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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거 소식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5.08.05|조회수121 목록 댓글 1

하안거 소식

선일스님 잘 지내시지요? 올 봄에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같이 지내고 하안거를 지내러 봉암사로 떠난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네요. 아직 방함록이 도착하지 않아 확실히 모르겠지만 스님 법랍을 견주어보면 이번 철에도 대중을 이끄는 소임을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 여름에도 겨울에나 입는 두꺼운 속옷을 입고 지내야 하는 냉병을 앓고 있는 스님이기에 옆자리에 앉은 스님이 열체질이면 어려움이 많을 텐데요. 출가한 이후로 25년 동안 스님의 이름처럼 선원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한 길을 걸어가는 모습에 존경스런 마음이 절로 우러납니다. 나는 세상을 버렸거니 다시 무엇을 바라리오(我捨世更何希)라는 경허스님의 말씀처럼 무엇이 되고 싶거나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지 않았다면 갈 수 없는 길일 것입니다. 요즘 스님을 만나면 스님의 얼굴에서 맑은 가을바람을 느끼곤 합니다. 스님은 성격이 조용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성격인 반면 나는 우스갯소리를 좋아하고 무슨 일이든 꾸미는 걸 좋아해서 해제철에 서로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아마 하안거 동안거 결제가 있어 3개월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만남이었기에 우리의 만남이 더욱 충만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우리를 아는 도반들이 ‘의좋은 형제’라는 비석을 세워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천장암 선원도 저까지 일곱명이 모여 하안거를 지내고 있습니다. 입승스님으로는 지난 동안거에도 사시고 묵언수행자 인듯 항상 말이 없으신 명오스님을 모셨습니다. 대중스님들은 천장사가 가난과 불편을 감수하시고 오신분들이라 그런지 모두 근검절약하시고 자비심이 넘치는 분들이십니다. 가장 연로하시고 항상 얼굴에 미소를 보이시는 지각스님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 정통소임을 맡으셨고 대중들을 위해 차 끓이는 다각 소임과 아침 도량석은 길상스님이 맡았습니다. 대중스님들은 다각스님을 배려하여 별도의 차담시간을 갖지 않고 점심공양후에 가볍게 과일을 먹는 것으로 차담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일을 잘해서 일을 싫어하지 않는 청강스님은 밭을 관리하는 원두소임을 맡았고 큰방청소는 오후불식하는 성암스님이, 가장 법랍이 어리지만 사교성이 좋은 선행스님은 서기소임을 맡았습니다. 이번에 우리 선원의 가장 큰 이야기꺼리는 선원스님들이 매주 열리는 일요법회에 돌아가면서 설법을 해주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선원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러스님들의 설법을 듣는 기회를 만난 신도님들은 큰 환희심으로 법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설법할 만한 공부가 없다”고 사양하시던 스님들도 산골에서 매주 일요일 법회를 개최하는 저를 어여삐 보셨던지 이제는 신도님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입밖으로 나가는 말’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한 스님이 한철에 두 번의 설법을 하게 되는데 태어나서 처음 설법을 한다는 스님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스님은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불법을 만나 출가하게 된 이야기를 해 주시고 어떤 스님은 정진하다가 겪은 경험담을, 어떤 스님은 병마와 싸우다 이겨낸 이야기를, 어떤 스님은 참선을 왜 해야 하는가를 즉문즉설 방식으로 풀어 나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승속이 어울리는 일요법회는 앞으로 스님들의 양해를 얻어 계속해 나가려고 합니다. 저는 이곳이 가난하고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공부가 되고 소통이 되어, 도반끼리 우정이 쌓여가는 선원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동안거 방부안내문에도 “이곳은 충청도의 가난한 사찰입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아시는 분들이 저희 선원에 오셨으면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이제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서로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 찻 자리가 기다려집니다. 물론 그 자리는 침묵만으로도 충만한 찻 자리일 것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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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행복맘 | 작성시간 15.08.05 일전에 남편과 함께 찾아뵈었다가 귀한차를 대접받고 참 행복했습니다. 종종 천장암 사이트에 들어와서 글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스님의 매끄러운 글솜씨와유머, 불교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 신도님들의 깊은 신심에 많은 감동을 느낍니다. 일상에 지친 우리 아이들과 한번 찾아뵙고 휴식을 갖고싶은 유일한 쉼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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