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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4월30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5.06|조회수99 목록 댓글 0

 

 

 2017.04.30.. 청정 대기보다는 미세먼지가. 희망보다는 자잘한 회의가 깔려 있는 그늘

 

 

 

 

 

  0430,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봉암사 정경들이 아직 눈에 삼삼한데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있어서 화요일 천장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부처님 행사를 치루고 난 뒤 수요일 밤 느지막이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오후3시경이 되자 부처님 오신 날 행사는 거의 마무리되어 정리 작업을 한 후에 저녁공양은 특별식인 매콤한 라면으로 마치고 일요법회 도반님들과 잠시 담소를 하다 오후6시가 되는 것을 보고 절에서 출발하였으니 평소 일요법회 날에 비한다면 아주 빠른 귀갓길이었습니다. 보통 일요법회 날에는 저녁공양을 하고나서도 카페나 김화백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겨서 한바탕 이야기꽃을 피운 뒤에 밤9시가 되는 것을 보고서도 출발에 뜸을 들이다가 어떤 때는 거의 밤10시가 되어서야 서울로 출발을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항상 법담法談만을 나누는 게 아니라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이 다 이야깃거리의 소재이자 대상이지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직은 천지가 밝은 오후6시경에 돌계단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어제부터 세워놓았던 차위로 노란 송홧가루가 마치 일부러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한 꺼풀 거나하게 덮여있었습니다. 연암산과 삼준산에 소나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또는 지지난해에도 초파일을 전후해서 이런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기억이란 이따금 기억하는 자신도 깜짝 놀랄만한 구석이 있어서 노란 송홧가루를 보자 오랜 옛 기억이 넘치는 샘물처럼 귓가에서 솟아났습니다.

 

 

 

  송화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 박목월 -

 

 

 

 

 

  

 중학교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박목월 시인윤사월입니다. 그러니까 1968년의 바로 이 무렵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당시 국어선생님의 윤사월 시 해설이 생각납니다. “, 으응~ 노오란 송홧가루가 말이지~ , 으응~ 숲을 건너 외딴 봉우리까지 날리면 말이지~ , 으응~ 숲이고, 봉우리고, 하늘이고, 세상천지가 노랑으로 물든단 말이지~ , 으응~ 윤사월 해는 오죽이나 길지, 그리고 말이지~ 외딴집 눈먼 처녀가 말이지~ 처녀라도 가슴 아픈데 눈먼 처녀가 말이지~ , 으응~ 엿듣고 있단 말이지~ 처녀의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인 귀를 문설주에 댄 채로 말이지~ 봄날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있단 말이지~ , 으응~ 그러면서 절절한 그리움과 밑 모를 외로움을 말이지 응, 으응~ 윤사월과 눈먼 처녀와 엿듣고 있다로 표현해낼 수 있는 시적화자의 절제돼서 더 슬픈 감성이 말이지~ , 으응~ 우리들 가슴속으로 무차별적으로 파고든단 말이지 응, 으응~ , 이놈들아, 그렇게 눈을 말똥말똥 뜨지 말고 말이지~ 이런 대목에서는 말이지~ , 으응~ 눈을 사르르 감고 말이지~ 생각을 말이지~ 머리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면서 느껴봐야 한단 말이지~ , 으응~” 통통하고 자그마한 키에 시인이셨던 국어선생님의 화려한 해설에 윤사월 시보다 선생님 해설이 더 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어선생님의 아들이 같은 학년의 친구였는데 그 친구도 벌써 그때부터 시에 자질을 보였습니다. 워낙 감성이 풍부하신 국어선생님이셨지만 그중에서도 윤사월 시 해설은 당대 최고라는 평이 있을 만큼 감각과 표정과 목소리는 거의 환상적이었습니다. 단지 침을 좀 많이 튀긴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표현하고 해설을 하면서 자신의 감각과 감성을 어떻게 조절하고 어떻게 나타내야하는지는 국어선생님께 거의 배웠습니다. 박목월시를 해설할 때는 목월木月, 소월의 시를 해설할 때는 소월素月, 미당의 시를 해설할 때는 미당未堂이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와 있어야 만이 제대로 그 시를 볼 수 있다는 선생님의 시에 대한 관점은 훌륭한 것이라고 깊은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송홧가루 쌓여있는 그 차창車窓으로 밖을 내다보면 세상이 오직 순수 노랑으로 보일 것만 같아서 차 트렁크를 열고 차량용 기름걸레를 꺼내들었습니다. 부지런히 앞 유리창과 옆 창을 닦고 있는데 서울보살님이 그걸 언제 다 닦고 있을 거예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차량의 청결이 그 차량과 운전자의 격이라는 모르시오?” 그러자 옆에 서있던 묘광명보살님이 우리 차 옆에 세워져있는 자신의 차를 가리키면서 어머나, 내 차의 격좀 보세요.” 라고 말하고는 깔깔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진노랑 코팅 차를 쳐다보면서 덩달아 웃었습니다. 이렇게 운치韻致를 풍치風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재치才致를 우리들은 좋아합니다. 내가 차를 다 닦을 동안 무진주보살님과 묘광명보살님과 김화백님이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어주었습니다. 모두 서산 분들이라 멀리 갈 분을 먼저 보내고 출발하겠다는 뜻인데 그런 배려가 무척이나 고마웠습니다. 평소에도 일요법회 도반님들께 크고 작은 배려配慮와 정의情意로 인한 고마움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만 생활 속의 눈 맞춤 같은 사소한 느낌까지도 가슴 뭉클해지는 것을 보면 도반님들과의 관계가 점차 깊어지고 무르익어 가는 것 같아 마음바닥이 훈훈해지는 기분입니다. 연휴에다 공휴일 저녁이라 서해안고속도로 귀경길의 지정체遲停滯 상황이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으나 일단 출발을 하고 보았습니다. 항상 통행상황에 어려움이 있는 서해안고속도로 당진에서 서평택까지 구간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 나머지 구간은 대체로 원활한 흐름을 보여 서울에 도착을 했더니 밤9시가 조금 못 되었습니다. 봉암사 풍경이나 천장암 초파일 풍경을 써볼까 생각하다가 책상 옆에 세워놓은 봉암사 돌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보다 작은 돌인데도 어찌 보면 거대한 낭떠러지 모양의 바위 같기도 하고, 면벽참선面壁參禪을 하고 있는 달마선사 같기도 하고, 마애여래가 양각으로 새겨진 암벽 같기도 하고, 어쩌다가는 누군가나 혹은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순간 떠올랐다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 듯했습니다. 아마 작은 돌에 비치는 내 마음의 변화를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방안에는 바나나향이 진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엔가 서울보살님과 부처님 오신 날 공양물을 준비하러 마트에 갔다가 바나나가 튼실하게 좋아 보여 집에서 먹을 것까지 여유 있게 사서 대여섯 송이를 그냥 현관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따뜻한데다가 황사미세먼지로 몇 날 동안 창문을 열어두지 못하니 노랑바탕에 검은 반점 속의 농익은 바나나향기가 거실과 방안에 가득해서 바나나에 취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어제 하루에 나 혼자 두 송이나 먹어치웠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맛있는 바나나 여러 송이가 남아있어서 도반님들이 가까운 곳에 계시면 한 송이씩 나누어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만약 일요법회 시간에 내 몸에서 바나나 향기가 나거들랑 그런 연고로 인해 그리된 줄 아시면 혼동이 없을 걸로 생각이 됩니다. 부처님 오신 날 밤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몸을 나투신 깊은 뜻보다는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가야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밤늦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밤늦도록 여러 갈래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범상凡常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화요일 오후3시경에 천장암에 도착을 해서 마침 행사를 앞두고 날마다 출근하시듯 절에 오시는 정덕거사님과 묘길수보살님을 주차장에서 만나 함께 절로 올라갔습니다. 법당과 산신당에 공양물도 올리고, 텐트도 치고, 관욕식灌浴式을 위한 아기부처님 꽃장식도 하고, 마을보다 한참 이른 저녁공양을 마치고나니 절에서는 더 이상 할 일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정덕거사님과 묘길수보살님이 당진으로 떠나시고 서울보살님과 나는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밤86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새벽150분이었습니다. 잘 만큼 자고 일어났는데도 평소 한밤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씻을 겸 성우당惺牛堂 아래층 세면장으로 내려가다가 밤하늘에 참으로 많은 별들이 떠있는 것을 보고 무심하게 반짝이는 하얀 별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법당 뒤편 산봉우리 위에 늘어선 북두칠성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국자처럼 생긴 북두칠성을 잠시 바라보다가 북극성을 찾아보았습니다. 음력 사월초파일이라 초승달도 이미 져버렸고 오로지 별들만 반짝이는 밤하늘에 떠있는 북극성은 생각보다는 덜 밝게 보였습니다. 북극성은 기원전 12,000년경의 북극성과 기원전 3,000년경의 북극성과 현재의 북극성은 다른 별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북극성은 고정된 별이 아니라 천구의 북쪽에 자리한 별을 가리키고 있는데 지금의 북극성은 폴라리스라는 별입니다. 그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사람의 명과 운을 관장하는 신령들이라고 생각을 했던 고대 중국과 한국 사람들의 안목이 참으로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북두칠성의 거대한 국자가 사람의 혼이나 복을 퍼 담아내는 신령님들의 첨단 기구라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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