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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8월03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8.10|조회수135 목록 댓글 0

 

 

 2017.08.10.. 흐리고 비

 

 

 

 

 

  0803,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아침8시쯤인가 도량 마당에 나갔더니 보살님들과 거사님들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오늘 먹을 고추와 오이나 호박, 가지뿐만 아니라 거사님들은 무슨 넝쿨을 어깨에 가득 지고 있었습니다. 선남선녀善男善女들께서 이왕 절에 왔으니 스님 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밭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거사님들은 샘으로 보살님들은 씻으러 세면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보살님들이 네 분이니 앞으로 한 시간 가량은 세면장이나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계산이 바로 나왔습니다. 그렇긴 해도 화장실이라면 세면장 말고도 저 아래 밭 가장자리 산비탈에 양철로 지붕을 이어놓은 움막 형태의 해우소解憂所가 하나 더 있기는 합니다. 이런 종류의 화장실을 전문 용어로 푸세식이라고 하는데 일 년에 한 번 늦가을에는 스님께서 직접 마스크를 얼굴에 착용하고 목장갑을 손에 끼고 긴 막대에 똥바가지를 달아 똥을 푸십니다. 힘들여 퍼낸 엄청난 양의 똥을 밭에 거름으로 쓰는지 말려서 땔감으로 쓰는지 용도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뜰하신 스님께서 똥을 함부로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쪽 해우소를 사용하는 일은 왠지 스님의 가을 일거리를 만들어드리는 것 같아 평소에는 웬만하면 세면장 화장실을 쓰려고 합니다. 지지난해 가을엔가 푸세식 화장실의 똥을 푼다는 문자를 예정된 날의 한 달 전부터 며칠 간격으로 계속 나에게 보내온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해우소 똥을 푼다는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던 것이 시간이 지나고 문자 회수가 더 할수록 똥에 대한 향수부터 시작을 해서 똥과의 살뜰한 기억과 쌉싸름한 추억을 토로한 뒤에 똥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주제 하에 똥의 찬양에 이르기까지 문자의 내용들이 갈수록 깊이와 무게를 더하면서 끝없이 진보 발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앞뒤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 예정된 날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으로 달려가 스님의 똥 푸는 일을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았지만 용케도 끝까지 중용中庸을 버리지 않고 잘 견디고 참아내었던 것입니다. , 그러고 보니 19년 전 세면장 건물을 짓고 내부 시설을 공사하는데 세면기 옆으로 소변기를 하나 놓는다는 말을 듣고 보살님들께서 그렇지 않아도 좁은데 소변기를 거기에 왜 나요?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아니, 그럼 거사님들은 소변을 어디서 보라고요? 하니까 좌변기는 깨끗하게만 사용한다면 남녀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소변기는 남자들만 사용하는 물건이니 효용效用도 떨어질뿐더러 시대정신時代精神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하는 말이 보살님들의 통 큰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산속에서 절 마당만 나서면 다 남자들이 소변보는 곳인데 소변기는 무슨 소변기요? 그렇기는 하지만 현실이라는 측면에서 그래도 이미 사놓은 소변기라 이고지고안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어찌어찌 설치를 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쓸쓸한 내력이 감추어진 소변기를 나는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에 갈 때마다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런데 지난 725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723일 취역한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CVN-78)은 길이 337m, 높이 76m에 배수량이 101600t을 자랑하고 있다. 최신형 AIB 원자로 2기를 통해 20년간 동력을 무제한 공급받을 수 있다. 전투기 40기를 포함한 80여기의 비행기를 탑재할 수 있다. 개발·건조에 들어간 비용은 430억 달러(48조원), 올해 우리나라 전체 국방예산 40조원을 넘는다. 하지만 다른 항공모함에는 다 있는데 이 비싼 항공모함에는 없는 것이 있다. 남성용 소변기.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에는 좌식용 변기만 있다. 현재 미 해군의 17%를 여성 승조원이 차지하는 현실을 고려해서 미 항공모함 설계 40년 역사상 처음으로 소변기를 없앴다. ...이하 생략... 아하, 참말 좋습니다. 이 기사를 보더라도 한국 불교의 기둥인 보살님들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벌써 20여 년 전에 효용성效用性과 시대정신時代精神을 앞세워 남성용 소변기 무용론無用論을 제시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미 항공모함 개발·건조에 우리 보살님들이 참여했더라면 분명 이렇게 간단명료簡單明瞭하게 주장을 했을 것입니다. 이 최신 원자력 항공모함 안에서 배의 난간으로만 나간다면 다 남자들이 소변보는 곳인데 함장 양반, 소변기는 무슨 소변기요?

 

 

 

 

 

  아침공양은 보살님들이 정갈하게 끓여낸 된장국에다 오이무침과 호박나물로 담백하게 먹었습니다. 다가올 점심공양을 위한 계산된 사전 준비운동이었던 것이지요. 오전10시경이 다가오자 스님께서 차실 문을 통통 두드리면서 커피 한 잔 하시오. 라고 인기척을 보였습니다. 나는 책장을 접어놓고 방충망 미닫이문을 열고 뒤께 쪽마루로 나갔습니다. 커다란 머그잔에 짙은 갈색 커피가 보일 듯 말 듯 김을 올리면서 가득 담긴 채 하얀 쟁반에 담겨있었습니다. 스님, 손님들은 어쩌고요? 했더니 아 예, 그 양반들은 절에 왔으니 녹차로 하겠다면서 공양간에서 알아서 차를 빼먹는다고 폼을 잡더란 말이지요. 그러니 그냥 우리끼리 이렇게 앉아 커피나 한 잔 해버립시다. , 좋습니다. 스님 말씀대로 마구 해버립시다. 그래서 그렇게 뒤께 쪽마루에 앉아 스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꽃다방 커피 같기도 하고 인디안 밀크 티 같기도 한 머그잔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습니다. 가만 생각을 해보았더니 이번 7일간 모후산 목탁암 기도·독서·템플스테이 기간 동안 스님과 뒤께 쪽마루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주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란 주로 불교신도의 충격적인 감소와 종교적 정체성正體性의 위기, 또는 불교의 시대정신時代精神이란 무엇일까? 21C를 맞아 종교 자체의 문제는 무엇이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과연 있는 것일까? 세계 속의 한국 또는 한국 속의 세계화, 우리나라도 모르쇠하고만 있을 수 없는 다민족 사회나 세계적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이슬람 종교·문화에 대한 이해나 배려 혹은 대처방안, 대한 불교 조계종의 행정적으로 총무원 제도와 25본산 제도는 여전히 사부대중四部大衆 모두에게 타당하고 효율적인가? 지난해 우리에게 알려진 맨부커상과 노벨문학상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가? 한국과 일본의 문학과 작가들, 우리가 절집에서 물먹듯 마시는 차 맛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기타 잡설雜說과 잡설雜說 등등 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차실뿐만 아니라 뒤께 쪽마루에서도 시간이 쏘아놓은 화살처럼 날아다녔습니다. 쪽마루에서 머그잔을 들고 앞을 쳐다보면 코에 걸릴 듯한 산비탈의 왕성한 푸르름 가운데 진노랑 원추리 꽃이 보석처럼 빛나보였습니다. 태양이 중천을 향해 점점 고도를 높여가자 스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차실로 들어가 앉아있는데 점심공양 목탁소리가 먹음직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부랴부랴 공양간으로 건너가 보았더니 역시 밥상은 세 군데로 나누어 차려져있었습니다. 스님 공양상은 식당 방에 차려져있어서 잘 모르겠으나 신도방에 차려져있는 거사님들 밥상에는 생갈치구이와 고구마순 고등어조림이 올라와있었습니다. 거기에다 보기에도 먹음직해서 몇 입 먹어보고는 하도 맛이 있어서 젓갈 이름을 물어보니 엽삭젓(전어젓)이라고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 차례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본래 육식이 금지되어있고 비린내가 나는 생선도 공양물이나 섭식용으로 금지되어있는데 이런 계율이나 전통적인 관례가 인도로부터 시작된 부처님 재세시在世時 혹은 초기불교나 대승불교에 합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상좌부 계통인 남방불교에서는 불단에 공양물로 생선을 올리고 있는 것을 볼 때 한국불교의 육식 금지나 생선 금지는 상당부분 범망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범망경梵網經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범망경梵網經은 우리나라 불교 계율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불교경전으로 5세기 초 후진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으로 전해져왔으며 계와 율의 기본경전으로 받들고 있으나 현재에 와서는 중국에서 찬술한 것이라는 설이 불교학계에 유력한 한 경입니다. 아무튼 생갈치구이와 고구마순 고등어조림에다 엽삭젓까지 화려한 밥상을 양팔로 휘젓고 다니면서 공양을 푸짐하게 잘했습니다. 어제 저녁에도 보살님들 덕분에 저녁공양을 잘 했는데 연거푸 오늘 점심공양까지 행복한 포식飽食을 했습니다. 스님께서 손수 준비해준 수제비와 김치비지찌개도 훌륭했지만 역시 음식은 보살님들이라는 생각이 푸른 파도처럼 가슴에 넘실거렸습니다.

 

 

 

 

 

  날이 뜨거워서 풍취風趣 도락道樂과 운동을 겸해 아랫마을까지 걸어갔다 오려는 계획은 취소를 했습니다. 오늘이 양력83일이니 한해 중 더위가 절정에 다다른 시기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대략 720일경부터 본격적인 더위가 몰려와 얼추 85일경이면 절정에 달했다가 810일 즈음이 되면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뒤뜰에 몰려다녔습니다. 일반적으로 해수욕장에서도 810일이 지나면 바닷물이 찬데다가 물속에서 살쐐기가 툭툭 쏘기 때문에 피부가 벌겋게 붓고 몹시 가려워서 입수를 자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815일이 지나면 폐장을 하는 해수욕장이 많았습니다. 해수욕장하면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곳은 보성 율포 해수욕장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 성인이 되어버린 지금에야 언제 해수욕장에 다녀왔는지 기억도 까마득하지만 아참,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가족들과 함께 인천 덕적도에 닷새간 다녀온 것이 아마 가장 최근의 바다로 간 하계휴가였던 것 같은데 그것도 벌써 이십 몇 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을 보성에서 다녔기 때문에 그해 여름에는 방학 내내 일요일이면 아빠 차를 타고 율포 해수욕장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기억속의 율포 해수욕장은 자연환경이나 편의시설 등이 그렇게 좋은 해수욕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성게 껍질 같은 뾰족 가시가 모래밭에 많이 깔려있어서 자칫하면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해수욕장으로는 동해안이나 서해안 해수욕장에 비해 지명도가 그다지 높지 않으니 사람들도 별로 많지 않았고 당연히 부대시설이나 편의시설도 미비해서 인근 지역 사람들이나 특별히 이 지역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왔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이야 여름휴가라면 바닷가에서 해수욕을 하든지 산으로 물 맞으러 가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여름휴가를 가는 것만으로도 사실은 감지덕지感之德之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날씨가 변하고 기후가 바뀌더니 이제는 거의 8월말 또는 9월 중순경까지도 여름 더위가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自然 더위의 절정도 810일이 아니라 8월 한 달 내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해수욕장에를 가보지 않아 확실치는 않아도 9월에 바닷물 속에 들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변하니 민심이 바뀌고 거기에 기후마저 제멋대로 날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뜨거운 오후에도 차실에서 선풍기 바람을 쏘이며 일어났다 누웠다하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이쯤해서는 추리소설과 두어 권과 시사지 두어 권을 읽고 나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은 쉽게 빨리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쓸데없이 글에 힘을 주거나 문장으로 폼을 잡지 않기 때문에 술렁술렁 읽어도 작가의 의도하는 바가 술술 전해져옵니다. 나는 일본 현대작가 중에서는 솔직하고 담담한 느낌의 지하철을 타고라든가 철도원을 썼던 아사다 지로를 좋아하는 반면에 왠지 음흉한 느낌이 드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좋고 싫고의 기준이라면 알맹이 없는 폼보다는 차라리 재미를 응원하겠다는 말에 다름이 아닙니다. 선풍기 바람과 독서 사이에서 그러다 어쩌다 어느 순간 깜빡 잠에 들었다가 미닫이문 밖의 햇살이 조금 순해진 것 같아 마당으로 나갔더니 왠지 도량이 조용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세면장에서 세탁기를 돌리다 밖으로 나온 스님이 나를 향해서 갔어, 방금 다 갔어.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잠깐 오수午睡를 즐기던 사이에 한 여름날의 방문객들이 12일의 템플스테이를 마치고 올 때처럼 소리 없이 돌아갔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에 정적靜寂이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생갈치구이와 고구마순 고등어조림과 엽삭젓이 가슴속에서 어느새 서서히 추억의 절임을 시작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께서 밭일을 다녀온 다음에 느지막이 둘이서 저녁공양을 했습니다. 생갈치구이는 남김없이 사라져버렸지만 고구마순 고등어조림도 냄비에 남아있고, 엽삭젓도 아직 한 접시 남아있었습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공양간에 그대로 앉아 보이차를 마시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실로 자리를 옮겨 홍차를 한 잔씩 하고는 잠을 잘 준비를 했습니다. 음력 열이틀의 달이 일요법회 보살님들의 볼처럼 정갈하고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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