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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8월0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8.09|조회수130 목록 댓글 0

 

 

 2017.08.09.. 하늘이 흐리든 맑든 그렇긴 한데

 

 

 

 

 

  0801, 일요법회 뉘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지난 음력정초에 일주일 기도를 하고나서 몸과 마음과 기분氣分이 참 좋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해의 가운데 부분인 백중百中에도 기도를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윤달이 들어서 백중이 양력9월로 밀려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중날을 한 달 앞당겨 음력615일을 기점으로 일주일가량 시간을 내어 기도를 하고 여름의 며칠간을 보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서 남쪽 모후산母后山으로 출발한 날이 바로 81일이었습니다. 한 이 년 전부터 일요법회 도반님들과 함께 하계휴가 겸 기도정진 겸 템플스테이를 모후산 목탁암으로 장소를 정해 3,4일가량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허정스님이 천장암을 떠나는 바람에 올 여름에도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고 혼자서 떠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모후산 목탁암은 일요법회 도반님들께 자랑할 만한 것들이 몇 가지 겉으로 나타나있기도, 혹은 안으로 숨어있어서 이기도합니다. 생각들을 밟아가며 걸을 수 있는 우거진 숲길이 있고, 아담한 계곡과 푸른 계곡수가 있고, 한적閑寂과 느림이 있고, 자유로움과 살짝 게으름이 있고, 별과 보름달이 있고, 무진장한 골바람과 파도 출렁이는 첩첩 햇살이 있고, 넓은 공간과 검은 숲이 있는 등 정신적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주지스님과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장점의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좋은 곳이니 당연히 장수풍뎅이, 고추잠자리나 노랑나비와 두꺼비나 뱀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서울보살님이 강남터미널의 고속버스보다는 수서역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시간도 절약되고 편안할 것이라고 추천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조카아이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형님들과 함께 부산까지 ktx를 타고 갔는데, 내게는 좌석이 좁은 감이 있어서 불편하더라고 했더니 수서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ktx가 아니고 srt이며 대구를 가면서 타보았더니 좌석도 더 넓은 것 같다고 하며 적극 추천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서역에 도착을 한 시간이 정오를 조금 지난 1210분이었습니다. 잠깐 대기 장소에 줄을 섰다가 앞으로 나가 승차권 발매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광주송정역까지 몇 시 열차가 있습니까?

네에, 오후 두 시 열차가 있습니다.

오후 두 시 열차라, 그렇다면 그 앞 시간에는 없습니까?

네에, 1220분 열차가 있기는 한데 좌석이 매진되었습니다.

그래요? 흐응... 그러면 입석도 괜찮으니 1220분 열차로 해주세요.

네에, 죄송합니다만 입석은 없습니다.

저어, 광주송정역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네에, 1시간 40분가량 걸립니다.

, 그 정도라면 금방인데 입석이라도 하나 주시면 안 될까요?

네에, 말씀드렸듯이 입석권은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 그렇군요.

 

 

 

 

  , 그렇군요... , 그렇군요... 라고 말은 했지만 다음 열차의 출발시간이 오후 두 시라면 1220분 열차가 씩씩하게 달려서 광주송정역에 도착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러다보니 어떻게 해서라도 오후 두 시에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후 두 시까지 도착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승차권 발매 직원 아가씨가 어느 도반님 동생이나 조카라면 착한 도반님 이름이라도 들먹이면서 어떻게 부탁을 해보겠으나 뾰족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대기 장소로 지정해놓은 곳에는 승차권 발매 대기자들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벽에 부착되어있는 검은 전광판에는 빨간 글씨로 열차의 출발시간과 여유 좌석 수가 계속 찍어지고 있었습니다. 광주송정역 1220분 출발 매진. 이라고 붉은 글자가 계속 반짝거렸습니다. 이제 시간이 1216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늘 일정과는 별 상관이 없는 질문을 몇 가지 하다가 1217분을 넘어서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으로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저어 혹시 환불되거나 취소가 된 1220분 열차표는 없습니까?

 

 

 

 

  그러자 승차권 발매 직원 아가씨는 컴퓨터의 자판을 톡톡톡.. 하면서 두들겨보았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저어, 잠깐만요. 어머 한 자리 취소가 나왔네요. 몇 분이신데요?

, 나 혼자입니다.

네에, 그럼 결제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열차는 30% 할인을 받기 때문에 저렴하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일요법회 보살님만큼 착한 승차권 발매 아가씨는 승차권을 발권해서 내 손에 들려주면서 출발이 2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가시라는 응원까지 해주었습니다. srt 609호 열차 일반실 8호차의 맨 끝에서 두 번째 좌석이었습니다. 서울보살님 말대로 좌석은 넓었고 객실 안은 시원했습니다. 일요일 일요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집에서 천장암까지 가는데도 1시간 40분은 더 걸립니다. 잠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어느새 광주송정역에 도착을 해버렸습니다. 이래가지고서야 여행이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빠르고 편하고 너무도 안전한 일정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업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번 일정의 절반은 기도니까 힘을 비축하는 의미에서 가능한 이동거리를 편하고 쉽게 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서울에 놀러가면서 완행이었던 비둘기호를 타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철로가 지나치는 모든 역을 꼼꼼하게 다 섰다가는 완행열차인 비둘기호는 진정한 여행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열차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그보다 빠르고 편한 통일호나 무궁화호를 제쳐놓고 구태여 즐거움삼아 타보았던 완행열차였습니다. 당일 오후 3시엔가 광주역을 출발하여 밤새 호남선과 경부선을 달려간 후 다음날 오전 10시경엔가 용산역에 도착을 하는 낭만과 불편이 함께 깃든 완행열차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완행열차 안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풍경들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낭만이 깃들어있는 것은 아마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 같습니다. 터질 듯이 가득 차게 무엇이 들어있는지 주둥이를 꼭꼭 묶은 수많은 마대자루하며 커다란 짐 보퉁이와 발을 묶어놓은 돼지와 닭도 함께 객실에 타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맞은 새벽이 느지막한 아침이 되자 서서히 비둘기호 열차는 서울로 진입을 하였는데, 열어젖힌 차창 밖으로 철로 주변 주택들 지붕에 솟아있는 무수한 텔레비전 안테나를 보면서 매우 감탄을 했던 기억마저 눈앞에 걸친 색안경처럼 소소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수서역에서 출발하고 난 뒤 1시간 40분 만에 도착한 광주송정역은 몇십 년 만에 다시 가본 것 같았습니다. 광주송정역도 광산구가 되어 광주시에 편입되어있으니 이제는 당당한 광주시입니다만 예전에는 광주시의 외곽인 광산군 송정읍 송정리였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송정리역이라고 불렀고 광주역에 비해서는 초라하고 볼품없었던 시골 역이었습니다. 시원한 열차 객실에서 플랫폼으로 내렸더니 광주송정역 81일 오후2시의 더위가 한창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따라 역사 안으로 들어가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까지 가는 차편과 시간을 알아보고 나서는 도무지 기억을 통해서는 알아볼 수가 없이 변해버린 역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뒤에 지하철을 타고 소태역까지 갔다가 소태역 정류장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사평을 지나 마을 입구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길을 알고 있으니까 그저 따끈 화끈 거리는 햇살아래서 한 걸음씩 두 걸음씩 하얀 빛살 출렁이는 풍경 속으로 앞을 향해 걷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마을을 지나면서 그늘 아래 정자가 서있는 커다란 고목나무에서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길가에 묶어놓은 주둥이가 길고 검은 털이 짧아 무섭게 생긴 개들이 나를 보고 길길이 뛰면서 짖어댔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매미와 미국 매미는 서로의 소리를 알아들을까 하는, 또는 한국 진돗개와 독일 셰퍼트는 서로 짖는 의미를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한국사람과 미국사람은 서로의 언어를 익히지 않으면 서로 간 소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반해 매미나 개들은 낯선 출신 개들의 소리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언어의 이해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사람보다 곤충이나 동물들이 훨씬 뛰어난 지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곤충이나 동물의 언어적 이해방식을 활용한다면 누구나 외국어를 쉽고 간단하게 익힐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입니다. 만약 이것의 실용화가 가능하다면 영어 울렁증이나 외국인 기피증은 한 방에 사라지고 새로운 경제적 가치도 창출할 수 있겠다는 창대한 기대감이 갑자기 가슴 속에서 밀물처럼 차올랐습니다. 그렇게 쓸데없을지 모르는 생각을 하면서 구불구불 시골 길을 걷고 또 논길을 걷고 이어서 숲길을 걸었습니다. 숲길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려는 계곡 틈새의 양지바른 분지에 목탁암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스님을 만나서 인사를 하고 법당의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차실에 가방을 풀어놓고 한바탕 몸을 씻고 법당 마당에서 해바라기를 했더니 오후6시가 한참 지나고 있었습니다. 잠깐 밭에 갔다 온다던 스님은 밤8시가 되어서야 공양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수제비가 먹고 싶어서 낮에 밀가루 반죽을 해놓았는데 저녁공양으로 수제비가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마나한 질문이었고 들으나마나한 답변이었겠지만 사실 스님의 감자나 애호박을 소옹소옹 썰어 넣고 육수로 팔팔 끓여낸 수제비 솜씨는 충분히 경쟁력 있는 만만치 않은 맛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찬성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삼십 분 뒤쯤에는 열심히 후후 불어가면서 수제비를 떠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물부터 건더기까지 다 맛있었는데 내 입맛으로는 약간 짰습니다. 예전 스님의 음식에 비하면 대체로 국물들이 조금씩 짜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다 평소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을 서울보살님이 워낙 싱거운 쪽으로 간을 맞추기 때문에 내 입맛 또한 싱거움으로 정조준 되어있을 것입니다. 한 그릇을 다 먹고 솥에 남아있는 수제비를 절반씩 나누어 냉면그릇에 담아서 또 먹었습니다. 식사 중간쯤에 음식 품평회를 겸해서 스님이 수제비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수저를 검은 대리석 식탁에 내려놓고 나서 잠시 혀끝을 음미하면서 생각하는 자세로 5초쯤 시간을 보낸 뒤에 전체적으로 온몸이 시원하고 혀끝이 아기자기한 게 맛나고 다 좋은데 국물이 약간 아주 조금 살짝 짠 듯하다고 완곡하게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간수를 완전히 뺀 천일염인 자연 소금과 도회지 마트에서 팔고 있는 나트륨 덩어리인 화학 소금에 대해서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요는 짠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만들어낸 나트륨 덩어리인 화학 소금이 나쁜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스님이 음식에 사용하는 소금은 지난 20여 년 동안 간수를 완전하게 뺀 그야말로 진정한 천일염 이라는 것을 몇 차례 강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으로 음식이란 간이 생명인데 지나치게 싱거운 음식은 생명이 없는 재료들의 조합일 뿐으로 그저 레시피라는 형식을 씹고 있는 행위. 라는 말로 음식과 맛과 건강의 상호연관 관계를 확정지어주었습니다. 스님은 수제비 국물에 밥을 말아서 드시고 나는 수제비 국물은 먼저 마시고 밥은 밥대로 떠먹으면서 반찬으로 가지나물을 먹었습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뒤 그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잠시 소매를 보러 밖에 나갔다가 밤하늘에 떠있는 음력 열흘 달을 구경했습니다. 오른 편으로 부풀어있는 달은 밤1030분경에 계곡 넘어 앞산 등성이너머로 져버렸습니다. 닷새 후면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에서만 볼 수 있는 보름달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난 뒤 차실로 돌아가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좀 읽다가 나방과 팔다리가 긴 모기가 파닥 파닥 주변을 날아다니는 둥근 등을 끈 뒤에 잠을 청했습니다. 밤은 깊어가는 데 잠은 쉬 들지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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