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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3월05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3.06|조회수53 목록 댓글 0

 

 

 2017.03.05.. 흐리고 밤 늦게 비.

 

 

 

 

 

  0305,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한국 땅에서 불교권은 조계종총무원장 직선제直選制, 정치권은 대통령 탄핵彈劾의 찬반으로, 기업은 사드로 인한 경제보복으로, 서민들은 가계부채로 인한 압박으로 인해 거의 사활死活이 걸려있는 싸움을 날마다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들 중 총무원장 직선제는 대한불교 조계종에 한한 문제이므로 사회적인 여파가 더 미미할 듯 하지만 그 어두운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사회 전반에 탁한 고드름처럼 걸려있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현상이 종교라는 특정한 외피外皮를 둘러쓴 채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총무원장 직선제 문제와 대통령 탄핵은 이 땅에서 사회적 가치價値와 신조信條가 사라져버린 채 사방이 종교적, 사상적, 도덕적 폐허가 되어버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보편적인 감성이나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버린 참으로 안타까운 국가적 상실喪失의 시대時代입니다. 지구가 무한히 크지 않고, 무한하게 넓지 않은 것을 알아차린 것처럼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시간이 무한하게 있지 않으리라는 것도, 기회가 무수히 있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하고 꼭 알아야 합니다. 이번 기회가 아니라면 또 다음 기회가 아니라 오직 유일한 한 번의 기회만이 우리 앞에 놓여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든 되겠지만 아무렇게나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고, 그 중차대重且大한 성격상 아무튼 지켜보자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을 일도 아닐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사회적인 분위기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불교신도들의 마음 분위기가 대체로 이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내가 그렇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일요법회에서 읽었던 빠알리 경전 91쪽에 나와 있는 <율장 마하왁가 10> ‘꼬삼비 비구들의 논쟁편은 부처님 재세 시 담마와 담마 아닌 것 사이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참으로 상징적인 한 대목이었습니다.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 최초의 5비구를 향해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을 굴린 이래 깟사빠 삼 형제의 귀의와 빔비시라왕의 귀의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개종과 사꺄족의 왕족 젊은이들의 출가로 승가와 교단이 그 위세와 풍요를 더 할 무렵에 꼬삼비의 고시따 승원에서 비구들 사이에 작은 다툼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 다툼은 서로 자신의 말에 동조하는 무리를 지어서 세력 간의 논쟁과 다툼으로 번져 승단의 불화를 야기惹起시켰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두 번에 걸쳐 타일렀으나 논쟁과 다툼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부처님 당대에 부처님의 위의威儀와 말씀과 가르침을 직접 보고, 듣고, 배웠던 출가 비구들이 사소한 시비에 휘말려 다툼과 논쟁이 일어났는데 이를 타이르는 부처님의 말씀을 두 번이나 듣고도 다툼과 논쟁을 끝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타이름에도 비구들이 뉘우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부처님께서는 다음 날 아침 앉는 자리와 발우와 가사를 꾸려 승단 가운데 서서 게송을 말씀하시어 대중을 가르치신 후에 발라까로나까라 마을로 떠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떠나신 뒤 꼬삼비의 신도들은 부처님께서는 이 비구들의 괴롭힘으로 여기를 떠나셨다. 꼬삼비의 비구들에게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서지도 말고, 합장하지 말고, 신자가 할일을 하지 말자. 존경하지 말고, 공경하지도 말고, 그들이 탁발 나와도 공양을 올리지 말자. 이와 같이 그들이 신도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고 공경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승단을 떠나든지 아니면 부처님께 나아가 참회를 하고 서로 화해할 것이다.’ 그러고 난 후에야 신도들로부터 존경과 공경도 받지 못하고 공양도 얻을 수 없게 되자 꼬삼비 비구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잘못을 고백한 뒤 참회하고 서로 화해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부처님께서는 우뽀사타(포살布薩) 예식을 행하고 빠띠목카(계본)를 암송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의 사례는 부처님 재세 시로부터 2500여년이 지난 현대 불교인 조계종 종단 내 승가의 많은 문제점들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제시해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가만히 이 내용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알고, 말하고, 신봉하는 종교란 무엇인가. 21C의 정신세계를 이끌고 위무慰撫할 수 있는 종교란 어떤 형태,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 과연 500년이나 1,000년 후에도 종교가 존속 가능하며 만약 가능하다면 외계外界로 삶을 확장한 인류가 직면하게 될 범우주적凡宇宙的인 종교의 본질은 어떻게 변화되어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자동차 보조석에 앉아 슥슥 스쳐지나가는 서해안고속도로의 풍경들을 무렴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서울보살에게 일요법회 가는 길의 차 운전을 부탁했습니다. 어제 토요일 오후 운동량이 다소 많았던지 밤9시가 조금 지나자 잠이 쏟아져서 잠깐 한숨을 부쳤는데 그게 그만 새벽120분경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한 편 쓰자하고 책상에 앉아있는데 아들아이에게서 카톡이 들어와 문자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글을 마무리하고 났더니 아침6시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고 했으나 이부자리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결국 밝아지는 아침기운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욕실에 들어갔습니다. 컨디션은 괜찮았으나 숙면을 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서울보살에게 운전을 부탁을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날씨는 따스한 편인데 하늘이 흐린데다 바람 끝은 쌀쌀해서 내일 아침에는 온도가 내려갈 것 같다는 일기예보를 편들고 있는 듯했습니다. 일요법회를 마치고 점심공양을 하고 공양간에 모여앉아 도반님들과 바리때에 담아놓은 쌀 튀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동안거 기간 동안 스님들이 머무시는 차실에 들어가지 않았더니 이제 차실보다 공양간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나봅니다.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오는 바람에 잔 나뭇가지들이 연이어 흔들렸고 잿빛 구름 아래 아직 생기를 띄지 않은 뒷산 소나무들이 검고 어둡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오후3시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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