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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12월3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1.03|조회수121 목록 댓글 0

 

 

 

 2018.01.02.. 연암산 높은 하늘이 푸른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12.31..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이것 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지난 메리 크리스마스 전전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연말에 이르는 팔일 간에 걸쳐 서울·경기를 포함한 중부권과 제주도까지 몽땅 한반도를 뒤덮은 중국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인해 옥외활동이나 야외활동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간동안 집안과 작업실에 틀어박혀 몹시 짜증나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렇게 파멸의 두터운 잿빛 커튼에 둘러싸여 일주일가량 누적되었던 마음의 압박감이 30일 밤에 이르러서는 혹시 이런 현상을 두고 폐쇄공포증閉鎖恐怖症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우려했을 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에 둔한 통증 같은 것이 생겨났다. 공부나 글쓰기는 고사하고 독서도 할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무거워졌고, 몸의 피로감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가슴속의 뭔지 알 수 없는 잿빛 불안감이 덩이지어 점점 커지고 있더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더욱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이번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가 중국발 등 외부적 요인 못지않게 우리 내부적 요인이 크다고 방송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은근히 퍼뜨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우리나라 서해안에 화력발전소도 있고,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자동차 배기가스도 있고, 산업시설과 공장 가동이나 겨울철 난방으로 인한 매연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몇 배, 몇 십 배나 심각한 것은 강력한 편서풍을 타고 서해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중국발 흑색黑色 먼지라는 것은 북경이나 만주 주변 대기상황과 우리나라 대기상황을 연관 지어 그저 그날 그날의 뉴스를 통해서 보고 듣고 확인만을 해본다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전정권이나 현정권이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12월에 들어선 어느 날, 인터넷 뉴스에 북경의 하늘사진 두 장을 나란히 올려놓고 지지난해 겨울과 지난해 겨울 북경하늘을 비교하면서 북경하늘이 달라졌어요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올라와 있었다. 그러니까 북경하늘이 맑아졌으니 우리나라 하늘도 맑아졌다는 말인지 혹은 우리나라 하늘도 맑아질 거라는 말인지 그 기사를 내보낸 기자의 의도가 자못 궁금해졌다. 북경의 맑은 하늘이라, 그건 그렇지만 그 속사정을 알고 본다면 북경하늘이 맑아졌거나 맑아진 것에 대해서 우리가 찬사를 보낼 하등의 이유가 없을 듯한데 그 기사를 보는 마음이 몹시 착잡해졌었다. 북경 주변의 하북성과 산서성의 공장들을 2013년도부터 시작해서 2020년도까지 100% 달성을 목표로 중국측 동쪽 해안인 산동성으로 이전하고 있는 덕택에 북경의 하늘은 맑아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중국발 흑색黑色 먼지를 뒤집어쓸 다음 장소가 우리나라 하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또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고나 있는 건지 세상을 둘러보아도 답답한 마음이 천지天地에 가득할 뿐이었다. 그 신비롭고 영원하며 마음의 고향이었던 천지天地가 가면 갈수록 흑색黑色 먼지에 푹 잠겨있게 되어버렸구나! 이러한 대중국의 미세먼지 해결방안은 마치 대일본나라 위안부 해결방안처럼 그네들의 습성으로 미루어보아 평화로운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은 사안이어서 힘을 바탕으로 하는 강제력이나 능란한 외교력을 동원해야할 듯싶으니 이럴 때 일수록 생각나는 강력强力하고 노회老獪한 지도자가 아쉽기 그지없다. 고대 중국 중원 땅을 무른 메주 밟듯 밟고 돌아다니면서 헌원 씨를 제압했던 배달국의 14대 환웅인 치우천왕蚩尤天王 같은 지도자는 다시 나오지 않으려는가.

 

 

 

 

 

 

 

  오는 31일 일요법회를 마치고 선방스님들을 모시고 일요법회 도반님들과 함께 서산 모처에서 송년 모임 겸 대중공양을 올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는 공지가 정덕거사님 발 문자로 올라왔다. 일단 오랜만에 보는 정덕거사님 공지가 반가웠고 모처럼 일요법회에서 도반님들을 만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렜다. 그러니까 나와 서울보살님도 지난 1029일 일요법회를 마지막으로 거의 두 달 이상을 일요법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이제 매주 일요법회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은 터에 11월 중순부터 한 달 반 가까이 서울보살님이 치과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다니느라고 서산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지난 10월말부터 시작했던 일요법회 후 다라니경 108독 기도에도 11월에는 참석을 못했으니 이참저참 해서 31일 일요법회와 대중공양에는 참석하기로 서울보살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해 가을인 9월 이후로 우리 천장암에 참 많은 일과 굴곡진 변화들이 있었다. 1년 가까이 주지 소임을 맡아보았던 백운스님이 수덕사로 돌아가고 새로운 주지스님이 오셨고, 화재로 타버렸던 염궁선원 자리에 신축공사를 하는 문제, 공양간을 책임지는 공양주보살의 잦은 교체, 직선제를 열망하는 신도님들의 바람을 거부한 새 총무원장의 등장 등등으로 해서 충청도 서산 고북의 작고 한적한 시골 절 천장암까지 조금 뒤숭숭한 시간들이었던 같았다. 두 달 만에 일요법회에 참석하러 가는 마음이야 흔쾌하고 기쁜 기운이 가슴에 가득했다. 지난 3년간 일요일 아침이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아침7시경에 천장암을 향해 출발했다. 예년에는 1231일이면 오후5시경에 신년기원 철야기도를 위해 서울에서 출발했으나 이번에는 31일이 일요일이라 일요법회에 참석을 하려고 아침에 출발하는 것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가 해미IC를 지나 부드럽게 휘어있는 곡선 길을 따라 매끄럽게 장요리로 들어섰다. 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난 8일 동안 굶주려왔던 푸른 하늘 아래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있는데 눈에 익은 정덕거사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와 차를 주차시켰다. 거의 세 달여 만에 보는 정덕거사님과 묘길수보살님을 향해 악수대신 반가운 포옹抱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가파른 비탈길에 공사 중 차량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을 보고 돌계단을 통해 법당으로 올라갔더니 주지스님께서 사시불공 준비를 하고 있었고 몇몇 분 신도님들께서 법당에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정덕거사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칠 전 주지스님께서 밤중에 여기 비탈길로 차를 몰아 내려오다가 경사 급한 굽이길 노면 얼음을 따라 차가 미끄러지는 바람에 비탈길 측면에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나서 차는 폐차를 시켰고 주지스님은 다행이도 큰 부상 없이 안전하시다는 말씀을 들었다. 사시불공을 마치고 오늘 일요법회는 빨리어 경전 낭독 대신에 주지스님의 편안便安하고 온기溫氣 배인 목소리로 사분사분 법문을 시작했다. 초임 주지의 바쁜 일과와 동안거가 시작되어 선방 스님들 뒷바라지 이야기와 요사이 아침마다 봉행하는 다라니기도 이야기와 차량 사고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지난해 9월부터 주지 소임을 맡은 지 이제 4개월째, 그동안 대중처소 생활과 토굴에서 독살이를 해 오신 터라 공부工夫와 개인 수행修行 외에는 별반 어려움이 없었을 것인데, 가난하고 열악한 말사 주지생활이 녹록치 않은데다가 동안거 결제로 선방 스님들 뒷바라지에 공양주 부재不在까지 겹쳐서 몸과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상당히 지쳐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출가出家 - 대중생활 독살이 소임생활 독살이 - 열반적정涅槃寂靜 이라는 스님들 수행행로修行行路의 과정으로 볼 때 실제實際로 가장 힘들고 가장 수행이 되는 소임생활(열악하고 곤궁한 시골 말사 주지)이야말로 하심下心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진의를 깨닫는 집중 정진기간일뿐더러 평생 수행의 바탕을 쌓아가는 의식 단련과 평범하고 사소한 즐거움을 배우는 나눔과 비움의 시기라고 생각을 한다. 쉽게 말한다면 스님들이 수행자로서 개안開眼을 할 수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라는 말이 되겠다. 그런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몸과 마음이 더욱 더 따뜻하고 품 넓은 사람으로 변모해간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지만 고난과 고통은 사람을 단단하고 따스하게 만들어간다는 사실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변함이 없는 진리인 듯싶다.

 

 

 

 

 

 

 

  중국으로 성지순례를 이십여 차례나 다녀왔다던 공양주보살님은 가난한 천장암 공양간을 그만둔 지 벌써 오래되었고 새로 오셨다는 공양주보살님이 해준 점심공양과 홍시를 맛나게 먹고 나서 잠시 쉬었다가 오후2시가 되는 것을 보고 다라니 기도를 하러 법당으로 올라갔다. 수행경력과 기도경험이 많으신 정덕거사님께서 목탁을 잡으시고 우리들은 목탁소리에 맞추어 다라니 독경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49독을 하고 다음 기도부터는 108독으로 하자고 도반님들과 의견을 나눈 터라 그리 급할 것이 없었으니 목탁소리에 맞추어 또박또박 다라니경을 염송해갔다. 수행 경력이나 기도경험에 따라 마지막 즈음에 힘든 분도 시종일관始終一貫 환희심에 편안한 분도 있었겠지만 모두 일념으로 독송하시는 대비주 소리가 참으로 듣기 좋게 들려왔다. 주지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법당에서 들려오는 다리니 합송소리를 들었다는 주지스님께서도 참 맑게 들려오는 일요법회 도반님들의 기도소리가 밝고 좋은 분위기의 다라니기도를 느끼게 해주었다고 말씀하셨다. 두 시간에 걸친 기도를 잘 마치고 법당 안에 빙 둘러서서 도반님들께 삼배三拜로써 새해맞이 인사를 서로 나눈 후에 다시 공양간으로 내려왔다. 하늘은 높고, 태양은 빛나고, 공기는 찰랑찰랑 깨끗하고, 바람 끝은 차가운 정유丁酉1231일의 빛나는 풍광風光이었다. 하룻밤만 지나면 무술戊戌년 황금개해라는데 개 앞에 황금을 가져다 붙여놓으니 개도 어찌된 셈인지 격이 달라 보이는 듯했다. 아무려나 개나 돼지도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에 들어있는 동물이라는 것은 옛 조상님들께서 개나 돼지도 용이나 호랑이와 더불어 영묘한 생명으로 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차실茶室에 앉아 도반님들과 담소를 나눈 뒤 오후4시가 지나자 서산 시내 저녁 대중공양 장소로 서서히 움직일 준비를 했다. 태평거사님 부부와 수월거사님 부부, 그리고 김화백님이 참석을 하지 못했고, 묘광명보살님이 개인 사정으로 참석여부가 불확실했으나 도반님들께서 지나는 길에 댁으로 모시러 가자는 말이 나왔다. 사실 말이지 오늘 만나지 못하면 해를 넘기고 일 년을 넘겨 만나게 되는지라 일요법회 도반님 모두를 오늘은 꼭 한 번씩 얼굴이라도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야 모두가 한 가지였던 것이다. 대중공양 장소로는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툭 트인 벌판이 내려다 보이고 푸른 하늘의 하얗고 둥근 음력 열나흗날 달이 올려다 보이는 6층의 아담한 룸이었다. 일행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서 스님들께서 오시는 동안 6층을 한 바퀴 돌아보고 룸으로 들어갔더니 다도茶道 옷 같은 하얀 상의를 입은 묘광명보살님이 방금 도착했는지 도반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도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 불고체면不顧體面하고 반가움에 보살님을 덥석 안아드렸다. 원래 악수握手란 손을 펼쳐 보이고 나에게 당신을 해칠 무기가 없음을 확인시키면서 서로 손을 마주잡는 신뢰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포옹抱擁이란 서로 가슴을 내밀어 옷깃을 스쳐주면서 선한 인연因緣을 만들어가는 가장 적극적인 불교식 인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因緣이다라는 속담이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몇몇 도반님들과 우리 스님께서 송년 대중공양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내년 송년 대중공양에는 분명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금을 흐뭇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묘광명 보살님 댁으로 자리를 옮겨 늦게 합류해주신 김화백님과 더불어 향기가 혀와 코끝에서 감칠맛이 도는 생보이차를 마시면서 혼란스러운 나라와 더 혼란스러운 불교와 젊잖게 늘어가는 나이를 적당히 걱정해주기도 하다가도 이내 즐거운 소재거리를 발굴해서 웃음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가장 서민적인 사람 덕분에 웃기도 하고 홍콩에서 라이타돌 한 섬만 들어오면 우리 인생은 그날로 바뀌는 것이라는 60년대 개그로 마음의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그야 그렇지, 홍콩에서 라이타돌 한 섬만 들어온다면야 우리가 할 일이 무수無數히 많다 뿐이겠는가.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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