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07.月. 맑음
산중山中의 깊은 섬.
가까운 산봉우리를 등으로 대하고 인법당 마루에 걸터앉아 솔숲을 내려다보는 경치가 화선지에 쳐놓은 묵화墨畵 같았다. 그 한가운데 절로 올라오는 샛길이 한 번의 붓질처럼 휘어있었다. 일행들이 부도탑을 보러 내려간 사이에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두 뼘쯤 눈길을 떨어뜨려 병풍처럼 벌리고 선 솔숲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성주산 품안에 이처럼 속 깊은 산중이 있으리라고는 애당초 상상을 하지 못했다. 푸른 솔숲 위로 맑은 절집 하나가 배에 실린 섬으로 둥실 떠있었다. 세상이 자욱한 날에는 운무에 감겨있는 절마저 하얗게 보여서 본래 숭암사崇巖寺였던 이름이 백운사白雲寺라고 바뀌었다고 한다. 구름 속을 떠다니는 산중의 깊은 섬인 백운사는 서해에 내려놓은 닻을 이제 서서히 끌어올리고 있는 배에 작은 몸을 의탁하고 싶은 듯 보였다. 그렇게 9월의 첫 번째 일요일이 가고 있었다.
“아니, 신발이 한 짝밖에 없네. 이걸 어째, 우리 개가 물어 갔나봐. 너희들 중 누가 신발을 물어 갔니?” 인법당 건너편 마루에서 주지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차, 하고는 그쪽을 향해 말을 했다. “저어, 스님. 제가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왔습니다. 오른발에 기브스를 해서 그쪽에는 신발을 신지 못하거든요.” 스님께서 이편 마루로 건너오셨다. 나는 스님께 오른 발 기브스를 보여드리면서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사찰순례를 가는 데마다 법당이나 방에 들어갈 때는 원래 신발을 한 짝만 신고 왔다고 미리 말씀을 드려놓지 않으면 그때마다 애꿎은 개나 고양이들이 혼이 나더라고요.” 백운사 주지이신 지황스님께서 내 발을 쳐다보고 활짝 웃으셨다. 그리고 마루 옆자리에 조용히 앉으셨다. 주지스님은 저쪽 어딘가로 시선을 투욱 떨어뜨린 채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가 무척 아름답지요?” 내 마음이 스님의 말씀에 정말 그렇다고 바로 응답을 했다. “네, 차를 타고 절에 올라왔다가 도량을 둘러보고 그냥 차를 타고 내려가면 볼 수 없는 숨겨진 경치입니다.” 주지스님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하셨다. “절에 올 때 걸어서오면 저 숲 가운데 길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러면 꼭 여기 마루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가 가시더라고요. 그때 내려다보는 저 솔숲의 경치가 아름다워서 다시 여기를 찾아왔다는 사람들이 제법 많더라고요.” 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병풍처럼 에워싼 솔숲이 배가 되어 백운사를 싣고 구름사이를 둥둥 떠다니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자 먼 바다 끝에 떠있는 호젓한 섬 하나가 하얀 파도를 밀어내고 있는 풍경들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렸다. 산중의 절은 먼 바다의 섬이 되어 흰 물결 위를 천천히 떠돌고 있었다.
인법당에 모신 목조보살상은 손톱까지 정교하게 새긴 오래된 불상인데 얼굴 모습은 한국사람의 그것이라기보다는 화장을 한 인도사람의 얼굴 모습을 닮았다고 생각을 했다. 긴 눈꼬리와 붉은 입술이 더 그렇게 보였다. 보살상 옆에 걸려있는 산신탱화의 산신 그림은 중국사람의 얼굴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에 쓴 두건이나 동자들의 머리모양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불교는 인도로부터, 산신사상은 도가의 신선사상과 많은 교류 속에 우리들 안에 생겨난 것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살아있는 예例라고 생각을 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사상이든, 철학이든, 종교든 간에 오랜 세월을 통해 상호관여相互關與와 충돌衝突 속에서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제각기 지역과 문화의 특성을 덧입혀가며 나름대로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랬다.
보령의 폐사지廢寺址인 성주사지聖住寺址의 위세에 눌려 성주산 백운사白雲寺를 가서 보지 않았더라면 매우 서운할 뻔 했다. 지난 번 참배를 갔던 보개산 구절암이 그렇게 눈에 들어오더니 선방禪房 자리로는 오히려 백운사가 더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렇지 않아도 백운사 주지스님의 말씀 중에 이런 대목이 들어있었다. “백운사는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성주산문聖住山門을 일으키신 낭혜 무염 화상께서 주석駐錫하신 곳이잖아요. 그래서 그 전통을 이어받기 위해 앞으로 여기 백운사 도량에 선원禪院을 개창開倉할 생각으로 선원을 한 채 지었답니다. 구산선원九山禪院이라는 현판도 걸었거든요.”
(- 산중山中의 깊은 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