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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2월25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2.26|조회수45 목록 댓글 0

 

 

 2018.02.26.. 창밖은 맑고 화창해서 봄이라면 봄인데

 

 

 

 

 

 

  0225,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아차! 하는 사이에 서릿발 채찍에 엄장嚴壯하던 겨울이 눈앞에서 부스스한 뒷모습을 보이며 황갈색 얼룩말의 갈기를 시원스레 날리면서 쏜살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매주 참석했던 천장암 일요법회에 이제 매달 마지막 주에만 참석하여 대비주大悲呪 기도에 동참을 하다 보니 일요법회라는 제목으로 글 쓸거리가 마땅치 않아 게으름을 잠시 부렸던 두어 달 동안 그렇게 겨울이 지나가버렸습니다. 천장암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않은 이유를 소재 부족으로 인한 잠시 게으름이라고 그럴 듯하게 둘러댔지만 사실대로 말한다면 글 쓰는 열정이 잠깐 현실을 비켜갔다고 말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 같습니다. 글쎄요, 잠깐 동안이지만 잠시 글을 멈추고 불교를 바라보는 시선과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의 현재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내 자신에게 필요했던 같습니다. 그래서 종교와 불교에 관련된 글은 모두 멈추어놓고 다른 글들을 쓰면서 자신과 종교와 불교의 현재와 조금 더 먼 미래들을 관찰하고 생각하고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이런 생각의 흐름과 세상을 보는 방식인 관점觀點들이란 언제나 자연스럽게 대상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열어보고 확인하는 과정을 수반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은 인간이란? 종교란? 불교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질문이어서 골치 아픈 문제라기보다는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 성숙해가는 불가결不可缺의 종교적 혹은 삶과 죽음을 향한 정신적 통과의례라고 생각해봅니다. 그렇지요, 통과의례라는 멋진 표현 속에는 대개 갈등과 번민, 고뇌와 고통이라는 희생이 따르게 되는 것이지요. 하여튼 지난 두어 달 동안에는 그랬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뉴욕에 있는 딸아이에게서 안부전화가 왔습니다.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평창 동계올림픽 이야기가 나왔고 우리나라 밖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등의 이야기로 대화의 폭이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야기 끝에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친구들과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를 많이 보았거든. 그걸 보면서 친구들이 아,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어쩌면 올 9월쯤 친구 서너 명과 휴가를 10일가량 내어 한국에 가게 될 것 같아, 아빠.” “, 그래 환영, 환영!” 그러고 나서도 한동안 전화통을 들고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대화의 여운이 가라앉고 머리가 차가워지자 가만있자~ 그러니까 딸아이가 친구들 서너 명과 휴가를 내어 한국에 놀러온다고 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통화를 하면서는 그저 환영, 환영! 하면서 지나쳤지만 말짱한 새 정신으로 새삼 곰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 삼 년 전엔가 아들아이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아이로부터 연락을 받고 방을 하나 비우고 청소를 하고 이부자리와 세면도구들을 챙겨놓는 등 준비를 했는데, 아들아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 아빠 방 하나만 준비해놓으시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신경을 쓰실 것이 없어요. 어쩌다 집에 들어와서 잠만 자게 될 거에요. 우리들이 알아서 돌아다니고, 미팅도 하고, 구경도 할 거구요, 식사도 아마 밖에서 모두 하게 될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따로 준비할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그래도 그렇지 친구들이 한국에 왔는데 한국밥상으로 밥은 몇 차례 먹여 보내야하지 않겠느냐면서 서울보살님과 나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손님 접대 준비를 그런대로 마련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아이가 먼저 한국으로 들어오고 이틀 뒤쯤에 친구들이 도착했는데 처음 왔을 때 아들아이 친구들과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해보고는 일주일동안 한국에 머무는 사이에 두 번인가 밤늦게 집에 들어와 잠을 잤을 뿐 아들아이 친구들 코빼기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출발을 할 때도 시내에서 모임에 참석을 한 후에 공항에서 전화로 감사의 전화를 받았으니 이런 손님 접대라면 일 년에 몇 번이라도 할 수 있겠다면서 서울보살님과 마주보고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딸아이의 친구들과의 방한은 상황이 다를 듯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표가 되어 딸아이 대학 동기들에게 한국을 선양宣揚하고 멋진 아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 매진邁進할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카톡이 수시로 날아들 게 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럴 경우에 아뿔싸! 내 발목을 붙드는 두 가지 문제란 영어와 체중입니다. 멋진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해서 마라토너의 날렵한 몸매를 만들어야 하는 것과 역시 앞으로 6개월여 동안 유창한 영어대화를 위해 필사적必死的인 노력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아들과 딸의 차이가 명명백백明明白白 해지는 순간입니다. , 9월까지 6개월 동안...

 

 

 

 

 

  구정이 지나고 지난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아흐레까지 일주일 동안 봉은사에서 정초 산림기도법회가 열렸습니다. 오전 사시불공이 끝나고 이어서 대비주 49독과 오후2시부터 대비주 108독을 해서 일천一千 독을 하는 정초기도였습니다. 언제나 기도 첫날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대웅전과 법왕루, 선불당까지 만석을 이루어 서울보살님과 나는 대웅전 마당에 줄맞춰 자리해놓은 의자에 앉았습니다. 손이 조금 시려서 차에서 검은 털실 장갑을 꺼내와 끼고 앉아서 대비주를 읽었습니다. 오후시간에는 법왕루 저 안쪽에 자리가 몇 개 비어있어서 신도님들 틈새에 끼어 앉아 역시 대비주를 읽었습니다. 혼자서 읽는 것보다는 대중과 함께 읽는 것이 좋고, 함께 읽는 것보다는 가슴에서 운율이 살아나 뱃속부터 올라오는 흥겨움으로 읽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불교신도님들이 기도나 독경을 할 때 천수경이나 천수경 안에 들어있는 대비주를 가장 많이 읽습니다. 그러나 대비주는 다라니陀羅尼, 즉 주문이기 때문에 무슨 뜻인 줄은 알지 못하고 열심히 읽고 외우는데 지성을 다합니다. 마찬가지로 금강경 독송도 한문체 금강경은 그 뜻을 알지 못한 채로 읽고 외우는데 정성을 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한글로 된 금강경을 읽어도 그 깊은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읽는 것 그 자체로도 크나큰 복덕福德과 가피加被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읽고 또 읽고 있습니다. 물론 나도 대비주나 금강경을 읽고 있으면 그 뜻을 다 알지 못하면서도 그 자체만으로도 신심이 나고 마음에 착한 흥겨움이 돌아다니는 것을 느낍니다. 불교에는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자력신앙自力信仰과 타력신앙他力信仰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초기불교의 구체적인 수행방법인 마음의 개발을 뜻하는 사마타와 관찰에 의한 통찰지를 뜻하는 위빳사나는 적극적인 자력신앙에 해당하는 수행법이고, 이것이 중국으로 건너와서 화두話頭를 통한 간화선看話禪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 등이 역시 중국화한 전통적인 자력신앙의 수행법이 되었습니다. 이런 수행법에 반해 기도를 하거나 염불을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참배를 하는 것은 불은佛恩이나 부처님의 가피력加被力을 구하는 타력신앙에 해당하는데, 상황에 따라서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의 개념이나 차이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나 염불일지라도 기도삼매祈禱三昧 혹은 염불삼매念佛三昧에 드는 경우에는 기도나 염불이 타력신앙의 한계를 넘어선 자력신앙의 범주로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의 성찰을 통한 깨달음이나 대상에의 몰입을 통한 일체감을 모두 자력신앙으로 파악하고 있을 때 자력신앙과 타력신앙의 경계가 섞여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부처님께 내 목소리를 들려드린다는 마음으로 대비주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의 일주일이 지나갔습니다. 나모라다나다라야야 나막알야바로기재새바라야 사바하~ 하는 독경소리가 부처님께 정말 들렸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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