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12.月. 늦은 밤인데 제법 덥다는 느낌, 이러면 비오는 건데
06월1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절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도님들은 잘 모를 수도있겠지만 원래 절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시면 공양할 적에 전통적으로 내놓은 두 가지 음식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게 뭘까요, 그래도 경륜이 있는 여래자보살님이나 락화보살님, 혹은 신심 뛰어나신 묘길수보살님께서 한번 맞춰보시겠습니까? 귀한 손님이 오신다니 절에서 무슨 음식을 내놓아 환영을 표시할까나. 약간 궁금궁금. 소고기 등심이나 불갈비찜은 아닐 테고, 홍어회나 영계백숙도 물론 아닐 테고, 오겹살 구이나 막곱창도 역시 아닐 테고, 유동 골뱅이 무침에 공주 밤막걸리도 아닐 테고, 그렇다면 미나리 회무침이나 콩나물무침일까, 혹시 깜깜한 콩자반이나 오동통한 마늘장아찌는 아닐까? 등등 부지런히 생각을 요모조모 펼쳐보지만 모르는 것은 아무리해도 모르는 것이니 빨리 물어보는 것이 빠를 듯합니다. 네에, 국수와 김입니다. 너무 간단하지요. 하얀 국수와 까만 김이라니 상당히 감각적感覺的이고 운치韻致 살아있는 음식들입니다. 원래 김이란 겨울에만 한정 생산되는 마을에서도 상당히 고급진 음식이었고, 고려시대만 해도 밀가루가 귀한 탓에 혼례가 아니면 국수 맛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국수와 김이란 절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전통적으로 귀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천장암에서는 점심공양으로 김밥을 만들었습니다. 태평거사님이 절에 오실 적에 김밥 재료를 몽땅 사와서 보살님들께서 법회에도 못 들어오시고 김밥을 수십 개나 말았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약속이나 한 듯이 예천동보살님께서도 김밥을 준비해와 스님들께 점심공양으로 올렸다고 합니다. 법회를 보는 도중에 보살님들이 슬슬 빠져나가서 공양간에 무슨 일이 있나하고 궁금했는데 다 김밥 때문이었습니다. 일요법회가 오늘따라 열띤 토론 때문에 오후1시가 지나서야 끝나는 바람에 다른 날에 비해 점심공양이 좀 늦었습니다. 늦은 만큼 배도 고파서 맛난 김밥을 참 많이도 먹었는데 이상하게 김밥은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마법魔法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김밥을 먹고 나서도 까만 오디 먹고, 참외 먹고, 이성당 단팥빵을 또 먹었습니다. 그리고 접시에 남아있는 김밥을 또 몇 개 집어먹었습니다. 요즘에는 김밥 속으로 달걀도 넣고, 햄도 넣고, 불고기나 참치 살도 넣고, 오이나 당근도 넣고, 우엉이나 시금치도 넣습니다만 예전에는 일 년이면 한두 번 소풍가는 날이나 그렇게 신경을 썼지 평소 집에서 먹는 김밥은 소박한 레시피에 훨씬 제작과정이 간단했습니다. 먼저 까만 김을 밥상에 펼쳐놓고 그 위에 하얀 밥을 편편하게 골라 올린 뒤 간장을 슬슬 뿌려서 한쪽부터 두ㅡ르르 말아 통김밥을 그대로 들고 먹었습니다. 그래도 맛이 있었습니다.
아참, 김밥하면 또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군대복무를 하던 시절,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를 할 때면 부대마다 전통적으로 들고 들어가는 것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어떤 부대는 통닭을 사들고 가고, 어떤 부대는 만두나 찐빵을 사들고 가고, 또 어떤 부대는 쌀밥과 생김치를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부대는 김밥을 가져가는 것이 전통이었습니다. 그때는 휴가기간이 25일간이어서 (도서지방島嶼地方은 30일을 주었습니다) 날짜가 길기도 하려니와 웬만하면 삼 년 군복무를 하는 동안 세 번의 정기휴가를 다 찾아먹었기 때문에 휴가라는 연중행사가 따분한 군대생활의 오아시스 같은 휴지기休止期를 제공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해 나도 8월에 들어 휴가대기를 하고 있는 중인데 휴가를 이틀인가 앞두고 8.18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전군비상이 걸려 휴가가 취소되어버렸습니다. 평소에도 국민과 대중의 의견을 완전 무시하는 일당 독제체제의 공산당과 빨갱이를 무척 싫어하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는 더욱 철저한 민본주의民本主義와 민주주의民主主義 신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취소된 정기휴가는 밀리고 밀려서 결국 그해 말인 12월에야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휴가가 길고도 긴 것 같더니만 제주도 관음사에 가서 스님을 뵙고 한라산에서 한 보름가량 지내다 돌아왔더니 금세 귀대할 날짜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령부 본부중대원이 대략 50여 명가량 되기 때문에 김밥을 최소한 200여 개는 말아야 했고 만 김밥은 라면박스에 척척 담아오는 것을 나도 무수히 보았기 때문에 고참들을 따라서 본대로 그렇게 했습니다. 대개 귀대를 하는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그런 일요일이면 막사의 중대원들은 고참, 중참, 신참 가릴 것 없이 아침부터 굶은 채 휴가 귀대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대자들이 막사에 들어올 때마다 환호성을 울리면서 라면박스를 열어놓고 몇십 명씩 둘러앉아 김밥에 김치나 단무지 먹어댔습니다. 부산이나 여수 등 바닷가 귀대자들은 회와 초장을 듬뿍 싸오기도 하고 고향이 서로 다른 귀대자들이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음식들을 이따금 싸왔기 때문에 그런 날에는 하루 내내 굶어가며 라면박스를 기다렸던 보람이 있을 만큼 포식飽食을 하는 즐거운데이었습니다. 귀대자가 많은 날에는 늦게 도착한 귀대자의 라면박스는 개봉하지 않고 보관했다가 다음 날에 까먹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틀 뒤 사흘 뒤에 라면박스를 개봉해서 먹어도 맛이 있었습니다. 젊고, 건강하고, 순수하고, 튼튼하고, 식욕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에도 하늘을 찌르기는 찌릅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공양간에 앉아서 도반님들과 담소를 즐기다가 오후 2시가 넘어서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 오후에는 주변 풍광風光이 아름다운 예천동보살님 동생 분 댁을 방문하여 차담을 하기로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길이 익숙해진 김화백님 작업실에 차를 주차시켜놓고 모두 태평거사님 차로 옮겨 탄 뒤 출발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습니다. 큰 도로에서 기껏해야 안쪽으로 4,5분 들어갔을 뿐인데 아담한 골짜기에 펼쳐져있는 참 오밀조밀하고 예쁜 동네였습니다. 하얀 울타리의 붉은 장미넝쿨과 파란 잔디밭을 지나 현관에 이르렀더니 안에서 켜놓은 음악소리가 서정抒情을 휘감듯이 공기를 밀면서 들려왔습니다. 제목은 잊어먹었지만 귀가 즐거워하는 7080 시절의 팝송이었습니다. 파스텔 톤의 거실에서 차를 마실까 하다가 맑고 화창한 날씨를 한껏 즐기기 위해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기로 했습니다. 일행들 대부분 냉커피를 부탁했는데 나는 따뜻한 커피를 부탁했습니다.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 들어 절기상으로는 분명 여름이 되었는데도 찬 음식이나 찬 음료가 별로 당기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정수기의 온수를 해제시키면서 지난해 같으면 바로 냉수를 켜두는데 이번에는 냉수를 켜지 않았습니다. 찬 것에 대해 몸이 친밀감을 느끼지 않은 듯 했습니다. 이럴 때는 날씨가 덥다고 일부러 찬 것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몸 안의 생리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착하게 따라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스스로에게 적절한 처신處身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테라로사Terra rossa란 무에냐?” 라는 멘트로 재미있는 수업을 유도해주셨던 지리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얼굴은 크고 몸집은 조그맣고 왜소한 체격의 지리 선생님은 등산부 담당 선생님이었는데 교내 등산부를 담당한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물을 갈아 마시거나 잠자리만 바뀌어도 몸이 몹시 시달리고 한 여름에도 잠옷을 입고 얇은 이불을 덥고 자야 감기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허약한 체질을 등산으로 극복해가고 있다면서 등산부 가입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때에는 겨울철 새벽에도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와 물통의 얼음을 깨뜨리고 바가지 물을 몸에 풀풀~ 끼얹던 시절이라 선생님의 그런 말씀들이 도무지 이해가가지 않았으나 이제는 나도 웃통을 드러내고 잠을 자고나면 감기에 걸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세월이 나를 때리고 지나갔다.’ 라고 표현을 해도 좋을 듯합니다. 아, 테라로사Terra rossa란 석회암의 풍화 결과 형성된 토양으로 라틴어에서 유래한 ‘붉은 장밋빛 토양’ 이라는 뜻입니다. 선생님이라는 직함이 잘 어울리는 안주인의 오카리나 연주를 듣고 정말 수박으로 만들어낸 수박주스를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수박을 짜내어 만들어놓은 수박주스는 약간 어두운 장미색으로 색깔이 깊고 우아했습니다. 벽돌색보다 깊고 장미색보다 살짝 어두운 색조가 흑장미黑薔薇의 숨은 정열과 자목련紫木蓮의 초탈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천동보살님 동생 분 댁 방문 기념으로 예쁜 집에 이름을 하나 지어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화서재華嶼齋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華는 빛이라는 뜻이 있지만 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嶼는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산이라는 의미가 또한 있고, 齋는 재계하다. 라는 뜻이 있으나 집이라는 뜻이 또한 있으므로 화서재華嶼齋란 작은 꽃동산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