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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기초교리

모든 것은 참본성의 표현 2

작성자고구마감자|작성시간26.06.13|조회수40 목록 댓글 1

모든 것은 참본성의 표현 2

 

 

능력은 종종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드러난다.

 

최근에 만난 한 명상 수행자는

 

1990년대에 주식시장에 대량 

투자를 했고.그 후 10년간 주식이 

폭락하면서 전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의 친구들과 동업자들 대부분이

많은 돈을 잃었으며.그들 

일부는 정신이 나가 버렸다

 

어떤 이는 자신감과 의사 결정 

능력을 상실했고.

어떤 이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1929년 미국 증권시장 몰락

돈을 잃은 사람들처럼

창문에서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다.

 

하지 이 사람은 조금도 미치지

않았고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며

우울증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는 조금씩 재투자를 시작해

탄탄한 재정기반을 쌓을 수 있었다.

 

심각한 하강 국면에서도 그가 눈에

띄게 침착성을 유지하는 을 보면서

 

많은 친구와 동료들은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마음의

정을 유지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나는 주식시장에서

이 돈을 벌었고, 그다음 

 돈은 다시 주식시장으로 갔으며, 

지금은 돌아오고 있다네.

 

상황들은 변하지만  달라진 게

없어. 난 결정을 내릴 수 있네.

 

느 해는 대저택에서 살았

 

그다음 해는 친구 집 소파에서

잠을 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나 자신과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나 스스로 

 

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능력까지 달라지게 하진 않아.

 

 난 매우 운이 좋다고 생각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선택할 력이 없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

 

내가 생각해도 난 행운아야.

 

왜냐하면 난 다행히도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사람들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지''

 

나는 자기 자신이, 혹은 부모나 

자녀나 배우자가 심각한 

질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로부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북미지역에서 만난 한 남자는 

 

치매로 고통 받는 아버지를 

돌보면서도 자신의 직업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와의 관계를 잘 유지한

경험담을 긴 시간 들려주었다

 

''물론 이 모든 일들 사이에서 균형

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일이었습

니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더군요."

 

매우 단순한 말이지만

얼마나 신선한가!

 

그는 전에 불교 가르침을 접한 적도 

없고 경전을 공부한 적도 없으며

 

자신을 굳이 불교도라고 

여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삶과 접근 방식은

참본성이 지닌 세 가지 특성의

자연 발생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의 깊이와

무게를 가늠하는 지혜,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행동할까를 선택하는 능력,

 

사랑과 자비가 자발적으로

우러나는 태도가 그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참본성의 

이 세 가지 특성을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모든 의심과

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에 리의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용기이다.

 

상황을 직접 대면하는 일은

우리가 경험하는모든 것-

 

사랑, 외로움, 미움, 질투,기쁨, 

욕심. 슬픔 등이 본질적으로는 

 

우리 안의 참본성이 지닌 

무한한  잠재 능력의

표현임을 깨닫는 문이 된다.

 

이 원리는 세 번째 고귀한

진리의'긍정적인 예후' 속에

포함되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이 무엇이든,

미묘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아니면 그 중간이든,

 

자기 자신에 한 매우 제한되고 

조건지워지고 가정적인 시각에서

얼마큼 벗어나는가에 따라.

 

또한 엇이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와 자신을 

 

얼마큼 동일시 하는가에 따라 

그 불편함 시 줄어든다.

 

그렇게 될 때 마침내 참본성안에서

편히 휴식하는 일이 가능하다.

 

한 마리 새가 자신의

둥지로  돌아와 편히 쉬는 것처럼.

그 순간 고통은 소멸된다.

 

두려위할 게 아무것도 없고

저항할 것도 없다 심지어 

죽음조차 당신을 괴롭힐 수 없다.

 

나는 그것을 아버지의 임종 때 곁을 

지키면서 매우 명확하게 해했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둘,

아버지는 77세였다.

 

아버지는 음의 무한함과 

감각작용의 덧없음을 깨닫는 원리를

체득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친 위대한 수행자였다.

 

그는 그 원리를 스승들로부터 

전수받았으며 또한 전 세계

수천 명의 제자들에게 전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며칠 앞두고서

 

승려들, 가족과 친지, 명상 교사들,

제자들, 그리고 주변

마을 사람들까지 방문했다.

 

때로 아버지는 그들을 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다른 때는

자리에 누위 계셔야만 했다.

 

아버지는 모든 방문객들에게

자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고맙다고 말했다.

 

얼굴 표정에는 조금의 두려운 

기색도 없었으며 가날픈 몸에는 

어떤 투병의 증거도 없었다.

 

아버지가 특별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유일한 표시는 이따금 

굴에 스치는 가벼운 호기심.

 

그리고 방문객들이 

전부 자신의 스승인것처럼 

 

한 사람 한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였다.

 

최후의 순간에 아버지는 소변이 

마려웠다.병실이 복도 끝에 었기

 

때문에 일종의 이동식 변기 같은 

것을 가져다주자 아버지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리 형제 중 한사람이 제안했다.

 

"그냥 그대로 누워 계시는 게

낫겠어요. 우리가 이걸

아버지 밑에 놓아 드릴게요."

 

'아니야, 아니야."

 

아버지는 우리의 걱정을 뿌리치며 

웃으셨다. 볼일을 끝내시고 

 

아버지는 침대 위에 다시 앉아

명상하는 자세를 취했다.

 

양다리를 포개어 허리를 꼿꼿이 

펴고 두 손을 부드럽게 무릎 

위에 놓은 뒤 정면을 응시했다.

 

이내 호흡이 아주 서서히

려지더니 마침내 멈추었다.

 

우리는 심지어 몇 분이 지나도록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아버지는 몸이 저절로 푹 쓰러지기 

전 3일 동안 티베트에서 툭담이라고

부르는 명상 자체를 계속 유지했다.

 

툭담은 대략 '죽음 명상'

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육체로부터 의식체가 

분리되는 것을 깨어 있는 의식상

에서 경험하는과정을 일컫는다.

 

이 기간 동안 아버지의 육체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았고

 

혈색은 계속 밝고 붉은색을 유지

했으며 약간 광채가 나기까지 했다.

 

현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믿기 힘든 상황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만일 직접 목격하지 않았고,

 

사람이 완전한 의식과 평온을

유지한 채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전통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나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증거가 거기 있었다.

 

아버지는 완전한 의식을 갖고 죽음

을 맞이했으며 최악의 고통조차도 

 

자신의 참본성의 빛나는 

표현으로 여기며 차분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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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26.06.13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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