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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12월25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6.12.26|조회수98 목록 댓글 0

  2016.12.25.. 미세먼지 살짝 낀 신진도항의 푸른 하늘이나 주근깨 살짝 덮인 그녀의 얼굴이나




 

 

 

  1225,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신진도항을 떠나 뭍 쪽을 향해 신진대교를 건너 태국사泰國寺로 가려고 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태국사로 들어가는 길을 지나쳐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오른편 길로 들어가 작은 굴다리를 지난 뒤 태국사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옆 자리에 앉아있는 서울보살의 말을 들어보니 아슴한 기억이 떠오를 듯도 했습니다. 이 년 전 이맘 때 겨울, 점심공양 후 사찰순례 차 우리스님을 모시고 일요법회 도반님들과 이곳에 처음 왔을 적에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기록을 찾아보았더니 그날이 20141214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태국사 주지이신 비구니스님의 법명이 청우스님이라는 것도 확인을 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옛 기억들이 형태를 잡아가면서 머릿속에서 작동을 정상적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태국사 요사채 내실에 일요법회 도반님들이 빼꼭히 둘러앉아 목소리와 성격이 걸걸하신 태국사 주지스님의 말씀을 몇 잔의 차와 함께 호랑이 담뱃가루 날리는 옛이야기처럼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청우스님께서는 지금 천장암 회주스님이신 옹산스님을 따라 삼십 몇 년 전 처음 여기 태국사에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지를 살도록 하라.는 말씀만 남겨놓고 옹산스님께서 떠나버리자 그야말로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낯설고 물 설은 태국사 생활이 얼떨결에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낡고 황량한 태국사 주지 소임생활을 암담한 심정으로 시작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삼십 몇 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고 말씀하시고는 허허~ 하고 소탈하게 웃으셨습니다. 청우스님의 허허~ 하는 소탈한 웃음소리도 벌써 겹겹이 접혀있는 시간의 골을 따라 이 년 전으로부터 띄엄띄엄 내 귓가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이 년 전에도 그렇게 했던 것처럼 나는 차를 법당 마당까지 끌고 올라가 오른편으로 안흥성 돌 성곽이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시켰습니다. 차에서 내렸더니 이 년 전의 바람과 오늘의 바람들이 뒤섞여 법당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열 명이 넘는 일행들의 순례 길이었지만 오늘은 서울보살님과 예천동보살님까지 단출한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기억에 남아있던 어느 겨울날의 쓸쓸하던 태국사가 아니라 오늘은 규모가 잡혀있고 관리가 잘 되어있는 단정한 도량으로 보였습니다. 도량을 둘러보았더니 바다 쪽으로 하얀 관음전이 들어서서 요사채와 원통전圓通殿과 관음전觀音殿이 마당을 중심으로 균형을 잘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하얀 살이 매끄러운 재목材木들로 아담한 관음전觀音殿이 새로이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관음전에서는 젊은 비구니스님의 사시마지불공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통전圓通殿은 주지스님의 종무소 공간으로 바뀌어 이제 다른 현판이 걸려있었습니다. 현판의 한자가 어렵습니다. 한참을 들여다보았어도 초서草書로 날린 글자를 읽지 못했습니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님을 주불로 모신 법당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원통전에 모시고 있던 관세음보살님은 새로 지은 관음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렇게 지난 이 년 동안 태국사는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도 이리저리 바뀌어 있었습니다. 세석細石이 깔려있는 도량 안을 걸을 때마다 청우스님의 허허~ 하던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청우스님 내실 앞에는 신발이 없었습니다. 어딘가 출타를 하셨는지 하얀 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그 자리에 살이 잘 오른 얼룩고양이가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다가가자 몸을 움츠리며 경계를 하던 얼룩고양이가 예천동보살님이 가까이 가서 등을 만져주자 예천동보살님 무릎 아래로 슬그머니 내려와 뒹굴면서 장난을 쳐댔습니다. 따스한 겨울 햇살 속에서 윤이 반질거리는 얼룩고양이를 어루만져주는 예천동보살님의 하얀 손길이 깊은 봄을 불러내는 부지런한 활동처럼 보였습니다. 태국사에서 바라보는 겨울 하늘도 저 멀리 수평선과 겹쳐질 만큼 푸르게 보였습니다.





 

  관음전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사시불공 중인 비구니스님의 정근을 따라하며 절을 했습니다. 법당 왼쪽 벽에는 넓은 통유리를 넣어서 바다 쪽 풍경이 법당 안에서도 잘 보이도록 센스있게 꾸며놓았습니다. 법당 벽을 터서 통유리를 넣은 것도 파격破格이지만 통유리를 통해 신진도항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도록 눈앞의 경치를 내 집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우리나라 전통의 차경借景이라는 예술적 감각입니다. 차경借景이란 말 그대로 경치를 빌려온다는 뜻입니다. 이라는 액자額子를 통해 눈앞의 경치를 내 방까지 끌어오는 우리들만의 독특한 미의식美意識인 것입니다. 도량 마당에서 툭 트인 사방을 내려다보는 신진대교와 신진도항 풍경과 법당의 통 큰 네모난 창을 통해 들여다보는 바다 풍광은 전혀 다른 맛과 정취情趣를 풍기고 있습니다. 경치를 끌어들여 내 방에 들여놓는다는 차경借景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빌리지 않은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나라는 것은 본래부터 없고 빌려서 쓰고 빌려서 살아가다가 다시 빌렸던 곳으로 돌려보내주고 나니 본래 나라는 것은 비어있는 것이더라. 는 사상이 바로 불교의 무아설無我說입니다. 무아설無我說은 무상無常, 개고皆苦, 무아無我로 연결이 되면서 삼법인三法印 사상을 완성시킵니다. 차경으로 말미암아 무아설과 삼법인 사상을 슬슬 끌어내보았더니 기분이 더 좋아졌습니다. 1225일 오전 중 2년 만에 두 보살님들과 다시 태국사를 순례하면서 서해의 푸른 하늘과 세상의 차경들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아무튼 그랬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인데 태국사까지 순례를 마쳤으면 이제 점심공양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천동보살님께서 아쉬운 대로 가까이 계시는 분들께 전화를 했습니다. 무진주보살님과 김화백님이 통화가 되었는데, 두 분 다 점심공양은 함께 하기 어렵지만 오늘 오후 일요법회시간에 얼굴을 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또 단출 한대로 세 사람이서 정해놓은 음식점을 향해 차를 몰아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입 호사豪奢를 즐기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식당 이름이 콩사랑·팥사랑이었는데, 겨울이라 콩사랑은 잘 모르겠지만 한 그릇 팥칼국수로 인해 팥사랑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다 우리가 앉았던 뒤쪽 벽에 족자가 가로로 한 점 걸려있었습니다. ‘龢而不同공자는 논어의 자로 편에서 대인大人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고 했던 글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란 어울리되 물들지 아니함이라는 뜻으로서 낙사이부진유취樂事而不盡有趣, 즐거운 일이란 중간에 그쳐야 향취가 있다.’ 라는 말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입니다. 여기에서 의 고자古字입니다. 龢而不同을 등에 진 채 고운 두 분 보살님들과 함께 맛나고 진실한 한 그릇 팥칼국수를 맛나게 먹었더니 세상에 부러울 게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었습니다. 다음에 거사님들은 몰라도 보살님들을 꼭 모시고 한번 쯤 더 가고 싶은 팥사랑 집이었습니다. 이상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앵커맨 밸라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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