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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4월1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4.17|조회수126 목록 댓글 1

 

 

 2017.04.16.. 하늘은 간헐적間歇的으로 흐린 채 마음의 약간 하양에다 미세먼지 흩뿌리는 봄날은 간다

 

 

 

 

 

  0416,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학술세미나나 토론이 아닌 다음에야 순례객巡禮客이나 관광객觀光客을 대상으로 특정 장소나 인물에 관해 해설이나 설명을 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연도에 입각한 여러 사실이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산뜻하게 초점焦點을 맞추어낸 사건이나 선명한 영상映像을 그들의 눈앞에 제공해주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현장을 통한 학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모처럼 기념이 되거나 기억의 공감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능인선원에서 온 참배객들을 맞아 법당 앞에서는 경허스님의 나체법문에 대해서, 원성문圓成門앞에서는 경허스님의 보림保任에 대해서, 만공스님 방 앞에서는 경허의 세 달인 수월, 혜월, 월면스님에 대해서, 수월스님 부엌 앞에서는 수월스님의 대비주大悲呪 수행과 방광放光에 대해서, 그리고 혜월스님 동굴 앞에서는 수행자가 살아가는 토굴의 본래 의미와 고급 승용차를 즐겨 타는 수행자는 절대로 깨달을 수 없는 이유, 곧 수행자는 걸어야 산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단순히 설명이나 해설이 아닌 스토리가 살아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앞에서 서있는 해설사 자신이 토설吐說하는 이야기로 인해 스스로가 누구보다 즐겁고 신이 나야합니다. 결국 좋은 해설이나 설명이란 순례객巡禮客이나 관광객觀光客에게 알고 있는 지식표知識表를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맛깔난 이야기를 통해 감수성과 상상력을 뽀글뽀글 자극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설명이나 해설은 충분하거나 많이 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표현하고 싶은 문장이나 단어를 다 써가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푸른 댓잎을 흔들 듯이 끝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설명을 마치고 인사를 나눈 뒤 성우당 쪽으로 걸어가면서 시계를 보았더니 1258분이었습니다. 오후1시에 천장사에서 수덕사로 출발할 계획이라는 말을 연꽃님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맞춤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에서 경허스님의 보림保任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본래 保任이라고 한자로 쓰면 보임이라고 읽어야하는데 불교용어로 읽을 때면 보림이라고 읽습니다. 마치 한자로 道場이라고 써놓으면 도장이라고 읽어야하는데 불교용어로 읽을 때면 사찰의 울타리 안을 뜻하는 말인 도량이라고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보림保任이란, 불교의 선종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법. 수행자가 깨친 후에 안으로 자성自性이 요란하지 않게 잘 보호하고, 밖으로 경계境界를 만나서 끌려가지 않게 잘 보호하는 공부. 라는 말인데 본래 보호임지保護任地의 준말입니다. 그래서 보호임지保護任地란 안으로 자성이 어지럽지 않게 잘 보호하고, 밖으로 경계에 부딪쳐 유혹당하지 않는다.內保自性而不亂 外任境界而不惑 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새애앵 쌩~ 차를 달려 당진을 지나쳐 서산휴게소를 지나고 있는데 고북 락화보살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20분쯤 뒤에 예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장소에서 보살님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일요법회에 태평거사님이 참석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아침에는 카톡방에 묘광명보살님께서 집안행사 때문에 지난주에 이어 오늘 일요법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글이 올라왔고, 정덕거사님과 묘길수보살님께서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못나올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연 이 주째 도반님들을 보지 못하면 솔직히 얼굴이 슴뻑이도 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다 태평거사님도 못나오고 수월거사님도 길상화보살님도 참석을 못하면 혹시 서울팀과 락화보살님만 뎅그라니 법당에 앉아있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무진주보살님과 무량덕보살님이 돌계단 위로 쌍무지개처럼 나타나 아쉬운 마음에 한 송이 화사한 꽃잎이 되어주었습니다. 고북에서 초록리로 들어서는 황토밭 사이 길에서 락화보살님을 만나 차에 함께 타고 소풍가듯이 차를 몰았습니다. 봄 향기 무르익어가는 시골길을 슬렁슬렁 따라 가다보면 머지않아 논 가장자리에 붙어있어서 아쉬운 대로 운치가 살짝 남아있는 제1주차장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곳에 차를 잠시 세우려고 하는데 파란색 관광버스가 한 대 주차되어있었습니다. 무심하게 어디론가 흘러가는 봄꽃놀이를 아쉬워하는 연암산 등산객들의 관광버스려니 생각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서울보살님이 서울 능인선원에서 온 순례버스 같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얼마 전 천장암 카톡방에 연꽃님이 능인선원의 불교대학 동기 분들과 천장사에 순례를 가겠다고 글을 올렸는데 그게 아마 오늘인 것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버스 안을 쳐다보았더니 사람들은 모두 절을 향해 관광버스를 차고 나서듯 출발했는지 기사님 한 분밖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산길을 올라가다가 두 발로 걷고 있는 순례객들 사이에서 배낭을 메고 있는 연꽃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일요법회는 예상하지 않은 사찰 순례객들 덕분에 딱 보기 좋을 만큼 만원을 이루었습니다. 법당안과 법당 마루를 채울 수 있을 만한 40명가량의 사람 수가 일요법회를 충만한 법회답게 만드는 충족한 분위기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습니다. 법당에 들어가기 전에 연등 아래서 나는 연꽃님을 다시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연꽃님이 나에게 천장암 안내와 해설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부탁의 변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벨라거사님이 목소리가 크시니까요... 오늘은 문화해설사님도 절에 나와 계셨고, 주지스님이 계신데도 불구하고 구태여 나에게 부탁을 한 이유로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사실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큰 목소리에 담겨있는 얼마만한 내용을 순례객들에게 전달할까를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물론 큰 목소리에는 울림 가득한 내용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늦은 벚꽃이 산비탈에 활짝 핀 연암산 계곡의 오후1시가 말끔히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열어놓은 들창너머로 하얀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줄 알았습니다. 들창문의 바깥 풍경風景을 절반이나 가리고 있는 처마의 옥색 서까래가 참 예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처마 아래의 여백餘白 부분으로 이따금 하얀 나비가 너풀너풀 날아다닌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 분여를 쳐다보다가 하얀 나비의 정체가 날개달린 생명체가 아니라 키 큰 나뭇가지에서 바람에 따라 떨어지고 있는 하얀 목련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련꽃잎이 바람에 날리면서 빛을 받아 흔들리는 모습이 몇 마리 하얀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였습니다. 며칠 전 서울보살님과 대화중에서 봄에는 하얀 꽃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렇다면 봄에 나는 하얀 나비는 노랑나비보다 살아가기가 더 힘이 드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나비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지만 도시에서는 하양이고, 노랑이고, 호랑이고, 손에 닿을 듯이 날아다니는 나비를 본다는 것 자체가 호사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비라는 이름이 나는 빛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시선 위를 나는 나비를 머리 위를 나는 고추잠자리보다 더 높은데 두기로 했습니다. 능인선원 순례객들도, 대구 관음사 참배객들도 모두 도량을 떠난 뒤에 주지스님 처소에 모여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요즈음에는 이따금 마셔보는 보이차 몇 잔이 가슴에 슬금슬금 봄빛을 밀어 넣어주었습니다. 주지스님 처소에 앉아있는 동안 가슴사이에서 촛불 닮은 빛이 너울거리는 것은 순전히 도량을 가로질러 날아온 하얀 봄빛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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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묘광명 | 작성시간 17.04.17 모든 상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함을 느낍니다.
    인연에 따라 최선을 다해주시는 밸라거사님과 선심행보살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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