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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2월25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3.03|조회수57 목록 댓글 0

 

 

 2018.03.02.. 우리가 4차원에서 산다면 밤낮의 구분이 없을 텐데

 

 

 

 

 

  0225,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오늘 저녁식사에는 한 분 더 귀한 손님이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작년 재작년인가 서산 시내 어느 초등학교 옆에 있는 밭뙈기에 김장용 배추를 심을 때도 얼굴을 보여주셨고, 저녁공양시간에도 몇 차례인가 동참을 해준 적이 있어서 이제 얼굴은 서로 익히고 있는 무진주보살님의 거사님입니다. 일요일이면 절에 와서 법회에 열심히 참석을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는 무진주보살님께서 함께 절에 다니게 하려고 무진無盡 애를 쓰시지만 거의 꿈쩍을 하지 않던 거사님이 이렇게 이따금 무진주보살님 요청을 받아들여 회식이나 공양시간에 참석을 하시는 것을 보면 이제 어느 정도 낯을 익혀가고 있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종교가 아무리 좋고 종교에서 가르치는 진리가 아무리 빼어나더라도 결국 종교나 진리를 세상과 이어주는 것은 사람의 일이자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겨납니다. 불교라는 종교의 가르침대로라면 스님을 보고 절에 다니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절에 다니라고 아무리 말을 해주어도 사회적인 지명도가 있는 스님, 유명한 스님, 잘 알려진 스님, 소문난 스님, 언변 좋은 스님, 브랜드가 있는 스님이 거주하는 절에 신도들이 몰리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혹은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것이나 다른 세상을 쉽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기雨期를 맞아 웨살리 근처의 벨루와 마을에서 수행을 하고 있을 때 어떻게 정진을 해야 하느냐는 아난다 존자의 물음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아난다야, 누구든지 지금이나 내가 열반에 든 후 자신을 섬으로 하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말고,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않는 수행자는 열심히 정진하는 최상의 수행자가 될 것이다.’ 바로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는 명구名句로 알려진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여기에서 자못 흥미로운 점은 깨달은 존재인 부처님마저도 귀의처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 자신과 가르침만을 귀의처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 담긴 깊은 뜻이란 모든 형성된 것들은 무너지게 마련이니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평소 가르침대로 부처라는 형상이 아니라 진리인 가르침에, 그리고 그 가르침을 판별하고 받아들이는 자신의 이성에 귀의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딸아이가 남부 테네시 주의 멤피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한번은 홈스테이 가족들과 한국인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남부 도시인 멤피스는 전통적으로 흑인이 많고 근래에는 베트남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데다 한국인도 상당수 있다고 합니다. 김치찌개도 시키고 짜장면도 시키고 김밥도 시켰는데, 김치찌개와 김밥은 맛나다면서 곧잘 먹었는데 짜장면의 검은 짜장소스를 보고는 문화충격에 빠져 젓가락을 쉽게 대지 못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락모락 김 오르는 음식을 가족들과 한창 맛나게 식사 중인데 한국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여자 분이 딸아이 옆으로 오더니 공기 밥 하나 드릴까요?” 라고 한국말을 하더랍니다. 그 말을 몇 년 만에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예기치 않게 들었던 딸아이 가슴이 갑자기 이상하게 두근대더니 서울이 생각나고 가족이, 친구들이 생각나서 아아~ 말로만 듣던 향수병鄕愁病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건가보다. 하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바로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 그렇습니다. 이 법구는 들을 때마다 오랜 기억들을 되살려줍니다. 이 구절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압축시켜놓은 좋은 말씀이기도 하고 하도 많이 들어보았던 익숙한 법구法句인지라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게 부처님의 진리를 나투고 있지만 사실 이 법구는 해석이 잘못되어있는 전형적이 오류입니다. 초기경전에 쓰인 빠알리어로 dipa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등불 2., 피난처, 귀의처, 휴식처입니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두 번째 의미로 쓰셨습니다. 디가 니까야 주석서에 너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 큰 바다에 떠있는 섬을 피난처로 하여라고 쓰여 있는데, 윤회는 보통 바다에 비유를 합니다. 고해의 바다, 바다에서 안전한 곳은 땅인 섬입니다. 산스끄리뜨어로 dipa는 등불, dvipa는 섬의 뜻입니다. 그래서 아함경에 나와 있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등은 산스끄리뜨어의 번역으로 등불로 되어 있는데, 본래 빠알리어에 의한다면 등불이 아니라 섬이라고 해야 옳은 번역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등불로 하고 법을 등불로 해서가 아닌 자신을 섬으로 하고 법을 섬으로 해서라고 해야 맞는 법구가 되는 것입니다. 아참, 남부 테네시 주멤피스 한인식당에서 김밥 한 줄에 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김밥장사를 하면 금세 부자가 될 거라고 마음먹고 있는 사람이 여러 명이 있다는 군요. 가만있자 그러니까 바비큐와 햄버거 가게 옆에서 하는 김밥장사라~ 글쎄 국제적 사업 감각이 조금 떨어지는 내 능력이 살짝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아쉬워라.

 

 

 

 

 

  풍성한 저녁식사 시간이 끝났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일단 배가 불러버리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제아무리 값비싼 명주銘酒일지라도 사람이 일단 취하고 나면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자리를 옮겨 차담茶啖을 즐기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 있는 김화백님 작업실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넓고, 조용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데다가 이제는 그 공간에 친밀하고 익숙하기까지 합니다. 다탁을 가운데 놓고 둘러앉으니 도반님들이 열 분을 훌쩍 넘기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을 지나오면서 이렇게 풍성한 시간을 별로 가져보지 못한지라 무언가 가슴에 가득한 것이 밀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도에 계시는 우리 스님과 몇몇 분 도반님들이 동참을 한다면 예전 그 모습, 그 정취, 그 분위기 그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풍경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대하는 차를 연신 들이마시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기도 하면서 대화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무진주보살님이 팽주烹主를 하고 있는 정덕거사님을 재촉하여 뜨거운 차를 끊임없이 따라 주었습니다. 이럴 때는 차가 술보다 술술 잘 넘어 갑니다. 이렇게 차를 마시면서 속 너른 대화를 나누다보면 역시 차를 잘 다루는 진월거사님과 묘현궁 보살님이 생각납니다. 이제 머지않아 꽃 피고 새 울면 예전의 일요법회 도반님들에다 새로운 도반님들까지 모여들어 백화百花가 만발滿發하는 듯한 법회와 사찰순례와 차담과 공양을 하는 시간이 분명 올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천장사 일요법회는 오는 사람 더 당겨 모시고 가는 사람 되돌아서게 하는 법열法悅과 정열情熱과 희열喜悅이 가득한 사람냄새 나는 인정仁情 모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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