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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07월15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6.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7.21|조회수36 목록 댓글 0

 

 

 2018.07.21.. 맑고 더워서 창문 닫혀놓고 에어컨 켤까말까 하다 부채와 扇風機旋回

 

 

 

 

 

  0715,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6.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찌는 듯이 더웠던 몇 년 전 어느 여름날, 머리가 허옇게 세신 영감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런 말이 나왔다. “글쎄, 이런 여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게 될지...” 갑자기 머릿속이 서늘해지면서 지겹고 눅눅한 여름을 보는 것도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뒤로 여름이 싫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매년 찾아오는 여름이 아내 생일만큼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군소리 없이 서로 평화롭게 지낼 만큼 괜찮았다.

 

 

 

 

 

  요즘 단팥에 대한 소설을 하나 쓰려고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날마다 단팥에 대한 글만 읽고 단팥만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단팥빵이나 단팥도넛이 자주 생각납니다. 그래서 오늘 점심도 단팥빵에 우유로 할까하고 바지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7월의 세 번째 토요일 햇살에 하얀빛이 도는 게 제법 날이 서보였습니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본 기억에 의하면 어제까지는 쩔쩔 끓는 가마솥이네 폭염이네 어쩌구저쩌구 해도 서울은 34도를 벗어나고 있지는 않아서 실은 견딜 만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밖에 나가보았더니 어제 햇살과는 사나운 기세氣勢가 살짝 달랐습니다. 오늘 한낮 예상온도는 36도라고 했습니다. 그야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720일부터 810일까지 이 기간이 진짜 여름이고, 그렇다면 그 앞은 본격 여름을 위한 예열豫熱 기간이었고 그 뒤는 여름을 정리하기 위한 소열消熱 기간인 셈입니다. 예전에는 810일이 넘어가면 해수욕장 바닷물에 들어가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버렸습니다. 6월에도 해수욕이 가능하고 9월에도 바닷물에 들어가 수영을 즐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자연환경과 대기와 기후氣候와 사람 사는 방식이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겨울철에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없어져버린 것과 같은 이치로 말입니다. 무한無限 여름과 유한有限 겨울과 틈새 봄, 가을이라는 불균형 계절이 생겨나버린 것입니다. 사시사철이 불균형不均衡이면 하늘과 땅이 불균형이고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도 불균형이 돼가기 때문에 결국 세상이 불균형해져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 세상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려면 새로운 방식의 변화에 빨리 적응을 하든지 자신만의 가치기준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중심 잡힌 생각으로 판단과 선택을 해야겠지요. 나도 어른 체면을 버리고 반바지 차림입니다. 빵집으로 들어가 커다란 단팥빵 다섯 개를 골라서 계산대로 가져갔습니다. 빵집 안은 에어컨을 잘 작동시키고 있어서인지 시원했고, 그 안에서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 근무자들은 파란 앞치마에 예쁜 베레모까지 갖추어 쓴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단팥빵을 비닐봉지 하나 하나에 담아 각각 포장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내가 손을 저으면서 괜한 비닐봉지 낭비인 것 같으니 그냥 봉지 하나에 전부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훨씬 크고 두껍고 좋아 보이는 투명 비닐봉지에 빵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빵집 이름과 로고가 찍혀있는 불투명 하얀 비닐봉지에 한 번 더 담아 주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이 빵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잘 알려진 체인점 빵집인데 도대체 하루에 사용하는 비닐봉지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속 봉지나 포장봉지나 모두 종이봉투를 사용해도 빵 품질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 듯한데 플라스틱 재질의 비닐봉지 오남용誤濫用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나 판단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계산을 하기 위해 내가 근무자에게 내민 카드도 플라스틱 카드이고, 빵을 골라 담은 쟁반도 플라스틱이고, 맛난 빵을 진열해둔 진열대도 플라스틱이고, 근무자가 마시고 있는 커피 컵도 빨대도 플라스틱이고, 내가 신고 있는 슬리퍼도 플라스틱입니다. 그런데다 빵 포장을 위해 하루 수 만장씩 사용하게 될 비닐봉지를 생각하니 그만 단팥빵이 먹고 싶지가 않아져버렸습니다. 이 빵과 단팥을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물과 내가 사려고하는 우유인 소젖 모두 플라스틱이 분해된 미세플라스틱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김기태 야구감독은 작년에는 동행야구로 2017 KBO 리그 우승까지 목적을 달성해서 성공을 했으나 올해는 똑같은 방식인 동행야구로 죽을 쓰고 있는데, 인류人類와 생활生活과 플라스틱이 손을 마주잡고 동행同行을 하기에는 플라스틱의 번성과 함께 생활이야 편리하겠지만 인류에게는 피할 수 없는 손상損傷이나 심각한 변형變形이 생길 게 뻔한 노릇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그야 바닷물고기 내의 미세 플라스틱 함유분을 조사하고 생체生體의 훼손이나 변형정도를 파악한다면 장차 인체人體도 어떻게 될 것인지 충분히 예측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양한 종이봉지 사용을 활성화시키든지 일정기간이 되면 바로 썩는 비닐봉지를 개발하든지, 아무튼 기업가나 사업가들의 윤리적 책무나 사회적 양식을 믿기보다는 최소한의 법적인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비디오폰이 딩동! 울렸습니다. 비디오폰의 통화단추를 눌렀더니 화면이 비치면서 우체국 택배기사님이 택배 왔어요~ ” 라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네에~ 하고 현관단추를 누르면서 위로 올라오세요라고 말을 하고 현관으로 나갔습니다. 엘리베이터 전광판 숫자가 바뀌고 우리 층 앞에서더니 택배기사님이 박스 하나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왔습니다. 택배기사님은 활짝 웃으면서 주소 번지가 잘못 써져있는데 아무래도 이집 택배인 것 같아서요하면서 박스를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네에~ 정말 주소 번지가 잘못 쓰여 있었는데도 택배기사님이 용하게 우리 집을 기억하시고 제대로 배달을 해준 것입니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손을 흔들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기사님 목덜미에서 굵은 땀방울이 도르르 굴러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차! 하고는 얼른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해진 찻물을 유리컵에 가득 따라 들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습니다. 우리 집 앞에 우체국 트럭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체국 트럭이 벌써 출발해버렸나 하면서 길로 나가보았더니 길 건너편 집 앞에 우체국 트럭이 서있었습니다. 트럭 운전석에는 아무도 없어서 겉에 물기가 송글송글 어리는 컵을 들고 잠시 트럭 옆에 서서 택배기사님을 기다렸습니다. 한 집 두 집 건너에서 배달을 마치고 택배기사님이 나오자 기사님 더운데 시원한 차 한 잔 드시고 하세요.” 했더니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면서 시원스럽게 목울대를 꿈틀거리면서 단 입에 차를 마셨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누누이 보시布施의 미덕美德을 말하지만 역시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 기분이 훨씬 좋다는 것을 새삼 느껴봅니다. 무언가를 베풀고 베풀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먼저 자신을 위해서라는 말이 정말이지 딱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건 그런데 이처럼 무덥고 햇살 짱짱한 여름에는 역시 피서避暑라면 팔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귀신 이야기가 어렸을 적이나 어른이 돼서나 최고입니다. 김제 모악산母岳山 자락에 가면 귀신사라는 절이 하나 있습니다. 왠지 귀신이 잘 나올 것 같은 절 이름인데 누가 지었는지 귀신사歸信寺에서는 귀신 만나기보다는 기도가 훨씬 잘될 듯싶습니다. 귀신사는 임진왜란 때 전화로 폐허가 된 것을 1873년에 중창을 한 춘봉春峯이라는 승려가 절 이름을 이렇게 바꾸었다고 합니다. 올 여름 휴가 때는 귀신사에 가서 귀신을 한번 만나고 오는 것도 부부간의 금슬琴瑟이 좋아지는 한 방법이 될지도 모를 일이니 며칠 동안이나마 더위를 피하는 셈치고 사랑과 믿음이 돌아오는 귀신사 순례 길 시도試圖도 밑져봐야 본전입니다.

 

 

 

 

 

  대개 가뭄이 들면 날씨가 메마르기 때문에 더위도 더 독하고 가뭄이 길어지면 물이 귀해지다보니 농촌에서는 물 때문에 자주 다툼이 생기고 도시에서는 물가가 올라갑니다. 다툼이 잦고 물가가 치솟으면 자연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해져서 인정人情도 메말라갑니다. 그래서 가뭄이 드는 해를 흉년凶年이라고 합니다. 아마 ‘68년에 이어 ’69년 연거푸 한발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호남지방은 가뭄 중 한바탕 물난리까지, 영남지방은 기나긴 가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지하수를 개발한다고 땅을 뚫어 모터를 설치하고, 도시에서는 수돗물을 시간제 공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는 시내로 들어가는 번화가 입구였던 광주경찰서 부근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가까운 집안 어르신으로부터 어떻게 연결이 되어 부모님께 부탁이 들어왔던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이 그 집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던 것이 무슨 사정으로 잠시 연기가 되는 바람에 집이 한동안 비어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옥으로는 상당히 넓은 마당과 울창하게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값비싼 나무와 화초들이 많이 있었는데 고가의 나무와 화초들이 알 듯 모를 듯 사라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사 날짜까지 며칠 동안만 밤에 그 집에서 잠을 자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집 위치가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아마 광주고등학교 뒤편인 지금의 계림 두산 위브아파트 자리쯤이었을 것입니다. 널찍널찍한 한옥들이 비탈길을 따라 따복따복 들어서있는 언덕바지의 초록이 울창한 보기 좋은 동네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면 단연 막내 외숙이 선호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막내 외숙은 얼마간의 대가를 약속받고 나까지 덤으로 끼워서 받은 대다가 일주일 동안인가 그 집에서 밤에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나야 근골筋骨이 남다르고 근성根性 있는 막내 외숙과 함께 라니 마치 모험을 앞둔 탐험가처럼 신바람이 나있었습니다. 거가에다 잘하면 손이 큰 막내 외숙으로부터 콩고물까지 얻어먹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날이 토요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낮에 미리 침구랑 세면도구나 후레시 등 간단한 생활용품을 가져다 놓으려고 막내 외숙과 함께 그 집으로 가보았습니다. 육중한 나무대문의 쪽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바로 문 안쪽 옆으로 두 칸짜리 사랑채가 있었고 그 옆으로는 낡은 창고가 하나 있었는데, 창고 문을 열어보았더니 오래된 물건이나 박스가 몇 개 쌓여있었습니다. 저 앞으로는 정원의 수목과 화초가 푸르고 울창하게 자라있었습니다. 정원 가운데 사이 길로 걸어 들어가면 한옥 본채가 나왔는데, 툇마루의 기둥이나 지붕 처마를 보면 대충 지어놓은 한옥은 아닌 듯했습니다. 본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대청마루방, 사랑방, 그리고 사랑방 옆으로 미닫이문을 통해 들어 다니면서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문방文房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변소가 정원 저 오른쪽 구석에 있는 것이 좀 신경이 쓰였습니다. 본채에서 보면 정원의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지만 정원 가장자리로 빙 둘러 걸어가서 변소 처마 아래 있는 스위치를 켜면 천장의 알전구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일주일 동안 사용할 사랑방에 침구와 생활용품을 풀어놓고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부터 막내 외숙과 그 집에서 만나 잠을 자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별 다른 준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간단하게 씻고 집으로 돌아오든지 만약 가방을 싸들고 갔다면 바로 학교로 가면 될 것입니다. 아마 그때가 날씨가 선선해져오는 9월말이나 10월초 경이었을 것입니다. 새벽녘이면 불을 때지 않은 방바닥에서 제법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었거든요. 그리고 10월초에는 휴일도 많고 또 주말이 끼어있어서 부담이 덜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토요일 저녁밥을 맛나게 먹고 슬슬 그 집으로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막내 외숙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막내 외숙은 갑자기 친구로부터 연락이 와서 친구를 잠깐 만나고 그 집으로 갈 터이니 먼저 가서 책이라도 읽으면서 있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막내 외숙에게 가능한 빨리 그 집으로 오겠다는 다짐을 받은 뒤에 그날 밤에 볼 책을 몇 권 들고 그 집을 향했습니다. 9월말쯤이면 추분도 지난 가을철이라 생각보다 밤이 일찍 찾아옵니다. 오후 들어서서 날씨가 조금씩 흐려지더니 해름 무렵에는 약한 이슬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뭐 일단 비어있는 집에서 밤을 지새우는 분위기는 척척 알아서 만들어져갔습니다. 완만하게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낡고 유서由緖 깊은 분위기의 한옥들이 여기저기 들어서있는 차분한 동네인데, 일단 큰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있는데다가 주변에 상가 등이 없어서 너무도 조용했습니다. 지금 같으면 어허, 딱 내 체질體質이군!’ 하겠지만 그때는 이런 한적閑寂과 고요란 무지하게 재미없음을 뜻하고 있었거든요. 나무대문의 쪽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설 때는 비가 조금 실한 이슬비로 바뀌어있었고, 공기 중의 희무끄름한 기운은 머지않아 밤이 찾아올 것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나는 사랑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침낭寢囊을 펼쳐놓고, 툇마루 기둥의 옥외등屋外燈도 켜놓았습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에 마실 물을 담아 사랑방에 가져다놓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막내 외숙이 그 집에 올 때까지 담장 안으로 닫혀있는 어둠속의 깊은 정원을 들여다보든지, 허공을 빗질하는 듯한 소슬.. 소슬.. 빗소리를 듣든지, 사박.. 사박.. 책장을 넘겨가며 책을 읽든지, 아무튼 시간을 보내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내 외숙이 그 집에 올 때 찐빵을 사가지고 온다는 말도 내게는 은연중 바라 마지않는 상당한 기대감이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깊어가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툭.. .. .. 처마에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왠지 점점 커지고 있었습니다. 사랑방 방문을 닫혀놓고 있었더니 바깥 풍경이 몹시 궁금하더니만 이제 방문을 열어두고 있었더니 훤한 불빛아래 방안이 다 드러나 보이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가만 생각해보았더니 사랑방 문을 열어놓거나 닫혀놓거나 정원의 울창한 어둠속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내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방문을 열어놓고 집에서 책과 함께 들고 간 방망이를 벽에 세워놓고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습니다.

 

 

 

 

 

  밤은 더 깊어가고 세상이 모든 입을 닫혀버리자 귀가 점점 예민해지면서 처마의 낙숫물 소리와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바람에 불려 쓸려 다니는 빗소리가 미세하지만 다르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어떤 알지 못하는 소리가 이따금 섞여난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귀가 알아차리고 있었습니다. 이쯤해서 막내 외숙이 그 집으로 온다면 좋겠지만 친구를 만난다던 막내 외숙이 반가운 마음에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면 다소 심각하지만 막내 외숙에 대한 기대감은 서서히 절망감으로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슬그머니 방망이를 바짝 내 곁으로 끌어다놓고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을 하면서 소리들을 하나씩 제거해가다보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소리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소리가 바로 그 소리일 테지요. 처음에는 낙숫물 소리를 제거하고 다음에는 나뭇가지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제거하고 그 다음에는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는 빗소리를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들 사이사이로 들려오는 그 소리에만 집중을 해보았습니다. 젖은 땅바닥에 무언가 끌리는 듯한 소리거나 나무 둥치에 문지르는 듯한 소리 혹은 문을 천천히 여닫는 듯한 소리가 아주 낮고 부드럽게 들려왔습니다. 수많은 소리들 중에서 숨어있는 소리를 선명하게 골라내서 들을수록 입안이 자꾸만 말라갔습니다. 그렇지만 컵에 주전자 물을 따라 소리 내어 마시고 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에서 꼭 예기치 않는 일이 발생합니다. 갑자기 화장실을 가고 싶은 충동적인 욕구를 느낀 것이었습니다. 아마 오늘 낮에 침낭 등 생활용품을 두러 그 집에 처음 왔을 때 정원 오른쪽 한 구석에 외따로이 서있는 변소를 보고 한 밤중에 변소를 사용해야하는 부담감 같을 것을 느꼈을 것인데 가장 난처한 순간을 만나자 나도 모르는 감각이 깊은 무의식 속의 불안을 꼭 집어내어 밖으로 끌어내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충동을 느끼자 배설욕구를 참는다는 것이 심리적 불안보다 훨씬 드세게 온몸을 압박해왔습니다.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 이제는 몽둥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야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이 되면 육체적 욕구가 심리적 불안을 얼마만큼 완화시켜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툇마루로 나가 신발을 신고 후레시를 앞으로 비쳐보았습니다. 동그란 빛의 다발 안으로 사선을 긋고 있는 가느다란 빗줄기가 보였습니다. 후레시와 몽둥이를 들고 정원 가장자리의 담을 따라 빙둘러가면서 천천히 변소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 도중에도 온몸에 힘을 줘가면서 겨우 버텨낼 만큼 뜨거운 욕구가 아랫배를 쿨렁쿨렁 감싸고 있었습니다. 변소 앞에 도착을 하자 망설이고 꾸물댈 여유가 없었습니다. 변소는 두 칸으로 남자용과 여자용으로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재빠르게 처마 아래 기둥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켜고 남자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면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약간은 허탈했지만 어쨌든 몸은 후련해졌는데 왜일까 꼭 비워낸 만큼 불안감이 어느새 그 자리를 채워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안감이야 어찌됐든 변소에서는 일단 밖으로 나가야했습니다. 일부러 숨을 모두어 헛기침을 한 차례 뱉고는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슬비 내리는 소리가 귓전에 대고 부드럽게 속살거리듯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기둥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끄고 돌아서서 후레시로 앞을 비추면서 담장가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미세한 기척 같은 것을 등 뒤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더니 남자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바로 조금 전에 남자 화장실 기둥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내린 감촉이 아직 오른손 검지 끝마디에 남아있는데 불이 켜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뭔지 불안했지만 그럴수록 또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눈동자에 기합을 넣고 변소로 돌아가서 다시 남자화장실 스위치를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불이 확실하게 꺼져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후레시로 앞을 밝히면서 담장가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감각이 예민해진 등 너머 은실 같은 빗줄기 사이로 역시 똑같은 느낌이 뒷목덜미를 섬찟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몽둥이를 든 손에 힘을 꽉 주고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이번에는 남자 화장실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도 손을 대본 적이 없는 여자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대로 온몸이 굳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몸을 돌려 재빨리 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데 두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를 꽉 물고 방망이와 후레시를 양손에 든 채로 불 켜진 여자 화장실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언가 억눌린 비명 같은 것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목젖에 꾹 달라붙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무척이나 길게 느낀 시간이었지만 실제로는 십초나 아마 그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때 대문을 두드리면서 내 이름을 크게 부르는 막내 외숙의 기분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더니 나무대문의 쪽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소리가 나고 막내 외숙과 누군가의 대화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몸이 부드럽게 풀리는 감각을 느끼면서 막내 외숙을 부르려는데 그때 여자 화장실 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그리고 여자 화장실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정원의 나무사이 어둠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지듯 걸어갔습니다. 저만큼 막내 외숙의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오면서 다시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도 막내 외숙을 부르면서 그쪽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막내 외숙은 친구를 데리고 함께 그 집으로 왔던 것입니다.

 

 

 

 

 

  나는 급하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도 조금 전 상황을 설명하면서 변소에서 나온 여자가 사라진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내 말과 표정을 지켜보고 있던 막내 외숙은 재빠르게 정원과 대문 쪽을 한 바퀴 돌아보고 와서는 일단 나를 툇마루로 데리고 가서 앉혀놓고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우리 세 사람은 정원 한 구석의 변소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남자 화장실이나 여자화장실이나 불이 모두 꺼져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열고 확인을 해보았는데 여자 화장실은 문이 잠겨있었습니다. 나는 이해가 가지는 않았으나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가면서 다시 설명을 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여자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가 미끄러지듯이 정원의 나무사이로 사라진 방향을 알려주었습니다. 막내 외숙이 내가 들고 있던 후레시를 달라고 하더니 비에 젖어있는 정원 바닥을 비춰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사라졌다는 나무사이를 따라가면서 후레시로 땅바닥을 계속 비춰보았습니다. 잠시 후 막내 외숙이 어느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땅바닥에는 누군가가 조금 전에 걸어갔던 신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누군가가 정원의 나무사이를 걸어간 것은 사실인 셈이 되었으나 화장실 불이 켜져 있었다거나 더구나 여자가 나왔던 여자 화장실 문이 잠겨있는 것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막내 외숙은 나무나 화초를 훔치려고 정원에 들어왔다가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을 알고 나를 놀래주려고 장난을 치다가 일행들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도망친 것 같다고 했지만 당시 상황들을 눈앞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고가의 나무나 값비싼 화초를 훔치려고 담을 넘어 정원에 들어온 도둑이 그렇게 정교한 트릭을 써가면서 나를 놀래 킬 이유가 없었고, 사람이 어떻게 빗속에서 나무사이를 미끄러지듯 스르르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침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친구에게 막내 외숙이 한옥 정원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렇다면 자신도 함께 가서 정원을 구경하고 잠을 자도 되겠느냐고 물어서 데려왔었다고 했습니다. 막내 외숙의 친구는 직업이 정원사였습니다. 다음날부터는 그렇게 세 사람이 한옥 지킴이가 되어 밤마다 잠을 잤지만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지요, 아무리 뛰어난 도둑이거나 설혹 귀신일지라도 장정 세 명은 부담스럽고 거북살스러운 존재였을 테니까요.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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