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일 요 법 회

08월0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9.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8.16|조회수168 목록 댓글 6

 

 

 2017.08.15.. 비이-

 

 

 

 

 

  0806,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9.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다시 도량에 물속 같은 침묵과 안정이 찾아왔습니다. 차실도 조용하고 한가로웠습니다. 선풍기 회전하는 소리만 시이익 시이익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약간은 시들해진 소설 하권을 기러기 날개처럼 책장을 옆으로 벌려 잠시 차실바닥에 엎어놓고 벽에 쌓여있던 추리소설을 한 권 집어 들었습니다. 역시 겨울에는 대하소설이, 여름에는 추리소설이 제격입니다만 추리소설은 현재를 읽을 뿐 읽고 나서 가슴에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오후동안 추리소설 한 권을 뚝딱 읽어버렸습니다. 햇살이 누그러지자 차실 밖으로 나와 고구마바위에 앉아보았습니다. 바위 등판에 닿아있는 엉덩이가 따뜻해져왔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대부터는 모기가 활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날파리와 모기 날아다니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습니다. 여기 고구마바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한 단 아래 밭에는 고추와 가지와 상추와 호박이 심어져있었습니다. 또 그 아랫단 밭에도 초록으로 가득한 푸성귀나 채소들이 심어져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벼농사만 짓지 않을 뿐 밭농사 규모는 상당히 컸습니다. 홀로 자고, 먹고, 일하고, 기도하는, 반농반수半農半修의 토굴 생활이 벌써 이십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여기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으로 들어와 처음 삼사 년 동안은 주위를 둘러보아도 별로 할 일이 없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오 년이 지나고 산골 일을 조금씩 알아가자 할일이 너무도 많아 일어나면 밭으로 산으로 달려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주변에 널려있는 일을 볼 줄 아는데도 시간이 상당히 필요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스님께서 해인사에서의 십여 년 간에 걸친 소임을 마치고 처음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에 토굴을 만들어 들어올 때는 작은 수행공동체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백장청규百丈淸規에 근거를 둔 반농반선半農半禪을 하면서 농사와 수행의 결합인 승가공동체를 실현하고 싶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뜻을 같이하는 스님들이 몇몇 분 동참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농사일을 견디지 못하고 수행공동체로부터 떨어져나갔다고 했습니다. 나도 지난번까지는 가끔 일을 도와드렸는데 집에 돌아가면 꼭 며칠씩 몸살을 앓았습니다. 산골의 농사일이라는 것이 힘든 운동과는 전혀 다른 경우의 노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마 스님의 몇몇 도반 스님들께서는 스님께 이제 산에서 나와 후학들을 위해 불교의 현실로 뛰어들어달라는 분들도 있고, 청산靑山에 걸린 구름처럼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스님의 산골생활을 고고하고 우아한 수행자로 학처럼 사는 도인道人이라면서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난 이십 년 동안의 세월들로 인해 스님이 불교의 현실로 뛰쳐나가 현실적으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법을 이미 잊어버렸고, 산골에 은거하는 고고하고 우아한 수행자로 학처럼 살아가는 도인 이전에 해와 달의 때에 맞춰 끊임없이 산과 밭에서 일을 해야 하는 농사꾼의 삶이 대부분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밭에서 수확물을 걷어오면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렸다가 잠시 기도를 하고 내려서 먹고, 일 년에 몇 차례씩 일주일 간 기도를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은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은 스님의 변함없는 마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면 스님께서는 청색 장화를 신고 밭으로 나갔을 것입니다. 스님은 농부農夫이자 수행자修行者이고, 스님은 생활인生活人이자 구도자求道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젯밤에도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허구한 시간이 있었는데 하루하루를 일이라고 생각하면 아마 못했을 테지만 수행이라고 생각을 하면 또 하게 되더란 말이지요, 허허허... 오후부터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한 하얀 구름들이 여기저기 깊고 푸른 구멍만을 남기고 대부분의 하늘을 덮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밤하늘 높디높은 곳에 떠있는 보름달은 보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건 그런데 사실은 나도 인정사정人情事情 없는 모기에 쫓겨서 이제는 차실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차실로 들어가서 차실 안의 등을 켰습니다. 알전구를 싸고 있는 둥근 등으로 인해 백열등 불빛이 한결 부드럽고 은은하게 차실 안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오늘 밤에도 나방과 날벌레들이 평소보다는 많아 보였습니다.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확연하게 차이나도록 날벌레들이 차실 천장에 가득 붙어있었습니다. 갈색의 덩치 큰 나방 두어 마리가 등을 툭툭 쳐가면서 등주변을 거칠게 날고 있었습니다. 등잔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마침내 등잔불로 뛰어드는 나방을 불나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불나방은 탐욕과 재물을 향해 미친 듯이 맴돌다 결국 파멸로 뛰어드는 중생衆生들을 비유譬喩해서 말하기에 적당한 대상이었습니다. 불나방이 불을 향해서 날아드는 습성이 있는 것은 불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불을 향해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나는 특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각도를 유지하다보면 나선螺旋을 그리면서 결국에는 불빛 주위를 빙빙 돌다가 불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랍니다. 그렇다면 중생들도 탐욕 때문이 아니라 한때 탐욕의 습관이 관성慣性이 되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우매愚昧와 탐욕貪慾을 벗어나지 못하고 위험한 나선螺旋을 그리다가 차차 파멸로 끌려들어가게 된다는 은유적隱喩的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불나방의 불안한 비행을 쳐다보면서도 탐진치貪瞋痴에 이끌리는 중생들의 두터운 업장業障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불법不法과 불법佛法은 입을 통해 울려나는 소리는 같지만 의미는 정 반대입니다. 불법不法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거나 분명 삼가야하는 일이고, 불법佛法은 받아들여 가슴에 품어서 꼭 행하고 지켜야하는 일입니다. 불법不法을 맹목적으로 따를 것인지 불법佛法을 받아 기쁘게 행할 것인지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에서 가르침을 주는 것처럼 스스로에 의지하고 법에 의지해야함이 불교 가르침의 요의要義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법등명法燈明뿐만 아니라 자등명自燈明을 강조하는 불교의 인간 존엄과 이성 존중사상은 세계종교에서 그 유래가 없는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사상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알 수 없는 어떤 존재나 힘에 의해서 움직이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행위의 쌓임에 의해서 동력을 얻어 세상이 변하고 움직인다는 발상은 가을처럼 시원스럽고 쾌청한 여름 하늘처럼 통쾌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아참, 어렵고 교리적인 이야기는 될 수 있는 대로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어쩌다 불나방을 보는 순간 생각의 연결고리가 절로 작동을 해서 이야기가 여기까지 전개되어버렸습니다. 추리 소설을 다 읽어내자 다시 차실 바닥에 엎어놓았던 하권을 집어 들고 읽었습니다. 글의 갈래를 따진다면 기본적으로 픽션Fiction은 허구虛構 가운데 특히 소설小說을 일컫는 말로 창작해낸 허구의 이야기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러한 픽션을 제외한 모든 글이 논픽션Nonfictiondp 해당되는데, 있는 사실을 그대로 서술하는 형식의 이야기까지도 포함이 됩니다. 그래서 픽션인 소설에 대해서 논픽션은 여행기, 기행문, 수필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도 저마다의 자질과 특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글을 잘 쓰는 사람들도 운문韻文에 소질을 보이는 사람과 산문散文에 소질을 보이는 사람이 어느 정도 구별이 됩니다. 그리고 소설에서도 단편短篇이나 엽편葉片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장편長篇이나 대하소설大河小說에서 자신만의 특성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책 상하권을 쓴 작가는 역시 단편에 강점이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읽기는 쉽고 재미도 있지만 글 잘 읽기와 글 꼼꼼하게 읽기는 여러모로 시간이 들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작업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동종同種의 글들은 잘 읽지 않습니다. 일단 손을 대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아서 대충 재미삼아 읽고 지나갈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한국 소설보다는 외국 소설들을 부담 없이 잘 펼쳐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녁공양시간에는 스님만의 비장의 무기인 가지찜무침이 드디어 선을 보였습니다. 밭에서 나는 파란 오이에 비해서 색깔부터 압도적인 보라색 가지는 맛을 내기에 쉽지 않은 식물로 알고 있지만은 특별한 양념장을 만들어내어 고급스러운 맛을 낸 가지찜무침이라고 스님께서 사전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보라색 가지를 알맞게 잘 쪄낸 뒤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 양념장을 고루고루 뿌려놓은 가지찜무침은 우선 비주얼 상으로도 눈 맛 뛰어난 음식 같았습니다. 막 지어놓은 밥에 가지 하나씩을 올려 먹는 맛이 입안의 쾌감도快感度를 급상승시켜 주었습니다. 밥 한 그릇을 가지찜무침에다만 먹었을 정도로 새로운 여름의 미각을 선보여주는 즐거운 공양시간이었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설거지까지 마무리를 한 다음 차실로 자리를 옮겨 보이차를 빼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스님과 이야기 삼매에 빠졌습니다. 이러다보면 어느덧 새벽 세 시가 되기 마련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시계를 쳐다보고는 서로 놀라 아참, 내일을 위해 이제는 잠자리로 향해야지요. 하는 스님의 말을 듣고는 부랴부랴 차실 밖으로 나가 세면장에 들렸다가 밤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일요일이자 음력 열닷새 보름달이 이불 구름 뒤에서 무언가 열중인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아쉽긴 하지만 오후부터 그런 조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리 실망하지는 않았지만 내일은 분명 오늘 몫까지 둥글고 맑은 달을 보여주리라고 기대를 하면서 차실로 돌아왔습니다. 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여전히 눈이 말똥거란 채 잠이 쉽게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얼굴, 저 얼굴, 그 얼굴들을 기억해내고 동그란 눈과 단정한 입술을 상상했더니만 어느 사이 잠에 빠져들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어둠은 항상 깜깜한 모습인지가 궁금할 때가 간혹 있었습니다. 보통은 보름날이나 그믐날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불현 듯이 들었습니다. 길고 깊은 어둠 같은 침묵沈默의 잠속에 빠져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초연 | 작성시간 17.08.16 일요법회 및 천장암의 일상 보습을 사진으로 나마 보고싶습니다
  • 작성자밸라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8.16 초연 님, 뵌 적은 없는 듯합니다만 천장사 일요법회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초연 님 말씀이 맞습니다, 일요법회 방은 천장사 일요법회 모습을 보여드리는 곳이고 경향 각지에 있는 천장사를 사랑하시는 분들께서 마음이라도 함께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이후로 주지스님이 바뀌면서 일요법회 모습을 사진과 글을 통해 체계적으로 올리는 분이 일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천장암 카페의 가장 상징적인 방인 일요법회 방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련된 글을 올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10개월이 지나가버렸군요. 바쁘신 중에라도 한번 천장사 일요법회에 동참해주시면 고견을 듣고
  • 작성자밸라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08.16 의견을 나누면서 좋은 도반으로 성장해가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부디 일요법회에 참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4년 전부터 서울에서 매주 천장사 일요법회에 동참을 하고있습니다. 천장사 일요법회는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시작을 합니다. 일요법회를 마치고 점심공양을 함께한 후 차담을 나누면서 도반님들 간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초연 님 꼭 뵙고싶습니다.
  • 작성자초연 | 작성시간 17.08.18 네 감사합니다
    제 생각도 카페 모습이 예전과 조금은 부족한거 같아서 안따까운 맘에 몇자 생각을 올린 것입니다
    매주는 가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참석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업무 시작 하면서 매일 천장사 카페에 들어와서 보고, 일을 시작 합니다
  • 작성자자작나무 | 작성시간 17.08.24 벨라거사님이 여기에 정성스럽게 써 주시는 글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벨라거사님 글이 없다면 천장사 홈피는 사진도 글도 올라오지 않는 빈집이 되지 싶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좋은 글 계속 보고 싶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