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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2월2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2.22|조회수49 목록 댓글 0

 

 

 2017.02.22.. 아침에는 눈, 오전에는 비, 오후에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그리고 밤에는 어둠이

 

 

 

 

 

  0222,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어느 순간 차창車窓 밖으로 가까이 보이는 희묽은 안개나 저 멀리 바라보이는 깊은 회색 구름 말고, 희부연 베일 같은 것이 엷은 막이 되어 세상을 슬그머니 한 꺼풀 덮어씌우는 것 같았다. 하루 중 밤이 올 때 맨 처음으로 나타나는 은밀한 징조徵兆라고 생각을 했다. 그때가 오후601분이었다. 잠시 정차停車 중에 서울보살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쩍 차창車窓 밖을 내다보았더니 검은 빛에 새실한 청색이 섞여든 커다란 흔들림이 허공에서부터 스르륵 펼쳐지는 듯한 미려美麗한 파장波長을 보았다. 시간을 두고 맑은 물에 퍼져나는 매끈한 감청색 잉크 한 방울처럼 공기 속으로 귓속에 미묘한 울림을 전하듯 서서히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허공도 저렇게 세밀하고도 규모 있는 코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루 중 낮이 밤으로 변하면서 두 번째로 세상에 내려 보내서 밝은 시선을 차단해가는 장막帳幕 같은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때가 오후614분에서 16분 사이였다. 연극이 끝나고 무대 위 극단원들의 재빠른 퇴장을 위해 덜컥~ 무거운 커튼을 내려치는 것처럼 한 순간에 짙고 두꺼운 밤이 세상을 빠르게 둘러싸버렸다. 하루 중 낮이 밤이 된다는 것은 밝음과 어둠을 구분해줄 만큼 결단력과 호소력이 있어서 세상을 향해 선언하는 단호한 판결判決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우연히 맞이하는 밤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때가 오후633분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만 내려가자고 서울보살과 의견을 나누었다. 지난달에는 25일에 갔으니 이번에도 요일이 같은 네 번째 수요일에 가자고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상선암을 향해 차를 몰았다. 내일은 하루 내내 비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흐릴 것이라고 했던 어제의 일기예보는 용한 점쟁이처럼 신기하게 날씨를 잘도 맞추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눈이 내리고 있더니만 상선암을 향해 출발할 즈음에는 진눈깨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고 서울을 벗어날 무렵에는 빗물이 되어 차창車窓을 따닥 딱.. 거칠게 두드리고 있었다. 눅진한 구름이 하늘 아래로 길게 덮쳐오고, 사방으로 스멀스멀 안개가 끼고, 빗방울이 훈련된 공격수처럼 부스스 흩어지는 날씨는 운전을 하기가 몹시 신경이 쓰였다. 어쩌다 앞장 선 커다란 트럭 뒤를 따라갈 때면 거대한 검은 바퀴를 따라 분수 같은 부연 물보라가 거침없이 일어나서 주변의 풍경을 모두 삼켜버렸다. 그럴 때면 마치 물속을 유영하는 해파리처럼 너울너울 눈부신 율동감에 감각을 맡긴 채 그저 앞을 향해 달려갔다. 서산IC로 들어가 서산 시내로 접어들고 있을 때에도 비는 거칠게 내리고 있었다. 한없이 젖어있는 하늘 아래로 서산 바닷가 도비산島飛山 산중턱에 있는 상선암까지는 한참을 더 차를 몰아 달려가야 했다. S자로 휘어진 비탈길을 앞만 보고 달리면서 깜빡하고는 부석사 쪽으로 냉큼 올라서다가 아차! 하고 다시 차를 뒤로 굴려 상선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내렸을 때에도 비는 연신 진지한 고민처럼 땅을 향해 아래로 뿌려대고 있었다. 서울보살이 씌워주는 우산 속에서 불단 공양물로 가져온 사과와 배 상자를 들고 건들건들 걸어 상선암 입구로 향하고 있는데 친숙한 도반님 한 분이 사시마지불공을 하러왔다가 기도를 마치고 나서는 길에 우연히 서로 만나 반가운 인사를 했다. 법당으로 들어가서 빗물 떨어지는 공양물을 불단 위에 올려놓고 부처님께 삼배三拜를 올렸다. 그리고 스님 방으로 들어가서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뜨거운 차를 몇 잔 마시면서부터 몸이 왠지 자꾸만 가라앉기 시작을 했다. 아마 어제부터 몸이 은근히 편치 않았던 이유가 저 비와 안개와 구름과도 어떤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했다.

 

 

 

 

 

  미닫이 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우중풍경雨中風景은 하늘과 산과 바다가 구름과 안개와 비에 둘러싸여 있어서 뭉텅이 김 오르는 둥글고 깊은 새암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펼쳐 책상위에 올려놓고 지난달에 읽었던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이 달에 읽어야할 부분을 소리 내어 읽고 또박또박 새겨보았다. 서울보살이야 이 책을 처음으로 공부해보겠지만 나는 45년 전에 벌써 공부를 한 적이 있었고 통째 외울 수도 있었던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자 완전히 덮어버렸던 책인데도 스님을 따라서 읽어 가다보니 신기하게도 예전에 익혔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머릿속에 되살아올라왔다. 그때 넓은 대중방에 밝혀놓았던 촛불의 모양이나 대중방에 배어있던 메주 띄우는 냄새 같은 것들도 함께 오감五感을 타고 가슴바닥에서부터 사르르 밀려올라왔다. 그때 함께 이 책을 배웠던 행자스님은 이제 법납法臘 45년의 노스님이 되어 있고, 나는 세상을 향해 몸을 구부리고 있는 영감초년생이 되어 있었다. 그때 45년 전 대중방 촛불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내가 45년 후에 이 책을 다시 배우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해보았을까? 45년 전의 그 책이 지금도 서재書齋의 책장 한 구석에 여전히 꽂혀있기는 하지만서도. 두 시간가량의 공부를 마치고 차를 몇 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도 비는 꼭 그만큼씩 부지런히 내리고 있었다. 빗속의 상선암 순례기巡禮記는 길고긴 안개와 구름과 추억을 통과하는 머나먼 하루를 가슴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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