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1.日. 가까운 봄은 먼 하늘을 부려 흰 구름을 내어오고
05월21일, 일요법회 뉘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대서양大西洋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뉴욕 만灣으로 흘러들어가는 넓은 허드슨 강을 왼편으로 바라보면서 산책길을 따라서 위쪽으로 자꾸만 걸어갔습니다. 허드슨 강 저 너머의 땅은 미국 대륙에 붙어있는 뉴저지 주州이고, 왼편은 허드슨 강으로 오른편은 이스트 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미국 대륙과 분리되어있는 이쪽 땅은 뉴욕 시의 맨해튼 구입니다. 허드슨 강은 참으로 넓었습니다. 그저 눈짐작으로도 한강 폭의 서너 배는 되어 보였습니다. 한강 폭이 대략 2Km라니 그렇다면 허드슨 강의 폭은 5~6Km는 족히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산책길이 나있는 이편 맨해튼 쪽은 강변을 타고 빌딩이나 대형건물들이 줄지어서있는데 비해 저편 뉴저지 주州의 강변에는 드문드문 외따로이 건물이 있을 뿐 대부분 숲과 나무가 많이 보였습니다. 원래 간단한 새벽 산책정도로 생각을 하고 나선 길이었는데 강변길 따라 자꾸만 위쪽으로 걸으면서 여행 안내서에는 결코 나오지 않는 풍광風光을 즐기다보니 한 시간 반을 걸어 올라가버렸습니다. 아직도 걸어 올라갈 길은 많이 남아있었지만 이제는 호텔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돌아서서 가는데도 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 시간 반가량이 걸릴 테니까요. 잠결에 어쩌다 눈을 떠보니 새벽5시가 덜된 시간이었습니다. 살금살금 세면장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씻고 옷을 챙겨 입은 뒤에 슬그머니 호텔을 나섰습니다. 어젯밤 잠이 들기 전에 지도를 잘 봐두었기 때문에 눈대중으로도 아직 캄캄한 새벽길을 거침없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서너 개의 사거리를 건너가자 눈앞에 허드슨 강과 강변의 산책길이 보였습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가고 싶은 만큼의 길을 따라서 유작정有酌定 무작정無酌定 걸어가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걷는 동안에 허드슨 강 너머 뉴저지 주州의 숲 위로 붉은 해도 떠오르고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사람들도 이따금 만났습니다. 특별하게 천장암까지 소문날만한 경치는 아니었지만 한 번씩 세차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타고 부스스 일어서는 파도의 경쾌함이 200년 혹은 그 이전에 범선에 몸을 싣고 허드슨 강을 타고 올라와 맨해튼에 상륙을 했던 1세대 이민자들의 고통과 희망과 불안과 기대가 내 몸에도 자잘한 전율처럼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드문드문 강의 가장자리 한편에는 둥근 말뚝을 수십 개씩 박아서 예전에 선착장으로 썼던 듯한 흔적들도 보였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다 특별한 관광지도 아닐뿐더러 식당이나 편의점도 없는 곳이라 마치 나만의 시간과 장소를 준비해놓고 텅 빈 울림을 통해 무수한 색깔과 소리들이 나의 뉴욕 상륙의 축하를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고적孤寂하고 심쿵한 운치韻致는 내 시선을 통해 나만이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뉴욕의 첫날 아침이 그렇게 가슴 벅차게 시작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다리 위에서 수많은 선로가 얽혀있는 기차역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어쩐지 기적汽笛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는 희미한 느낌들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호텔에 돌아왔더니 아침8시가 훌쩍 넘어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난 후 하루 동안의 뉴욕 도심여행을 위해 가족들과 호텔을 나섰습니다. 오전에는 무척 즐거웠으나 오후가 되면서부터 서서히 나타나는 체력體力의 저하低下로 조금 힘들었던 뉴욕 나들이였습니다. 암만, 나이 앞에는 장사 없다고 옛말에도 있잖아. 푸하, 푸하, 그건 옛말이고 잘 먹고 잘 자고 꾸준하게 운동해서 몸을 관리하면 나이 앞에 장사 있거든. 흐흥, 물론 철저하게 관리하면 그냥 늙어가는 것보다야 좀 낫긴 하겠지만 너무 나대지 말고 어른 말씀하시면 입 다물고 힘껏 박수나 쳐봐.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닌데 아직도 몰라, 옛말 그른 것 없어든.
일주일동안 뉴욕을 본다면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는 점은 보는 사람마다 각각 계획하는 바나 보고 싶어 하는 자신만의 관점觀點과 안목眼目의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방식을 사용하여 닥치는 대로 보고 듣고 다니다가 그중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고 강렬하게 인식되어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일단 먼저 무차별로 보고 듣고 난 뒤에 그것들 중에서 무엇이 나의 관심을 가장 끌고 있었던 것인지를 알아보는 거꾸로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이 가능했던 것은 그 다음 해에도 뉴욕에 또 오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해 딸아이 대학 졸업식에 이어서 그 다음 해에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한 아들아이 대학 졸업식이 예정되어 있어서 먼저 축하차 인디애나 주州에 갔다가 뉴욕을 또 방문할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어디든지 돌아다녔습니다. 걷고, 지하철을 타고, 또 걷고, 우산을 쓰고 걷고, 비를 맞으면서 걷고, 비가 많이 오면 지하철을 타고, 짐이 많으면 택시도 탔습니다. 물론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 중이었고, 그곳이 뉴욕이고, 내 아이들이 앞으로 꿈을 펼치면서 활동을 할 곳이니 좋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맨해튼 중앙에 있는 타임스 스퀘어와 녹심綠深인 센트럴 파크는 칠팔 번은 가보았겠지만 그밖에도 맨해튼 남쪽의 차이나타운에도 세 번을 가보았습니다. 타임스 스퀘어처럼 오다가다 들린 것이 아니라 차이나타운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표적삼아 가보았던 것입니다. 로어 맨해튼 지역에 있는 차이나타운China Town은 위로는 리틀 이탈리아Little Italy와 경계를 하고 있고, 아래로는 월스트리트가 있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와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장소의 넓음과 활기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위치도 참 상징적이었습니다. 2000년 이상을 어깨를 마주한 채 한 동네에서 얼굴을 부비면서 함께 살아온 중국은 어떤 때는 힘 있는 동반자로서 또 어떤 때는 두려운 강대국으로서 우리들로서는 그 존재감과 짙은 그늘을 의식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수천 킬로 떨어진 태평양을 건너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 땅에 와서도 그런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그 뒤로 조사해본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실세인 유태인들 입에서도 ‘우리들이 백 년 전에 해왔던 방식 그대로 이번에는 중국 사람들이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미국을 잠식하고 있다.’는 말이 종종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차이나타운은 경계 위쪽인 리틀 이탈리아의 상권商圈을 계속 압박해 들어가고, 경계 아래쪽의 월스트리트로는 거대한 자본資本을 투입하여 공격적 투자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뉴욕 퀸즈 구 플러싱 지역에 있던 뉴욕 초창기 코리아타운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진출에 밀려 차이나타운으로 변모해버렸고, 이제 맨해튼 32번가 일대의 한인밀집지역이 유일한 코리아타운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차이나타운의 공원에는 중국인들이 많이 모여서 마작을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억양 강한 목소리로 떠들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 비해 음식문화가 다양한 탓인지 음식점이 많이 보였고 도박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성향대로 복권방이 또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음식점에 들어가 광동식 중국요리인 딤섬點心을 먹기도 하고 복권방에 들어가 우리나라 복권보다 당첨단위가 백배정도 높은 미국복권을 사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디든 웅성거리는 사람이 많았고 주변 분위기에 활기가 있어보였습니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이탈리아 식당가의 한산함에 비하면 대조가 될 만큼 차이나 보였습니다. ... 차이가 나게 보였습니다. ... 차이 나게 보였습니다. ... 차이나 보였습니다. 차이나타운을 빙 둘러 한 바퀴 도는데 40여분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차이나타운에 갈 적마다 몇 바퀴씩 돌아보면서 곰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차이나타운의 특성이 다른 지역과 다른 민족과 뭐가 어떻게 차이나는 지에 대해 자문자답自問自答을 꾸준하게 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운 해답이 머릿속에서 뛰쳐나올 바는 아니지만 그런 의문들을 머릿속에 각인해두었습니다. 우리 또는 우리의 후손들이 붐비는 땅 아시아에서든 기회의 땅 미국에서든 어차피 넘어야할 산이고 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뉴욕에는 쉑쉑버거의 고향답게 쉑쉑버거 매장이 여러 군데 있지만 그중 센트럴 파크 오른편의 이스트86번가에 있는 쉑쉑버거 매장은 미국사람이나 미국문화를 이해하는데 몇 가지 도움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평범하게 생긴 2층 햄버거 매장 옆에 있는 빈터에 양철지붕을 대충 씌워 나무 탁자와 의자를 놓아 실외식탁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덥고 답답한 실내보다 오히려 넓은 공간이 마음에 드는지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쉑쉑버거와 음료를 마시면서 식사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지붕에서 빗소리가 우당탕탕~ 우랑탕탕~ 하고 들리면서 엉성하게 씌워놓은 양철지붕 틈새로 빗물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자리에는 식탁으로, 어떤 자리에는 의자로 천장에서 빗물이 투두둑.. 투두둑.. 주르르륵.. 쏟아져 내리니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곤란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별로 놀라거나 당황해하지 않고 와우~ 하는 짧은 환호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햄버거와 음료를 집어 들고는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찾아 옮겨 앉았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햄버거를 먹고 음료를 마시면서 다시 떠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선 채로 대화를 하면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빗물이 쏟아져 내리는 양철지붕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난처함을 호소하는 고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미국이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나라로 알고 있는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비가 내리는 뉴욕 풍경風景을 몇 차례 보게 되었는데, 우리 같으면 거의 모든 사람이 우산을 쓰고 돌아다닐만한 빗속에서도 대략 절반가량의 사람들은 그냥 비를 맞으면서 태연하게 걸어 다녔습니다. 마치 기다리던 비를 맞으며 즐기면서 걷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자연을 대하는 관점觀點의 차이인지 자연과 함께 살아오면서 형성된 습속習俗의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지 여유가 있고 차분해지는 모습들이 내 눈으로는 좋아 보였습니다. 그건 정말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