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일 요 법 회

04월29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4.30|조회수27 목록 댓글 0

 

 

 2018.04.30.. 오염된 공기에 갇혀 한 주를 시작해야 하는데

 

 

 

 

 

  0429,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나는 이제 국민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아빠와 엄마께서는 화순으로 가게 되었지만 보성북국민학교에서 4학년을 마친 나는 홀로 K시 국민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국민학교 1학년 1학기를 다녔던 그곳으로 삼년 반의 시골 순례를 마치고 복귀復歸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화순에서는 국민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으나 학교가 방학을 하게 되면 그 기간 동안에는 아빠와 엄마가 계시는 화순으로 가서 지냈습니다. 그런 까닭에 화순에서의 추억들은 거의 방학 중의 이야기들입니다. 그러다보니 화순에 대한 기억은 자연스럽게 한 여름 아니면 한 겨울이 됩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토요일에 화순으로 갔다가 일요일에 K시로 돌아온 경우도 있긴 했습니다. 그때 K시에서 화순에 가려면 옛날 구역舊驛 건너편 대인동 시외버스 차부車部가 있던 옆으로 허름한 건물 안에 작은 차부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20인승 마이크로버스가 너릿재를 지나 화순까지 운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로버스가 낡고 작은데다가 너릿재 굽이의 경사가 심하고 도로상태가 열악해서 그 차만 탔다하면 심한 멀미에 곤욕을 치르고는 했습니다. 멀미를 해보신 분은 그 느낌을 아시겠지만 관자노리를 툭,, 건드리는 통증과 함께 기분 나쁘게 청자가 꼬이는 듯한 역겨움이 뱃속을 서서히 휘젓다가 차가 움찔하든지 섰다가 출발하느라고 덜컹하는 순간이면 불순하고 욱한 기운이 저 밑 아랫배에서부터 명치로 치솟아 오른 후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삶에 대한 처절한 절망감으로 인해 가슴과 목젖의 세포 단위마다 노랗게 부풀어 올라 터져나가는 듯한 뜨거운 열기熱氣에 온통 휩싸여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차멀미보다는 뱃멀미가 독하다는 말은 맞는 말인데 공중에서 난기류亂氣流를 만난 비행기 멀미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건 그런데 이것 저것 다 불러 모아도 가마멀미처럼 독한 멀미는 없다는 말이 또 일리一理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그렇게 화순 시외버스 차부에 도착을 할 때쯤이면 멀미의 고통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져버리고 이제부터 무엇을 하고 놀아볼까 하는 생각에 국민학교 5학년 아이다운 유희상상遊戲想像과 생산적 창의력創意으로 머릿속이 금세 가득차곤 했습니다.

 

 

 

 

 

  ‘60년대의 몇 가지 사건을 확인하려고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어느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고향이 고흥인데 예전 K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자취를 했던 추억담이나 미국으로 시집간 따님들 집에서 몇 달씩 머물면서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여행기 등을 블로그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자신의 말로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대학에서는 언어학을 전공했고, 영어와 미국역사에 상당히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 그저 여행 먹방이나 유명 관광지 전시를 넘어선 폭과 깊이가 글안에 들어있었습니다. 그렇긴 한데 나는 이분이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마음으로 느끼면서 미국을 담아놓은 긴 여행기 한 편을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읽는 일이 내가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힘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글들이 견문을 통한 내용에 대해 일관된 설명체로 쓰여 있을 때는 금세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없는 글쓰기는 글 수준과 관계없이 그 글을 읽는 사람에게는 무료無聊함이거나 심하면 고문拷問에 가깝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는 이크, 혹여 내 글들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렇게 느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까칠한 질문을 자신에게 들이대면서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상상想像과 공감共感과 재미를 글 쓰는 이유理由이자 목적目的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머릿속의 생각들을 격에 맞는 표현表現과 풍부한 내용內容으로 지어내기까지는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다고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학위논문이나 논설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써놓은 글보다는 상상력을 촉발하는 재미있는 글쓰기를 늘 소망素望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순경찰서를 지나 모퉁이에 아이스께끼 집이 있는 자그마한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끼고 돌아 화순의원이 있는 길로 곧장 올라가면 우리 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근에 화순군청이 있었는데, 군청 마당 한켠에 줄지어선 해바라기가 큰 키에 노란 얼굴을 바짝 세우고 바람에 흔들흔들 서있었습니다. 나는 화순에서 살지도 않았고, 또 국민학교를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실이지 그곳에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군청 마당의 해바라기들에게 놀러가서 함께 놀았습니다. 줄 세운 해바라기를 향해 엄격한 장군처럼 열병식도 하고, 줄 따라 편을 나누어 전쟁놀이도 하고, 해바라기마다 이름이나 별명을 붙여주면서 교단 앞의 선생님처럼 수업놀이도 했습니다. 한 번은 공부를 마치고 그날 배운 내용으로 시험을 치르는데 유난히 키 큰 해바라기 하나가 바람에 얼굴을 지나치게 이리저리 흔들어 대서 옆 자리 친구 것을 훔쳐보면 안 된다고 혼을 내주기도 했습니다. 아이스께끼 집에서 화순의원에 이르는 길에서 곧바로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면 만연산이 너무도 높고 가까이 보였습니다. 언젠가 꼭 만연산 정상 부근의 커다란 바위까지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실제로 만연산에 올라가보지는 못했습니다. 아이스께끼 집에서 그대로 걸어가면 왼편으로 화순읍에서 유일한 신안극장이라는 영화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해거름이 되어 영화관이 시작하는 시간이 되면 극장 안에 있는 전축을 크게 틀어놓아서 쿵쿵 울리는 음악이나 노랫소리가 신나게 주변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 K시나 회순에서는 돼지를 키우는 일이 유행이었습니다. 요크셔인지 바크셔인지 서양에서 들여왔다는 하얗고 엄청나게 큰 돼지는 먹성도 좋아서 정말 무지무지 먹어댔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마당 안쪽의 너른 공간을 활용해서 돼지우리를 짓고 서너 마리의 돼지를 길렀습니다. 마침 주변에 식당이나 여관들이 있어서 돼지를 먹일 구정물에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큰 엄마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열 마리가 훨씬 넘는 대가족으로 순식간에 불어나 온 마당이 새끼돼지들 놀이터가 돼버렸습니다. 새끼돼지들은 생각하기보다는 통통하게 귀엽고 예뻐서 등이나 배를 북북 긁어주면 좋아라고 땅바닥을 뒹굴뒹굴 굴렀습니다. 그렇게 잘 자라던 돼지들이 여름방학이 끝나서 K시로 돌아갔다가 겨울방학이 되어 다시 화순에 돌아와 보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채 돼지우리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물론 다음 해 봄이 되면 어디선가 새로 온 돼지가 우리 속에서 꿀꿀대면서 구정물통에 코를 박고 구정물을 맛나게 먹고 있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