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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영광스러운 변화

작성자이창희|작성시간26.06.20|조회수2 목록 댓글 0

 

우리들의 영광스러운 변화

(2:13)

 

나는 이 시간에 여러분들이 어떤 설교를 듣고 있거나 혹은 어떤 종류의 강연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가능하다면 여러분들이 홀로 구세주와 함께 있고 또 조용한 명상 속에 잠겨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제시하면서 여러분의 명상 가까이에서 있으면서 격려하는 자가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진실로 그 안에 있는 여러분들이 유익한 명상을 하고 또 끝에 가서는 "그에 대한 나의 명상은 감미로운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뻐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가운데에는 대단히 간단한 세가지 사실들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은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들이 "멀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지금 우리들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가까워 졌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 방법, 즉 이처럼 큰 변화의 수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로, 신자로서 우리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 과거에 우리들은 무엇이었는가?

 

우리들이 사망에서부터 생명으로 옮겨간 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 모두는 위대하고도 신비스러운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우리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또 다시 태어났습니다. 만약에 여러분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이처럼 큰 변화를 체험하지 못했다면, 나는 단지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오늘 밤 명상의 주제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큰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은 과거의 여러분의 형편을 기억해 보십시오. 먼저 여러분들은 이스라엘 국가의 이방인이었다는 점에서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까이 인도되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빛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 반면에 세상의 나머지 백성들은 어두움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백성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부정하게 내버려졌고 또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가까이로 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우 리들은 아론과 그의 후계자들의 희생제물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할례를 통해서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육체를 따라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그것의 특권들이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육체적 언약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가까이 인도됐습니다. 우리들은 이제 과거에 유대인들이 소유했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들의 모든 특권들과 또 그 이상의 것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림자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실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양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실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 우리들은 그림자도 실체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멀리 떨어 져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것들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들이여, 우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들은 그것을 서너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는 거대한 무지의 구름이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길도 없는 우거진 나무숲 속에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들은 먼바다로 날아간 어떤 새와 같았습니다. 길을 인도해 줄 본능도 빼앗기고 바람 따라 이리저리로 떠돌아 다니며 폭풍우에 의해서 마치 물결처럼 뛰어 오르는 새와 같았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그의 성품에 대해서 캄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추측했을 때에도 그것은 어림짐작에 지나지 않았으며 우리들을 가까이 인도해 주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더욱 더 잘 가르쳐 주십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랑이라는 사실도 알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았기 때문에, 아니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은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우리들의 무지가 우리들을 대단히 멀리 떼어 놓았습니다. 그것보다 더욱 나쁜 것은 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에 죄악이라는 산들의 거대한 산맥이 있었다는 사심입니다. 우리들은 알프스 산맥은 측량할 수가 있습니다. 안데스 산맥의 크기도 측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이라는 산맥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측량하지 못했습니다. 그 산맥은 대단히 높습니다. 그 산맥은 구름을 찌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죄악의 산맥에 대해서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태어난 이래 여러분들이 지은 모든 죄악들을 계산해 보십시오. , 어린 아이 시절의 죄악들, 젊은 시절의 죄악들, 장년 시절의 죄악들, 노년 시절의 죄악들을 계산해 보십시오. 복음을 위반한 죄, 율법을 위반한 죄를 계산해 보십시오. 육체로 지은 죄, 마음으로 지은 죄를 계산해 보십시오. 모든 형태의 죄악들을 계산해 보십시오. ! 그 죄악들은 얼마나 큰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산맥의 이쪽 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산맥의 저쪽 편에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악에게 눈짓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존재인 여러분들은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교제를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먼 거리입니까? 넘을 수 없는 산맥이 여러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때어 놓았습니다. 이제 그것은 모두 다 지나갔습니다. 그 산맥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우리들의 허물도 모두 다 지나갔습니다.

 

! 그러나 그것들은 과거에는 얼마나 높은 산들이었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것들은 얼마나 높은 산맥이었습니까? 하나님으로 향하는 다른 편에는 이와 같은 산맥 이외에도 거룩한 진노라는 거대한 심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 정당하게 진노하셨습니다. 만약에 죄악이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들지 못했다면 그는 하나님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 장난하는 사람은 결코 지존자의 성품을 알지 못합니다. 거기에는 깊은 심연이 있었습니다. 지옥에 빠진 사람들도 그것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 속에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 지존자여, 누가 당신의 진노의 힘을 알겠나이까? 우리들에 관한 한 그것은 이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심연에 다리를 놓아주셨습니다. 그는 우리들을 다른 편으로 데려다 주 셨습니다. 그는 우리들을 가까이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깊은 심연이었습니까! 아래로 내려다 보면 벌벌 떨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빙하 위에 서서 크레바스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큰 돌을 집어서 그 아래로 던져, 마침내 그 돌이 바닥에 도달하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기다려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벌 떨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러분들은 잠시 전만 해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진노의 후사의 위치에 서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다른 이들과 같이"(<2:3>)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은 또 다른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우리들이 우리의 처지를 느끼고 또 지존자를 갈망하게 되었을 때, 비록 죄의 산맥이 제거되고 진노의 심연이 메워졌다고 할지라도, 우리들 자신이 만든 또 하나의 거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넘실거리는 공포의 바다입니다. 우리들은 감히 그에게 가지 못합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을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그 피가 우리들을 깨끗이 해줄 것이라고, 즉 대속적 회생의 보혈이 우리들을 깨끗이 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우리들의 흠이 너무 나도 붉어서 제거될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감히 우리 들의 아버지의 무한한 동정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들은 그에게서 도망갔습니다. 우리들은 그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고 또 믿음에 의한 구원이 율법의 행위에 의한 구원만큼이나 어려운 일 같아 보인 때를 기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런 바다도 사라졌습니다. 우리들은 그 바다의 물결을 건너 왔습니다. 우리들도 이제 떨거나 비굴한 공포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가까이 나아가서 떨리지 아니하는 목소리로 "아바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들과 하나님 사이에 어떤 거리가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잠시 동안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의 생각은 그에게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무한히 순수하십니다. 그가 보시기에는 하늘도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천사들도 어리석다고 꾸짖으십니다. 그것은 일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살펴 보십시오. 창조주에게 반역한 벌레요, 죄로 말미암아 거듭 거듭 더럽혀진 징그러운 벌레입니다. 거지와 왕자가 함께서 있을 때 나는 거리에서 하나님과 타락한 인간사 이의 성품과 본성에 있어서의 무한한 거리와 비교해 볼 때 그것은 한 인치, 한 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이외에 그 누구가 그토록 낮은 상태 에서 그토록 높은 상태로 들어 올려줄 수가 있으며, 마귀와의 교제로부터 여호와와의 교통으로 들어 올려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 거리는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그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든 위대한 사랑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과거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대단히 단순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잠시 동안만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의 결과로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겸손한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대단히 경험이 많은 크리스천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성경에 대해서도 대단히 지적인 독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수년 동안 여러분들이 일관된 성품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여러분들이 과거의 여러분의 처지를 기억하고 또 만약에 주권적인 은혜가 없었더라면 여러분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여러분들은 그것에 대해서 영광스럽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마 여러분들 자신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현재의 특권에 대해서 너무나도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지금의 여러분이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잠깐 동안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여러분의 진정한 상태로 되돌아 가봅시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의 영혼은 십자가 밑에서 겸손하고도 존경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숙이고 "나의 주여, 나와 가장 타락한 자 사이에 당신의 은혜 이외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습니다. 나와 지옥에 있는 영혼들 사이에도, 당신의 무한하신 동정이 가져다 주신 것 이외에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습니다. 나는 겸손하게 당신을 송축합니다. 왜냐하면 당신께서 나를 가까이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들의 명상을 계속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요점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첫 번째의 요점 속에는 쓴 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다음의 생각은 그것을 없애줄 것입니다. 쓴 맛을 제거하고 그 것을 달콤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지금 우리들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사도 바울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지기를 바라노라"고 말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여러분들은 기뻐할 것입니다. 그는 마치 모든 신자들이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질 것이다"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유보된 특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현재의 축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분명하고도 명확한 지식의 대상일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로 현재의 경험적 기쁨의 문제여야만 합니다. 우리들은 가까이 인도됐습니다. 그는 이것으로써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내가 이미 말했듯이, 우리들은 이방인들로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또 은총 받은 이스라엘 나라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가까이 인도됐습니다. 즉 우리들은 과거에 은총을 받은 그 민족의 모든 특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입니까? 우리들도 역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믿는 자의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믿었기 때문에 그의 영적인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제단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우리들도 제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막에 봉사한 그들은 그것 위에 있는 것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 그들이 어떤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우리들도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늘로 올라가신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희생제물과 유월절의 만찬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우리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제물로 우리들의 죄악을 영원히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먹는 영적인 양식이 되고 계십니다.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우리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더욱 완전하고 더욱 분명한 의미에서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17>).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찾아 왔습니다. 우리들은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가까이 인도됐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보다 더욱 가까이 인도됐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들이여,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아무리 경건한 유대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에게 희생 제물을 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말은 대체적으로 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예언자들은 예외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희생제물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희생제물을 가지고 올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로서 행동 해야만 할 어떤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을 위해 서 하나님 가까이로 나아 갔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과거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그것은 천국의 노래입니다. 그것이 이 땅 위에 있는 여러분의 노래가 되게 하십시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사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5:9>~10). 만약에 우리가 구세주를 사랑한다면, 우리들은 모두 다 제사장들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다 제사장입니다. 그들은 기도와 감사의 희생제물을 가지고 와서 지존자가 계시는 성소에도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가지 더 말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단 한 사람, 즉 대제사장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제사장들도 지성소에 들어 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도 일년에 한번씩만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피와 연기와 분향이 없이는 감히 지성소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이제는 그 휘장이 제거됐습니다. 우리들은 과거의 대제사장이 느꼈던 두려움도 없이 시은좌로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시은좌 위에 있는 예수님의 피와 찢어진 휘장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필요한 때에 은혜를 얻기 위해서 하늘의 보좌로 대담하게 나아갑니다.

 

! 우리들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습니까? 우리들은 평범한 유대인들보다 더욱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제사장들보다 더욱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들은 대제사장만큼 가까이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가 계신 곳, 즉 하나님의 보좌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오늘 날 우리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떼어놓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믿는 그 순간에 죄악의 모든 산은 없어집니다. 여러분들은 그 산들을 볼 수 있습니까? 저 높은 안데스 산맥을 볼 수 있습니까? 그 누가 거기에 올라갈 것 입니까? 그러나 보십시오. 십자가 위에서 죽은 자의 흉터를 지닌 분이 오는 것을 나는 봅니다. 그가 못에 찔린 그의 손을 들어서 한 방울의 피를 그 산맥 위에 떨구자 그 산맥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산맥은 수양의 기름처럼 녹아져 버렸습니다. 그 산맥은 수증기로 변하여 사라져 버렸습니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책에는 신자에게 불리한 죄악은 없습니다.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그것을 제거하여 버리시고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서 승리하셨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모두 다 물에 빠져 죽었을 때 이스라엘은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f0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14: 28>)고 말했던 것과 같이, 모든 신자들도 "모든 죄악이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들은 깨끗해졌으며,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열납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의를 통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 모든 거리감이 사라져 버렸을 때 이 가까움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형제들이여! 우리들은 하나님 가까이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의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들의 강력한 친구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더욱 좋은 것은 우리들이 그의 자녀들이란 사실입니다. 친구는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끔찍하게 사랑합니다. 우리들은 그의 자녀들입니다. 그가 우리들을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있고 또 그의 집에서 살 수도 있으며 더 이상 영원히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됩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8:35>). 그리고 이것이 우리들의 특권입니다. 아니 그것 이상의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게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들은 그와 같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이 작은 시가 노래하고 있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에게 아주 가까이 대단히 가까이에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아들 안에서 그의 아들만큼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우리들은 그와 하나입니다. 우리들은 그의 몸의 지체이며, 그의 육신과 그의 뼈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있는 곳에 내 종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도 선언하셨습니다. 그 영광은 그가 창세 전에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입니까? 지금까지 나는 그 진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잠시 동 안 그것을 되새김질하고 자연스러운 결론을 이끌어 내며 적당한 감정을 느끼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토록 가까이 하나님께로 인도됐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형태의 생활을 영위해야만 합니까? 평범한 백성들도 결코 반역적인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궁전에 들어가도록 허용된 추밀원(Privy Council)의 구성원들은 철저하게 충성적이어야 합니다. ! 우리들은 우리를 가까이로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해야만 하겠습니까? 우리들을 굽어 살피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그의 가까이로 인도된 백성들입니다. 하늘의 것들과 거룩한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들은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만 하겠습니까? 왜냐하면 그와 같이 큰 은총을 받고도 불행한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들은 하나님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것을 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무엇이 필요하신지를 아십니다. 그는 항상 우리들을 굽어 살피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그의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하고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자의 마음 가운데에 거리감을 두고서 하는 끔찍한 기도들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일반적인 기도문들은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고도 친근감 있는 마음으로 두려워 떨면서도 믿음 가운데서 기뻐하면서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 오는 것이 가까이 있는 자들이 취해야 할 행동입니다. 사람이 어떤 이웃의 가까이에 있을 때 그는 그를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기의 슬픔도 이야기하고 그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그와 같이 대하십시오. 그에게 의지해서 살고, 그를 위해서 살고, 그의 인에서 사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을 자기 가까이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멀리 떨어지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가까이로 인도됐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우리들의 생활은 거룩한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형제들이여, 만약에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이라면 우리들 모두는 우리들의 안전에 대해서 확신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들의 하나님의 사랑과 우정에 의해서 가까워졌기에 그는 우리들을 떠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들이었을 때 그가 우리를 가까이로 인도해 주셨다면, 그가 우리를 친구로 삼으신 지금 우리들을 지켜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깊은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내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선율 향한 아무런 생각도 없고 아무런 소망도 없을 때 그는 우리들에게 그를 사랑하고 그를 갈망하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우리들을 버리시겠습니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교리는 얼마나 큰 신뢰감을 가져다 줍니까? 그리고 또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여호와께서 우리들을 가까이로 인도해 주셨다면 우리들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타락한 여자들이나 비천한 남자들은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의 무리 속에 끼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과거에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분들을 가까이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 거리가 너무나도 컸습니다. 그와 같은 거리를 없앨 수 있었던 분은 반드시 다른 경우의 거리도 역시 없앨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더욱 절망적인 사람, 가장 절망적인 사람도 그곳으로 인도될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합시다. ! 기독교의 일을 위해서 우리들의 허리에 띠를 맵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셨다면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죄인의 괴수도 수년 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겸손을 비웃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가 진리를 말했다고 믿습니다. 죄인의 괴수는 문을 통해서 하늘로 들어갔습니다. 그 리고 또 통과하기에 두 번째로 나쁜 방이 있습니다. 친구들이여 나를 위한 방이 있듯이, 여러분들을 위한 방도 있습니다. 나를 가까이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의 은혜를 받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오늘밤 여러분들의 모든 생각들에 맛을 더해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것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마쳐야만 하겠습니다. 한가지 더 있습니다. 우리들이 고려해야만 할 마지막 일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 그 위대한 변화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가?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피를 통해서 우리들은 가까이 가게 되었습니다. 대속의 교리는 이 집에 있는 신고안품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자주 그 교리를 전했습니다. 아니 끊임없이 그 교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 입이 고난과 대속과 그 후에 있은 피에 의한 구원의 옛 이야기보다 다른 어떤 주제를 더 좋아한다면, 차라리 벙어리가 되게 합시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우리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해준 것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빚을 대신해서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빚은 끝이 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죄에 대한 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므로 우리들은 징벌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대속은 다른 어떤 수단에 의해서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했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의로우신 자가 불의한 자들을 대신해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들은 칼에 맞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는 분에게 그 칼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자발적으로 우리들을 대신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공의에 배상하고 자비에 완전한 자유를 더해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까이로 인도된 것은 그 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동안 그 피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고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고뇌로 둘러싸인 생명을 의미합니다. 고난, 우리들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들이 고통을 느낄 때 여러분들은 구세주의 고통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합니다. 뼈들이 아플 때, 몸이 괴로울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마음이 우울할 때, 머리가 어지러울 때, 그럴 때에 우리들은 "나의 구세주시여, 나는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나를 구원해 주신 그 값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우리들이 고려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의 고통이 그의 고난의 진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깊은 우울함 가운데 있거나 슬픔으로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우리들은 또 다시 구세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값 주고 사주셨는지 추측하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사실들에 대해서 설교한 것으로 기록됐습니다. 나는 우리들이 교리는 전하면서 사실은 잊어 버린 것으로 기록될까봐 두렵습니다. 우리들은 교리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사실이 더 위대한 일입니다. 바울이 그가 전한 복음을 요약할 때, 그는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나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신 것이다" (<고전 15:1>~4참조)라고 말했습니다. 겟세마네에서는 피 같은 땀이 땅을 적셨습니다. 길거리에서는 진홍색의 피가 줄줄 흘러 내릴 때까지 채찍이 거듭거듭 그 복된 어깨를 찢었습니다. 그리고 밭고랑처럼 홈이 파이고 그 속에 피가 가득 고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를 세차 게 밀어서 땅에 쓰러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을 쇠줄로 나무에 묶었습니다. 그들은 그를 들어 올려서 뼈가 어긋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땅 위에 십자가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들은 앉아서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를 모욕하고 그의 목마름을 조롱했습니다. 그는 상스러운 무리들 가운데서 수치스럽게도 발가벗은 채 매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여호와께서도 그에게서 얼굴을 돌리신 것 같았습니다. 고난 당하시던 그 분은 고통 가운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거에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들이 가까이로 인도됐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분들의 구세주를 찬양하십시오. 그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십시오. 그는 이 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리고 여러분들은 그의 발 밑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습니다. ! 그의 상처에 입을 맞추십시오. 믿음으로써 여러분의 손가락을 그의 못 자국에 집어 넣고 여러분의 손을 그의 옆구리에 집어넣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십시오. "불성 실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모든 거룩한 마음의 힘으로 하여금, 구세주께서 여러분을 참을 수 없는 속박으로부터 사주신 그 값을 깨달을 수 있게 여러분의 상상력과 믿음을 도와주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사실에 대한 어떤 것을 느낄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들 앞에 진리를 제시했습니다. 이제 앉아서 마음 속으로 그 것에 대해서 조용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첫째로는 분명히 죄악의 가증스러움일 것입니다. 보혈 이외에는 죄악을 씻어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피 이외에는 그 죄악을 씻어 내줄 수 있는 피는 없습니다. , 죄악이여, , 죄악이여! 너는 얼마나 검고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인가! 오직 성 육신 하신 하나님의 피만이 아무리 작은 죄악의 흔적이라도 씻어낼 수가 있습니다. 나는 나의 마음으로 여러분들에게 죄악을 미워하라고 부탁하는 바입니다. 나의 눈들은 그것을 보지 않습니다. 나의 귀는 그것의 매력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나의 발은 그것의 길로 달려가지 않습니다. 나의 손은 그것을 만지길 거절합니다. 나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살해하고 또 영원히 박동하는 심장을 창으로 꿰뚫은 것들을 증오합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들은 그토록 값비싼 희생을 치른 데 대해서 큰 감사의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직 하나의 아들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그는, 아브라함에게 있어서의 이삭보다도 더욱 사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비록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령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은혜스러우신 아버지 깨서는 그의 아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슬픔으로 몰아 넣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우리들을 위해서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사랑 중에서 나는 어느 것을 더 찬양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우리들은 그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10:30>). 인간들의 죄악들을 위한 희생이라는 거룩한 행동 가운데서 아버지와 아들은 둘 다 동일한 사랑으로써 경배를 받아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 죄악의 가증스러움을 압니다. 왜냐하면 그것의 용서를 위해서는 예수님의 사랑과 또 구세주의 피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내가 자리에 앉기 전에, 나는 오늘 밤 우리들의 위치보다 체험적으로 우리들을 더욱 가까이로 인도해 줄 것이 무엇인 지를, 우리들의 본문과 명상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먼저 내가 어떻게 해서 가까워졌습니까? 그 피를 통해서입니다. 나는 오늘밤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기를 원합니까? 지금까지 나는 방황했습니까? 나의 마음이 냉담합니까? 나는 나의 복된 아버지에 게로 지금 가까워지기를 원합니까? 또 다시 그를 쳐다보고 "아바"라고 말하며 그런 효도정신 가운데서 기뻐하기를 원합니까? 나에게 있어서는 보혈 이외에는 더욱 가까이 나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나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십시오. 나로 하여금 그것의 무한한 가치를 알게 하십시오. 그것은 충분합니다. 나로 하여금 그것의 영원하고도 유효한 탄원을 듣게 하십시오. ! 나는 나의 영혼이 이끌리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인도해 주고 또 우리들을 곧 바로 하늘로 인도해 줄 것은 다름아닌 구세주의 끝없고 한없고 또 죽어가시는 그러나 영원한 사랑의 붉은 끈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역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가까이로 인도 하려면 우리들은 무엇을 전하고 또 가르쳐야만 합니까? 만약에 우리가 지금 그에게서 떠나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가까이로 인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철학입니까?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철학으로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결코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식입니까? 여러분들은 그것으로써 어린아이들만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으로는 비천한 사람들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 복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이것은 이 도시의 부정하고 방탕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생명과 빛과 성결로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전능한 지렛대입니다. "예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라는 이 말 이외에는 지옥의 문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파성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의 것을 자랑하는 것을 금지하십니다."

 

만약에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한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다만 복음만을 전파합시다. 복된 소식을 전합시다. 우리들 모두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 평범한 대화를 나눌 때에는 그에 대해서 말하기를 잊어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에 대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책자들을 뿌리십시오.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다른 방법들은 거의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에 관한 편지를 쓰십시오. 향기로 가득 찬 연고와 같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 향기를 발산하게 해야만 합니다. ! 우리들은 그의 사랑스러운 향기로 이 모든 이웃들에게 향기를 발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들이 어디에서 살든지 간에 우리들 모두는 우리들 마음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입술로써 그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살아도 그 안에서 기뻐하고, 죽어도 그 안에서 승리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들의 최후의 속삭임이 하늘에서의 우리들의 최초의 노래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죽임을 당하시고 또 그의 피로 우리들을 구원하사 하나님에게 드리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5:9, 12>참조). ! 나는 이 교통의 시절이 여러분들에게 대단히 감미로운 것이 되기를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여러분들이 오늘밤 우리들의 명상의 열쇠를 가지고 그 문을 열 수 있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과거에 얼마나 멀리 있었는가를 안다면 이제 여러분들이 그 보혈에 의해서 얼마나 가까워 졌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 오늘밤 이곳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 말을 꼭 해야만 하겠습니다.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가까이 인도하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 분들은 오늘밤에라도 가까이 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누구였든지 간에 그는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보혈이 여러분을 가까이로 인도해 줍니다. 곧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그를 믿으십시오. 믿는 것이 곧 사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스펄전 목사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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