가지 원칙아래 다양하고 세분화되어 갑니다. 그렇다면 불교에 역사를 붙여놓으면 불교사佛敎史가 되고, 철학을 붙여놓으면 불교철학佛敎哲學이 됩니다. 가만있자 그러면 한국불교에 역사를 붙이면 한국불교사韓國佛敎史가 되고, 철학을 붙이면 한국불교철학韓國佛敎哲學이 되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따져 가면 한국불교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한국불교철학韓國佛敎哲學 못지않게 한국불교역사를 정리해놓은 한국불교사韓國佛敎史도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을 통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 오랜 세월동안 대륙과 바다를 건너와 한국이라는 바탕에서 살아 숨 쉬고 성숙하게 자리 잡기까지의 흔적을 일관되게 따라가 보는 것이 바로 한국불교사韓國佛敎史입니다. 한국불교의 전래와 발전과정에 대해 진즉 한번 쓰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제야 그 소중한 기회가 찾아온 듯합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한다면 꼭 쓰고는 싶었는데 아무도 안 읽으실까봐 살금살금 도반님들이나 회원님들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은 9.6도의 반짝 추위도 풀리고 몸과 영혼이 불타는 금요일이기에 어쩌면 마음이 관대해지고 부드러워져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왕 말이 났으니 말입니다만 먼저 한국불교사韓國佛敎史를 소개해야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불교사印度佛敎史로부터 시작을 해서 빨리어불교라고 불리는 남방불교南方佛敎의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과 인도로부터 산 넘고 물 건너 피해온 대승불교의 정착지인 티베트 불교와 북방불교의 뻥튀기 공장인 중국불교와 그야말로 일본식인 일본불교 등 다양한 각 나라들의 불교사를 소개할 수 있어서일 것입니다. 대부분 불교관련 글을 쓰는 분들이 불교사상이나 불교철학에 대해서는 폭 넓고 깊이 있는 글을 많이 쓰는데 비해 불교사佛敎史에 대해서는 조금 소홀한 편입니다. 불교사상이나 불교철학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교리와 경전이 근본이 되지만 불교역사는 알면 좋지만 몰라도 수행을 하거나 서방정토극락세계에 가는데 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과 역사는 서로 상의상관相依相關 관계關係 속에서 틀이 형성되고 내용이 짜임새를 갖춰가기 때문에 지역마다 왜 그렇게 독특한 사상이 이루어졌는지를 알려면 철학과 더불어 역사를 반드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 이제부터 가보겠습니다. 달려라, 백마白馬!






 

  ‘허난성 뤄양시 뤄양구 노성老城 동쪽 12Km 지점 백마사진에 위치한 동한東漢 영평永平11(AD68) 창건된 사원으로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어 건립된 최초의 사원이다. 동한東漢 영평永平10(AD67) 인도의 승려 가섭마등迦葉眠, 축법란竺法蘭 등이 명제明帝의 사신 채음蔡愔의 간청으로 불상과 경전을 흰 말에 싣고 뤄양에 들어오자 명제明帝가 불교를 신봉하여 8년 후 이 절을 완공한 뒤 백마사白馬寺라 하고, 그들을 살게 한 후 42장경四十二章經 1권을 번역하게 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광무제의 아들로 동한의 명제明帝가 된 유장은 꿈속에서 머리에 광채가 나는 금빛의 사람이 날아와 궁궐 위를 몇 바퀴 선회하고 다시 서쪽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서역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불법을 구하였다고 한다.’ 이상이 중국 최초의 사원 백마사白馬寺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몇 가지 중국불교 전래설 중 고승전에 근거하고 있으며 통설로 인정을 받고 있는 설입니다. 그러니까 인도의 승려 가섭마등迦葉眠, 축법란竺法蘭이 뤄양에 들어온 때는 AD67년이고, 뤄양구 노성老城 동쪽 12Km 지점 백마사진에 사원 건립을 시작한 해는 AD68년이고, 백마사를 완공한 것은 이로부터 8년 뒤인 AD76년이 됩니다. 그래서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때는 일반적으로 AD1세기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설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국불교 전래시기를 따지기에는 허점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설명의 키워드는 명제明帝의 사신 채음蔡愔의 간청과 명제明帝가 불교를 신봉하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이 시기에는 명제明帝가 불법에 지극한 관심이 있었던지 혹은 불교신도였고, 이러한 불교전래의 방식은 나라와 나라간의 정책적이고 전략적인 수용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민간에는 오래전에 불교가 들어와 있어서 불상과 경전과 사원이 필요할 만큼 충분하게 종교적 분위기가 성숙되어 있는 상태라는 뜻이 됩니다. 대개 이런 기간을 백 년 정도로 추정을 합니다. 그래서 기록에 근거를 해서는 중국불교 전래는 AD67년이고 최초의 사원은 백마사白馬寺이지만 실제 불교전래 시기는 훨씬 그보다 빠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불교의 전래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삼국의 고대국가 체제가 정비될 무렵에 전래하여 국민정신 함양과 사상통일을 위하여 왕실의 보호로 활발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고구려는 소수림왕2(AD372)에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순도順道를 보내서 전래시켰고, 소수림왕4년에도 아도阿道가 들어왔으며 초문사肖門寺, 이불란사伊弗蘭寺를 세우고 불교를 장려하였습니다. 백제는 침류왕 원년(AD384) 동진東晉에서 호승 마라난타가 들어와 한산에 한산사(AD385)을 세우고 불교를 장려하였습니다. 신라는 눌지왕(420?) 때 고구려의 승려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 모례毛禮의 집에서 포교를 하였으나 배타정신이 강한 신라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흥왕 때 양의 사신인 원표元表가 왕실에 전도하다가 귀족의 반대로 실패했으나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법흥왕14(AD527)에 불교가 공인되었습니다. 삼국불교의 성격과 역할이라면 당시의 불교는 종교로서의 구실만을 한 것이 아니라 서역과 중국의 문화를 우리나라에 전달하는 구실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국 고대문화를 성립시키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사회의 갈등이나 모순을 한 차원 높은 수준에서 깨닫게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으로 철학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삼국의 불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가지 뚜렸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왕실·귀족 불교입니다. 삼국의 불교는 모두 왕실을 중심으로 신봉되었고, 국가에서는 불교를 이용하여 국민의 사상적 통일과 정신적 지주로 확립하기에 적합하였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현세 구복불교입니다. 현세의 고통과 재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세 구복적求福的 신앙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호국불교였습니다. 불교는 국가의 흥망을 불력佛力에 의지하는 호국종교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인왕경仁王經을 외우면서 왕실의 번영과 국가의 발전을 기원하는 백좌강회百座講會나 연등회, 팔관회, 황룡사9층탑이 그 예입니다. 삼국시대 불교는 본래의 내세 윤회적輪廻的인 면이 아니고, 현세 구복적인 호국불교로 발전하여 통일신라 등 후세까지 계승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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