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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6월1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6.12|조회수363 목록 댓글 0

 

 

 2017.06.12..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아니고, 그래서 괜히 허심虛心이 많아지는 틈새 계절

 

 

 

 

 

  0611,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2010년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 해 10월의 어느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2일 일정으로 문경새재를 걷고 나서 다음날 문경의 어느 중학교 운동장을 빌어 여행클럽 동호회원들과 매달 한 번씩 시행하는 100번째 답사기념 운동회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운동회에 참석을 했던 회원수가 120명가량이었으니 ‘60년대 국민학교 시절의 운동회 이후로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즐거운 운동회였습니다. 맥주 500cc를 빨대로 빨아 마시고 공을 드리볼 해서 축구골대를 빨리 돌아오기, 여성회원을 등에 업고 운동장 반 바퀴씩을 이어달리는 릴레이 경기 같은 성인들만 할 수 있는 경기종목이 몇 가지 끼어있어서 초등학교 운동회의 빛나는 즐거움과 나란히 비교하기는 다소 감각적으로 애매하지만 평생을 통통 털어 가장 재미있는 운동회중 하나였습니다. 회원 대부분이 최소 3년 이상 오랜 동안 방방곡곡坊坊曲曲 함께 여행을 다녔던 친근한 분들이라 점심시간에는 쿵쿵 따라~ ~ 쿵쿵 따라~ ~ 울림 있게 틀어놓은 음악소리에 맞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고 경기에 지장이 없을 만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등 야유회 겸 단합대회 겸 운동회였습니다. 물론 아주 초창기 구회원이나 소문난 운동회에 참석을 하려고 각지에서 처음 참석을 하신 분들도 상당한 숫자가 있어서 참석자를 다 아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분들과도 금세 친해져서 하루를 즐겁고 신나게 보냈습니다. 그렇게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몰려다니다가 귀에 생소한 처음 접하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여자회원들의 대화중에 소시~ 가 어떻고... 나도 소시~ 처럼 변할 수가 있고... 하는 등의 말이었는데, 나는 소시~ 란 소시지를 말하는 것인가 하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나 앞뒤 문장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서 소시지를 넣어본다면 말의 의미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유행어나 줄임말은 분명한 설명을 듣지 않은 다음에야 상상이나 추측만 가지고는 도저히 그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어서 몇 번을 혼자서 추측해보다가 결국 물어보았습니다. 저어, 이쁜이 씨 소시~ 가 뭡니까? 네에, 아니 허우대 씨 아직 소시~를 몰라요? 하는 대답이 마치 나로부터 돌도끼와 사냥감을 들고 서있는 원시인의 모습을 새로 발견해낸 듯한 눈초리였습니다. 인기 걸그룹 소녀시대를 말하는 거잖아요. 아유, 그런 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소설을 쓰세요? 네에? 소녀시대라는 게 걸그룹 이름입니까? 내 되 질문을 듣고 있던 이쁜이 씨가 묘하게 입술을 일그러뜨리더니만 손에 들고 있던 종이컵 커피를 내게 건네주더니 검지로 내 가슴을 두어 번 쿡쿡 찌르고는 저쪽으로 가버렸습니다. 글쎄, 나는 노바디Nobody를 불렀던 원더걸즈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소녀시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소녀시대를 줄여서 소시라고 부른다는 것은 알게 되었는데, 그런데 걸그룹 이름을 소녀시대라고 지었다는 것이 나는 몹시도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이를 테면 사물이나 단체나 생소한 것들에 이름 붙여주기를 좋아해서 세상의 이름들에 관심이 많은 나는 평소 내가 알고 있는 이름 붙이는 방법의 울타리를 넘어서버린 새로운 이름 붙이기 방식에 잠시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기야 이씨스터즈나 은방울자매, 펄씨스터즈나 토끼소녀가 활약하던 시기는 미세먼지 가득한 희미한 5월처럼 검푸른 지평선너머로 멀리 저 멀리far far away 가버리지 않았겠습니까?

 

 

 

 

 

  서산시내로 나가 저녁식사를 보숭이 얼음 사각이는 냉면으로 잘 먹고 와서 김 화백님 작업실에 다시 모여 즐거운 대화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실한 새벽기도로 저녁 이 시간이 되면 조금씩 졸음이 밀려오는 예천동보살님과 오늘 처음 참석을 하신 꽃동네인 화서재華嶼齎에서 오신 두 분 선생님께서는 약간이나마 지루하셨을 수도 있겠으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설명하듯, 특강하듯, 그리고 정담을 나누듯 화기애애和氣靄靄하게 주고받았습니다. 오늘의 대체적인 이야기 주제는 보는 것과 듣는 것,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정제精製된 문화적 현상인 미술과 음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이야기가 돌고 돌아 방탄소년단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 이라고 하니 예전에 홍콩배우 주윤발 주연의 방탄승이라는 영화는 새삼 생각이 났는데, 방탄소년단이라니 감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들어 가다보면 방탄소년단이라는 기사를 몇 번인가 본 기억정도는 있었으나 방탄소년단이라면 아마 신작 영화 제목이나 인기 있는 뮤지컬 제목정도 되나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인기 보이그룹의 이름이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끔뻑해져왔습니다. 몇 년 전 소녀시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품고 있는 언어영역의 울타리에 미세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김화백님의 권유대로 집에 돌아와서 방탄소년단의 뮤직동영상을 들어보았습니다. 일행들과 대화중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대중가요의 역사를 서태지와 이이들 이전과 이후로 구분을 한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리듬과 멜로디는 음악이고 가사는 문학이었지만 그 이후의 것은 소음이고 낙서일 뿐이었습니다.라고요. 역시 방탄소년단의 들려오는 소리는 소음에 가까웠으나 춤을 인상적으로 잘 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 쌍 팔년도 소방차의 체조식 춤이 아니라 리듬감이 몸에 한 겹 매끄럽게 배어있는 춤이었습니다. 보이그룹 명칭으로 방탄소년단이라고 이름을 지어놓은 언어감각에 새로운 세상을 느껴야할지 전통을 무시한 채 버르장머리 없는 언어영역 파괴에 배신감을 느껴야할지가 다소 난감해졌으나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내 몫이 아니었습니다. 서울보살님과 내가 4주 만에 다시 돌아온 일요법회의 오후시간들이 바람과 숨결에 밀려다니다 여름 별들이 서서히 자취를 나타내는 김화백님 작업실 지붕위로 여느 한적한 초여름 한나절이 그렇게 시간에서 밤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는 암자에서 하룻밤이란 카페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충청도 고북면에 위치한 시골 절 천장암 홈페이지입니다. 그중 예전에는 천장암을 다녀와서 방에, 요즘에는 일요법회 방에 글을 올리고 있는데 원래의 목적이라면 불교와 천장암의 일요법회를 알리고 수많은 잠재적潛在的 일요법회 신도님들께 소개하고자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요법회를 중심으로 불교교리에 관련된 내용들과 일요법회를 마치고 난 뒤 스님과 도반님들과 함께 어울린 차실에서의 차담이라든가 사중寺中 울력이라든가 또는 절 밖으로 나가 성지를 찾아가는 사찰순례라든가 일요법회 도반님들과의 다양한 활동모임과 관계에 대해서 거의 붓을 들게 됩니다. 어떤 때는 큰 흐름만 간결하게, 그리고 어떤 때는 시시콜콜한 상황상황의 느낌이나 분위기까지 쓰기도 하고 그로 인해 연관된 옛 기억이나 체험, 또는 상상력을 동원해가면서 소설을 쓰는 기법을 사용하여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형식을 빌어 글을 쓰기도 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게시판에 들어와서 지난 2014년 가을부터 올렸던 글을 쭈욱 살펴보았습니다. 600개가량의 글들이 하나하나마다 기억과 감각이 예민하게 살아남아있는 지난 3년 동안의 천장암 일요법회 흔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이제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슬그머니 늘어나서 조회 수 100을 넘기는 글이 제법 눈에 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독이도 눈에 뜨이는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201603.25일자 글인데 조회 수가 무려 725였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서 활동하는 카페가 서너 군데 가량 되기 때문에 카페회원이 몇 만이 되는 곳도 있고, 또 회원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비공개 카페도 있습니다. 회원 수나 조회 수에 따라 카페 방에 올려놓은 글을 읽는 사람들의 숫자는 천차만별이니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암자에서 하룻밤 카페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조금은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회 수 725의 글 제목이 삼포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글은 지난해 이른 봄 화순 모후산母后山 우거寓居에서 홀로 20년째 농사를 짓고 수행을 하시는 친구스님께 다녀왔던 글을 연작 9편으로 썼던 글인데 그 9편 중 이글만 조회 수가 두드러지게 높았습니다. 그래서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이글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9편 글 중에는 사실 삼포로 가는 길보다 더 잘 쓰였다고 생각되는 글들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읽는 독자사이에는 관점觀點과 시각視覺의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삼포로 가는 길이 혹시 제목빨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느 영화 리뷰를 보았더니 잘 지은 제목하나 천만관객千萬觀客 안 부럽다.’ 라는 표현이 들어있는 걸로 봐서 영화나 연극 또는 책이나 조각 작품들의 제목 짓기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이 725분의 얼굴을 한 분 한 분 떠올려보았습니다. 일요법회 도반님들을 비롯해서 몇 분의 스님들과 어쩌다 얼굴을 스쳤던 신도님들, 그리고 얼굴과 그림자 없이 투명한 들바람처럼 무시로 카페 게시판을 들어 다니시는 수많은 분들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그분들을 미처 다 모르고 있지만 그분들은 내 글을 통해 나를 알고 있을 잠재적 일요법회 예비 도반님들이었습니다. 생각을 소리 내어 표현한 것이 말이고, 이 말을 정리하고 순화시켜놓은 것이 바로 글이 됩니다. 그래서 글이란 자신들의 세상을 향한 절실한 표현이자 생각의 무한대無限大를 향해 열려있는 창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글들은 누군가에게 읽혀주기를 바라면서 써놓은 글들입니다. 보고서나 자술서등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논문이나 리포트, 평론, 논평, 기사 등등 심지어 지극히 사적인 일기마저도 누군가 가상의 눈을 예상하고 썼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글이란 읽히기 위한 글이고, 글쓰기란 언제나 글읽기의 전제하에 실행이 되는 생각의 구체적인 표현방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책상에서 써서 세상으로 내보낸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글을 통해 다시 한번 전해드립니다. 부처님과 아라한님들, 일요법회 도반님들, 그리고 잠재적 일요법회 예비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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