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참본성의 표현 1
어둠 속에 살고 있다면
왜 불빛을 찾지 않는가?
붓다 <법구경>
이것을 좀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나는
붓다가 초전법륜의 가르침에서
드러내 놓고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슬쩍 끼워 넣으려고 한다
사실 나의 여러 스승님들이
인정했듯이 이 주제는
초전법륜과 제2전법륜 속에
은연중에 암시되어 있다.
(붓다가 왕사성 부근
영취산에서 설한 가르침이며,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공'을
깨닫는 지혜로 <반야심경>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가장 뛰어나고 똑똑한 제자들에게만
전하려고 붓다가 어떤 큰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는 책임감 있는
교사처럼 더 높은 단계의 주제로
넘어가기에 앞서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을 뿐이다.
아직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의 기본도 숙달이 안 된
아이들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는 게
실용적인지 초등학교
교사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다.
그 주제란 '불성(참본성)'이다
불성은 승복을 입고 음식을 탁발
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붓다'는 '잠에서 깨어난 자' 로
얼추 번역되는 산스크리트어이다.
붓다의 정식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이며 2,500년 전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젊은 남자이다.
하지만 '불성'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의 붓다나 불교
수행자들만 독점하는 특성이 아니다.
만들어지거나 상상으로 지어낸 것도
아니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
안에 내재된 알맹이이며 본질이다.
즉 행동하고 보고 듣고 무엇이든
경험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잠재 능력이 곧 불성이다.
불교에서 '불성' 이라고
부르는 이 참본성 때문에
우리는 배울 수 있고 성장할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누구나 본래부터
붓다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참본성은 상대적
개념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직접 경험해야 하며.직접적인 경험은
말로 규정짓기가 약간 어렵다.
예를 들어. 그랜드캐니언처럼
너무 거대해서 우리의
묘사 능력을 뛰어넘는 장소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그곳이 매우 웅장하고
양쪽 바위 절벽이 붉은색이며
공기는 건조하고 삼나무 내음이
은은히 난다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만큼 잘 묘사하든
당신의 설명은 그 광대한 장소를
마주하고 있는
경험을 전부 포함할 수는 없다.
혹은 현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대만의 101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묘사할 수도 있다.
360도로 펼쳐지는 전망, 건물 아래
개미처럼 보이는 자동차와 사람들,
아니면 매우 높은 고도에 올라와
있는 아찔한 기분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로는 여전히
당신이 경험하는 것의
깊이와 넓이를 전달할 수 없다.
참본성은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이 표현 불가능한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붓다는 안내 표지판이나
지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약간의 실마리를 주었다.
붓다가 참본성을 설명한 한가지
방법은 그것이 가진 세 가지 특성이다
참본성의 첫 번째 특성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무엇이든
알 수 있는 무한한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특성은
고통의 조건으로부터
나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구출하는
무제한의 힘을 가진
무한한 잠재 능력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 특성은
참본성이 측량할 길 없는
사랑과 자비라는 점인데,
이것은 모든 생명체에 대해
느끼는 무한한 유대감,
타인을 향한 열린 마음이다.
이 마음이 모든 존재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려는 동기가 된다.
많은 이들은 붓다의 이 설명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배움과 수행을 통해
그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자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기이하게도 여러 경전을 보면
붓다는 그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즐긴 듯하다.
어쨋든 그는 대략 기원전 5세기경
인도 대륙을 방랑하는 많은
스승들 중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 당시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온갖 영적 교사들과 다양한
가르침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상황과 비슷했다.
하지만 동시대 사람들과는 달리
붓다는 자신이 발견한 방법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하게
진실한 길이라고 사람들에게 확신
시키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많은 경전들에 흐르고 있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내가 경험한
것이며 내가 깨달은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한다는 이유 때문에
내 말을 믿지 말라. 그대들
스스로 그것을 시험해 보라."
붓다는 자신이 안 것과 알아낸
방식에 대해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 것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참본성에 대한 가르침에서
그는 청중들에게
일종의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그는 참본성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방식을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는 등불이 켜져 있는,
차양이나 덧문이 내려진 집에
비유하며 이 실험을 소개했다.
집은 몸과 마음과 감정이라는 곁으
로는 견고해 보이는 조건을 상징한다.
등불은 우리의 참본성을 가리킨다.
차양과 덧문이 아무리 단단히 내려져
있어도 필연적으로 집 밖으로
작은 빛줄기가 새어 나오기 마련이다.
집 안에서 등불의 빛은
의자와 침대와 카펫을 구분할 수
있는 밝음의 상태를 제공한다.
그 빛이 차양이나 덧문틈새로 비쳐
나옴에 따라 우리는 이따금 직관이라는
이름의 지혜를 경험하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사람과 상황과 사건들에 대한
'본능적인 느낌' 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편안함을 준 순간은
덧문 틈새로 사랑과 자비의
빛이 비쳐 나온 순간이다.
보답으로 이익이나 무엇인가를
얻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것 같아서 했을 뿐이다.
누군가 고통속에 있을 때 눈물을
흘리도록 어깨를 빌려 주거나
길을 건널 때 도와주는 간단한
행위일 수도 있고. 아픈 사람이나
죽어가는 사람 옆에 앉아
있는 일같은 더 오랜 베풂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생명의 위험조차
생각하지 않고 물에 빠진 낯선
사람을 구하러 강으로 뛰어든
극적인 이야기를
우리 모두 들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