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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5월0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5.10|조회수39 목록 댓글 0

 

 

 2018.05.10.. 맑음

 

 

 

 

 

  0506,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5.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천장사에서 차실茶室과 다구茶具가 사라져버린 뒤로는 도반님들과 차실에 둘러앉아 차담茶談을 하는 풍경도 시나브로 잊혀져갔습니다. 물론 공양간 식탁위에 튀밥이나 뻥튀기를 놓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계속 되었으나 김 오르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와는 무언가 격이 좀 달라진 듯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이 되면 일요법회와 점심공양을 마치고 난 뒤에 서산의 김화백님 작업실로 이동을 해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즐기곤 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천장사 안팎 이야기하며 불교 이야기와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깨닫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와 꼭꼭 숨어있는 이야기나 하얗게 드러나 있는 이야기 혹은 알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 알려져 있지만 진위가 애매한 이야기, 사실事實인지 진실眞實인지 확인하고 싶은 이야기, 차라리 와전訛傳되었으면 하는 불편한 이야기의 진위眞僞라든가, 언제라도 흔쾌히 퍼 나르고 싶은 착한 이야기, 그리고 당시 유행하는 이야기 등등을 모처럼 마음을 터놓고 즐겁고 유쾌한 말의 파도를 허공에 일으켜가면서 스스럼없이 주고받았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일요법회 못지않게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제등행렬을 마치고났더니 밤8시가 넘은 시간이 되긴 했으나 차 한 잔에 마음 푸근한 이야기가 그리워 일단 서산시내로 나가 시간이 허락하는 도반님들과 자리를 하기로 했습니다. 서울보살님, 무량화보살님, 무진주보살님과 묘현궁보살님과 함께 잘 우려낸 차를 다탁에 놓고 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알고 보든 모르고 보든 삼성이나 대한항공 같은 부자는 우리나라에 몇 집이 되지 않습니다. 경실련의 조사에 의하면 실제로는 몇% 되지 않는 주식소유로 교묘하게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호텔도 소유하고 있고, 백화점도 소유하고 있고, 비행기나 수많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21C인 현대에 와서 경제력經濟力이란 재력財力뿐만 아니라 권력權力까지 동반하는 것이라서 누군가의 손에 거대한 경제력이 잘못 들어가게 되면 단순히 가진 자의 삽질이 아니라 견제세력이 없는 절대 권력의 무분별한 방출로 인해 사회전반에 미치는 폐해가 극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일반 가계家計는 규모가 조금 크든 조금 작든 크고 작은 경제적인 고통에 몸부림을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화의 서두는 대부분 일반인들의 공통관심사인 경제 이야기로 운을 떼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경제이야기를 좀 해주다가 지역사회 이야기도 좀 하고 요즘이 마침 선거철이라 선거이야기도 간략하게 스쳐지나갑니다. 그러다보면 이러구러 시간이 지나가고 이야기판의 짜임새가 갖춰지면서 본때 있는 이야기가 슬슬 나오기 마련입니다. 요즘 불교계에는 mbc에서 방영했다는 뭐드라, 큰스님께 묻습니다. 라던가 하는 제목의 PD수첩이 인기를 휘몰이 하고 있는 이야기 거리라고 했습니다. 사실 거사님들은 불교계의 슬픈 연례행사처럼 뭐 또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치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수행력이 있다는 큰스님들을 부처님처럼 믿고 의지하는 보살님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까만 절망감에 휩싸이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요법회 도반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천장사는 큰절 수덕사의 말사이고 수덕사의 큰스님들을 자주 혹은 여러 차례 직접 인사를 가서 차 대접을 받고, 차담을 나누고, 법문을 듣고, 법담을 나누었던 추억이 총총한지라 한 점의 의혹이라도 마음이 불안하던 차에 숨겨왔던 의혹들이 밝혀져서 의혹이 배신감으로 바뀐다면 몇 십 년에 걸친 신행생활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공허한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오랜 세월 기도·정진을 해온 보살님들에게 자연 이런 의구심疑懼心이 생길만도 합니다. 절에서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열심히 기도·정진을 하라고만 할까. 왜 깨달음으로 향하는 도를 바로 알려주지는 않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절에서 말하는 기도·정진이라면 금강경이나 아미타경이나 지장경 등을 읽는 송경誦經이나 대비주나 관세음보살을 읽고 염하는 염송念誦이나 부처님 앞에서의 오체투지인 참배參拜나 가부좌를 하고 화두話頭를 궁구하는 참선參禪을 의미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의 제자이자 비구였던 다섯 비구를 상대로 깨달음의 길을 가르칠 때도 무조건 기도·정진을 주문注文했던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내용과 깨달음으로 향하는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 다섯 비구에게 가르치신 초전법륜初轉法輪입니다. 부처님의 첫 법음인 초전법륜은 감각적인 쾌락과 지나친 고행의 두 가지 극단을 피하여 치우침이 없는 중도中道의 깨달음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중도란 곧 여덟 가지 바른 길인 팔정도八正道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사성제四聖諦를 설명하시는데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이렇게 말씀해주십니다.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근원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거룩한 진리, 괴로움의 소멸에로 이르는 길의 거룩한 진리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란 삶과 생활에 나타나는 고통이 아니라 집멸도集滅道에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라는 사실입니다. 가 있기 때문에 고의 원인인 집이 있게 되는 것이고, 괴로움을 여읜 열반적정이 멸이라면 열반에 이르는 길이 바로 도인 팔정도八正道가 되는 것입니다. 팔정도라는 방법을 통해 우리들은 열반적정으로 갈 수 있는 것이고, 괴로움의 근원인 오온五蘊의 쌓임을 통해 고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사성제를 바로 이해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 사슴동산에서의 두 번째 가르침이 무상無常, 무아無我, 의 삼법인三法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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