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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8월0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7.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8.14|조회수145 목록 댓글 0

 

 

 2017.08.12.. 오늘만 같다면 저산은 이리도 가까이 있는데

 

 

 

 

 

  0806,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7.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어제에 이어 활활 타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서울보살님이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서울 36, 지금 절에 가고 있네요. 나도 카톡을 보냈습니다. 지금 절에 있는데 풀밭에 무늬가 동그란 뱀이 기어갑니다. 누가 더 더운지 더 시원한지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이 전화는 터지지 않기 때문에 문자나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데 카톡이 아무데서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당에서 법당으로 올라가는 세 번째 돌계단은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차실에서 나와 공양간으로 돌아가는 본채 모퉁이 처마 풍경아래서는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습니다. 믿을만한 곳은 고구마바위나 장독대 앞인데 밤에는 모기에게 물릴 마음가짐으로 자연에 몸을 내맡기고 카톡을 해야만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세상 살아가는 눈치만 늘었는지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말을 천리 떨어져있는 서울보살님에게 골라낸 단어와 문장을 앞세워 말 타는 용감한 기병처럼 카톡으로 날려 보냅니다. 문자의 효과가 얼마나 있을는지는 서울에 올라가봐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그런데 눈앞의 이 풍광風光은 정말 화통한 어느 여름날 일요일 아침입니다. 법당 마당에는 어제 쌓인 햇살 위로 오늘 분의 폭열爆熱이 여러 두께에 몇 켜를 더하고 있었습니다. 어젯밤에 물린 모기이빨 자국이 몹시 가려웠지만 작열灼熱하는 햇살 아래 팔뚝과 종아리를 내놓으면 단박에 후끈거리면서 가려움증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세면장으로 달려가 샤워기를 켜놓고 몸을 씻었습니다. 그래도 계곡수로 목욕을 하고 나오면 당분간은 몸이 매끈거리면서 시원했습니다. 어제는 웃통을 벗어부치고 고구마바위 앞을 어정거리고 있었는데 저 아래 쪽 길에서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우편집배원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스님이 보이지 않아 내가 대신 우편물을 수령했더니 절에서 웃통 벗고 어슬렁거리는 이 사람은 누구야? 하는 표정으로 우편물을 건네주었습니다. 우편물은 해인사海印寺에서 매달 발행하고 있는 순수 포교지인 월간 해인지海印誌와 시사지時事誌들이었습니다. 월간 해인지는 스님의 가까운 도반 스님이 앞으로 30년분을 여기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으로 신청해놓아서 거의 2,040년대 후반까지는 매달 배달이 될 거라고 했습니다. 어느 스님인지 몰라도 그 규모와 멀리 앞날을 내다보는 안목이 남 다른 데가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요일 아침이라 혹시 절에 손님이나 내방객이 있을지 몰라서 저 도량 안쪽의 빨래를 넣어놓은 곳에서 웃통을 벗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습니다. 빨래줄 아래 풀밭을 걸어 다닐 때는 한 발 한 발 발 디딜 곳을 확인해가면서 조심조심 내딛었습니다. 버려진 청색 고무호스나 누런 새끼줄만 보여도 몸이 움찔거리면서 긴장이 되었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은 잡풀이 수북하게 자라있는 풀밭 돌아다니기였습니다. 햇볕에 몸이 덥혀져서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자 샘으로 가서 세수를 하고 차실로 들어갔습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접어놓았던 책장을 펼쳐 또 책을 읽었습니다. 아침 10시쯤 되자 밭에서 돌아와 법당에 들어갔다 온 스님께서 뒤께 미닫이문을 똑 똑 두드렸습니다. 커피 한 잔 하시오. 나는 뒤께 미닫이문으로 나가 문을 열면서 쪽마루에 나가 앉았습니다. 커다란 머그잔에 담겨있는 진한 갈색 커피가 하얀 쟁반에 놓인 채 조용히 하얀 김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뒤께 쪽마루에 앉아 산비탈의 무성한 초록을 쳐다보면서 스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도 이런 글 저런 글을 다 써보았는데 소설만은 만만하게 써지지 않더란 말이지요. 거사 양반은 소설을 쓸 때 어떻게 쓰시오? 갑작스러운 스님의 물음을 받고 머그잔을 기울여 꽃다방 커피 같기도 하고 인디안 밀크 티 같기도 한 진한 갈색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에 천천히 입을 떼었습니다. ,.. 한 자씩 써나갑니다. 호오, 그래요? 그런데 누구나 한 자씩 써나가지 않습니까? , 소설은 누구라도 그렇게 쓴다고 생각합니다, 스님. 그러면 말이지요, 묘사描寫와 서사徐事와 대화對話 중 어느 것이 쓰기에 재미가 있습니까? , 그것이라면 묘사와 서사는 다분히 객관적이지만 대화는 작가의 관점에서 주관적이라서 대화가 쓰는 즐거움이 더 크고 흥미롭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묘사는 대상에, 서사는 사건이나 행동에 한정이 되지만 대화는 그야말로 무궁무진無窮無盡하기 때문에 뭐든지 써 낼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요 스님, 이 방 저 방에서 읽을거리를 찾으면서 책을 둘러보았더니 한국소설이나 산문집도 많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소설을 포함한 외국소설들이 참 많더군요. 일본소설을 많이 읽는 이유가 있습니까? 아네, 한국 소설도 좋아하고 일본소설도 좋아하고 다 많이 읽는 편인데 한동안 읽다보니 뭔가 약간의 차이 같은 것이 있더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한국소설에 비해서 일본소설은 사람에서부터 사회나 자연에 이르기까지 훨씬 소재가 다양하고 글에서, 문장에서, 뭐랄까 눈에 척척 달라붙는 달큰한 친밀감 같은 것이 일본소설이 더 뛰어나더라고요. 그래서 구태여 말한다면 일본 소설은 독서를 즐겁게 해주는 문학적 층위가 다양해서 각자 선호하는 책을 찾아보기가 수월한데 한국소설은 재미있기 아니면 재미없기로 층위가 단순해서 선호하는 책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약간 떨어진다고 할까요. 그런 것 같더란 말이지요. , 그런데 스님, 예전에도 말을 이렇게 잘하셨던가요? 예전 따로 있고 지금 따로 있고 뭐 그러기야 하겠어요, 평소실력이지요. 그렇지요, 평소실력.

 

 

 

 

 

  그냥 까만 커피보다 진한 갈색 밀크 커피가 맛난 이유라면 혀끝에 달콤하게 퍼져나가는 덩어리 우유나 분유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 지금 마시는 진한 갈색 밀크 커피는 스님의 수제커피인데 우유가 없어서 대신 통에 들어있는 분유를 넣어 만들어낸 것이랍니다. 언제 어떻게 어떤 비율로 만들어내는지는 모르고 매일 오전10시경에 커피를 들고 와 뒤께 미닫이문을 통통 두드려 커피 마시는 시간을 알려주기 때문에 쪽마루에 나가 앉아 간지나는 뒷마당과 거의 수직벽인 산비탈의 푸르름을 마주대하며 이렇게 오전 한 때 대화와 토론이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대로라면 초등학교1학년 때부터인가 덩어리 우유와 옥수수 죽이나 옥수수 빵이 일부 아이들에게 급식용으로 나왔었습니다. 아마 미군군수물자 재고품이 아니었었나 생각되는 덩어리 우유는 조그맣게 깨서 입안에 넣으면 진하고 부드러운 맛이 썩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옥수수 죽은 양동이에 담아 와서 그릇에 퍼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맛난 것은 납작하게 네모난 노란 옥수수 빵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 그런 제빵 기술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전의 성심당이나 군산의 이성당 빵보다 더 고소하고 달큰한 게 옥수수 맛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빵맛이었습니다. 덩어리 우유나 옥수수 빵을 처음에는 일부 아이들에게만 나누어주던 것을 얼마 뒤에는 덩어리 우유는 슬그머니 사라져버리고 옥수수 빵은 날마다 차례를 바꿔가면서 분단별로 나누어주었습니다. 옥수수 빵은 보통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먹고는 했는데 어떤 때는 집으로 가져와서 엄마가 프라이팬에 튀겨주면 더 맛나게 저녁간식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옥수수 빵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받아먹었는데 처음에는 납작하고 네모난 모양의 옥수수 빵이 나중에는 두툼한 비누 모양으로 바뀌면서부터 밀가루를 많이 넣었는지 맛과 품질이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고소한 맛도 바삭하고 쫄깃한 식감도 사라져버리고 밀가루의 질척한 맛과 다소간 팍팍한 감촉이 혀에 친밀감을 전혀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집으로 오는 방향이 같았던 친구 집에 따라가 옥수수 죽을 나누어 먹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께 몹시 혼이 났습니다. 네가 그 옥수수 죽을 먹은 만큼 그 아이가 먹을 옥수수 죽이 줄어들었을 것인데 다음부터는 그러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던 것입니다. 나는 그 친구도 옥수수 죽을 그저 맛있는 간식으로 먹는 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덩어리 우유와 옥수수 죽은 깊은 기억으로 갈무리되어 생각의 심연深淵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어떤 자극이나 계기를 만나게 되면 많은 추억을 거느린 채 이렇게 손에 손을 잡고 끌려나와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모양이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은 앞마당에서 날뛰고 있었지만 파동을 타고 흐르는 열기가 뒷마당까지 접수를 마쳤는지 평소 시원하던 쪽마루에서도 더위가 몰려다녔습니다. 이쯤해서 어제오후처럼 소낙비가 한 차례 용을 쓰듯 쏟아져준다면 정말 좋겠는데 오전에 소나기가 오는 경우란 국지성 호우 아닌 다음에야 매우 드믄 일이니 더위를 피하든 더위와 친해지든 아니라면 더위와 타협妥協(타당妥當하면 협조協助한다는 의미임)을 하든 하여튼 모종某種의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세면장으로 달려가 세수를 하고 돌아왔더니 역시나 스님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없었습니다. 나도 얼른 차실로 들어와 선풍기 바람 앞에 앉아서 읽고 있던 책을 또 집어 들었습니다.

 

 

 

 

 

  물을 마시러 공양간에 다녀오다가 방충망 미닫이문만 닫혀 있던 법당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불단위에 켜진 두 개의 촛대위에서 타고 있던 초가 오른편과 왼편의 키가 사뭇 달라보였습니다. 그래서 법당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더니 왼편 촛대의 초는 어찌된 셈인지 촛불은 꺼진 채 다 녹아내려 촛대와 촛대 부근 불단에 촛농을 어지럽게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오른편 촛대의 초는 절반가량 타있고 촛불도 예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일단 촛대를 깨끗하게 정리하기 전에 왜 그랬을까 하고 왼편 촛대를 잘 살펴보았습니다. 왼편 촛대에 남아 바닥에 붙어있는 촛농을 보았더니 굳은 채로 검게 남아있는 심지가 두 개있었습니다. 하나는 정상적으로 본래 크기의 심지인데 또 하나는 둥글게 뭉쳐있는 떡심지였습니다. 왼편 촛대의 초가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순식간에 녹아내린 이유가 눈앞에 영상처럼 떠올랐습니다. 초를 태우다보면 초심지가 뭉쳐 초꽃으로 변하면서 갑자기 불꽃이 크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시간이 지나면서 초꽃이 사그라지게 되지만 드물게는 초꽃이 아래로 떨어져서 촛농을 빨아들이면서 또 하나의 심지가 되어 한 초에 두 개의 심지가 활활 타는 수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순식간에 초가 녹아내리면서 불어나는 촛농을 미처 다 태우지 못하기 때문에 촛농이 넘쳐나서 촛대와 불단에 흘러 쌓이고 엉겨 붙어 하얗게 굳게 됩니다, 그리고 두 개의 심지가 타는 초는 순식간에 녹아내려서 금세 촛대 바닥에 닿아 촛불이 자연 꺼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해서 왼편 촛대의 초는 빨리 달아 없어졌을 것입니다. 과학적인 수사방법과 논리적인 추리를 통해 법당 촛대 촛불 사건의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촛대의 굳어있는 촛농을 말끔하게 정리해야할 차례였습니다. 자난 번 사용했던 끌을 가져와서 불단위의 촛농과 촛대 몸통에 붙어있는 촛농을 개운하게 긁어낸 뒤에 깨끗한 휴지로 몇 차례 닦아냈더니 다시 촛대와 불단이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벽 한쪽에 놓여있는 종이박스 안에서 새초를 꺼내어 닦아놓은 촛대에 꼽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당에서 나와 차실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점심공양에는 송이버섯을 넣어 끓인 청국장과 보리쌀밥과 취나물과 호박무침에 먹었습니다. 막 지어서 그릇에 퍼 담아놓은 밥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지만 한 숟갈 입안에 떠 넣어보면 참으로 맛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 밀을 빻아서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가락국수나 잔치국수나 스파게티나 파스타나 짜파게티나 피자나 파이나 쇼빵이나 자빠띠 등도 맛이 있지만 이것들은 식사라기보다는 간식이나 참이라는 성격이 강해서 역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보리쌀밥이 으뜸입니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뒤에 공양간에 앉아서 차를 한 잔마시면서 스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실로 돌아왔습니다. 짧은 글과 단편에 능숙한 나오키 상 수상작가인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 소설은 단펀 소설로 처리할 만한 소재와 내용을 장편으로 쓰다 보니 이야기가 자꾸 쳐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문장 문장과 짧은 단위의 글에서는 상큼하고 명랑한 글들이 장편 속으로 들어가자 뚜렷한 구심점이나 주제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책장수만 많이 늘려놓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책 페이지 숫자가 뒤로 갈수록 긴장감緊張感과 흡인력吸引力이 떨어지고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왕 들었던 책이라 계속해서 읽어갔습니다.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에서 오전과 밤은 있지만 오후는 감각적感覺的으로 느껴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전과 밤에는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스님과의 대화라는 활발한 사고 작용이 있는 반면에 오후시간에는 거의 차실에 앉아 독서만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 시간은 어둡고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벽장문 안쪽의 검은 통로로 빨려 들어가 시간의 계곡이나 시간의 폭포를 지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오후가 깊어지면서 하늘의 구름양도 증가를 하고 왠지 밤에도 하늘이 흐릴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맞았습니다. 음력 초열흘 상현달부터 달이 처녀의 가슴처럼 부풀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차근차근 기다려왔던 보름달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밤중이 되어 하얀 구름에 가려있는 보름달은 나 여기있다.는 존재감存在感을 보여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듯했으나 베일로 가려진 주변에만 하얀 빛을 구름 너머로 은은하게 뿌려댈 뿐 스스로의 모습을 허공위로 높이 높이 솟아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인 음력 열엿새의 달이 어제 보름달의 노심초사를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검푸른 밤하늘에 청명하게 떠올라 기다리던 사람의 마음을 한껏 즐겁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둥글게 맑고 커다란 달에서 달 부스러기인지 달 소리인지가 밤새 부슬부슬 쏟아져 내렸습니다. 달하.. 달하.. 밝은 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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