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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4월0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4.05|조회수133 목록 댓글 0

 

 

 2017.04.02..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가을 같은 봄날

 

 

 

 

 

  0402,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대왕 카스텔라를 나도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지난 2월쯤이었을 것입니다. 김화백님 작업실에서 한 번은 팔봉거사님이 다음에는 태평거사님이 요즘 인기 있는 빵이라면서 일부로 맛을 보여주려고 사가지고 왔었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본 카스텔라는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무언가 옛날 카스텔라보다 한 등급 격상된 듯한 세련된 맛이 났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대왕 카스텔라가 시중에서 그만큼 인기였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6,70년대에는 결혼식 하객 답례품으로 카스텔라나 찹쌀떡을 준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롤 케이크도 등장을 했습니다. 물론 그때 하객 답례품은 거의 수건이나 우산, 비누 등 생필품生必品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답례품으로 나누어준 카스텔라는 일반 판매용보다는 고급품이었던지 상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카스텔라를 한쪽 귀퉁이부터 뜯어먹고 있으면 맛이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아있는 카스텔라는 특별히 맛있는 빵도 아니고 그렇다고 맛이 없는 빵도 아닌, 바람같으면 미풍微風에 해당하는 조금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빵이었습니다. 눈앞에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어도 그저 그뿐인 카스텔라를 열풍熱風에 가까운 인기품목으로 만들어낸 데는 반드시 그에 합당할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대왕 카스텔라가 하루아침에 고개를 숙이고 바람이 영풍零風이 되도록 눈 녹듯이 잦아들어버렸습니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제조법과는 다르게 대왕 카스텔라를 만드는 과정을 폭로해버린 어느 방송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식용유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송이 나가자 하루 평균 카스텔라를 250개가량 판매를 하던 어느 대왕 카스텔라 판매점은 하루에 50개도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대왕 카스텔라를 대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하나가 모든 대왕 카스텔라 판매점에서 그렇게 많은 양의 식용유를 사용해서 카스텔라를 만들고 있었는가? 하나가 그만큼의 식용유가 들어가면 인체에 얼마나 해롭게 되는가? 또 하나가 실제 대왕 카스텔라라는 상표로 영업을 하고 있는 판매점은 몇 개나 되는가? 등이 되겠습니다. 폭로방송에 나오기 전의 대왕 카스텔라나 방송에 나온 후의 대왕 카스텔라나 똑같은 카스텔라이지만 만약 카스텔라를 다시 먹어본다면 사람들이 느끼는 맛은 아마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카스텔라는 동일한 카스텔라이지만 사람들의 카스텔라에 대한 판단기준과 선입견이 달라져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식용유를 많이 넣어 만든 카스텔라가 시민건강에 미치는 문제가 이처럼 민감한 사회적社會的 사안事案인데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건강에 좋지 않다고 입증이 되어버린 스낵류를 포함한 과자나 사탕, 그리고 아이스크림과 콜라 사이다 등 탄산음료와 햄 소시지 등은 왜 방송에서 폭로나 고발을 하지 않은 것인지, 그리고 시민들은 왜 사먹기를 거부하지 않은 것인지 나는 알다가도 모를 진정한 수수께끼입니다. 식용유가 들어간 대왕 카스텔라를 건강상의 이유로 먹지 않는다면 인체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炭酸飮料는 왜들 그렇게 열심히 먹어대고 있을까? 혹시 여기에도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방송에서 폭로한 음식물이나 제조품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영세업체들의 생산품이라는 사실로부터 추리를 해본다면 아무리 건강에 해로운 제품이라도 대기업이 뒤에 버티고 있다면 방송도 차마 폭로를 할 수 없는 어떤 힘의 고리가 작용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의문이 솔솔~ 가슴에 찬바람을 몰고 다니는 것은 당연한 결론입니다.

 

 

 

 

 

  한 가정의 종교는 엄마를 따라가고 음식 맛은 아빠의 입맛을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대개 아이들이 엄마를 따라 다니면서 종교생활을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되고, 주부는 가장의 입맛에 음식을 맞추기 때문이라는데 듣고 보니 일리一理가 있습니다. ‘일리가 있다.’ 라는 말을 영어로 ‘One twohave yes’ 라고 하면 중학교 때 학교에서 우리들끼리 통용되는 말이었습니다. ‘, 일리가 있어.’ ‘One Twohave yes.’ 라고 말하면 동일한 뜻이 되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영어를 많이 만들어서 우리들끼리 써먹었습니다. 언어는 사회적 관습이자 암묵적 약속이기 때문에 범위가 한정된 동일집단 내에서는 얼마든지 신조어新造語 사용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건 그런데 오늘 저녁에 또 미역국을 먹다가 생각난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식단도 분명 아버님 위주로 짜였을 것입니다. 그때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생김치를 유독 좋아하시는 아버님 입맛 때문에 거의 날마다 새로 김치를 담그는 어머니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새로 담근 생김치를 큰 대접에 넣어 얼음물에 담가놓아 이틀정도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 같았습니다. 밥상에 여러 가지 반찬이 오르더라도 아버님의 수저와 젓가락이 가는 곳은 늘 정해져있었습니다. 꼭 뜨거운 국물이 있어야 했고 반찬으로는 생김치와 조기구이나 소고기 장조림과 고추장 굴비가 가장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히마리가 없다고 오이와 가지는 절대 드시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기본적으로 소식小食에다가 자주 드시는 편이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대식大食에다가 가끔 먹는 편이었습니다. 요즘 나주 배는 신고나 추황배가 인기 있는 모양이지만 예전에는 이마무라라고 하는 껍질에 검은 반점이 있고 작은 수박만한 배가 달고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마무라가 크기도 했지만 아버님께서는 배 하나를 서너 번 나누어서 드시는 반면에 나는 이마무라를 앉은자리에서 두 개나 세 개씩 먹어치웠습니다. 대체로 따뜻한 남쪽지방이 맵고 짠 음식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입맛도 거기에 맞춰져있을 터이니 아버님과 나의 식성 차이는 짜고 매운 차이라기보다는 조금씩 자주인가 한꺼번에 많게인가로 구분하는 것이 쉬워보였습니다. 술과 담배, 마약, 뽕을 즐기지 않는 것은 우리집안의 내력來歷인 것 같습니다. 잡기雜技나 향락享樂을 가까이하지 않은 것도 집안의 분위기라기보다는 애당초 내력來歷 덕분인 듯합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업가나 정치가나 예술인은 별로 없고 선생님, 공무원, 군인, 의사, 농부가 많은 것을 보면 좋게 말하면 순일검박純一儉朴하고 사실대로 말하면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이나 세계화의 비전이 희박한 지극히 현실적이고 전형적인 유교가풍의 집안입니다. 나도 몰랐던 이러한 집안 내력의 가호加護도 분명히 있겠지만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왠지 뭔가 손해를 보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변에 책읽기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있어도 글을 쓴다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책읽기는 좋아하는데 글쓰기는 안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가지고 있는 문학적 상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머니께서는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까닭인지 대체로 단 음식을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수정과나 식혜를 자주 해 먹었습니다. 여름철에 어쩌다 밥이 쉬게 되면 쉰밥으로 역시 달콤한 단술을 해먹었습니다. 추석에 송편을 찌더라도 송편 속으로 깨소금이나 콩고물이나 팥고물 외에 꼭 설탕을 넣어서도 만들어 먹었습니다. 송편 가운데를 어금니로 꽉 씹으면 단물이 툭 터져 나오는 달콤한 맛이 어렸을 때는 입안이 행복할 만큼 맛났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동지죽이나 팥죽을 먹을 때도 설탕을 한두 숟갈씩 넣어서 먹었습니다. 특히 새로 끓인 동지죽을 한 이틀쯤 지나 동지죽 표면에 살얼음이 살짝 드리웠을 때 설탕을 한두 숟갈 뿌려 먹으면 시원 달콤한 맛이 아이스크림은 울고 갈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달게 먹으면 음식이 물론 혀끝에서 맛이 있지만 음식 본연의 참맛은 없어져버린다는 것을 안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유학을 온 뒤로부터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내려갈 때마다 어머니께서 너무 달게 드시지 않도록 잔소리를 많이 해드렸으나 한 번 입맛은 영원한 입맛이라서 단 음식을 멀리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한 이십삼사 년 전에 뜻하는 바가 있어서 요리학원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리학원에서 설탕이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소금이나 마늘다짐, 고춧가루처럼 양념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소금을 음식에 알맞게 사용하듯이 설탕도 음식에 알맞게 사용하는 것이 음식을 다채롭게 만들고 다양하게 즐기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소금과 설탕은 가까이 하기에도 멀리 하기에도, 쉽거나 어렵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언젠가 인터넷 뉴스를 보았더니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먹다가 고혈압에 노출되기 쉬운 식품으로 토마토케첩이 상위목록에 올라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카레가 좋은 식품인 이유는 주원료인 강황의 뛰어난 성분 덕분이고, 토마토는 영양가 우수한 채소로 이미 잘 알려져 있어서 토마토가 주원료인 토마토케첩은 건강식품으로만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토마토가 아니라 케첩에 들어있는 나트륨의 함량이었습니다. 그리고 나트륨의 짠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설탕 등 단 성분을 넣어버리면 짠맛이 가려지고 오히려 단맛과 짠맛의 시너지효과가 발생해서 음식 맛이 좋아져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채식菜食이 건강에 좋다, 육식肉食이 좋다, 아니다 혼식混食이나 잡식雜食이 좋다, 뭐시여 생식生食이 좋거든, 등의 설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어느 설이 맞고 틀리는지 확연히 모르겠지만 먹고 싶은 것은 알맞게 꼭꼭 씹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음식이 가장 좋은 음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에서 바람과 햇빛을 받고 잘 자란 재료로 만들어진 신선한 음식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감사한 마음가짐이 식탁위에서 어울렸을 때 그것이 최상의 음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일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선산이 있는 고향마을로 예정된 시각에 출발해야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야 도로에서 차량의 지체로 인해 고생을 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제 시간에 잠이 저절로 와주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불면증이라든가 하는 등으로 인해 잠 때문에 고생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서 잠이 안 오면 안자고 잠이 오면 자는 유형인데, 젊었을 때에는 잠이 많아 잠의 양을 조절하려는 노력도 해보았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잠이 확실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잠이 줄어들고 잠자는 동안 새벽에 몇 차례씩 눈을 떠보는 것은 항상 깨어있는 생활을 하는 것 같아 좋기도 하지만 숙면의 질이 살짝 떨어지면서 황홀한 잠의 맛이 많이 약화되어버린 듯합니다. 밀랍으로 가득 채워진 늪 속에 온몸을 가라앉히고 서서히 그 안을 유영遊泳을 하는 듯한 잠의 강렬한 감촉과 진한 향기가 젊음과 함께 어디론가 달아나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잠이 행복하다거나 즐겁다기보다는 의무사항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지금 상태라면 안자도 좋을 듯한데 내일을 위해서는 한숨 붙여야지 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봄비는 하염없이 내리는 봄비라야 봄비다울 텐데 쉬엄쉬엄 내리는 듯 마는 듯 비가 내렸습니다. 대개는 한식이나 식목일을 기준으로해서 그 근방에는 비가 내려줍니다. 식목일에 나무도 잘 심고 한식날 성묘를 가서 산소의 잡풀도 제거하고 흙도 잘 골라주라는 의미라고 생각을 합니다. 방에 불을 끄고, 잠이 들고, 꿈을 꾸고, 새벽이 되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성묘를 하러 집에서 차를 몰고 출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묘를 마친 후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올라가 천장암에 들려 도반님들도 만나고 마지막 남아있는 연등 만들기 울력에도 참여하게 될 줄도 모르겠습니다. “만나면 헤어진다는 부처님의 말씀은 맞습니다. 그런데 진정 원하면 헤어지면 언젠가는 또 만나게 된다.는 말씀은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네요.” 라고 말을 하면서 하얀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소슬소슬 눈을 맞으며 서있던 어느 비구니스님 생각이 납니다. 아주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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