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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5월20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5.26|조회수44 목록 댓글 0

 

 

 2018.05.26.. 창밖은 이미 여름인데 창을 열지는 못한다

 

 

 

 

 

  0520,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4.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초파일 법요식에 이어 점심공양을 한 뒤 잠시 짬이 나는 시간에 보살님들과 거사님들이 2층 채마밭으로 몰려가 이랑을 따라 비닐을 씌우고 또 한편으로는 이랑과 고랑을 내는 울력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스님의 수고를 덜어드리려는 보살님들의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게 전해왔습니다. 그때 나는 채마밭이 내려다보이는 법당 마당 가장자리의 침대바위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전라남도에서 세 번짼가 네 번째로 높은 모후산母后山의 위엄을 자랑하듯이 여기 목탁암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자도 공양간 모퉁이와 장독대, 그리고 침대바위에서만 송수신이 가능합니다. 눈을 찡그리고 집중을 해가며 한참동안 좁은 문자판을 두드리고 있는데, 채마밭에서 일을 하던 어느 보살님이 저기요, 처사님은 함께 울력 안 하세요?” 하고 높고 예쁜 목소리를 나에게 날려 보냈습니다. 그럴 때 , 지금은 밭일하기 싫어요.” 라는 생각이 혹여 들더라도 생각을 최소한의 규칙과 사회적 관례에 맞추어 다듬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소리를 통해 방출해버리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보살님이 말로 표현한 문장 속에 들어있는 함께와 울력이라는 단어를 주의 깊게 파악해야하는 일이 생각의 소리화보다 먼저 이루어져야합니다. 보살님의 함께와 울력이라는 말은 우리라거나 공동체의식共同體意識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를 테면 목탁암의 신도로서 또는 초파일 자원봉사자 일원으로서 혹은 목탁스님과 근거리에서 한 팀을 이루는 공동원으로서 밭일에 참여해주기를 요청하는 말이라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네 잠깐만요, 문자를 금방 보내고 함께 울력을 하겠습니다.” 스마트폰을 차실에 갖다놓고 운동화 끈을 조여매고는 채마밭으로 내려가 이랑을 돋우고 고랑을 파내는 작업에 합류했습니다. 홉바를 비스듬히 눕혀 흙을 파내는 것이 아니라 흙을 옆으로 밀어내어 고랑을 만드는 일은 흙의 결을 따라 그저 슬슬 문지르는 쉬운 일인데도 자꾸만 힘을 주어 바닥을 파내려고 했습니다. 이랑을 대여섯 개 만드는 동안 벌써 등에 땀이 촉촉하게 배었습니다. 채마밭의 이랑 만들기가 끝나자 수건을 들고 세면장에서 한바탕 샤워를 했더니 몸과 마음이 개운해졌습니다.

 

 

 

 

 

  저녁공양을 마친 후 빗줄기는 더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저쪽 아래 1층 주차장에 주차시켜놓았던 차를 한 대씩 몰고 법당 마당으로 올라와 각자 일행들을 태우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차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차량 전조등의 둥근 범위에 들어온 공간의 빗줄기는 더 세차보였습니다. 보살님들을 차에 태우고 난 뒤 제일 늦게 운전석에 오르는 재근 씨와 악수를 하는데 빗방울이 볼을 후두둑 때렸습니다. 연등燃燈을 걸어놓은 장대 지주가 서있는 틈 사이를 요리저리 거침없는 운전으로 빠져나가 붉은 미등을 보이면서 마지막 차가 사라지자 도량 안에는 단박에 빗소리만 가득 남아있었습니다. 시간은 초파일 밤9시를 절반쯤 지나고 있었습니다.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로인해 연등의 촛불은 절반가량 꺼져있었고 나머지 밝은 등들도 언제 촛불이 꺼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스님을 쳐다보면서 저 연등燃燈 중에서 내일 아침까지 타고 있는 등이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스님께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옛날에는 큰 초를 그냥 등에 넣거나 큰 초를 잘라서 등에 넣었지만 요즘에는 자그마한 초가 나오니까 낭비를 덜 하지요. 초가 작아서 보통 저녁7시에 켜면 대부분 자정 무렵에는 다 타게 되지요. 그냥두면 한 다섯 시간가량 타는 크기의 초거든요.” “그건 그렇고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이렇게 눅눅한 밤에는 커피 맛이 유다른데 아마 커피 가는 냄새가 사방공중으로 확산되지 않고 아래편으로 쭈욱 깔리기 때문일 텐데 어때요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려우?” “물론 대찬성입니다, 스님.” 볶아놓은 원두커피콩을 골라 커피 가는 통에 넣고 슬슬 돌리면서 커피를 갈자 정말 커피의 진한 향이 공양간을 슬슬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내려 커다란 머그잔에 그득 담아 커피를 마시면서 스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1시가 넘어서야 차실로 자리를 옮겨서 이번에는 차를 끓여 찻잔에 마셨습니다. “스님 이 차는 낮에 차실에서 보살님들과 마셨던 그 차 아닙니까?” 하고 물었더니 맞아요, 낮에 마셨던 무이차올시다.” 하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 보살님들은 선생님들이었는데, 한 분은 마산에서 또 한 분은 부산 어디에선가 근무를 하고 있는 스님과는 오랜 인연이 있는 분들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차실에 앉아 있다가 스님의 권유로 차를 함께 마시고는 있었으나 공통된 기억이 없으니 그저 오고가는 대화를 듣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체구가 자그마한 보살님의 경상도 사투리의 독특한 억양抑揚과 어조語調가 조금은 생소하게 들리거나 어떤 때는 가까운 이웃나라의 외국말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난 2년 후엔가 광주에서 군 동기 한 사람이 결혼식을 하게 되어 다섯 명의 군 동기가 다 모이게 되었는데, 그 시기가 ‘807월이었던가 해서 광주를 중심으로 한 나라안팎이 상당히 요동을 치고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대구에서 난생 처음으로 전라도를 와봤다던 동기가 대구에서 출발한 뒤 광주고속터미널에 도착을 해서 버스에서 내렸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전라도 사투리를 듣자 마치 외국에 온 것처럼 어색하고 불안해서 수첩을 펼쳐들고 무조건 나에게 전화부터 했노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는데 그는 예능적 감각이 뛰어나서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좋아했던 심성心性 착한 군 동기였습니다. 두 보살님들과 차실에 앉아 반 시간여 함께 차를 마시고 일어나면서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참, 집이하고 저쪽 선생님하고는 예전에 거창에서 뵌 적이 있는 사이인데 기억이 나시는지 모르겠소만.” “스님, 거창이라면 혹시 언젠가 거창 사슴농장에 갔을 적 말씀입니까?” “어엉, 맞아요. 저 보살님이 그때 거창 사슴농장 주인이었거든.” “아하, 그때 아들 녀석을 함께 데리고 갔었는데 그게 아마 26,7년 전 남짓 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 보살님께서 깜짝 놀라만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거사님께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서 하나도 안 늙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보살님은 차를 마시고 있던 동안에도 거창 사슴농장에서 스님과 함께 내가 아들아이와 하룻밤 신세를 졌던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데 그 기억력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초파일 하루 동안 여러분들이 절에 왔다가 돌아가고 또 왔다가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잠시 밖으로 나가 화목보일러를 확인하고 돌아오던 스님께서 이보시오, 잠깐 이리 나와 보시오.” 하고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서 차실 문을 열고 마루를 지나 토방에 내려섰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스님처소 모퉁이로 돌아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스님 서재 창 아래 토방에 엉덩이를 대고 털썩 주저앉으면 앞으로 잡풀이 휘여한 널찍한 공간이 있고, 그 건너편 서너길 위쪽으로는 언젠가 선방이 지어질 공터가 높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비가 오는데다 자정이 지난 이 시간에는 저 높지막한 선방 터까지는 어둠에 휩싸여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대로 토방에 주저앉은 채로 무렴히 앞을 바라보면서 비 구경을 하고 있자니 스님께서 이리 나와 보라던 의도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딱히 이거다.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대략 5분가량 지났을까 스님께서 이보우, 저것 좀 보시오.” 하고 귀엣말을 해주었습니다. 무성한 잡풀 우거진 사이로 좁쌀만한 불빛이 여기저기 깜빡거리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환경과 어둠에 눈이 익어가자 깜빡거리는 작은 불빛은 더 많이, 더 여러 군데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는 했습니다. “스님, 저거 개똥벌레 아닙니까?” 스님께서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이제부터 시작해서 9월까지 개똥벌레가 밤이면 장관을 이루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는 시골 장터에서도 깜빡깜빡 돌아다니던 개똥벌레가 요즘에는 희귀한 구경거리가 되어 마음먹고 찾아나서도 볼뚱말뚱한 안타까운 추억이 돼버렸단 말이요.” 개똥벌레를 쳐다보는 동안에도 줄기찬 봄비가 의젓한 풍모를 잊지 않고 깊은 밥하늘에서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습니다. 초파일 자정이 지난 시간에, 그것도 소밀疏密한 우중풍경雨中風景 속에서, 반짝이는 별 대신 개똥벌레를 추억삼아 무슨 이야기인가를 끊임없이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봄비가 밤비가 되어 다음날 아침녘까지 모후산母后山 산자락이 넉넉하게 적셔지도록 호젓하게 내려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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