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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7월15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7.16|조회수12 목록 댓글 0

 

 

 2018.07.15.. 에어컨 켜면 시원한 줄 다 안다

 

 

 

 

 

  0715,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겨울바다의 낭만을 발견해낸 것은 좀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자연이 사람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파괴되기 시작하는 ‘80년 전후라고 생각을 한다. 19726월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유엔인간환경회의에서 세계 환경의 날이 선포되었고, 197810월에 자연보호헌장이 우리나라에서 채택되었다. 그해 사촌동생이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하는 것을 잠시 도와주면서 국어 한자쓰기 문제에 自然保護錦繡江山이 나올 것 같다고 알려주었는데, 두 문제가 그대로 나왔다. 그래서 일명 족집게 형아라는 고마운 별명이 붙어 그 뒤로 사촌동생들 시험이 있을 때마다 좀 귀찮게 되어버렸다. 모두의 생활이 힘들었던 ’60년대가 지나고 산업사회로의 도약이 이루어진 ‘70년대에는 등산과 낚시, 바캉스라는 도락道樂이나 취미趣味, 휴가休暇 개념들이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산, , 호수, 바다가 시달리고 훼손되고 파괴되기 시작했다. 내가 ’78년도에 군 제대를 한 후 전국 사찰이나 산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점이라면 군 입대를 하기 전인 75년도 이전에 비해 강이나 계곡 물들이 너무도 줄어들어 있었고 주변 환경의 황폐화가 심해져버렸다는 것이다. 수량이 풍부했던 해인사 계곡이나 송광사 주변의 천들도 쫄쫄쫄~ 개천 수준으로 바뀌어버렸다. 산이 죽으면 물이 죽고, 물이 죽으면 땅이 죽고, 땅이 죽으면 그 다음 차례는 그 땅에서 사는 것들이라고 했는데,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고 생각을 멈추면 얼굴 모르는 불안이 가슴속으로 밀려다닌다. 그건 그런데 봄 여름 가을 등 놀기 좋은 계절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부터인가 스키라는 놀이가 서양에서 들어와 울울창창鬱鬱蒼蒼 산등성이와 심산유곡深山幽谷 계곡을 깎아 스키장을 만들어 겨울도 재미나게 보낼 수는 있었지만 사시사철 방방곡곡坊坊曲曲 사람이 들끓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유일하게 비어있는 겨울바다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手順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사람들이 추위와 황량을 무릅쓰고 겨울바다를 찾아 그들만의 낭만과 서정을 갈구한다. 여름바다가 활기活氣와 감성의 분출噴出이라면 겨울바다는 침잠沈潛과 자아성찰自我省察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데, 내가 보기에는 국내총생산Gross Domestic Product 상승으로 인한 생활의 여유餘裕와 더불어 비슷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欲望의 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70년에는 겨울바다라는 탈출구가 아직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겨울이 되면 응당 산으로 갔다. 그해 겨울방학이 시작하자 우리들도 몇 명이 뜻을 모아 겨울 산을 찾아 등산을 가기로 했다. 길은 멀고 산은 높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까운 주변 산을 놔두고 멀리 있는 산을 찾아 갔다.

 

 

 

 

 

  무등산, 담양 추월산, 장성 백암산 등지로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면서 산행을 했던 친구들과 이번에는 영암 월출산月出山을 한번 가보자고 했다. 산기슭이 시의 경계와 접해있는 무등산에는 자주 가보았고, 추월산이나 백암산 정상까지는 그리 험한 등산로가 아니어서 거의 원족遠足 수준의 놀이로 생각하고 다녀왔는데, 월출산月出山은 그렇지가 않다고 했다. 산이 그렇게 높고 깊은 것은 아니지만 흙산이 아니라 바위산인데다가 경사가 급하고 날씨의 변화가 심해서 모처럼 등산 맛이 나는 만큼 조심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그때는 산이나 바다에 간다면 꼭 캠핑버너와 캠프파이어 용도의 석유를 가득 담은 커다란 플라스틱 통을 들고 다녔다. 그랬으니 산과 바다가 훼손되고 오염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카메라도 빌리고, 침낭도 빌리고, 강력한 랜턴도 빌렸다. 영암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영암읍내에서 점심을 먹은 뒤에 물어물어 춘양리 춘양저수지를 끼고 올라가는 등산로를 택했다. 그때가 겨울방학이 시작하는 시점이라 아마 크리스마스 언저리였을 것이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산행을 시작하자 금세 몸이 더워졌고 이내 훅훅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면서 눈이 얼어붙은 산길은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걷다가 쉬다가 걷다가 쉬다가 하면서 몇 시간가량을 힘들여 올라갔는데 등에 메고 있는 배낭보다도 손에 들고 있는 장비들이 더 신경 쓰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경사 급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가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면 그 짧은 사이에 금방 몸의 땀이 식으면서 볼과 손이 시려왔다. 산에서는 매운 추위와 밤이 빨리 찾아왔다. 그래서 아직 해가 남아있을 때 잠자리를 정할만한 장소를 찾아내고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월출산을 올라가면서 이만한 높이라면 계곡이 있고 물이 있어야하는 법인데 이편 춘양리 방향 등산로에는 가파른 산길만 전개되어있을 뿐 계곡도 숲도 없어서 물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식수도 플라스틱 통에 담아가지고 다녔으니 급한 대로 식사준비는 그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몸을 씻고 양치질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뭐 기억이란 자신이 원하는 좋은 기억 위주로 머릿속에서 편집되기 마련이니까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몸은 안 씻고 양치질은 안하는 등 속속들이 말하기는 좀 뭐 하지만 혹시 그랬던 것은 아닐까. 하여튼 저녁식사도 맛나게 먹고, 사진도 폼 나게 찍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등등 ‘70년도 식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하면서 신바람 나게 놀다가 이제 그만~ 하고는 슬슬 잠을 자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불빛이 비치는 다른 야영 팀들의 모습도 하나 보이지 않아 깊은 산 사나운 추위와 어둠속 허허로운 허공중에 깃털처럼 올려져있어서 세상에는 오직 우리들만 있는 듯했다. 그러니까 대충 자정 전후정도 되었을 텐데 산기슭을 타고 올라오는 바람이 조금씩 세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싸락눈처럼 싸르륵~ 싸르륵~ 뿌려대더니만 잠시 후에는 눈발이 점차 굵어지기 시작했는데, 바람이 강해져서 텐트 안으로 스며드는 냉기에 몹시도 추웠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잠시 눈 시원한 눈 구경이나 하자하고는 우리들은 텐트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세상 천지에 눈발이 가득하니 높은 산등성이 한줌 평평한 곳에 텐트를 치고 있는 우리들은 마치 하얀 눈 세상 한가운데 높고 깊은 그 위로 둥실~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강한 산바람에 텐트가 위험할 정도로 흔들렸다. 다시 텐트 안 침낭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는데 이런 폭설暴雪과 바람과 냉기冷氣라면 오늘밤을 견디기가 쉽지 않아 보여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생각은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래서였든지 우리들은 침낭에 누워 함께 노래를 불렀다. 한창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텐트 밖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 이 상황에 무슨 소리일까 하는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우리들 숫자를 믿고 침낭에서 일어나 텐트를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쓰아와와~ 슈우웅~ 몰아쳐 들어오는 거센 눈보라와 싸늘한 냉기 말고도 텐트 밖에는 누군가가 서있었다. 으흥, 분위기 좋고, 마치 여름밤을 책임질 납량특집納凉特輯처럼 돼가는군요.

 

 

 

 

 

  휘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랜턴을 비추어보았더니 하얗게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 하나 둘 셋, 희부연 형체의 사람 세 명이 서있었다. 그리고 눈보라를 등지고 서있는 세 사람의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사연인지 이 시간에 어둠과 추위와 눈보라 속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면 상태가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먼저 텐트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느냐는 말에 우리 일행들은 서로 눈을 맞춰보고 나서 텐트를 열어주고는 석유램프 심지를 돋우었다. 그러자 대충 머리와 어깨의 눈을 털고 세 사람이 텐트 안으로 들어왔는데 이거 뭐지, 세 사람이 모두 여자들이었다. 산 아가씨들이라니 좋기도 했지만 왠지 부담스럽고 의심이 왈칵 들었다. 설마하니 전설傳說의 고향故鄕처럼 진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우杞憂가 작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뒷날 한혜숙의 설녀雪女나 장미희의 구미호九尾狐까지는 아니었겠지만 묘한 난기류 닮은 텐트 안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여하튼 추위를 녹이기 위해서라도 버너를 작동시키고 물을 끊여서 뜨거운 커피를 만들어 낯선 여객女客들에게 한 잔 씩 대접을 했다. 거 좀 이상하지만 산 아가씨 세 명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자 당연 자리가 비좁아졌으나 갑자기 텐트 안이 훈훈해지는 것이 바람을 타고 밀려드는 냉기를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렇게 추워서 단체로 노래까지 불러가며 참으려고 했는데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이제 산 아가씨들의 사연을 들어볼 차례가 되었다. 대학 동아리 회원들인 남자 세 명과 여자 세 명이 월출산으로 등산을 왔다가 남자 회원 한 사람이 산길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다른 남자 회원 두 사람이 부축해서 일단 아랫마을까지 데려다놓고 세 여자회원을 뒤따라 올라오기로 했는데, 세 여자회원들은 쉬엄쉬엄 올라가다가 한 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남자 회원들이 뒤따라오는 기색이 없어서 다시 내려가자고 결정을 하는 차에 갑자기 눈이 쏟아져서 내려가는 것보다는 오히려 올라가는 편이 더 안전해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곳에서 불빛이 보여 우리 텐트를 찾아왔다는 내용이었다. 글쎄 그렇다면 그렇고, 이상하다면 이야기 내용이 좀 허술해보였지만 지금이 고려시대인 1092년도 아니고, 이 눈보라와 사나운 추위 속에서 산 아가씨들을 내쫒을 수도 없는 문제이고 해서 오늘밤에는 함께 지낼 수밖에 없을 듯했다. 그런데 텐트 안이 자리를 차지하고 눕기에는 비좁고 쪼그려 앉아 밤을 새우기에는 불편하고 했지만 밤이 깊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다 알아서 구부리고 움츠리고 몸을 규격에 맞게 접어서 새근새근 잘 잤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물을 식사준비용만 제외하고 나누어서 산 아가씨들에게 제공해주고 우리들은 알아서 주변에 쌓여있는 하얀 눈으로 세수도 하고 양치질도 했다. 아침식사까지 잘 해서 먹고 난 뒤에 눈으로 설거지까지 마치고나서는 우리들이 지금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과연 이만한 눈을 헤치고 천황봉을 오른 후 원래 계획대로 산 능선을 타고 바람재를 지나 도갑사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懷疑論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급격한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세 사람 산 아가씨들이 대학 산악반 회원이고 나름 노련한 등산인登山人이어서 이정도 눈이라면 누나들만 잘 따라오면 무난하게 등산을 마칠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어젯밤에도 폭설을 맞으면서 어둠과 추위 속에서 산에서 내려가기보다는 오히려 올라가는 쪽을 선택했을 정도로 산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뭔가 이야기 앞뒤가 맞아 들어가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다 산 아가씨들이 앞장을 서겠다는데 우리는 못가겠다고 꽁지를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대범大凡한 척 좋다고, 그러니 서슴없이 출발하자고 했다.

 

 

 

 

 

  , 용감하게 눈을 헤치고 출발을 하긴 했는데, 산 아가씨들의 주력走力을 따라 붙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산 아가씨들이 말했던 쉬엄쉬엄 올라갔다는 표현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쉬엄쉬엄 하고는 많이 다른 엄청난 속도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산 아가씨들을 놓쳐버리고 죽을 둥 살 둥 정상인 천황봉에 올라가 야호!를 한 번씩 하고는 허우적거리면서 하산을 시작했는데, 친구 중 하나가 하산도중에 빙 둘러가는 도갑사 계곡이 아닌 보다 가까운 경포대 계곡으로 내려가겠다고 주장을 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경포대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깜짝 놀랐다. 이쪽은 눈이 거의 쌓여있지 않아서 발걸음도 편안했지만 경포대가 오대산 소금강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던 것이다. 만일 여름 같았으면 옷을 훌렁 벗고 들어가 텀벙텀벙 물놀이를 해도 좋을 만한 바위에 둘러싸인 작은 소와 폭포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경포대 계곡이 끝나자 월남에 도착했다. 월출산에 닿아있는 여러 가지 지명地名들이 참 흥미로웠다. 경포대도 있고, 월남도 있고, 춘양리도 있었으니 말이다. 성전까지 털레털레 걸어 나와 버스를 잡아타고 영암읍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영암시외버스차부로 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동안 깊은 눈을 헤치면서 월출산 천황봉까지 우리들을 안내하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산 아가씨들을 화제話題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음에 우리들이 등산을 간다고 했을 때 동행하고 싶은 친구들이 쇄도殺到했으나 날이면 날마다, 산이면 산마다 한혜숙이나 장미희 닮은 산 아가씨들이 우리 텐트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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