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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4월0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4.04|조회수234 목록 댓글 0

 

 

 2017.04.02..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가을 같은 봄날

 

 

 

 

 

  0402,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내가 미역국을 좋아해서 서울보살님이 미역국을 자주 끓여줍니다. 반찬으로는 멸치볶음도 좋아하고 콩자반도 좋아하고 달걀찜이나 계란 프라이도 좋아하고 콩나물과 숙주나물도 좋아합니다. 본래 뜨겁거나 시원한 국물을 좋아해서 국이라면 다 좋아합니다. 이른 봄의 보리가 쇠기 전 보릿국과 봄 향기 감도는 쑥국이나 냉이 달래국도 좋아합니다. 여름날 오이미역냉국이나 추석을 전후로 하는 토란국과 겨울에 들어서야 제 맛이 나는 매생이국을 좋아합니다. 물론 된장국부터 시작해서 북어국이나 동태국, 콩나물국과 뭇국이나 김칫국과 배춧국도 좋아합니다. 이 중에서도 꼭 그 계절에 먹어야하는 푸릇푸릇 보릿국과 미끈미끈 토란국과 알싸코롬 매생이국은 거의 마니아 수준입니다. 아마 가장 많이 먹었던 것은 된장국과 콩나물국일 듯합니다. 콩나물국에 고추장을 한 숟갈 넣고 밥을 말아서 고춧가루와 깨를 뿌린 콩나물을 반찬으로 먹어도 여전히 맛이 있는 콩나물국입니다. 그리고 젓갈을 좋아해서 다양한 젓갈을 다 잘 먹습니다. 새우젓, 꼴뚜기젓, 민어아가미젓, 멸치젓, 갈치속젓, 굴젓, 바지락젓, 토하젓, 명란젓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굴젓과 바지락젓과 토하젓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혈압을 관리해야하는 나이가 되어서 젓갈은 거의 먹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모임이나 회식이 있어서 밖에서 식사를 할 적에 밥상에 먹음직스러운 젓갈이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젓가락이 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나도 모르게라는 순간도발은 맨 정신으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 그 정도라면 생활의 여적餘滴 또는 한 호흡의 여유餘裕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식이나 반찬거리는 집에서만 철저하게 관리통제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기야 내가 잘 못 먹는 음식은 별로 없습니다. 인도나 파키스탄을 여행할 적에도 항상 현지음식을, 그리고 노점 음식을 즐겨먹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논산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논산훈련소 외곽에 있는 보충대에서 신체검사를 다시 받기 때문에 허름한 보충대에서 훈련병이 아닌 장정이라는 신분으로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씩 대기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각자 장정들의 소속이 정해져있기는 하지만 장정이라는 어정쩡한 신분이라 신체검사를 받고 하루빨리 훈련소 입소만 기다리고 있을 때라 사역을 피해 낮에는 이리저리 몰려다니다가 식사시간에만 모여서 밥을 먹고 밤이 되면 또 모여서 소대별로 잠을 잡니다. 그래도 식사당번만큼은 확실하게 정해져있어서 백철드럼통 두 개에 하나는 밥과 하나는 국과 작은 바케스에 반찬을 받아옵니다. 보충대에서나 훈련소에서나 숟가락은 각자가 항상 몸에 소지하고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백철드럼통 두 개가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았던지 둘 다 밥을 받아와버린 것입니다. 내무반장은 작대기 두 개인 일병이었는데 순한 사람이었지만 그날만큼은 화가 천정을 찔러서 밥을 먹기 전에 내무반 마루바닥에 엎드린 채 머리를 박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노란 플라스틱 식판의 밥그릇에도 밥, 국그릇에도 밥을 퍼주었습니다. 그날따라 밥이 많았던지 산만큼 하늘만큼 쌍 고봉으로 올려주고는 반찬은 배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식사가 끝나고 나서 식판을 완전히 비운 사람은 딱 두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내 친구였고 또 한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내무반장의 특별명령으로 보충대의 남은 기간 동안 식사당번에서 제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역당번과 식사당번 조를 짜는 일을 맡아보았습니다. 그때 고등학교 동기가 우리 소대에 세 명이 있었는데 어찌된 속셈인지 나머지 한 명의 친구도 사역당번이나 식사당번에 한 번도 걸린 적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런 내용을 아는 장정은 우리 셋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정도라면 귀여운 연대감이나 사소한 의리로 봐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남이가!’ 로 시작하는 조그마한 발단들이 인연人緣, 지연地緣, 학연學緣을 따라 패거리를 이루고 정치세력을 형성하게 되면 사회와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부정부패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통념痛念을 해야 합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은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보니까 참말 맞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서울보살님이 끓여준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고북 알타리무김치와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먹어보았던 가장 맛났던 미역국이 생각났습니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부처님께 감사의 기도를 일곱 군데 사찰에서 드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대구 운흥사에 계시던 친구스님께서 설악산 봉정암에 참배를 다녀올 예정인데 동참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기도일정에 백담사와 봉정암을 넣어 동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성지순례를 출발하여 친구스님과 운흥사 주지스님과 운흥사 보살님들과 백담사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봉정암에 느지막하게 도착을 했습니다. 설악산의 일기변화가 심했었고 와중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서 첫눈이 날리고 추운데다가 노보살님 한 분이 길을 잃어 찾아다니느라고 상당히 몸이 지쳐있었고 배도 엄청 고픈 상태였습니다. 봉정암 대중방에 들어가 앉아있었더니 자그마한 양푼에 미역국과 밥을 함께 담아 각자 하나씩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반찬이 따로 없으니 젓가락도 필요 없고 그저 숟가락으로 두세 번 휘휘 휘저으니 식사가 끝나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여태까지 먹었던 미역국 중에서 세계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화순 운주사의 깻국과 광주 증심사에서 초파일 밤중의 1,080배 뒤에 집어먹었던 사과 두 알은 천상의 맛이었습니다. 된장국은 1994년 해인사에서 먹었던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1994년은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에 부딪쳤던 뜨거운 해라서 잘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해 여름 서울이 38.4도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해인사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야할 만큼 밤중에는 서늘했습니다. 손님이 많은 여름 휴가철이라 원주스님의 눈치를 의식하면서도 닷새인가를 묵었습니다. 당시에는 친구스님이 해인사에서 상당한 소임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로부터 7년 전에 친구스님과 설악산 봉정암으로 감사기도를 다녀왔으니까 아들아이가 여덟 살인 초등학교 1학년이었고 그 뒤로 태어난 딸아이가 여섯 살이었습니다. 꽤 오래 전 이야기 같지만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 감도는 엊그제 일만 같습니다. 그 닷새 동안 날마다 해인사 공양간에서 된장국에 공양을 올렸는데 그렇게 맛이 있는 된장국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먹어보지를 못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김장김치를 제일 맛나게 담그고, 속이 뻥 뚫리는 동치미를 담그고, 뭇국을 혀가 슬슬 녹게 끓여내고, 갈치를 불맛 나게 구울 줄 아시는 어머니께서도 해인사 된장국은 두고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세상의 물이 맑고 하늘의 공기가 깨끗하던 시절의 이야기인 듯합니다. 안타깝고 아쉽지만 사실입니다.

 

 

 

 

 

  새벽4시경에 일어나서 씻고 이것저것 챙기다보니 5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고속도로에서 지체나 정체를 당해 지루하게 차량들 꽁무니에 밀려 서있는 것보다는 일찍 출발을 하는 것이 낫습니다. 대략 세 시간 가량 달려서 호남고속도로 이서휴게소에 들렸다가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전주를 지나고 정읍을 지나고 장성을 지났습니다. 광주 외곽도로를 타고 돌아서 나주를 지나면 영암과 영광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지점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영암행인 왼편으로 핸들을 돌리면 영산포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영산포 시내가 보입니다. 시내 중심가를 지나가다가 왼편으로 농협 하나로클럽이 있습니다. 일단 하나로클럽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주차시켰습니다. 차례용 술을 사려고 하나로클럽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술을 바구니에 담고 고소한 빵 냄새가 풍겨오는 저 안쪽의 빵집으로 향했습니다. 서울보살님이 좋아하는 찹쌀도넛과 다른 빵 몇 개를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이른 출발로 아직 식전이라 아침 요기용으로 차에 앉아서 빵을 몇 개 먹었습니다. 나의 식성이 살짝 바뀌었는지 예전에는 만두나 고로케를 잘 먹었는데 요즘에는 찹쌀도넛이나 찐빵을 더 잘 먹습니다. 그런데 찹쌀도넛이 참말 맛이 있습니다. 옆에 도반님들이 계신다면 모두 한 입씩 드리고 싶습니다. 아참, 빵 개수가 넉넉하니 하나씩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일요일 아침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고향 선산까지 차를 몰고 달려갔습니다. 오늘이 한식 전 마지막 일요일이라 그러한지 한식 성묘차량들이 여기저기 눈에 띕니다. 벌써 오전11시가 슬슬 되어가고 있습니다. 준비를 해간 과일과 술과 그릇을 챙기고 돗자리와 우산과 커다란 전지용 가위를 자동차 트렁크에서 내놓았습니다. 선산을 한 바퀴 돌아보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했습니다. 낫질을 잘 못해서 사용하기 편한 전지용 대형 가위를 가지고 풀을 깎아주고 흙을 골라줍니다. 그런데 길과 선산의 경계인 두둑에 찔레나무가 자생을 했는지 찔레나무 순이 묘소 쪽으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지용 가위로 찔레나무 가지를 잘라주다가 일이 끝이 없어서 가까운 농약상으로 가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농약상이 권해주는 대로 제초제와 물 조리와 고무장갑과 마스크를 사들고 선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난 뒤 안부도 묻고 제초제 사용법도 설명을 들을 겸 해서 저 안쪽 마을 큰댁으로 갔습니다. 큰댁에 들어섰더니 사람이 있던 흔적은 있는데 집은 비워있었습니다. 그래서 은퇴를 하고 시골 큰댁에 내려와 농사도 짓고 집안 관리도 하고 있는 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동생과 통화를 마치고 잠시 제수씨를 기다렸으나 언제 집으로 돌아올지 몰라서 바로 사촌 동생의 별장을 향해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큰댁을 나서서 옆 동네 정자나무 아래 차를 잠시 세워두고 한 번 더 찹쌀도넛을 먹었습니다. 이에 착착 엉기듯이 쫄깃거리는 씹는 맛과 새까맣고 달콤한 앙꼬가 여전히 맛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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