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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7월01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7.01|조회수34 목록 댓글 0

 

 

 2018.07.01., 장맛비

 

 

 

 

 

  0701,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지금 창밖으로는 비가 추근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추근하게 라고 말하긴 했지만 공기의 빛깔이나 하늘의 생김새로 봐서는, 더 정확하게는 일기예보를 들어서는, 더 많은 비를 품고 있는 독한 비구름이 세상을 쥐어짜는 듯한 기세로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풍모風貌 있게 높은 여름 하늘을 가로막고 우뚝 멈춰서있습니다. 오늘의 비 이름은 장맛비이지만 모레의 비는 태풍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동지나해 어디선가 발생한 태풍이 지난 2012년 이래 6년 만에 제주도를 거쳐 우리나라 남해안으로 직접 통과하게 될 태풍이라고 했습니다. 2012년의 강렬한 태풍은 내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해 7,8,9월에는 한반도를 직접 통과한 태풍 개수만 4개나 되었습니다. 그해 내가 집을 건축했는데 어찌나 호우와 태풍이 자주 지나갔던지 거대한 푸른 방수포로 건축 중인 건물을 통째로 뒤집어씌우는 일을 자주 하다 보니 나중에는 엄청난 크기의 푸른 방수포 작업을 혼자서도 노래불러가면서 하는 나를 보고 스스로를 참으로 대견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총총 남아있습니다. 어쩌다 집안 도배를 하거나 화단이나 마당의 사소로운 작업을 하더라도 여기 좀 보세요. 하면서 일을 못한다고 서울보살님에게 지청구를 자주 듣는 입장이고 또 스스로 돌이켜보아도 참말로 일하는 손이 무디다고 자학自虐직전까지 가는 경우가 왕왕이 있었는데, 2012년도의 친절하고 자상했던 태풍颱風과 호우豪雨를 벗 삼아 시시때때로 방수포 작업을 하면서 아, 나도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감自信感! 사실의 진위보다는 대부분의 경우 그 자신감自信感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세상일들이, 특히 연애戀愛와 글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내가 글쓰기를 항상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도 그 자신감 때문입니다. 글 쓰는 대상이나 상황이, 조건이나 시간들이 어떻더라도 나는 글을 쓸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고 또 잘 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첫 문장文章을 후련한 날숨처럼 원고지 위에 불어내주기 때문에 글쓰기가 즐겁고 글쓰기에의 명확한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연애할 때도 포용력包容力 있고 인상적印象的인 첫 대시가 중요한 것처럼 글쓰기에도 첫 세 문장이 중요합니다. 첫 세 문장을 자신 있게 써낼 수 있다면, 세 문장 중 한 문장은 주제主題로 삼고 다른 두 문장은 소재素材로 삼아 세 문장을 풀어 전개하다보면 한 장, 한 단위의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글쓰기는 그런데, 솔직하게 말한다면 내가 연애선수戀愛選手도 아니고 해서 연애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글쓰기와 연애가 닮은 점이라면 해도 해도 안 될 때는 그만 포기抛棄할 줄 아는 것도 용기勇氣라는 것과 글쓰기 말고도 나와 어울릴 수 있는 특기나 취미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있는 것처럼 연애도 그 연애 말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다른 연애가 신기하게도 또 있다는 것 정도일 것입니다.

 

 

 

 

 

  딱 일 년 전, 지난해 오늘인 71일 고인故人이 되신 죽음의 한 硏究의 작가 박상륭 선생은 어느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너무 젊어서 너무 큰 작품을 쓰려고 하는 욕심을 내거나 등단이나 프로가 되기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내던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야가 되었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다보면 당신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남들이 가지지 않은 전문성을 가졌을 때가 되면 그것에 그저 이야기만 붙이면 소설이 됩니다. 소설이 뭐 어렵습니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남들과 다른 소위 전문가가 되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요.” 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저 이야기만 붙이면이라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박상륭 선생이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단지 이야기를 얼마든지 실을 수 있는 든든한 화수분 같은 철학적 바탕과 문학적 배경을 만들어놓고 난 후에 이야기를 고민하더라도 그 방식이야말로 오랫동안 글을 쓰고 글쓰기를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의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이십대 후반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시체실 청소부를 하면서 써낸 대표작 죽음의 한 硏究는 그가 체험을 통한 그 이전부터 운명의 등짝에 북통처럼 들러붙어있는 죽음이라는 현상을 화현化現된 세계에서 하나의 리얼리티로서 종교와 철학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모색했다는 점입니다. 그건 그렇고 사실 나는 비 오는 날을, 비를,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내가 특별히 멜랑꼴리를 즐긴다거나 유별나게 감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집중이 잘 되더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리고 비가 마르고 거친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듯이 어느 정도 서정적인 감성을 적셔주는 듯한 기분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농부에게는 감사의 비가, 우산 장사에게는 황금의 비가, 원룸의 솔로들에게는 우중충한 비가, 글 쓰는 이에게는 자극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장맛비에다 태풍을 동반한 호우까지 밀려오면 수요일까지 연신 거칠게 내리게 될 것이라고 예보를 했습니다. 값비싼 컴퓨터만 들여놓고 날씨변화를 맞추는 등 일기예보보다는 일기 실황중계에 열을 올리는 기상청도 이번에는 맞힐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묵언의 회색빛 침묵 아래로 장맛비가 묵묵히 추근하게 내리고 있습니다. 사월과 오월의 옛사랑이나 나훈아의 찻집의 고독이 들려올 것만 같은 구성진 빗소리입니다.

 

 

 

 

 

  동네에 코인 빨래방이 1,2년 전에 생긴 줄은 알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동네 길모퉁이에 있는 파란색 간판 아래 코인 빨래방에 사람들이 들어 다니는 것을 보고도 아, 저 사람들은 집에 세탁기가 없나보다 정도의 바람에 불려 날아가는 하얀 비닐봉지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요일까지 비가 온다니 우리 빨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들아이의 쌓여있는 빨래감이 문제였습니다. 당장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다고 하는데 여행 가방안의 갈아입을 옷이 다 떨어져버린 모양입니다. 그럼 날마다 비가 계속해서 오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할 찰나에 서울보살님이 아, 우리 동네에 있는 코인 빨래방에 가서 빨래를 해오면 되겠네요.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아이 옷만 골라서 비닐봉지에 담아들고 코인 빨래방으로 향했습니다. 영화에서 보았던 코인 빨래방만큼은 크지 않은, 길모퉁이에 있는 너덧 평 크기의 코인 빨래방이었습니다. 1993년에 개봉했던 샤론 스톤, 톰 베린저 주연의 슬리버Sliver 라는 영화에서도 슬리버아파트 건물 지하에 있는 세탁실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여기는 아파트 입주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세탁실이라 코인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커다란 세탁기와 건조기가 줄지어있는 세탁실에서 아파트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코인 빨래방은 일본 공포영화를 보면 단골로 나오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여자女子와 길 건너 어둠속에서 빨래방을 지켜보는 검은 시선은 음울한 배경음악과 함께 왠지 불안한 예감을 강화시켜줍니다. 세탁기 세 대와 건조기 네 대가 나란히 설치되어있는 빨래방은 비오는 일요일을 맞아 한가했습니다. 우선 빨래방 사용방법을 읽어보고는 500원짜리 동전을 바꾸고 나서는 세탁기에 동전을 넣은 뒤에 비닐봉지의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넣었습니다. 세탁기가 가동을 시작하니 갑자가 할 일이 없어져버렸습니다. 영화에서 코인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돌리던 여자女子들이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오랜 시간 전화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하철 안에서는 독서를 곧잘 하는 일본인들도 빨래방에서는 독서를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내가 보았던 일본 공포영화 중에서는 빨래방에서 독서를 하는 장면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훑어보았더니 빨래방에 설치되어있는 세탁기는 세 대인데 건조기는 네 대가 있었습니다. 왜 세탁기와 건조기가 같은 숫자가 아닐까하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체인점인 코인 빨래방은 사업을 시작할 때 반드시 사업성 검토라는 과정을 밟았을 것입니다.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절감된 투자비용, 그러니까 세탁기와 건조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설치를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코인 빨래방 고객들이 세탁기보다는 건조기 사용량이 많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탁기 가동시간이 30, 건조기 가동시간이 30분 동안 기다려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세탁은 집에서 하고 건조만 코인 빨래방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같이 해 숙인 하루 내내 추근하도록 스멀스멀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는 당연한 필요였을 것입니다. 나도 몰라서 그랬지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역시 빨래는 집에서, 그리고 건조만 이곳 빨래방에서 했을 것입니다.

 

 

 

 

 

  드럼 세탁기통에서 아들아이 빨래감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현대 서양문화인 뭔지 자유스러운 듯하면서 고독한 공간인 빨래방 문화를 체험해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한 장소인 빨래방에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군중속의 고독孤獨, 타인과의 관계가 조건 없이 단절되어버린 듯한 익명성匿名性의 외로움을 철저하게 느껴보았습니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을 따라 근대近代에 밀려들어온 서양문화의 선물은 개인個人과 자유自由와 더불어 고독孤獨과 익명匿名이라는 양가적兩價的인 가치였습니다. 건조기가 멈추자 나도 아무 말 없이 잘 마른 빨래감을 꺼내어 비닐봉지에 담아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동네 한 길모퉁이의 코인 빨래방은 마치 고속도로의 휴게소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지만 그때마다 일회용으로 뒤돌아볼 필요 없이 뒤를 털어버리는 장소라는 점에서는 예전 시골의 빨래터와는 전혀 다른 투명한 공간이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들은 이런 분위기雰圍氣와 습관習慣에 길들어가고 생활 속에서 개인과 자유를 누리는 만큼 고독과 익명도 우리들 가슴에 뿌리를 내려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든 혹은 알면서도 받아들이든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너덧 평의 코인 빨래방 나들이가 강렬한 문화체험으로 장맛비의 소리들을 순간 멈춰 세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서양西洋이 동양東洋으로 넘어오는 길목에 서있었던 장맛비 가득한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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