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강처럼 흐르고 저 언덕을 바라보다
몸이 영 개운치가 않다.
모든 고통이 일어날 조건만을 갖추고서, 고통이 없기만을 바라나니 그것도 큰 고통이다.
이와 같은 몸과 마음의 작용이 계속되는 한 고통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기뻐함도 고통이요, 쾌락도 고통이요, 갈망과 성냄도, 아견과 번민과 무지도 고통이요, 업과 감각도 고통이요, 만남과 헤어짐도, 생각과 감정의 일어남과 사라짐도, 사랑도 미움도 모두 고통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하루속히 벗어나기를.
고의 소멸, 존재의 소멸
오직 원하옵니다. 닙바나의 성취.
모든 조건 지어진 것으로부터의 벗어남.
(초기불교의 수행은 몸과 마음의 모든 면에서 고통을 철저히 자각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자연스럽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좌선시 형광등과 같은 밝고 흰빛이 몸에서 나옴을 보았다.
무슨 성내는 마음이 이리도 많은가.
이게 다스려지면 저게 나오고
도대체가 끝이 안 보인다.
습관적으로 정신적 장애를 관찰하지 말고, 몇 번이 되더라도 완전히 멈출 때까지 관찰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미진해서 불씨가 남아있으면, 곧 들불과 같이 점점 커져서 집중을 덮치게 된다.
업을 따르는 자, 진정한 사람이 되기 어렵다.
야생동물과 같은 상태가 되고, 사람 가운데 미친 자와 같이 된다.
(후에 밀교의 스승도 처음 만났을 때, "수행자나 도인이 되기 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수행으로 다스려지지 않은 마음은 인성이 아니라 야성에 가깝다.
사람도 동물이다!)
이 몸과 마음은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이 무의미한 작동은 멈추어져야 한다.
오 고통이여!
이 쓰레기 더미와 같은 몸과 마음이여!
제발 벗어나기를.
흐름이 멈추기를.
이 몸과 마음의 작용은 통제불능이며,
전혀 나라고 여겨 보호할 가치가 없으며 집착할 대상이 아니다.
정말 한순간도 머물고 싶지 않은 강력한 혐오감만이 생길 뿐이다.
옛 수행자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고행한 이치를 마음 깊이 공감한다.
스승이 있더라도 평생 옆에서 함께 해주기 어려우니 마땅히 경율론 삼장을 배워 스스로를 경책하고 삼보를 스승삼고 나처럼 길을 찾는 이에게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한다.
헐떡이는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미세한 번뇌의 흐름이 보인다.
이 미친놈이 결국 죽어야 평온이 찾아올 것이다.
이 몸과 마음은 아무리 아끼고 비위를 맞춰주어도 결국은 나를 배신하리니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꺼지리라.
조바심 내지 말고, 평생의 작업으로 생각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착실히 필요한 것들을 갖춰나가며 정진력을 늘려야 한다.
그래도 수행의 길은 참 고단하다...
가끔은 의심이 든다.
고와 그 원인은 확실히 알겠지만
고의 완전한 소멸이 가능한가? 확신이 안 선다.
때로는 수행에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수행해도 바뀌는 것이 있는가? 없는가? 의심되고 하다가도
밖으로 만행을 나가보면 수행하지 않는 자와 큰 차별이 느껴지고, 수행의 이익을 알겠다.
정화된 수행자의 삶을 마음 깊이 원한다.
평등지에 이르기 전에는 계속적인 노력으로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참아야 한다.
세상에 이런 공부를 성취할 수 있는 이가 정말 드물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비관과 부처님 염송의 힘이 크다.
새벽 좌선시 극도의 고요함, 평온함, 행복감을 느낀다.
세간의 그 어떤 행복보다 뛰어나고 수승한 행복.
특히 자비관 수행은 하면 할수록 큰 이익을 느낀다.
몸 이곳저곳이 아우성이다.
치통과 두통, 피부병, 기침과 기관지염, 수많은 벌레들의 공격.
이제는 덤덤하고 몸의 요구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경행에서도 삼매를 얻게 되고, 좌선으로 삼매가 그대로 이어지고 호흡이 너무 길어져서 끊어진 듯하다.
부처님의 이미지가 너무나도 생시처럼 선명하게 두세 번 떠오르고 사라졌다.
역시 이 길은 나의 길이다.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삼보가 모두 아시도록 발원을 지극히 하면 도과를 모두 성취하리라.
선재 선재 선재라!
거울에 비친 행복한 내 모습.
이 생의 삶 중에 가장 빛나고 아름답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산다는 게 무엇인지, 수행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겠다.
아침에는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공양을 하러 갔다.
습관적이고 조건반사적인 삶.
그게 내가 여태껏 살아온 방식이다.
배가 좀 부르다 싶을 정도로 먹었는데 결과는?
몸에서 청하지도 않은 공양이 들어갔으니 머리가 맑을 턱이 없다.
속이 더부룩하고 졸음이 쏟아지고 몸이 무겁다.
이런 날은 하루 한 끼만 먹어줘야 한다.
다음부터는 공양은 배가 고프고 힘이 없고 몸이 필요로 할 때만 먹도록 하자.
잠과 식사 모두 조건반사적으로 취하지는 말자.
꼭 필요한 때 최소한만 제공하자.
점심 공양을 평소에 반 정도만 취했다.
별로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붓다는 하루에 4~6 시간 정도의 수면과 하루 한 번의 식사를 허용하셨다.
무리가 없다면 마땅히 따라야 한다.
정신도 맑고 몸도 가볍고 정진에 한 시간 이상을 더 쏟을 수 있다.
나는 잘 먹고 잘 자는 돼지가 되려고 여기와 비구가 된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것과 다르게 신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실제 필요한 정도만을 구해야 한다.
이제껏 너무 많이 탐욕스레 먹고, 너무 많이 자고, 생각과 욕망에 너무 많이 놀아났다.
나는 이생에 성스러운 과를 성취할 사람.
그런 사람답게 살아가자.
공양을 줄인 후 몸이 아주 가벼움을 느낀다.
발걸음은 나는 듯하다.
출가하고 나서의 경험으로 보자면
삶에서 하나를 버리면 열만큼 자유로워진다.
모든 조건지어진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이여!
법의 강에 이미 흐름을 탄 자여!
붓다의 가르침대로 팔정도를 행하라!
가슴이 아프다.
심장이 뜨끔뜨끔하고 누르면 몹시 아프다.
(한국에 돌아와 검사하니 협심증이고 타고난 유전성이었다. 별다른 치료법도 없다.)
타고난 신체와 조건 지어진 업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전생의 바라밀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제가 아는 초기불교 테라와다의 가르침 상에는 방법이 없다!
이 생에 공덕을 많이 쌓고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그럼 도대체 이 지구 상에 몇 사람이나 선업을 가지고 태어나 성취할 수 있을까?
후에 대승과 밀교의 가르침이 아니라면 보통 불자들은 구제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수행자가 육체의 벽에서 수행이 무너진다.
그 당시에는 힘들 때면 붓다와 선대 성취자들을 생각하며 이겨내려 노력했다.
세상에는 수행자의 허울만 쓰고, 마음이 그냥 속인들처럼 밖으로 나가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몸과 마음의 모든 명상 대상이 사라지고.
오직 아는 마음만 남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명상의 10단계 중 9단계.
16단계의 분류로 11번째 단계이다.
대부분의 미얀마 수행자들도 11단계에 이른다.
극히 소수의 수행자들만이 열반에 이른다.
그래서 대부분 우선은 11단계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때로는 대중들이 많은 수행처에서는 다른 수행자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자신의 열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삼가야 한다.
(재가불자들은 이해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신들이 못하는 것을 너무 잘 해내면 시기하고 미워한다.
불교 수행에 내 젊음을 바칠 것을 확실히 마음먹었다.
처음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것도 모두 지나갔다.
이곳에서 출가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찌 될뻔했나?
아마 인생 막차를 타고 골짜기에 처박혀 버렸을 듯싶다.
내 나이 이제 24.
20년, 30년을 노력한 고인들도 수두룩하다.
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정진하리라.
잠깐 방심하면 마라는 곧 알고 찾아온다.
Silananda - 그대의 이름이 다 인연이 있음이다.
계를 지키고 지님을 즐길 때만이 향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오염되고 차원이 떨어지는 것을 방치하지 말라.
출가자의 길은 여러모로 힘든 길이다.
정석대로 어렵게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는 게 없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스님들이 오시면 주로 내가 맡아서 안내했다.
한국 스님들 특유의 거칠고 강한 느낌이 있다.
또 다른 큰스님인 따밍야 사야도는 평생 자비관을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수사야도는 공개된 법회에서 각자 신도들이 가져온 물병에 담긴 물을 삼매력으로 끓여서 치병에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얀마도 수도가 아닌 지방에 내려가면 정서가 많이 다르다.
기복적인 분위기와 민간신앙이 불교와 많이 혼합된 모습을 보이고, 현세 이익적인 면이 부각된다.
말하면서도 관찰하는 게 가능하나 아직 길게는 어렵다.
30분 정도 가능하다.
말하는 때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야 한다.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너무 반사적이고 좁고 거칠고 딱 조건 지어져 있다.
결코 따르고 싶지 않고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의식적인 번뇌가 많이 가라앉으니, 잠재의식 무의식의 찌꺼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마음의 정화는 끝이 없다.
가끔 높은 정도의 깨달음을 얻은 자들도 언행이 정화되지 않음을 본다.
부처님 당시에도 욕쟁이 아라한이 있었다. ㅎㅎ
그래서 위나야 율장을 존중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대중의 의식을 살피며 말과 행동도 조절해야 한다.
훌륭한 스님이 된다는 것은 갖춰야 할 바가 너무너무 많다.
결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갖추고 배우고 익힐 것인가.
아니면 꼭 알아야 할 정도만 알고 나서 오직 실참수행할 것인가.
이 생명은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동진 출가자들은 특히 이성에 너무 약하다.
십 대에서 바로 사회와 단절되었으니 사회성은 거기서 멈춘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사회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출가한 늦깎이들과는 달리 약은 채 잘난 채 하는 것이 없이 순수한 맛이 있다.
세속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들을 상대하자면 피곤하고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다.
초기불교 수행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권합니다.
가르침을 접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수행이 지지부진하다고 느끼면,
집중수행을 삼 개월 정도만이라도 해서(가능하다면 출가자가 되어) 어느 정도의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머지는 일상으로 돌아와 하루에 두세 번 수행할 수 있다면 평생을 크게 어긋남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만 참고 노력을 기울이며 마음 챙기면, 남은 평생을 크게 이익되게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아는 게 아닙니다.
완전히 밑바닥까지 훑을 정도로 숙지하고 골수에 박힌 듯이 돼야 자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법문을 듣고, 좋은 책을 보았지만 자신의 변화가 없다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생로병사의 거친 바람 속에서, 내 불심이나 수행은 어떤 힘을 발휘해왔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말과 생각이 그 사람이 아닙니다.
판단과 행동의 발자취가 진짜 그 사람에 가깝습니다.
우리의 수행이 관념이나 망상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신다면,
삶의 온갖 고통과 심지어 죽음까지도 기쁘게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원하신다면,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냉철하게 살피고 결정하셔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깨자스님 수행기 16부로 계속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장영희 작성시간 17.04.27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작성자梵心(범심) 작성시간 17.04.27 감사합니다.
잠시 들려 쉬였다 갑니다.
성불하소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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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띠 사띠 항상 깨어나라 작성시간 17.04.27 스님의 수행기를 찬찬히 읽으며.. 생생하게 공부에 도움이되는거 같습니다!
계속 기대하겟습니다
건강하시기를
사두 사두 사두 -
작성자빛물결 작성시간 17.04.27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
작성자무위이화 無爲而化 작성시간 17.04.27 나모 아미따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