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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12월1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12.19|조회수29 목록 댓글 0



 2018.12.19.. 맑은 하늘아래 탁한 made in china 공기



 

 

 

 1216,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2.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예전에는 광주의 외곽이었던 돌고개를 지나 농성역부터 송정역에 이르는 이 도로변은 어딘지 강동구 천호동을 연상하게 해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천호동이 1980년대 이후 길동, 명일동으로 이어지면서 하남까지 연결되는 신시가지를 이룬 것처럼 1990년대 이후 치평동에 있던 상무대尙武臺가 장성으로 옮겨가면서 시청이 그 지역에 들어서자 주변이 활기를 띄면서 개발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광주의 원 터전인 충장로, 금남로, 대인동, 계림동, 서석동, 동명동 등은 자연스럽게 구 도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70년대에는 주변이 온톤 야산이었던 이곳이 이제는 도로변을 빌딩으로 채워놓아 광주시가 주변의 중소도시에 지배적 영향을 끼쳐 통합을 이루는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 형태를 띠게 된 것이지요. 1980년대를 기점으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고 벽해碧海가 상전桑田으로 탈바꿈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모임장소인 이 음식점은 아귀찜, 낙지찜과 탕을 전문으로 하는 곳 같습니다. 원래는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 먹고 많이 먹고 오래 먹는 나지만 2011311일 이후로는 일본을 포함한 인근해역 해산물은 원천적으로 삼가고 있으며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바다와의 깊은 정분을 생각해서 김과 멸치만을 먹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이렇게 모임자리에서 해산물이 식탁에 오르게 되면 다소간 심적 갈등을 겪으면서 젓가락을 대기는 합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일본에는 세미나든 방문이든 관광이든 가지 않는다는 일본행 불가주의不可主義입니다. 물론 아베 신조가 정중하게 초대를 하더라도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에도 가지 않을 작정입니다.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별로 초대할 생각이 없는 듯하지만 나도 그런 초대에는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밝혀드립니다. 식사 전에 먼저 에피타이저(前菜)로 콩나물바지락국이 나왔는데 국물이 담백하고 시원한 게 훌륭한 전채였습니다. 나는 숭늉과 밥은 좋아하지만 술은 별로 즐기지 않아서 소주와 청하와 맥주 중에서 인사로 맥주만 한 잔 받았습니다. 약속시간이 되자 동생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이내 다 모였고 시켜놓은 본 음식인 아귀찜과 낙지찜 그리고 대구탕이 나왔습니다. 요즘 몇몇 설렁탕집이나 백반전문점을 제외하고는 김치나 깍두기가 맛난 음식점을 찾아보기가 드문데 여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장김치처럼 양념을 한 기다란 폭김치가 나오긴 나왔는데 간이 짠데다가 배추가 조금 질겼습니다. 기본적으로 김치가, 특히 김장김치가 맛나려면 우선 배추 자체가 고소하고 사각거리면서 단 맛이 약간 도는 싱싱하고 속이 꽉 찬 폭배추여야 합니다. 거기에다 간이 잘 맞아야하고 젓갈 넣은 진하고 깊은 맛의 양념에 잘 숙성시켜야하는 등 손맛에 더해서 정성과 마음을 써야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가격표를 보고는 낙지찜의 가격이 아귀찜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 놀랐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낙지전문음식점이 두 군데나 있어서 길을 지나가다가 슬쩍 안을 들여다보면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걸로 봐서 낙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한데 이렇게 낙지요리가 비싼 줄은 몰랐습니다. 물론 낙지 중에는 예로부터 세발낙지가 유명해서 요즘에는 목포 세발낙지를 쳐주는 모양인데 내 기억에 의하면 예전에는 무안이나 함평 세발낙지가 더 많이 알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래 세발낙지는 별로 크지 않아서 참기름소름에 발라 통째로 한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먹는 맛이 일품인데 아이들은 위험하다며 어른들이 잘라주었습니다. 통째로 있을 때보다 낙지를 잘라놓으면 부위별로 꿈틀거리는 모습이 징그러워 여자들은 거의 먹지 않는데 우리 할머니는 소주에다 맛나게 잘 드셨습니다. 그걸 보고 자란 나도 참기름소금 세발낙지를 잘 먹었는데 2011년 이후로는 먹지 않습니다. 오늘 음식점에서 식탁에 나온 것은 세발낙지가 아니라 중 낙지를 콩나물과 고추장과 파와 마늘과 전분에 보글보글 끓여낸 낙지찜이었습니다. 유태인들은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먹지 않기 때문에 낙지나 문어요리는 금식禁食에 해당하는 음식일 터이고 또 그들은 육류와 유제품乳製品도 같이 먹지 않습니다. 아마 종교적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귀찜과 낙지찜과 대구탕을 먹으면서 맥주 한 잔을 조금씩 삼켜가면서 세 시간가량 이야기를 하고 듣고 나누었습니다.





 

 오늘 모인 형제들 중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보니 어른들이나 집안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려다달라고 동생들이 자주 청해왔습니다. 이제 동생들도 50, 60대여서 문중이나 고인이 되신 어른들 소싯적 이야기에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듣는 동생들이 사실대로 알려달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 있는 그대로 말하기 애매하거나 난처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일찍 돌아가신 어른들 소싯적 이야기는 사랑방 옛날이야기처럼 모는 슬쩍 다듬고 흠은 슬그머니 메워서 구수한 해피엔딩 동화로 자연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어른들과 함께 살아본 적이 있었지만 동생들은 얼굴도 모르고 이야기로만 들었던 어른들의 환상을 깰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바탕 옛날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이번에는 대화의 당연한 순서인 경제 이야기로 화제가 돌아갔습니다. 동생들 중에는 사업주도 있고, 근로자도 있고, 개인사업자도 있어서 각각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는데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최저임금제最低賃金制에 대한 시각의 차이였습니다. 그렇게 한참 좌충우돌左衝右突 화제를 바꿔가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 모인 우리들이 고향故鄕과 성은 같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환경이나 생활방식이 다소간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법이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이 한 형제이셨고 우리 삶의 배경이 되는 것들의 공통분모가 조금 많았을 뿐이지 그런 조건들로 인해 생각하는 방식까지 동일하게 형성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정치이야기도 나왔고 건강이야기도 나왔고 아직 이성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있는 오십대와 다소 시큰둥해진 육십대의 대여성관對女性觀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한국남자韓國男子들에게 여자 이야기와 먹는 이야기가 가장 즐겁고 행복하고 가슴 뛰던 때는 역시 군대생활 시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저런 대화중에 언젠가 어느 여자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가 육십六十이 넘으면 여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고 했던 말을 기억해보았습니다. 글쎄요, 내가 육십六十을 넘기다보니 여자에 대한 느낌이 가슴 설레는 강렬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가슴 푸근해지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뭐 슬그머니 감정을 이입시켜가면서 은근히 폼을 잡고 어렵게 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만 역시 누가 뭐래도 하늘아래 여자가 있기 때문에 세상이 이만큼 아름답고 잘 돌아간다고 이따금 생각을 합니다. 해도 해도 끝없는 이야기들을 이러구러 하다 보니 벌써 밤9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음식점에서 나와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대로 헤어질 수가 없다면서 어깨동무를 한 채 길 건너편 맥주 집으로 들어가서 땅콩과 노가리를 안주삼아 맥주를 한 잔씩 마시다가 나는 서울로 돌아갈 버스를 예매해두었기 때문에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야했습니다. 여기에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한 시간가량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걸어가도 고속버스출발 5분전에는 도착할 수가 있을 만큼 슬슬 걷기로 했습니다. 가벼운 술기운에 헛헛해진 두 볼을 쓰다듬는 12월의 어둠한 밤바람이 딱 기분 좋을 만큼 상쾌했습니다. 왔던 길을 그대로 되 집어 쌍촌역을 지나고 화정역을 지나고 농성역을 지나서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정확하게 서울행 출발 5분전이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는 고속버스 안에서 거의 꿈도 없는 잠을 잤습니다. 강남터미널에 도착을 했더니 새벽230분경이었습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몸을 씻은 다음 책상에 앉았습니다. 나는 하루 전의 그 자리에 그 사람으로 꼭 돌아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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