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念佛불자의 장

하담스님의 일생

작성자신성|작성시간07.12.23|조회수425 목록 댓글 6
하담스님의 일생


1960년경 교계에 거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노스님 한분이 부산 범어사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스님의 성은 황씨요 법명은 하담으로, 19세에 금강산 장안사로 출가하여
오로지 ‘나무아미타불’ 만을 불렀습니다.

스님은 앉으나 서나 ‘나무아미타불’을 외웠고,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10여년이 넘자 대화를 나눌 때도 ‘나무아미타불’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잠을 잘 때도 ‘나무아미타불’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담스님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미타불의 무량한 광명을 보고
견성(깨달음)을 하였고 무량한 빛과 진리를 체득한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여
금강산에서 하산을 하였습니다.

스님은 극장선전원들이 몸에 영화 포스터를 붙인 통을 뒤집어쓰고
거리를 활보하였듯이 ‘나무아미타불’을 써서 몸의 앞 뒤 옆에 붙이고
그것도 모자라 깃대에 까지 매달고 커다란 목탁을 치며
하루 종일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했습니다.

스님은 서울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웠습니다.
사람들이 귀로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소리를 듣고,
눈으로 보기만하여도 그만큼 업장이 소멸되고 공덕이 생겨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법문을 들려주고
염불을 통한 업장참회법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5년, 스님은 어떻게 술을 알게 되었고,
막식막행 승으로 취급받아 이절 저절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뼈 속 깊은 곳까지 부처님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어떠한 구박에도 동요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는 감사보다 축원을 했습니다.

두 손으로 합장 배례하며 “이 공덕으로 다음에 부처가 되십시오.”
이렇게 ‘부처되라’는 한마디 축원으로 일관했던
하담스님은 말년을 범어사에서 보냈는데
곡차를 좋아하는 하담스님을 반길 까닭이 없었습니다.

오직 당대의 대율사이신 동산스님의 배려로
“범어사에 살고 싶으면 머물게 하고 가고 싶으면 가도록 내버려두어라.”는
지시 덕분에 큰방에서의 생활이나 공양은 허락되지 않았고,
뒷채에서 행자나 일꾼들과 함께 공양하고 잠을 잤습니다.
그리곤 아침공양이 끝나면 종일 나다니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담스님이 범어사 총무님을 불렀습니다.

“석 달 후에 내가 가겠소.”

하지만 총무스님은 농담처럼 들었습니다.
딴 곳으로 간다는 말씀인지, 세상을 하직한다는 말씀인지 물어보지 않고
그냥 무심히 흘려버렸습니다.
그 뒤 가신다고 약속한 날 꼭 일주일 전에 총무 스님을 다시 방으로 불러
꼬깃꼬깃 모은 10원짜리, 100원짜리로 6만원을 건네주면서 부탁했습니다.

“나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네.
경책 한권도 없고,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농짝하나,
땅덩어리 하나도 없어. 이게 전부니까 절 살림에 보태 쓰게.”

그리고 양말 속에 따로 넣어두었던 3만원을 내어놓으며 말했습니다.

“ 이 돈이면 내 초상 비용은 될 거야”

하담 스님은 가시겠다고 한 하루 전날,
손수 향나무를 넣어 달인 물로 목욕을 하고
미리 마련해둔 수의로 갈아입은 다음,
목욕 전에 입었던 옷들을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실로 남은 것이라곤 없었습니다. 수건하나 양말 한 켤레 없었습니다.
“3개월 뒤에 가겠다.”고 했을 때는 농담처럼 들었던 총무님도 계속되는
하담 스님의 이상한 거동에 경각심을 일으켜,
가신다고 한 날 이른 새벽부터 세 명의 젊은 승려로 하여금
스님 곁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이제 가야할 시간이 되었구나.”
그때 곁에 있던 젊은 스님이 짖궂게 말을 던졌습니다.
“스님, 지금이 법당에서 마지 올리는 시간인지 모르십니까?
어찌 중이 되어가지고 부처님께 마지 올리는 시간에 가시려고 합니까?”

“허, 듣고 보니 그 말도 옳구려, 나를 일으켜주시오.”

앉은 채로 고요히 열반에 들고자 했던 하담스님은
젊은 승려들의 부축을 받아 법당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법당 한 옆에 조용히 앉아 부처님께 올리는 사시마지가
모두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사시마지는 끝났고 스님은 옆의 승려에게 부탁했습니다.
“이제는 할 수 없소. 나 좀 눕혀 주시오”
주위 승려들의 도움으로 반듯이 누운 하담스님은
조그마한 음성으로 게송을 읊었습니다.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
(원컨대 법계의 모든 중생 모두 성불할지어다)

마침내 하담 스님은 열반에 들었고,
당시의 범어사 총무스님은 땅을 치고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울부짖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진짜 도인을
옆에 두고 눈 어둡고 귀가 멀어 몰라보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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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새바람 | 작성시간 07.12.21 하담스님 극락 왕생 하십시요 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
  • 작성자맙소사 | 작성시간 07.12.21 하담스님! 우선 왕생을 축하드림니다. 어릴적 선찰종가에 살면서 들은적이 있어던것 같습니다. 설봉스님?은 아니실테고 ... 荷擔스님인지 荷潭스님이신지 좀더 소상이 알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 작성자빛밝음 | 작성시간 07.12.28 잘 읽어 봤습니다. 글올려 주신분께 ... 날마다 좋은날 되십시요!!!!!!!
  • 작성자무한염불(莊嚴) | 작성시간 11.04.21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
  • 작성자끝없는 행복 | 작성시간 16.03.26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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