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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4월29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5.01|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18.05.01.. 하늘도, 먼 산도, 꿈꾸는 허공도 모두 잿빛

 

 

 

 

 

  0429,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1960년의 4.19혁명, 1961년의 5.16군사정변, 1962년의 6.10 화폐개혁 등이 메마른 벌판의 들불처럼 타올랐다가 사라져간 1960년대 초반은 여러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서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던 1961년 전반부의 기억보다 1학기를 마치고 처음으로 전학을 갔던 광양에서의 후반부 기억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고 오래된 꿈처럼 드문드문 다소 몽롱한 채로 몇 개의 장면이나 풍경으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겨울풍경과 함께 2학년이 시작되는 나주의 추억들이 부풀어 오른 팝콘처럼 뛰쳐나와 버립니다. 그래서 국민학교 1학년 2학기를 다녔던 광양시절을 과연 기억이 인정하는 학창시절로 넣어주어야 할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습니다만 하얀 뭉게구름 아래로 바람 찰랑이던 우리 동네의 긴 돌담이라든가, 돌담위로 솟아오른 장두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둥치 굵은 감나무 가지라든가,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부서지던 맑은 개천이라든가, 천변의 하얀 목화밭이라든가가 추억으로 빚어놓은 사진처럼 광양의 낮과 밤이 그렇게 망막 안쪽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야 어쨌든 국민학교 2학년이 되어 우리가 살았던 나주 집의 고동색 대문은 크고도 튼튼했습니다. 그리고 내 기억으로는 아빠께서는 사냥을 즐겨하는 취미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집에는 허리가 잘록하고 다리가 길어 날렵하게 생긴 포인터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조렵견鳥獵犬인 포인터는 주로 조류사냥을 할 때 사냥꾼을 도와주는 우수하고 값비싼 견종인데 어떻게 해서 우리 집에서 키우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선물로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요즘에도 개를 선물하는 경우가 있는지 모르지만 옛날에는 개뿐만 아니라 닭이나 거위, 돼지도 선사품의 목록에 들어있었고, 설탕포대나 밀가루포대, 쌀가마도 선사품으로 높은 인기가 있었던 품목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냥개인 포인터라니 다소간 특별한 선물이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진도에서 살 무렵에는 집에서 진돗개도 많이 키워봤고 또 육지로 선물을 보내는 일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때는 보호견종이라든지 천연기념물이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 전이었을 것입니다. 포인터는 성격이 온순하고 애교가 많아 식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도로 이사를 갈 때 포인터를 데려가지 않았던 것으로 봐서 아마 사냥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보내졌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본래 포인터는 집을 지키는 번견番犬이 아니라 수렵견狩獵犬이기 때문에 포인터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나저나 일단 진돗개 이야기가 나오면 진돗개에 얽힌 추억이 많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보통 진돗개하면 귀가 바짝 서고 꼬리가 두르르 말린 흰색이나 황갈색 토종개를 생각하게 되지만 내 기억으로는 꼬리를 장대처럼 바짝 세우고 다니는 장대라고 부르던 얼룩이나 검정 진돗개가 있었습니다. 그때야 1962년도 경이었으니 진도에서 돌아다니던 개는 다 진돗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어떤 개를 키워도 총명하고 씩씩했습니다. 진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개시장이 열렸습니다. 학교가 파하고 난 뒤에는 친구들과 개시장으로 몰려가서 바구니나 소쿠리에 올망졸망 담겨있는 귀여운 강아지들을 구경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TV 방송에서 흥미로운 실험하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종류의 개를 대기시켜 놓고 한 마리씩 따로 방에 넣은 뒤에 실제 호랑이 오줌냄새를 맡게 하고, 녹음된 호랑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놀랍게도 개들이 오줌을 지리거나 구석으로 들어가 머리를 쳐 박고 움츠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진돗개에도 같은 실험을 했더니 진돗개만은 호랑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전혀 기가 꺾이지 않은 채 호랑이 오줌이 묻어있는 옷 쪼가리를 마구 물어뜯는 등 적극적인 공격 자세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TV 방청객뿐만 아니라 나도 대단히 놀랐습니다. 중간 크기의 아담한 체구 어디에서 저런 용맹성勇猛性이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 진돗개의 놀라운 기백氣魄에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1960년대 초반이라면 나주는 K시 못지않게 큰 도시였습니다. 화려하게 불 밝혀놓은 번화가 상점에 쌓여있는 물건들이 넘실대는 파도위의 돛단배처럼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원래 전라도全羅道라는 이름이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에서 왔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오라,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도 했습니다.

 

 

 

 

 

  1962610, 한국은행 총재도 몰랐다던 화폐개혁이 기습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환을 원으로, 10:1 비율로 화폐가치를 바꾼 화폐개혁의 태풍은 예상치 않게 아이들에게도 몰려왔습니다. 저금통장에 모아둔 십 환, 오십 환, 백 환짜리 동전을 앞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는 소문이 유언비어통신을 통해 아이들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엄마 몰래 저금통을 깨뜨리고 그 동전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사제 건빵이 한 봉지에 십 환이었는데 날마다 건빵을 몇 봉지씩 사먹었습니다. 나중에는 건빵 봉지 안에서 별사탕만 골라먹었습니다. 거기에다 맛난 유과와 비과도 마음껏 사먹고 오래 입에 물고 있으면 입안이 헐어지는 오다마도 열심히 사먹었습니다. 하여튼 그때만큼 돈을 물 쓰듯 써보았던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으니 왠지 불안하기도 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은밀한 모습을 한 꺼풀 들여다보는 기분도 들어 무언가 짜릿한 충만감 같은 것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돈을 너무 써버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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