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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8월04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8.11|조회수96 목록 댓글 0

 

 

 2017.08.11.. 새벽에는 흐리거나 비

 

 

 

 

 

  0804,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눈을 깜빡하고 뜨기 전에 상당한 꿈을 꿨는데 꿈 이야기는 시간이 나는 대로 다시 논하기로 하고, 일단 눈을 뜨자 차실 안으로 아침의 부후연 기운이 방충망 미닫이문을 통해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벌써 아침8시가 가까운데 앞 미닫이문 너머로 툇마루에 햇살이 찰랑한 것이 아니라 회색의 희부연 기운이 두세 겹 쌓여있었습니다. 잠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보았더니 하늘이 흐리고 계곡과 산비탈에 안개가 스멀거리고 있었습니다. 세면장에 다녀와서 멀고 가까운 안개의 흐름이 동양화東洋畵처럼 흑과 백의 농담濃淡을 만들어내는 도량 안을 슬렁슬렁 돌아다녔습니다. 스님은 밭에 나가셨는지 스님 침실 앞의 청색 장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며칠 전 스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더운데 왜 장화를 신고 다니세요? , 장화를 신으면 밭이나 풀밭 사이를 들어 다니기가 좋고요, 그러고 뱀으로부터 안전하거든요. 오호, 스님 여기에 뱀이 그렇게 많아요? 여기 계곡 주변에 개구리나 두꺼비가 많거든요. 그러니 뱀도 있을 수밖에요. 스님, 그럼 뱀 좋아하세요? 아니요, 뱀 안 좋아해요. 그리고 여기에는 독사가 많아요. 독사는 더 안 좋아해요. 하아, 그렇구나. 스님도 안 좋아하는 것이 있구나. 그러고 나서 오늘 오후에 계곡을 지나가다 발등을 스르르 지나가는 둥글고 긴 누른 뱀을 보게 되었답니다. 아주 오래전입니다만 시골 절에서 한동안 지냈을 때 당시에는 시골에서 뱀에 물려 사람이 희생되는 경우가 한해면 서너 건씩은 꼭 생겼습니다. 그때 춘배 아버님도 이른 아침에 깨밭에 일을 나가셨다가 뱀에 물려 돌아가셨는데 글쎄, 슬리퍼를 신고 깨밭에서 일을 하다가 그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뒤로 노스님께 들은 말이지만 옛날부터 시골에는 뱀으로 인한 사고가 많아서 그에 대한 대비책도 당연히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뱀에게 물리게 되면 당장 응급처치를 하게 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돼지였다고 합니다. 돼지를 잡아서 허연 돼지기름을 떼어내 뱀에 물린 부위를 돼지기름 속에 파묻고 있으면 뱀독이 해독되어 사람을 살렸다고 합니다. 돼지 한 마리면 뱀에 물린 사람 한 명을 살리는데 이 걸 몰라서 죽은 사람이 많았단 말이지. 하고 노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뱀을 잡아다가 돼지우리에 돼지 특식으로 넣어주면 돼지가 아주 좋아하더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요컨대 돼지가 뱀의 천적天敵이라는 것인데 고대古代에도 인류의 조상들은 이런 사실을 알아내어 실생활에 사용을 했던 증거가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집 가는 집이나 집안을 뜻하는 갓머리밑에 돼지를 뜻하는 시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원래 자는 자에서 생겨난 글자로 자를 보면 을 열고 들어가면 돼지가 있다.라고 해석을 하기도 하고, 아래 돼지를 키웠다.라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지상에서 집을 한 단 띄워지어놓고 그 아래 돼지를 키워 천적의 대상이었던 뱀들이 집에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대비를 했다는 것입니다. 인류의 파충류에 대한, 그중에서도 뱀에 대한 공포감은 거의 본능적이 것이었습니다. 사실 인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추위와 맹수들의 공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거주처인 동굴과 불을 발견함으로써 추위와 맹수의 공격으로부터는 안전을 확보하였으나 오히려 음습하고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뱀으로부터의 공격에는 자신을 노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기후가 온화해지고 주거기술이 발달하면서 집을 평지에 짓게 되자 집 아래 돼지를 키움으로 해서 뱀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집 아래 돼지를 키웠던 흔적은 중국 일부지방과 제주도나 전라남도 석곡 등지의 똥돼지 전통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앞을 가리던 안개는 흔들리다 엷어지다 사르르 사라졌으나 오전 내내 바람이 일고 하늘은 흐렸습니다. 스님께서 뒤께 미닫이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커피 한 잔 하시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닫이문을 열고 쪽마루로 나가 앉았습니다. 커다란 머그잔에 잔한 갈색 커피가 가득담긴 채 하얀 쟁반위에 놓여있었습니다. 스님과 나란히 쪽마루에 앉아 맞은편 산비탈의 우거진 초록을 보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불어오는 골바람을 따라 노랑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면서 날아왔습니다.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 도량 안에서 수많은 잠자리와 호랑나비는 보았지만 노랑나비는 드물게 보았습니다. 아참, 모후산 목탁암에 나비보다 훨씬 많은 것은 모기와 나방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방과 나비의 차이는 나비는 날개를 접고 앉는데 나방은 날개를 펴고 앉는 것과 나비는 낮에 활동을 하고 나방은 밤에 활동을 하는 점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나비의 어원語源나는 빛이라는 걸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비를 보고 날아다니는 빛이라니 옛날 사람들의 맑은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의 안목으로는 세상을 밝히는 빛처럼 나비의 생태를 보면 자연환경의 상태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나비가 살 수 없는 곳에서는 다른 곤충들도, 다른 생명들도, 다른 인간들도 살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설명이 가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나비가 살 수 있는 곳이 삶의 터, 즉 나비가 살수 없으면 삶도 없다.입니다. 서양식 나비 이름은 Butterfly인데 이것을 보고 나비란 버터를 먹는 날벌레라고 하면 안 되겠지만 역시 그 인근지역에 노랑나비가 많았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랑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녔습니다. 선명한 노랑 색종이처럼 뒷마당 공간에 유쾌한 점을 찍고 돌아다니던 노랑나비가 어디선가 또 날아온 호랑나비와 어울려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가 원추리 꽃 근처에 내려앉았습니다. 호랑나비는 보호색에 힘입어 금세 모습을 감췄지만 노랑나비는 날아오를 때마다 스스로의 위치를 파란 모조지 눈금 위에 분명하게 찍어주고 있었습니다. 또 한 차례 흐린 하늘을 밀치고 빠져나온 듯한 골바람이 후쉬쉬쉬~ 매끄러운 뒤태를 보이면서 뒷마당으로 돌아들어와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나는 머그잔을 들어 꽃다방 커피 같기도 하고 인디언 밀크 티 같기도 한 진한 갈색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쪽마루에 올라앉아 있는 스님 발치에 놓여있는 시사지時事誌에는 여름휴가와 복날을 맞아 동물보호단체의 보신탕 반대 운동과 유기견遺棄犬(버려지는 반려견) 실태에 관한 기사를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현수막을 동원하여 재래시장이나 보신탕을 판매하는 음식점 앞에서 보신탕 반대 운동을 벌이는 일과 여름휴가 중 유기견遺棄犬이 급증하는 문제는 서로 교묘하게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보통 일 년에 10만 마리의 유기견이 발생하는데 평소에 비해 7,8월 여름휴가 기간에는 그 숫자가 급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유기견들의 발생은 보신탕을 판매하거나 먹는 사람들보다 동물애호가들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지요. 보신탕을 판매하거나 먹는 사람은 애당초 반려견을 키우지 않을 것이고 설혹 키운다하더라도 유기遺棄시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신탕을 반대하는 동물애호가들이 보신탕을 혐오하는 것처럼 일반인들의 눈에는 반려견을 유기하는 행위도 혐오나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예전 일입니다만 보신탕에 얽힌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두어 차례 큰 수술을 받아야했습니다. 그런데다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기간 동안에 마땅히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스님께서 여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돌봐주는 일 못지않게 음식을 챙겨 먹는 일도 여의치 않아서 저런 상태로 스님께서 쉽사리 몸을 회복할 수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생각하던 나머지 회복 중인 환자 몸에 좋다는 음식들 중 시장에 있는 보신탕집을 수소문해서 냄비에다 보신탕을 담아 스님께는 말씀을 드리지 않고 몇 차례 공양을 올렸습니다. 내가 올리는 음식이었으니 별로 의심의 기색 없이 스님은 잘 드셨고 어떤 때는 스님의 권유에 따라 함께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그때야 스님이 아직 젊고 기력이 튼튼하실 적이라 시간이 흐르면서 몸이 차차 회복되어 학교를 잘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난 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야 우연히 그때 이야기가 나와서 그때 드시고 몸을 회복했던 음식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흠, 그랬었군요. 어쩐지 맛이 있더라. 하면서 허허 하고 웃으셨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동물보호단체를 비롯해서 동물애호가들 사이에서 보신탕을 야만적인 혐오음식으로 지정하고 절대 반대운동을 하는 분들도 있고, 반면에 보신탕을 예로부터 내려온 보양음식으로 생각하고 즐기거나 찬성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서구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고, 라는 동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의 차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럴 경우에 찬성론자들 입장에서는 대만에서는 구렁이를 시장에서 음식으로 버젓이 판매를 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살아있는 원숭이의 골을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으로 먹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반대론자들 입장에서는 반려견伴侶犬은 가족이지 음식물이 아니다. 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나야 강력한 보신탕 반대론자도 아니고 지극한 보신탕 찬성론자도 아닙니다. 조금 전에 언급을 한 것처럼 아주 예전에 어쩌다 몇 차례 먹어본 적은 있으나 소문난 집을 찾아다니면서 먹을 만큼 즐기지도 않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보신탕 문제 역시 문화갈등 또는 문화충돌의 한 사례가 되겠지만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역시 생각의 여백이라는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점심공양에는 아직 냄비 안에 남아있는 고구마순 고등어조림과 엽삭젓과 오이무침과 취나물과 김치와 고추장을 냉면그릇에 한꺼번에 몰아넣고 마구마구 비벼먹었습니다. 이렇게 비벼서 먹으면 왠지 밥을 더 많이 먹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밭에서 따온 오이고추에 된장을 발라 아삭아삭 씹어 먹었더니 소리하며 입안의 감촉이 여름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었습니다. 이럴 때면 보신탕 같은 종류의 음식이란 아예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는답니다. 또 예전 이야기입니다만 중고등학교 다닐 적 여름이면 일요일 점심은 보통 밥에 시원한 샘물을 말아 후르륵 마시듯 먹고는 반찬으로 작고 비틀어진 매운 고추를 된장에 찍어서 아작아작 씹으면 알큼한 매운 기운이 혀끝에서 알싸하게 퍼져나가는 맛이란 원숭이 골 정도와는 바꾸고 싶지 않은 여름날의 쌈빡한 미각味覺이었습니다. 샤워보다 훨씬 시원했던 뽐뿌물로 하는 등목이라든가 얼음이 듬성듬성 들어있는 콩물우뭇가사리라든가 샘물에 담가두었다 단 칼에 쪼개놓은 무등산 수박이라든가 평상에 모기장을 치고 잤던 새벽녘의 으스스함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이제는 다시 맛볼 수 없는 여름날의 쩌릿한 감성感性이 되어버렸습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공양간에서 차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차실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석양 무렵 밭일을 시작할 때까지는 스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줄을 모르겠습니다. 스님 서재나 2층 다락방 도서관이나 세면장 세탁기 앞이나 아니라면 산기슭 해우소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약간 상황이 달랐습니다. 차실에 선풍기 바람을 쏘이면서 누워있는데 스님이 차실 문을 열고 들어와 계곡에 한번 가보지 않으려오? 하시면서 손을 까불까불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여름에는 계곡 물웅덩이에 속에 들어앉아 있으면 세상에 그보다 더 시원한 것이 없다고 자랑을 하던 그 계곡에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을 따라 법당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풀밭으로 들어섰습니다. 스님보다 앞서서 슥슥 걸어가는데 조금 앞부터는 풀이 한층 길게 자라있어서 무언가 께름칙한 것이 살짝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면서 스님께 여기에도 혹시 뱀이 있을까요? 라고 물어보려는 순간 무언가가 발등 앞으로 지나가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등이 뻣뻣해지면서 목덜미가 서늘해져왔습니다. 고개를 천천히 돌려 발등을 내려다보았더니 누런 황갈색 바탕에 검은 동그라미 무늬가 있는 둥글고 긴 몸통이 보였습니다. 머리카락이 올올이 쭈뼛 일어나면서 허리를 비스듬히 틀고 고개를 내려 보는 딱 그 자세로 몸이 멈칫! 경직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원하기로만 따진다면 이보다 더 시원할 수 없는, 허장강과 도금봉이 출연하는 월하의 공동묘지보다 스릴 만점인 순간이었습니다. 길어야 대략 5초정도에 5년 같은 시간이 소용돌이를 치면서 주변에 시간의 계곡과 폭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뒤에서 걸어오던 스님께서도 왜 그러시... 까지만 말을 하고 내 한 발 뒤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있었습니다. 열기를 품은 바람 불고 하늘이 흐렸던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이왕 나섰던 길이니 계곡을 건성건성 돌아보고 얼른 차실로 돌아왔습니다. 웬일인지 차실 안이 시원해서 선풍기를 켜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책을 읽고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스님과 느지막이 저녁공양을 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청국장을 끓여줘서 보리쌀밥에 맛나게 먹었습니다. 스님께서 이모저모 특히 공양에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입맛이 떨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차실로 자리를 옮겨 보이차를 마시고 난 뒤 각자 잠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세면장에를 다녀오면서 밤하늘을 쳐다보았더니 음력 열사흘 달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유난히도 나방과 날벌레들이 차실 안에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내가 차실의 불을 끈 뒤에 잠을 청하면 나방과 날벌레들도 어둠속에서 잠을 자면서 꿈을 꿀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눈을 뜨면 아침이 되어있을 텐데 긴 어둠 속에서 시간은 어떻게 공간속으로 흘러 다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2차원이 3차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3차원은 4차원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꿈속에서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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