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관세음보살을 염할 뿐만 아니라 또한 내 자성(自性)가운데 계신 관세음보살을 염해야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할 때 바깥에 있는 것이 안에도 있게됩니다.
무슨 말인가하면, 바깥에 관세음보살이 있으면, 내 안에도 관세음보살이 있게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는데 있어서 안과 밖이 같아지고[內外一如], 나와 남이 둘이 아닌[自他無二]경지에 이르러야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성 가운데에 시방제불의 항하사(恒河沙)처럼 많은 성덕(性德:성품의 덕)을 빠짐없이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마음속으로 더욱 지극하고 간절하게 염하여 잡념이 생기지않고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하며, 그 마음을 전일(專一)하게하여 관세음보살을 염해야합니다.
무엇을 구하거나 무엇을 탐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왜 관세음보살을 염해야하는가?'라는 생각이 있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것은 곧 자성의 본분입니다.
우리가 '염하여도 염하지않고, 염하지 않아도 염해지는'경지에 이르게되면 자성(自性)의 관음이 현전(現前)하여 하나를 이루게 되며[타성일편], 나와 남을 잊게되는데, 이 때 어떤 번뇌가 있겠으며, 어떤 무명이 있겠습니까? 무애자재(無碍自在)한 경지에 이르면 대원경지(大圓鏡智)가 자연히 현전하고,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가 자연히 현전하게됩니다.
비록 네가지 지혜가 현전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하나에서 시작될 따름입니다. 네 가지 지혜 가운데는 천차만별한 갖가지 다른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단계가 나타난다고해서 바로 부처님의 네가지 지혜와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단계든지 어떤 과위(果位)든지 모두 갖가지 같지않은 지위가 있습니다.
수행자는 "털끝만큼 차이가 나중에는 천 리나 벌어진다[失之毫釐 謬之千里]는 도리를 이해해야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야하며, 외도에 떨어져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삿된 지견의 잘못된 이론입니다. 비른지견을 지녀야 정념이 비로소 현전하게 됩니다.
관세음보살을 염함에 있어 자신의 관세음보살을 염해야하며, 다른 사람의 관세음보살을 염해서는 단됩니다. 무엇이 자신의 관세음보살이겠습니까? 바로 자신의 염함이 관세음보살과 같이 되며,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갖추고 관세음보살의 희열을 갖추고 또한 관세음보살처럼 고난을 구제하고 32응신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 대희대사(大喜大捨), 대지혜(大智慧), 대원력(大願力)을 배워야합니다.
출처: 부처님 말씀 그대로 행하니 (부제:선화상인의 들려주는 수행이야기 선화상인강설,정원규편역, 불광출판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