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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요 법 회

천장사에서 열린 일요법회 - 21.10.03

작성자자작나무|작성시간21.10.04|조회수218 목록 댓글 0

봄 5월과 더불어 가을 10월은,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더구나 중국을 지나지 않는, 동풍 또는 동남풍이 불어와서, 미세먼지 없는 상괘한 날씨가 이어집니다.

 

날씨 좋은 오늘 천장사에서 회주 스님이신 옹산스님과, 주지 스님이신 중현스님을 모시고 일요법회가 열렸습니다.

 

 

오늘 법회의 공덕이 온 우주 법계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회향되기를 바라면서, 범능스님의 '회향'을 들어봅니다.

 

 

 

어제는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노지 캠핑을 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일요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요즘 계속 휴일마다 텐트에서 잠을 자다보니, 의하해 하는 분이 계신데, 저는 백패킹 매니아도 전문가도 아닙니다. 장비도 별로 갖추지 못했고요.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쉴 때, 도시를 벗어나서 그냥 쉬는 방법이 가끔 이렇습니다.

 

 

 

 

 

 

회주스님이신 옹산스님과 주지스님이신 중현스님입니다.

 

 

 

 

주변으로 꽃들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천장암은 작은 절입니다.

호박과 꽃과 신발들의 모습이 천장암의 이미지와 어울립니다.

 

 

 

저 돌탑은 기울어지지 않았지만, 기울어져 보입니다. 사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삼라만상은 모두 완전하고 여여하다고 합니다.

 

저 돌탑처럼 기울어진 우리의 마음에 탐진치가 소멸되어 모든 것이 올바르고 원만구족하기를 기원합니다.

 

천장암 산신각입니다. 애초에 산신각은 우리나라 토착 신앙과 관련된 비불교적인 요소라고도 합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현대의 지식들이 우리가 사는 곳에서 유효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 우주적 체계와 물질 비물질 등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완전히 빗나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물질의 기본적인 핵심 속성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불확실한 가정에서 출발한, 현상에 대한 보이는 결과들만 가지고, 근사치로 세상과 종교를 재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정신과 물질의 관계 등은 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뉴턴의 이론이 맞지 않지만, 비슷하게 맞습니다. 비슷하다는 것은 핵심에서 완전히 빗나감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최첨단 과학이 비슷하게 맞을 수 있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계界에서만 유효할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면, 산신각을 비불교적이라고 매도 할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산신각에서 기도를 하거나 참배한 적은 없습니다. 과학적이라 그런가요 ??

 

보이는 세계는 실재實在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리학 교양서,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Reality is not what it seems)'란 책이 종교적 관점을 다루지는 않지만, 현재의 과학 이론을 종교에 대입하여 맹신하는 것은, 물속에 잠긴 더 큰 얼음 덩어리를 보지 못하고 빙하를 말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는 합니다.

 

세상엔 신비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죽음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그것은 불교적으로 보면 '해탈' 상태입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해탈합니다. 기쁨도 괴로움도 없는 영원한 평안입니다.

 

불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업에 의해 윤회합니다.

저도 윤회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확신은 확신을 가지려고 몸부림친다고, 확신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마음을 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종교적 믿음의 확신, 비확신의 정도는 개인 신앙의 영역입니다. 불교적으로 보면, 근기와도 관련 있어 보이는데, 저는 근기가 약한가 봅니다.

 

차마시는 정감있는 방 뒷편, 산신각 오르는 길 옆의 채마 밭. 스님께서 씨를 뿌리셨다고 합니다.

 

산신각 오르는 돌계단 밑에 가시상추 비슷한 식물이 있습니다. 나물로 먹어도 되는 것으로 압니다. (가시상추 아님)

 

 

냥이가 나른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심심해 보이는 얼굴입니다.

 

키엘케고르가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인간과 더불어 권태를 창조했고,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권태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겁니다.

 

일이 많아 바쁠 때는 모르지만, 시간이 조금만 남아도 권태감을 느끼게 되고, 별에 별짖을 다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창조적인 일도 하지만, 요즘엔 더하여 인터넷이 확산되고 오락과 취미에서 터부시되는 선을 간당 간당 넘나드는 행위가 넘쳐납니다.

 

권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양식을 가진 사람들은 참 인간다워 보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시간이 남으면 몹시 심심함을 느낍니다. 늙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궁리해 보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칠순을 맞은, 인품 훌륭하신 거사님 댁으로 갑니다.

 

 

 

 

오늘도 알 수 없는 시간의 경계 속으로 저물어 가고, 저는 집으로 돌아 갑니다.

 

 

- 여기 자작나무의 글들은 개인 입장의 천장사 이야기일 뿐, 스님이나 천장사를 대표하지 않음을 알립니다. 단지 가볍게 읽어보는 바람 불면 날리는 단풍잎에 담긴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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