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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3월18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3.23|조회수45 목록 댓글 0

 

 

 2018.03.21.. , , 바람, 그리고 싸늘한 공기, 춘분을 만들고 있는 창밖의 풍경들

 

 

 

 

 

  0318,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점심공양 후에는 서늘한 공양간에서 따스한 차실로 옮겨 앉아 팔봉거사님이 절에 가져다놓은 다구를 사용해서 차를 마시면서 소담소담小談素談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진주보살님과 서울보살님은 서류를 정리하러 종무소에 올라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불공을 올릴 때 앙축仰祝을 하는 축원카드였습니다. 내 앞 탁자위에 놓인 김이 모일락~ 안모일락~ 오르는 차를 감사한 마음으로 한 모금 마셨습니다. 두 번에 걸쳐 두 종류의 차를 뽑아서 마셨습니다. 처음에 마셨던 차는 무슨 차였더라, 박하향이 살짝 감도는데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는 차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국화차였는데 제조한 날짜가 좀 지났는지 국화향내가 시들했습니다. 그렇지만 재작년 가을이래로 일 년 반 만에 차실에서 마시는 차였고, 그동안 잠시 느껴보지 못했던 천장암 차실의 온화한 분위기였습니다. 지난주 일요법회에는 회사 근무와 겹치는 바람에 참석을 하지 못했던 수월거사님이 오늘은 나오셨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표정의 변화가 별로 없이 시치미를 뚝 떼고 정색을 하고 하는 말씀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수월거사님 말 속에 든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그래야만이 웃을 때 적시適時에 함께 웃을 수 있고, 침묵을 지킬 때 서먹함 없이 사르랑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유머humor는 하는 쪽과 재치 있게 받아들이는 쪽의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어느 분은 이렇게 유머의 순발력과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유머를 해놓고 그것을 자신이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참담한 사교社交는 없다.’ 라고 말이지요. 이런저런 말을 해놓고 보니 굉장히 어려운 대화법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고 대략 이십 분가량 수월거사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대충 알아듣게 됩니다. 그렇긴 하지만 말의 높낮이가 거의 없는 무심화법無心話法인지라 귀에 약간 힘을 주고는 있어야합니다. 호탕화법豪宕話法의 호당거사님과 무심화법無心話法의 수월거사님이 번갈아가면서 대화를 이끌어주시니 차를 마시면서 듣고만 있어도 심심치가 않았습니다. 솔직하고 직설적直說的인 호탕화법과 완곡하고 은유적隱喩的인 무심화법은 대화법의 양 극단이니 강렬하거나 혹은 매력적인 두 가지 화법을 두루두루 골라골라 가면서 교대로 듣는 재미 또한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정人情의 훈기薰氣로 차실안의 온도를 조금씩 높이고 있었습니다.

 

 

 

 

 

  찻잔이 여러 번 돌아 슬슬 몸이 따뜻하게 덥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팽주烹主를 보시던 묘현궁보살님이 들고 있던 옆손잡이 다관茶罐의 손잡이가 뚝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묘현궁보살님이 평소 금강역사처럼 악력握力이 대단한 분이라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동양적東洋的인 미의 기준으로 보더라도 보살님은 너무도 여성적인 분이라 이것은 다관이 불량품不良品이라고 밖에는 그 이외를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처럼 전혀 예기치 않게 그저 손을 댔을 뿐인데 튼튼한 물건이나 생활품들이 갑자기 뚝~ 부러지거나 어이없이 부서져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A long time ago아주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만 그때는 마당 한켠에 있는 뽐뿌를 켜서 물을 사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그때쯤에는 K시에도 수도가 들어왔지만 뽐뿌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특히 여름날 학교에 다녀와서는 웃통을 벗어부치고 등목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석빙고石氷庫 물이었습니다. 그날도 학교에 다녀온 후 목과 등에 흐르는 땀을 씻고자 뽐뿌를 켜려고 먼저 마중물을 한 바가지 부은 뒤에 뽐뿌 손잡이를 막 잡았는데 글쎄, 쇠몽둥이인 뽐뿌 손잡이가 뚝~ 하는 소리를 내면서 가운데 부분이 끊어져버렸습니다. 나도 응, 무슨 일인가? 하고는 2/3가량 남은 채 내 손에 들려있는 뽐뿌 손잡이를 쳐다보고 있었더니만 어머니께서 얼른 뽐뿌를 쳐다보고 두 손을 비비면서 뭐라고 중얼중얼 외우시더니 오늘 살이 내린 모양이니 물건을 들거나 힘쓰는 일은 하지 말고 특별이나 다른 사람들하고는 절대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 내린다 또는 살 내렸다는 표현은 아마 우리 고향 쪽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인 듯해서 조사를 해보았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하고 독한 기운이 갑자기 몸 안에 들어와 자기도 모르게 그 힘을 발휘해버리기 때문에 그런 징후가 물건이나 생활품을 통해 나타난 경우에는 그날은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갖고 근신謹愼하는 자세로 매사에 임해야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도 그런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군 훈련소에서의 일입니다만 ‘70년대만 해도 ’60년대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폭력暴力과 구타毆打가 흔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폭력이나 구타행위가 인간학대라기보다는 남자들만 살고 있는 특수집단인 군대의 낭만이나 추억거리라는 생각이 뒤섞여있어서 마조히즘Masochism적인 억눌린 분노의 쾌감이랄까 두려움의 발산이랄까 하는 등의 이상야릇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암중暗中 독향毒香과 닮아있었습니다. 내가 군에 입대를 했을 무렵 송창식이 불렀던 고래사냥이라는 유행가요가 대한민국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군대 폭력과 구타행위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던 국방부에서는 기합이라는 말 대신에 얼차려라는 말을 쓰도록 지도교육을 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교관 중에 조교는 같은 병사이지만 그 권위와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토요일 밤의 일석점호日夕點呼가 가장 빡셌는데, 그날 밤 점호담당교관은 시골 출신의 순박한 상병인 조교였습니다. 점호를 받던 도중에 무언가 지적을 받았고, 내무반 대표인 향도가 불려나가 엎드려뻗친 자세를 취한 뒤 곡괭이 자루로 소위 빠따를 얻어맞았는데 글쎄 그때 곡괭이 자루가 부러져버렸던 것입니다. 나는 이크, 살이 내렸나보다, 하는 느낌에 더 이상 구타를 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삽자루나 마포자루는 길기 때문에 구타 시에 종종 부러지는 것을 봤지만 굵고 짧은 곡괭이 자루가 부러지는 것은 처음 보았던지라 몹시 불안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흥분한 점호담당교관인 상병이 향도를 세워놓고 발로 복부를 걷어찼는데 그 충격으로 향도가 뒤로 넘어지면서 내무반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잠시 혼절상태가 되었습니다. 물론 향도는 가까운 후송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은 후에 일주일가량 병원신세를 진 뒤 다시 훈련소에 복귀를 하였습니다. 그 뒤로 별다른 후유증은 없었으나 향도는 다른 훈련병으로 교체되었고 그것으로 곡괭이 구타사건은 막음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훈련과정이 끝날 무렵에 훈련병들을 상대로 소원수리訴願受理라는 것을 받습니다. 소원수리에는 불편한 사항이라든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던가 하는 등의 청원請願을 쓸 수가 있는 것인데, 그날이 되면 소원수리를 작성하기 전에 중대장님의 인간적인 뜨거운 호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혹여 훈련과정에 조금 불편하거나 부적절한 일이 있었더라도 서로 낙오 없이 안전하게 훈련을 잘 마치자는 의욕意欲과 열성熱誠 때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사나이들끼리의 끈끈한 인정과 의리를 보여 달라고 하는, 일면 타당妥當하거나 다소 유화적宥和的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한국 사나이들은 보통 그냥 넘어가줍니다. 그런데 며칠 후 중대원들 모두 모이라는 명령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중대장님께서 몹시 격앙된 목소리로 지금 휴가 중인 조교 모 상병이 일석점호 중 곡괭이 자루로 향도를 구타했다는 소원수리를 어느 훈련병이 써내어 상병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바로 영창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어떤 놈이 이렇게 남자답지 못한 행동을 했느냐면서 자신을 밝혀보라고 했습니다. 분노에 휩싸인 중대장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럴 경우 훈련병으로서의 남자다움에 대한 개념이 순간 혼동스럽지 싶었습니다. 물론 자신을 밝힌 훈련병도 없었고 누가 그런 내용의 소원수리를 썼는지는 우리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곡괭이 자루로 직접 빠따를 맞았던 전 향도는 신고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였습니다. 내가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느끼기로는 조교였던 상병은 순박한 시골청년이 딱 어울리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훈련병을 교육시키는 조교들의 유형類型을 보면 건장하고 우락부락해서 거칠게 보이는 조교들은 대개 무난한 편인데 오히려 순박하거나 평범해 보이는 조교들이 더 집요하달까 가혹하달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군대라는 특수집단에는 예전에도 폭력과 구타가 있었고, 아마 지금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입니다. 그 형태나 방식은 바뀌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학대하고 구속하는 행위는 없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폭력과 구타가 위계질서를 확립하고 군기를 강화시키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우리들은 이런 것들을 일본식 군대의 잔재라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말할 때면 반드시 폭력과 학대행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폭력과 구타와 인간 학대행위가 그쳐본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 라는 미국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의 말이 있습니다만 위계질서나 군기와 사나이들의 의리는 꼭 폭력과 구타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오늘밤에는 덮어두었던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을 다시 한번 뒤적여봐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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