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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안보는 승가를 위하여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6.05.26|조회수78 목록 댓글 1

눈치 안보는 승가를 위하여 -발제문

 

허정 스님/서산 천장사 주지

 

10년 전 인도에서 살 때 나는 미얀마 스님들과 5년 정도 기숙사에 살았습니다. 그 미얀마 스님들은 당번을 정해서 시장도 보고 부엌에서 요리도 같이 하고 공양도 같이 먹고 예불도 같이 하는 등 대중이 화합해서 사는 아름다운 승가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미얀마 스님들의 숫자가 줄지 않고 계속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공부를 마치고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미얀마는 군부독재 치하에 있기 때문에 스님들은 늘 감시를 받는다고 합니다. 사찰에서 법회를 할 때 설법원고를 미리 형사들에게 보여주고 문제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설법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법시간에도 사복경찰들이 잠복해 있다가 조금이라도 민중들을 자극하는 말을 하면 설법중임에도 법사를 어디론가 끌고 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른말을 하다가 잡혀간 스님들이 수백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인도에서 가능하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더 머물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나는 그때 미얀마가 불교의 나라라고 하지만 팔정도의 정어(正語)를 실천할 수 없는 슬픈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남북이 갈라져 있기는 하지만 스님들이 눈치보고 말을 해야 하는 그런 나라는 아니라고 그 스님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우리 스님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하는 것에 회의를 느낍니다. 이번에 총무원장 선거법을 주제로 9번의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가 있었습니다. 지위와 권위를 내려놓고 평등하게 듣고 말하겠다는 대중공사 약속이 무색하게 일부 스님들과 불자들은 총무원장스님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총무원장스님이 이례적으로 염화미소법이 최선의 법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였을 때 참석대중의 입은 얼어붙었습니다. “‘염화미소법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염화미소법을 지지합니다라는 전혀 불교적이지 않은 발언들이 이어져 나왔습니다. “모르지만 지지한다는 것은 나는 어떤 압력을 받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입니다.

 

지난 62일 총무원장선출제도혁신특별위원회는 염화미소법으로 총무원장선거법 안을 확정했습니다. 대중의 민의를 대변해야할 종회가 61%의 대중의 뜻을 져버리고 9%염화미소법을 채택한 것입니다. 특위 위원들은 대중공사가 전체 종도의 뜻처럼 비춰지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대중공사의 결과가 마치 종도의 뜻이 아닌 것처럼 말했다 합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25교구본사를 돌며 각본사의 대표자들을 모아놓고 한 달 동안 논의 한 것은 종단 최초의 일입니다. 그것도 브리핑과 토론과 리모콘 투표를 활용하여 대중의 의견 변화를 체크해가며 대중의 뜻을 최대한 모은 획기적인 대중공사였습니다. 이보다 정성스럽게 이보다 더 자세하게 대중의 뜻을 물은 적이 없는데 이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종도의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런 대중의 뜻 말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떤 결과가 나와야 종도의 뜻이라고 받아 들일거냐고 묻고 싶습니다. 최선의 결과를 마주하고도 완벽한 결과가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은 나는 그 결과가 싫어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중의 뜻을 받기 싫으면 종회의원을 그만 두시라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종회의원들은 계파에 소속되어 자신의 소신을 말하지 못하고 있듯이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스님들도 직선제를 지지는 하지만 공개적으로 지지할 수 없는 내 처지를 양해해 달라고 오히려 저에게 부탁합니다. 현행 총무원장 선거법이 문제가 있다고 80%가 인식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출가한 스님들이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합니까. 누구를 쫓아내자는 주장도 아니고 다만 지도자를 뽑는 과정과 방법을 허심탄회하게 묻고 있는 것 분인데 왜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고 긴장을 하고 있나요? 초등학생들에게 애들아 이번에 반장선거를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까?” 하고 질문하면 학생들은 . 저는 이렇게 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출가자는 선거방법 이야기를 하자는데 죄인처럼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말하지 못합니다. 눈치 보느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승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겁니까?

 

저는 승가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에 직선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데 어떻게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데 어떻게 토론이 가능하며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합의가 이루어지고 대중의 뜻이 드러나겠습니까.

 

미얀마스님들 뿐 아니라 지금의 한국 스님들도 발언의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미얀마는 군부독재라는 억압에 의해 발언의 자유가 침탈당했다면 한국 스님들은 돈과 명예라는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서 스스로 발언의 자유를 반납했습니다. 하늘과 인간의 스승인 부처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직선제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은 이것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눈치 안보고 말 할 수 있는 승가를 위해서 직선제가 꼭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대화와 토론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되기 위해서 직선제가 꼭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리모콘 투표나 비밀투표는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신속하게 정리하여 보여주기 위해서 필요한 그런 직선제가 필요합니다.

 

직선제를 하게 되면 후보자는 유권자에게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유권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유권자는 누구나 개인이나 단체가 요구하는 바를 말 할 수가 있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후보를 떳떳하게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때 누구를 응원하고 누구를 지지한다는 것을 정치화라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는 승가공동체가 화합하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고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때도 문중의 어른이기 때문에, 나의 사숙스님이기 때문에, 아니면 어느 선방에 같이 살았기 때문에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못난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도 허락합시다. 우리가 운영하는 직선제는 정책을 보고 인물을 보고 투표할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기권을 하더라도 자유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인정해 줍시다.

 

출가자가 자유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종단이 사회로부터 존경받으며, ‘자등명 법등명하라는 부처님의 유훈을 실천하는 길, 그길은 직선제의 실현을 통해서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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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라옹거사 | 작성시간 16.05.28 불교라는 숲만 보고 그 속에서 썩어가는 나무는 애써 외면하는 오늘의 종단 현실에 스님같은 분이 몇 분만 더 계셔도 승가가 저절로 청정해지련만... 그물에 걸리지않는 바람같이 나아가시는 스님의 모습, 희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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