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念佛불자의 장

관세음보살 / 선화상인 법문

작성자일념통천|작성시간24.12.16|조회수79 목록 댓글 2

관세음보살 / 선화상인 법문

 

 

관세음보살은 자신의 소리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관합니다. "자기가 없고 남이 없으면 자재하게 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재하게 관하는 자"는 관세음의 다른 말이므로, 관세음 또한 자기와 남이 없는 자입니다. 자기와 남이 없는 자는 관세음입니다. 오만, 질투, 모순, 자기와 남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면 관세음입니다. 이러한 결점이 있다면 관세음이 아닙니다. 밖이 아닌 자기 안에서 관세음을 찾으십시오. 관세음과 하나가 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질투하거나 방해하지 않습니다.

 

 

 

나쁜 성질, 욕심, 화, 우둔함을 없애 관세음과 같아지는 법을 배우십시요. 삼독을 없애고 계정혜를 기를 수 있다면 관세음보살입니다. 여러분은 관세음보살입니까? 그렇다면 분노나 무지를 일으키지 말고 자비, 인내, 정진, 보시, 도덕, 선정, 반야를 길러야 합니다.

 

 

 

반야가 있는 사람은 관세음이고, 없는 사람은 관세음이 아닙니다.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어린 아이도 반야가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관세음보살이 있지만, 그를 본 적이 없어서 그가 거기에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를 여러분에게 소개했으니, 여러분은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의 말을 항상 들어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나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오래 전에 육조대사가 말씀하셨습니다. "자비 관음이요, 희사는 대세지입니다. 여러분이 자비로운 일을 한다면 관세음보살입니다. 즐겁게 다른 사람에게 주면 대세지보살입니다, 매일 옆에 있는 이 두 보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늘 그들에게 화를 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지만 아미타불이 앞에 나타나도 그를 보지 않습니다. 관세음, 대세지, 아미타불을 대면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바로 옆에 서방정토의 삼현이 있는데 거리를 두겠다고 고집합니다. 관세음보살이 자비롭지만 여러분을 도울 수 없습니다. 대세지보살이 기쁘게 주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미타불은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차츰 언젠가는 그는 보리심을 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너느니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는 상태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상태를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를 맛보고 싶다면, 여러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소리를 되돌려 자신의 성품을 들었고 그의 성품은 위없는 도를 얻었습니다. 소리를 되돌린다는 것은 빛을 돌려 안을 비추고 살펴봄을 의미합니다. 그의 자성에 빛을 돌리는 것은 반사하고, 조사하고, 비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불가사의한 경계를 발견할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를 맛보고 싶다면 스스로 수행을 해야 합니다. 

 

 

 

빛을 돌린다는 것은 비추고 관조함을 의미합니다. 이 불가사의한 경계를 경험하고 싶다면 진정 수행해야 합니다. 빛을 돌리고, 안을 비추고, 모든 어둠을 떨쳐버리기 위해 반야의 지혜를 사용합니다. 이는 자신의 본성의 소리를 듣기 위해 되돌려 듣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본래의 본성은 순수하고 더럽혀지지 않았지만, 본래의 마음이 아닌 이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이 더럽혀졌습니다. 그 마음은 하루 종일 위아래로 뛰어다니는 원숭이처럼 매우 신뢰할 수 없습니다.

 

 

 

성품에 귀 기울이기 위해 들음을 안으로 돌리는 것은 마음이 성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마음을 살피는 것입니다. 마음은 움직이지만 성품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합니다.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빛이 침투합니다.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빛이 나타나 성품은 위없는 도를 얻습니다. 이것이 관세음보살이 수행한 방법입니다.

 

 

 

내면을 성찰한다는 것은 내면을 탐구하고 성품을 들어 탐, 진, 치 등의 생각이 있는지 살피는 것입니다. 만약 삼독이 없다면 계, 정, 혜의 삼무루학이 있습니다. 이는 성품을 듣기 위해 듣는 것을 돌린다는 것의 일반적인 의미입니다.

 

 

 

자신의 본성에 귀 기울이기 위해 듣는 것을 안으로 돌렸기 때문에 자재하게 관할 수 있었습니다. 자재하다는 것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느 단계에서 자재합니까?"라고 묻습니다. 현인의 단계에서 자재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재하지 않습니다. 현인들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기 때문에 자재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네 가지 상에 집착하기 때문에 결코 마음이 자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불법을 공부하지만 사상이 공함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재를 얻을 수 없습니다. 자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마음을 쓸어버리고 네 가지 상을 없애야 합니다. "과거의 마음은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마음은 얻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현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이미 과거가 되었습니다. "현재"라는 말은 없고 거짓입니다. “미래의 마음은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여기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도달하지 않았는데 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합니까? 세 가지 마음이 얻을 수 없음을 알고 네 가지 상이 공함을 알면 여러분은 자재하게 관하는 보살입니다. 

 

 

 

우리는 선 기간 중이어서 자재하게 관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재롭게 관해야 합니다. '관세음 보살은 자재하게 관하는 보살입니다. 반야심경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마세요. 누구든지 자재하면 보살입니다. 이 보살은 정체성이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중생이 자재하게 관하는 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앉을 때, 마음이 자재한지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은 "오온을 비추고 오온이 공함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위대한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의 의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넘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고통을 끝냈으니, 여러분은 마음이 편합니다. 관세인보살이 우리와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시방의 모든 불보살님들이 우리와 하나가 될 것입니다.

 

 

작성자 : 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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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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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오매 | 작성시간 24.12.16 🙏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4.12.16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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