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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6월1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6.15|조회수49 목록 댓글 0

 

 

 2017.06.15.. 맑음을 통해 창틈으로 들려오는 바람소리

 

 

 

 

 

  0611,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나흘 째 감기와 대치對峙중입니다. 월요일부터 시작했던 것이 어제 수요일이 제일 심했던 것 같고 오늘은 조금 더 낫습니다. 열도 없고, 콧물도 없고, 몸살기운도 없고, 연민도 없고, 짝사랑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갈증도 없고, 두통도 없으나 잔기침과 목구멍이 아픈,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훨씬 많은 전형적인 목감기입니다. 낮에는 별로 심하지 않는데 밤이 되면 기침이 나오고 목이 아프면서 몸이 조금씩 가라앉는, 심각한 이라기보다는 다소 불편한 느낌의 목감기입니다. 약간의 논란은 있습니다만 인류가 달나라에 가는 세상인데도 감기약이란 없다고 합니다. 몸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워낙 종류가 많은데다가 변형이 심해 사람마다의 원인 바이러스의 확진이 쉽지 않아 모두에게 동일한 감기약이라는 것은 없다는 군요. 그래서 잘 먹고 잘 쉬면서 잘 참고 기다리면 보통 일주일가량이면 저절로 낫는다고 하는데, 글쎄 그건 몸이 각종 약에 물들지 않아 자연치유력이 왕성했던 옛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감기에 걸려 보름 또는 한 달 이상 고생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수두룩하게 볼 수 있어서 가만 두어도 저절로 낫는 질병이라는 말은 감기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태도로 인해 조금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하게 할 일도 없어 보입니다. 죽을 만큼 아픈 것도 아니고, 못 견디게 불편한 것도 아니고, 유독惟獨 외롭거나 고독해지는 것도 아니어서 평소보다 물이나 자주 마시면서 이 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감기에 걸리거나 웬만하게 몸이 아프더라도 거의 약을 먹지 않습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한 뒤에도 거의 1,2년가량 약을 먹었던 기억이 머릿속에 각인刻印이 되어 하얀 가루약에 대한 거부감이 남달리 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다 시큼한 하얀 가루약을 잘 못 먹어서 툭하면 약을 먹다가 토해버렸기 때문에 나중에는 빨간 캡슐에 약을 넣어서 주었는데 그것은 그런대로 먹을 만은 했습니다만 안 먹고도 먹었다고 거짓말을 종종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병으로 옆방에 입원해있던 친구 또래 아이가 어떤 사정으로 먼저 퇴원을 해 나간 뒤로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약을 열심히 먹었습니다.

 

 

 

 

 

  죽음의 공포라는 것은 거의 본능적本能的으로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왜 죽는 것이 두려운지, 저 세상보다는 이 세상이 더 나을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지만 죽음을 기꺼워하고 흔쾌欣快한 마음으로 친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죽음의 공포란 태생적胎生的이고 자생적自生的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어쩌면 죽은 후 사체死體의 모습이 살아있을 때와 너무도 다르고 살아있는 인체人體의 기준으로 봐서 무척 생소하거나 추하거나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군복무 중에 내 바로 밑 아우가 죽었습니다. 그날이 65일로 야간 불침번을 서고 있는데, 어떻게 집에서 온 급한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날이 현충일로 공휴일이고 벌써 밤이 늦은 시간이라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휴가증을 끊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야간 근무는 동기에게 부탁을 하고 급한 대로 차비를 빌려서 부대를 무단이탈을 했습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아타고 겨우 시간에 대어 고향으로 가는 야간열차에 올라탔습니다. 66일 새벽이라도 그때는 제법 쌀쌀했습니다. 초록색 싸구려 벨벳으로 바닥과 등받이가 치장된 야간열차 좌석에 앉아 있는데 왠지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내가 왜 우는지 나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뭐랄까 다가올 아침의 조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밤새 졸면서 울면서 고향 역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도착을 해서 한 5분가량 동생을 안아보았습니다. 동생이 내 품에 안겨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형아, 나 죽기 싫어. 였습니다. 동생의 호흡이 배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목으로 올라가다가 이내 멈추어버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귀대를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별을 따오기보다는 한 번 따온 별을 하늘에 다시 걸어놓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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