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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8월08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1.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8.09|조회수122 목록 댓글 0

 

 

 2017.08.08.. 흐리거나 맑음

 

 

 

 

 

  0808,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1.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시간의 틈새가 지름길처럼 군데군데 뚫려있는 꿈을 꾸다가 어느 순간 깜빡 눈을 떴더니 아침 508분이었습니다. 벌써 밖은 제법 환해지고 있었습니다. 아마 새벽 0430분경까지는 밤새 땅위에 머물고 있던 무거운 기운으로 인해 주위가 묵묵첩첩默默疊疊으로 어둠직하겠지만 0440분을 전후해서는 밝은 빛이 대기 중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새벽녘의 밝음 정도를 이리 소상하게 알고 있느냐면 어젯밤에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밤을 꼴딱 지새우고 새벽5시경에야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누운 채로 잠시 있다가 일어나서 세면장으로 나갔습니다. 이미 환한 기운이 법당 마당에 절반이나 차 있었지만 그래도 세면장 안의 불을 켰습니다. 어젯밤 세면장 입구 타일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있던 장수풍뎅이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습니다. 칫솔과 치약을 꺼내 양치질을 하고 샤워장에 들어가 샤워기를 켰는데 산속의 이른 아침이라 그러한지 어깨에 처음 닿는 물의 감촉이 선뜩거렸습니다. 올 여름에는 모후산母后山 인근에 비가 적게 온 까닭인지 계곡의 수량도 많지 않고 물도 차갑지가 않다고 불평 섞인 말을 스님께서는 몇 차례인가 하였으나 내가 느끼는 물의 청량감淸凉感은 서울의 수돗물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우수수 쏟아지는 물을 맞고 있다 보니 이내 선뜩거림에 익숙해져서 머리에서 어깨를 지나 가슴과 등판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의 흐름이 시원하게 기분 좋았습니다. 지난 여드레 동안 면도를 안 해서 수염이 거뭇했으나 면도기를 챙겨오지 않아 면도는 생략을 했습니다. 발을 씻는다든지 머리를 감는다든지 발목까지 잠기는 낮은 개울을 건넌다든지 하는 물과의 친밀한 접촉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안정시켜주는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몸이 물과 접촉을 하고 있는 중에는 마음과 생각들이 순해져있다는 느낌을 항상 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차실로 돌아와 가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고 짐을 챙겼습니다. 이번에는 승용차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방 하나로 짐이 단출했습니다. 그동안 이방 저방을 뒤져 골라 놓고 읽었던 책들도 벽에 줄맞추어 쌓아놓았습니다. 읽은 책 중에는 시사지와 주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이 많았는데 나오키상 수상 작가답게 대중적인 재미가 있는 짧게 짧게 끊어 치는 밝고 재치 있는 글 솜씨가 심심치 않았습니다. 역시 장편보다는 단편이, 그중에서도 나오키상 수상작인 공중그네가 돋보였습니다. 대만작가 리앙의 미로의 정원이나 재독 학자 송두율 교수의 저작들을 찾아놓기만 하고 다 읽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쉬운 감은 있었으나 언제나 그러하듯이 벽에 줄맞추어 쌓아놓은 책들을 다 읽고 올만큼의 시간이 내 품안에서 여유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책도 읽고, 스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법당에서 기도도하고, 하루 두 번 밥도 먹고, 공양 뒤에는 차를 마시고, 그러는 도중에 무엇보다도 이번에는 여름을 충실하게 바라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파랑과 땅위의 초록 가운데 어디만큼 시선을 두어야할지를 줄곧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운동화 끈을 묶고 가방을 들었더니 잠깐 동안에 갈 차비가 끝나있었습니다. 잠들기 전에 스님과 작별인사는 미리 해두었고, 디딤돌 위에 선 채로 법당 앞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도량 마당 가장자리와 산기슭 계곡 사이에 줄서있는 백일홍 꽃이 아침 안개 속에서 유일하게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백일홍 꽃은 마치 흑백의 풍경사진 안에 들어있는 빨간 관념觀念의 흔적이나 혹은 일탈逸脫의 붉은 파편처럼 보였습니다.

 

 

 

 

 

  작은 계곡을 따라 숲 사이의 길을 걷는 동안 끊임없이 잉잉거리는 잔파리와 모기가 두어 마리 목덜미에 달라붙었지만 주변의 산기슭과 저만큼 길 앞을 감싸고 있는 부연 아침 안개가 피부의 감촉보다는 내 시선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었습니다. 저 만큼 먼 곳의 길들은 하얀 벽에 닫혀있었으나 걷는 만큼 꼭 그만큼씩 하얀 벽이 뒤로 물러나면서 두 발로 걸어야할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숲길을 벗어나 팔만큼 자란 모를 감싸고 있는 푸른 논길이 보이면서부터 안개가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8일 전인 지난 화요일,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뒤 이 길을 걸어 절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여름 날 이른 아침에 편한 걸음걸이로 대략 50분가량 걸리는 딱 걷기 좋은 길이었습니다. 논길이 끝나자 계곡이 하천으로 바뀌는 부분부터는 길가에 큰 고목나무와 정자가 들어선 마을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목줄을 하고 있는 개들이 길에서 뛰놀고 있었습니다. 모자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고추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진청색 1톤 트럭이 사람들을 싣고 달려와서 길가에 멈춰 섰습니다. 검은 바퀴 뒤로 하얀 먼지가 사람 키 높이만큼 부스스 일어나는 사이에 아주머니 서너 분이 차에서 내려 밭으로 걸어갔습니다. 챙 넓은 모자를 쓴 몇 분의 아주머니들은 금세 여름날 아침 풍경이 되어버렸습니다. 마을 앞을 지나는 포장도로 건너편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습니다. 겨우 비와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정류장 옆 벽돌 움막 안에 가방을 놓아두고 끝없이 펼쳐진 논과 그 끄트머리에 엎드려있는 검푸른 산을 쳐다보았습니다. 오전 10시와 오후2시 여름은 눈 호사豪奢를 할 만큼 많이 보았지만 아침 6시경의 여름은 비로소 지금에야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제까지 처녀의 농염한 입매와 허리 굴곡을 보고 있었다면 지금은 소녀의 단정한 이마를 보고 있는 것과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배뇨기排尿氣를 느꼈습니다. 저 멀리 검푸른 산의 계곡을 채우고 있던 하얀 안개들이 골을 따라 유장한 흐름을 만들어가면서 나란히 줄을 맞춰 흐르고 있었습니다. 217번이 전광판에서 붉게 빛나고 있는 버스가 달려와 정류장에 멈추자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몇 년 만에 차 멀미증을 가볍게 느끼면서 눈을 감고 있었더니 머지않아 인근 큰 도시 고속터미널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침 0810분이었습니다.

 

 

 

 

 

  고속버스도 기차의 다양한 서비스와 경쟁하기 위해서인지 일반고속, 우등고속에 프리미엄고속이라는 것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서비스 경쟁은 운송업체들 간의 문제이지만 값이 오른 차비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의 몫이 되어버렸습니다. 출발시간과 비용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해서 서울행 표를 한 장 끊었습니다. 혹시 동반자가 있었다면 두 장이나 세 장을 끊었을 터이고 출발시간과 비용과의 상관관계를 0.5초쯤 더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튼 고속버스 출발시간은 0850분이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서울에서 이곳으로 내려올 때는 기차로 내려왔는데, 호남선 송정리역까지 1시간5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하지만 고속버스는 일반고속이나 우등고속이나 프리미엄고속이나 모두 일정하게 서울 강남터미널까지 3시간30분이 걸립니다. 그래서 3시간30분 후에 나는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을 했습니다. 시간이동과 공간이동을 동시에 한 것입니다. 요즘 이 두 가지 짧고 빠른 이동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차비를 부담만 한다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 같으면 강남터미널에 도착을 해서 지하철3호선을 탔다가 2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종합운동장까지 왔겠지만 이제는 바로 지하철 9호선을 타고 한 번에 종합운동장까지 훨씬 빨리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9호선 지하철을 타는 데까지 한참동안 깊은 곳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어렸을 적 하늘을 나는 꿈을 꿔본 적은 많이 있었지만 땅속을 빠르게 돌아다니는 꿈을 꿔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어른이 되어서 하늘을 나는 비행기보다는 땅속을 이동하는 지하철을 훨씬 많이 타고 다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고 싶은 얼굴들이 자꾸만 땅속 같은 어둠속으로 막막히 사라져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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