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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기초교리

기초교리모음

작성자혜련|작성시간04.12.07|조회수898 목록 댓글 3

기초교리



1.깨달음의 내용-중도.사성제.팔정도
2.존재의 법칙-연기법.십이연기
3.존재의 인식-오온.십이처
4.불교의 특성-삼법인
5.인간의 윤리-업설.오계.팔관재계
6.이웃의 구제-육바라밀,사섭법.사무량심


1. 깨달음의 내용

( 1) 중도(中適)

붓다의 깨달음은 그의 내면세계에서 일어난 일이므로, 그에 대해서언급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추측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또 그 가르침 모두가 다 깨달음의 내용일 수도 있겠으나,그 많은교리와 사상을 하나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부처님이 깨치고 나서 제일 먼저 설법을 했을 때 한 이야기가 그에 가장 가장고, 세월이 흐르면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교리내용을 조직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 함께 수행했던 다섯비구를 찾아 온 부처님께서 그들을 앞에 두고 최초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다(初轉法輪).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가지 극단적인 길이 있으나, 수행자는그 어디에도 가까이 해서는 아니된다. 여래(如來)는 이들 두가지 극단을모두 버리고서 깨달음을 얻었다. "

이른바 <中道의 선언>이다. 두가지 극단은 무엇일까?두가지 측면에서 대답되어질 수 있다.

첫째 인식론적으로는 이 세간(世間)이 영원히 실재(實在)하고, 절대적인 존재(神)도 있다고 하는 有的인 견해(常見)와 세간과 절대자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의 존재까지도물질의 결합에 불과하다고 보는 無的인 견해(斷見)의 양극단이 있다.

둘째, 실천윤리적 측면에서의 두가지 극단은 붓다의 개인적인 체험의 역사와도 결부되면서 쾌락에 치우친 삶과 고행(苦行)에 치우친 삶이다.이러한 인식론적 이거나 실천윤리적인 두가지 종류의 모든 극단에서부터 붓다는 깨달음을 통해서 자유로와 졌다.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의 원리는 이후 불교사를 관통하면서 모든 대립과 투쟁을 극복,조화시켜가는 원리가 된다

(2)사성제과 팔정도

최초의 설법에서 붓다는 중도적 입장에서 -극단적 사고에 기울지 아니하고-현실을 판단하고 이상에의 지평을 열어보이는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하신다. 즉 사성제(四聖諦)가 그것이다.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으니, 어떤 것이 네가지인가? 괴로움, 괴로움의 집(集), 괴로움의 멸(滅), 괴로움의 멸에 이르는 길(道)의 네가지 성제가 곧 그것이다. "(잡아함 권15)

첫째, 괴로움의 진리에 대해서 경전은 여덟가지 괴로움(八苦)을 드는것이 보통이다. "어떤 것이 고성제(苦聖諦)인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죽고,미운 것과 만나고,사랑하는 것과 혜어지고,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한마디로 오온(童蘿)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중아함 권7)

둘째, 괴로움의 원인(集)에 대한 진리는 괴로움 발생의 이유에 대한언급이다.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集(SaMudaya)이라는 말은 원래sam(결합하다)과 u쑈ya(上昇한다)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집(集)은 모은다(collect)는 뜻이 아니라 한역에서 집기(集起)라고 번역하듯이 연기의의미와 매우 가까운 말이다.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무명(無明)이고, 다른 하나는 갈애(渴愛)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십이인연설 역시 '어떻게 해서 괴로움이 생기며, 어떻게 하면 괴로움이없어지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라는 측면에서 이 사성제의 교리와 구조적 동일성을 갖고 있는데,노사(老死)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최초의 원인은 무명이다.
무명은 밝지(明)못함.즉 지혜가 없는 상태이다. 그다음, 갈애는 위의 고성제의 팔고(八苦)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오온에대한 집착심(執着心)을 일컫는 것이다. 무명이 지적(知的)번뇌라면, 갈애는 정의적(情意的)번뇌이기도 하다.

세째,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진리는 괴로움의 현실을 극복, 초월한 뒤에 당연히 오게 되는 희망적인 비젼(Vision)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는 이 모든 괴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굳은 약속이다.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강한 약속이야말로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짓게 한다. 멸(滅)은 열반(Nirvana)이다. 욕망의 세찬 불길이 꺼진 상태,바로 깨달음의 경지이다.

네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이다.붓다가 괴로움의 현실을 종식시킬 실천적 가르침으로써 베푼 것이 곧여덟가지 올바른 길(八正道)이다. 이 팔정도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씩 상술하기로 한다.

① 정견(正見) :올바른 이해.
경전에서는 사성제를 수행할 때 "법(法)을 잘 결택(決擇)하여 관찰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② 정사유(正思惟) :올바른 생각.
바르게 사유하고, 바르게 마음먹는다는 뜻으로써, "생각할 바와 생각안할 바를 마음에 잘 분간하는 것"

③ 정어(正語) :올바른 언어.
네가지 악한 구업(口業),즉 거짓말, 이간질 하는 말, 아첨하는 말,욕설 등을 하지않는 것.

④ 정업(正業):올바른 해위.
세가지 악한 신업(身業) 즉 살생, 도둑질, 도덕적으로 그릇된 성(性)행위를 하지않는 것.

⑤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올바른 직업생활로써 적절한 방법을 통해 의식주를 구하는 것.

⑥ 정정진(正精進) :올바른 노력.끊임없이 노력하여 물러섬이 없이 마음을 닦는 것.

⑦ 정념(正念) :올바른 억념(憶念)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인데, '생각하는 바에 따라 잊지않는 것'

⑧ 정정(正定):올바른 명상.
바르게 집중한다는 뜻으로서 마음을 한 곳에 모아서 선정(禪定)에 드는 것.

이 여덟가지 중에서 정견(正見)과 정정(正定),즉 지혜와 선정의 올바름이 가장 중요하다. 이러한 초기 불교의 성격은 지(止:Samatha)와 관(觀:◎pastina)의 병수(釜修)라든가, 정(定:Samadhi)과 혜(慾:Rrajna)의 쌍수(雙修)라고 하는 후대 불교사상에 그 근원적인 원리를 제공하고 있다.

2. 존재의 법칙

(1) 연기법(緣起法)
이미 앞에서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는 것을 말했다. '깨닫는다'는 말은 말들어 낸다는 어떤 창조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미 있어왔던 진리에대한 발견이라는 의미 이다.
"연기의 법은 내가 지은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이 지은 것도 아니다.여래가 세상에 나오건 나오지 않건 간에 이 법은 상주(常住)요, 법주(法住)요, 법계(法界)이니라. 여래는 다만 이 법을 자각하여 바른 깨달음을 이루어 중생들에게 설하나니‥‥‥(잡아함 권12)이미 있는 진리에 대한 깨달음의 방법론은 귀납의 논리로써 현대 자연과학의 진리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도 바로 이 연기의 자각에 그 원인이 있다.

연기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말미암아서(緣) 일어난다. 즉 생긴다(起)는 의미이다. 이것은 나의 존재를 위해서 他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요,그 역(逆)도 성립함을 의미한다. 이처럼 연기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법칙이다. 서로 상의상관성(相依相關性)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 (잡아함 권15)

A의 존재에 반드시 B의 존재가 전제가 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는 놀기의 이론은 A만으로는 존재할 수 있는 성질,즉 자성(自性)을 A 스스로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를 성립시킨다. 무자성(無自性)이다연기이므로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 자성은 인도 정통철학의 아트만(atman)이다. 아(我)이다. 이러한 아(我)가 없다는 것이다. 즉 무이(無我)이다. 나중의 일이지만 대승불교의 아버지 용수(龍樹:Nagarjuna)보살은 연기-무자성-공(空)의 논리를 내세웠다. 공(空)이 곧 연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로 시작되는 위에서 언급한 게송은 후세의 학자들이 「연기의 공식」이라고 한다. 연기의 공식에 대한 공간;?고찰에서 우리는 공(空:sunya)사상 이해의 실마리를 갖기에 이르렀다마찬가지로 연기의 공식에 대한 시간적 고찰을 해볼 때 인과(因果)?법칙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된다.

'이것'이 씨앗이라면, '저것'은 열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因), '저것'을 과(果)라고도 한다. 또는 인을 짓는 의지적 작용을 업(業:karma)이라고 하고,그래서 생기는 필연적 반응이나 결과를 보(報:vipaka)라고 한다. 인과업보(因果業報)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긴다.연기는 대승불교에 이르러 불교의 두가지 사상의 하나를 이름하기臺한다. 실상론(實相論)과 연기론(緣起論)이다. 전자는 본체(本體)에 대한철학이며,후자는 현상(現象)에 대한 철학이다. 그러한 연기론철학은 업감연기설(業感緣起說), 아뢰야식(阿賴耶識)연기설, 진여(眞如)연기설, 법계(法界)연기설, 육대(六大)연기설 등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그 모든 발전된 연기설의 기초로써 십이연기설(+二緣起說)이 자리하고 있다.

(2) 십 이 연기 설 (十二緣起說)

사성제와 마찬가지로 십이연기 또한 '어떻게 하여서 괴로움이 생기고,어떻게 해야 괴로움이 소멸하는가?'라는 주제를 같이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물론 사성제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실천적 행위규범의 제시에 더 큰 강조점이 주어져 있고, 십이연기는 다만 현실의 생기(生起)와사멸(死滅)의 논리적 이해에 더 큰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는 비교가 가능하다.
사성제에서 괴로움의 원인은 무명과 갈애라고 했다. 무명(無明)은 明(vidya)이 아닌 상태이다. 즉 진리에 대해 밝게 인식하지 못함을 이른다. 괴로움의 최초의 근본원인은 무명이다. 십이연기설은 무명에서부터어떻게 생·노 병·사·우·비·고·뇌가 생기는가에 대한 자세한 과정을설명하고 있다.
"무명으로 말미암아서(緣) 행(行)이 있게 되고, 행으로 말미암아서 식(識)이 있게 되고, 식으로 말미암아서 명색(名色)이 있게 되고, 명색으로 말미암아서 육입(六入)이 있게 되고, 육입으로 말미암아서 촉(觸)이
있게 되고, 촉을 말미암아서 수(受)가 있게 되고, 수를 말미암아서 애(愛)가 있게 되고, 애를 말미암아서 취(겪)가 있게 되고, 취를 말미암아서 유(有)가 있게 되고, 유를 말미암아서 생(生)이 있게 되고, 생을 말미암아서 노(老), 사(死), 우(憂), 비(悲), 고(苦), 뇌(惱)가 있게 된다.그리하여 커다란 하나의 괴로운 온(蘿)의 집(集)이 있게 된다"(잡아함 권15)

따라서 불교의 이상인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서는, 즉 노·사·우·비·고·뇌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생이 소멸되어야 하고, 생이 소멸되기 위해서는 유가 소멸되어야 하고, 유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취가 소멸되어야하고, 취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애가 소멸되어야 하고, 애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수가 소멸되어야 하고, 수를 소멸하기 위해서는 촉이 소멸되어야 하고, 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육입을 소멸해야 하고, 육입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명색을 소멸해야 하고, 명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식을 소멸해야 하고, 식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행이 소멸되어야 하고, 행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무명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전자의 무명에서 노사까지의 생기(生起)의 십이연기법을 관찰하는 것을 순관(順觀)이라고 하고, 후자의 노사에서 무명까지의 사멸(死滅)을관찰하는 것을 역관(逆觀)이라 한다. 이 두가지 사고의 유형은 후대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유전연기(流轉緣起)와 환멸연기(還滅緣起)에각각 논리적 대응을 이루고 있다. 이제 십이연기의 각 지(支)마다 간략한 설명을 하기로 하자.

①무명 (無明 :avidya)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이다. 연기적 존재이므로 '나'라고 집착할 만한것이 없는데도 '나'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는 이미 오온에 대한 집착(五取蘿普)의 고통에서 설명하였다.

②행(行:Samskara)
무명이 있으면, 그 무명의 힘이 현재화(現在化)된다. 그러한 무명의현실적 작용을 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impulse,즉 충동이라고옮기고 있다.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충동이라고 볼 수 있다.

③ 식 (識:vijnana)
식은 후대의 대승불교에 오면,가장 중요한 술어 중의 하나인데 식별(識別),분별(分別) 또는 요별(了別)의 뜻이다. 이 식을 더욱 세분화 해서 6식, 7식, 8식으로 나누기도 한다.

④명색(名色:Nama-Hpa)
명은 정신적인 것을 가리키고 색은 물질적인 것을 가르킨다. 따라서명색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결합된 상태를 말한다. 오온(玉蘿)에서는 색온(色蘿)이 색(色)이 되고, 수·상 행 ·식의 온(蘿)들은 명(名)이 된다.

⑤육입(六入:Sad-ayatana)
외부세계의 객관적 사상(事象)을 인식하게 되는 여섯개의 감각기관을의미한다. 눈(眼), 귀(耳),코(鼻), 혀(舌),몸(身),뜻(意)의 여섯이다. 흔히 육처(六處), 육근(六根)이라고도 한다.

⑥촉(觸:Samparsa)
촉은 '접촉하다, 충돌하다'의 뜻이 있다. 위의 육입(六入:안·이·비 설·신·의)과 육식(六識:육입에 의지해서 발생한 개별적인 여섯가지의 의식)이 화합하여서 촉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⑦수(受 :Vedana)
수는 느낌,즉 감수(感受)작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괴로움(苦),즐거움(樂), 괴롭지도 아니하고, 즐겁지도 아니한 평등한 느낌(捨)의 세가지로 크게 나눈다.

⑧애(愛:trsna)
사성제에서 집제의 내용은 무명과 갈애라고 했다. 갈애는 바로 이'애'이다. 이 애는 감정적인 번뇌로서 가장 치성하다고 한다. 후대에는이러한 마음의 장애를 번뇌장(煩惱障)이라 하고,무명이 지혜에 장애가된다고 할 때의 소지장(所知障)과 함께 가장 큰 두가지 장애(二陣)라고했다.

⑨취(取:upadana)
애의 상태만 하더라도 좋고, 싫다는 감정을 느낄 뿐이지,그에 대해서극심하게 집착하는 경지는 아니다. 강하게 집착하는 것을 취(取)라고 한다. 이 취라는 술어는 오취온고(五取蘿苦指께서도 쓰이고 있다.

⑩ 유(有:bhava)
bhava라는 말은 영어의 Be동사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의 동사어로bhu라는 말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존재'의 의미와 '생성'의 의미의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생사하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된 것이라고 보면된다. 경전에서는 이 삼계(三弄)가 有의 세계라고 해서 욕유(欲有), 색유(色有), 무색유(無色有)를 언급하고 있다.

⑪생(生:jati)
유는 생사하는 그 자체라는 의미이고, 생은 생사한 것이라는 뜻이다.불교의 입장은 생(生)조차도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⑫노사우비고뇌 (老死憂悲普惱)
여기의 생과 사는 육체적 생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괴로움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의 가르침이 십이연기설이다. 초기경전에서 설해진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가르침이다. 그 안에는 사성제, 오온, 십이처등의 교설이 종합적으로 정리·조직되어 있다.

3. 존재의 인식

( 1 )오온설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독송(讀誦)하는 반야심경의 처음에 보면 이런말이 있다. "관자재보살이 오온이 팅 비어있는 것을 보고, 모든 괴로움을 건넜느니라" 여기서 오온이 모두 공(空)이라고 했는데 오온은 무엇인가? 오온은 모든 존재이다. 따라서 '오온개공'은 '제법개공' 또는 '일체개공'이다.
즉 오온이라는 것은 불교의 입장에서 보는 존재에 대한 인식,모든 것에 대한 불교적 해석의 결과 생긴 이해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는 오온으로 구성되어 졌다고 한다.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오온 즉 다섯가지 측면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다섯가지가 무엇 인가?
색(色:rupa), 수(受:vedana), 상(想:samjna), 행(行:samskara), 식(識:Vijnana)이다.

① 색(色:rupa)
십이연기에서 이미 설명한 바다. 지(地), 수(氷), 화(火), 풍(鳳)의 네가지 요소가 화합한 것을 색이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의 유물론철학자들은 인간은 단순히 이 사대(四大)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
였다. 그러나 붓다는 색이라는 것은 하나의 측면일 뿐이지 정신적인 차원의 다른 측면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수·상·행·식의 사온(四蘿)이다.

② 수(受:vedana)느낌, 감각이다.

③ 상(想:samjna)생각, 表象이다.

④ 행(行:samskara)
행위, 작용이다. 무명이 드러남인 맹목적인 의지이다.

⑤식(識:vijnana)식별, 분별, 의식 이다.

어떤 존재도 이 오온의 화합(和合)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다른실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오온개공(五蘿皆空)의 의미이다.

(2) 십 이처설 (7二處說)

십이처설은 불교가 세계를, 일체를, 현실을, 존재를 인식하는 또 다른방법이다. 오온설과 함께.
경전에 의하면 한때 생문(生聞)이라는 바라문이 부처님을 찾아와 질문을 했다.

"일체(一切)라고 하는 그 일체는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일체는 십이처(7二處)에 포섭되는 것이니, 곧 눈과 색,귀와 소리,코와 냄새, 혀와 맛,몸과 촉감, 의지와 법이다. 만일 이 십이
처를 떠나 다른 일체를 시설코자 한다면 그것은 다만 언설(言說)일 뿐물어봐야 모르고, 의혹만 더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계(境界)기아니기 때문이다. "

눈·귀·코·혀·몸·뜻을 여섯가지 감각기관이라 한다. 육입(六入), 육처(六處),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색·소리·냄새 ·맛·촉감·법(法)이 여섯가지의 인식대상이다. 모든 존재는 이 열두가지에 포섭된다는 것이다처(處:ayatana)라고 하는 것은 '들어간다'는 뜻이다.
십이처설은 6근이 6경을 인식하는 것, 바꾸어 말하면 6근에 의해서인식되는 6경 이외의 어떤 존재도 성립할 수 없다. 인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논리이다. 인식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리서 神이라든가 하는 초월적 존재는 가상(假想)할 수 있을런지 모르지민이 십이처설로써 해멸될 수 없다면,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는 볼교의 입장이 드러나 있다. 따라서 십이처설이야말로 불교의 우주관, 세계관이리고 할 수 있다.
인식이외의 어떠한 존재도 허용치 않는 이러한 십이처설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심외무물(心外無物)의 대승사상을 낳게 된다.

4. 불교의 특성

부처님이 진리를 전하시던 그 당시에도 많은 다른 종교인, 사상가들과 만나서 논쟁을 하고,그들을 설득시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불교는 많은 다양한 종교, 사상과의 만남속에서 불교 나름대로의 주장에 대한 자기특성을 강조하고 체계화시켜서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법의 특성이라는 뜻의 法印(Dharma-laksana)이라고 한다. 불교만의 독특한 특징이 법인이다. 법인에는 흔히 상법인(三法印)을 말하고 (경전에 따라서조금 다르다) 사법인(四法印)을 말하기도 한다.
후대의 발전된 다양한 교리들이 과연 부처님의 근본취지에 들어맞는지 검증하기 위한 준거로서도 법인이 역할하는 것이다.잡아함 권1에 의하면, 부처님은 십이처나 오온등이 무상(無常)하고괴롭고(苦), 무아(無我)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색(色)은 무상하고 무상한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운 것은 무아이다. 수·상·행 ·식 또한 그와 같다. "

(1) 일체무상(-切無常)

흔히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우리가 겸허한 마음으로 인생과 자연의 이치를 관찰할 때에 변화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없다. 인간은 태어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죽는다(死). 세계안의다른 존재는 생하고(生), 머무르다가(住) 달라지고(異), 없어진다(滅).무상한 것을 무상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서,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고 집착하는 데서 괴로움은 따라오는 것이다.영혼이나 神이나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조차도 이 무상의 진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부 오취온(五取蘿:五蘿에 대한 집착)에서 헤아리는데 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잡아함권3)
불교의 무상설도 얼핏 생각하면, 현실도피나 염세주의라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년을 살 것같은 뒤바꿔 착각속에서 재산, 권력,부귀, 명예에 집착하여 참으로 인간다운 삶과 진리의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외면하고 있는가. 그런 상황속에서 사자후하시는부처님의 무상의 가르침은 중생들의 뒤바꿔 몽상(顧倒夢想)을 멀리 여의게 하여 마침내 열반에 이끌고, 현실을 여실(如實)히 관찰케 하여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2) 일체고(-切苦)

흔히 일체개고(一切皆苦)라고도 한다. 변화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것이라면 괴로울 것도 없지만, 있다가는 없어지고, 건강하다가는 병들어 죽는 이 현실의 인생이 어찌 괴롭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세상에 태어나고,늙고, 병들고,죽는 것은 괴로움이다. 미운 것과 만나고(怨憎會苦),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고(愛別離苦),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求不得苦)은 괴로움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오취온(五取蘿)은 괴로움이다. "(증일아함경 권17)
이것이 사고 ·팔고(八苦)이다.

오취온고라는 것은 결국 앞의 모든 고통이 오온에 대한 집착에서 생긴다는 결론이다. 오취온고는 오음성고(五陰盛苦)라고도 한다. 오음은오온과 같은 말이다.
괴로움을 달리 세가지로 구분해서 보기도 한다. 고고(苦苦), 행고(行苦), 괴고(壞苦)이다. 고고는 인간의 감각적인 괴로움을 가리키고, 행고는 개체(個體)를 유지·존속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행온(行蘿)의 괴로움을 뜻하고, 괴고(壞苦)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막상 부서지게 되는 죽음의 괴로움이다.
무상에 대한 오해와 마찬가지로 고(苦)의 진리에 대한 오해도 있을수 있다. 불교는 현실적 인간존재의 삶을 괴로움으로 보기만 하고서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떠나서 즐거움을 얻기 위한힘찬 정진을 시작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일체무아(-切無我)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도 한다. 우리는 이미 연기설을 설명하는 가운데에서 인연으로 화합된 존재에는 자성(自性)이나 실체(實體)가 없고따라서 무아(無我)임을 언급했다.
'나'가 없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상일성(常一性)과 주재성(主宰性)을 갖고 있어야 한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나의 육체라든가 정신은 변해가는 것이지만,육체·정신의 배후에 있는 본질적인 어떤 것은 변하지 않을 때 상일성이 있다고 하는데,우파니샤드의 철학자들은 이를 아트만(atman)이라고 불렀지만, 불교에서는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를 무아주의(無我主義:anatmavada)라고도 부르는 것이다.그 다음 '나'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주재성이 있어야 한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눈이 만일 나라면 핍박의 괴로움을 받을 까닭이없고, 이리저리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있으리라. 그러나 눈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핍박의 괴로움을 받고, 이리저리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다.귀 ·코·혀 ·몸·의지 또한 그와 같다.

"(잡아함 권1)상일성이 없으므로 무상하고,주재성이 없으므로 괴롭다. 무상하고 괴로움이 있으므로, 거기 영원한 실체나 자성이라고 할만한 '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불교의 무아설이 나의 절대적인 부정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해 거짓된 나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불교야말로 '참나(眞我)'를 찾는 종교이며,후대의 神은 그러한 경향이극단화 되었을 때 생긴 필연적인 흐름인 것이었다.위에서 말했지만, 일체개고 대신에 열반적정을 법인으로서 인정하는경전도 있다. "모든 행은 무상하고, 모든 법은 무아요, 열반은 적정하다"는 설이 그것이다. (잡아함 권10)

"열반의 종교가 불교이다"라는 메시지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 열반적정이다. 괴로움의 종교가 아니라, 열반의 종교라고 긍정적으로 보고자하는 것이다. 열반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난 상태. 무상함을 벗어난상태이다. 사성제에서는 멸(滅)이라고 했다. 욕망의 불길이 소멸한 상태로써 종교로서의 불교의 이상을 표방하고 있다.

"유위(有爲)에는 생·주·이·멸이 있지만, 무위에는 생·주·이·멸이 없다. 이것을 모든 행이 적멸한 열반이라고 한다. "(잡아함 권12) 열반의 언어적 표현은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적극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5. 인간의 윤리

(1 ) 업설(業說)

불교는 출세간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일 뿐만이 아니라, 세간적으로도 올바른 삶을 살도록 중생들을 인도하고 있는 가르침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교설을 초기불교에서 찾을 때,우리는 업설(業說)을 만나게된다.
업(karma)은 원래 우파니샤드 철학에서부터 통용되던 매우 중요한개념이었다. 업이란 행동·행위를 의미하고,또한 더 나아가서는 그 행위에 대한 책임까지도 의미한다. 이를 세분해서 말하면, 업은 원인, 보(報는 결과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업과 보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으므로 그들의 성질 또한 통일성(同一性)을 띄게 된다. 업이 선(善)이면, 보도 선(善)이고, 업이 악이면 보도 악인 것이다. 이른바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인과율이다.
업은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으로 나눈다. 사업은 그저 마음속에서 생각만 되어진 업으로써 신·구·의 삼업(三業) 중에서 의업에 해딩하고,사이업은 의업이 몸과 말로써 표현되었을 때를 말하게 된다.또 업을 짓는 주체적 기관에 따라서 몸으로 짓는 업은 신업, 입으로짓는 업은 구업,뜻으로 짓는 업은 의업이다.

"몸으로 세가지 악업을 짓고 괴로운 보를 받나니, 그것은 곧 살생 ·투도(傭盜), 사음(邪淫)이다. ?으로 네가지 악업을 짓고 괴로운 보를 받나니, 그것은 곧 거짓말, 이간질하는 말, 욕설, 아첨하는 말이다. 뜻으로 세가지 악업을 짓고 괴로움을 받나니, 그것은 곧 탐욕(貪慾), 진애(頃悲), 치암(癩暗)이다. "(중아함 권3)

이 열가지를 십악업(十惡業)이라 한다. 십선업은 십악업을 행하지않는 것이다. 즉 몸으로 짓는 세가지 선업은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이고 입으로 짓는 네가지 선업은 불망어(不妄語), 불양설(不兩舌), 불악구(不惡口), 불기어(不締語)이고, 뜻으로 짓는 세가지 선업은 무탐(無貪), 무애 (無崙), 정 견(無癩)이다. (잡아함 권28)

착한 일을 많이 하면 잘 살고,나쁜 일을 많이 하면 못산다는 것이 업설의 요지인데, 실제 우리 둘레에는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데도 일생을불우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극악한 일을 저 질렀는데도 잘살고 있음을 본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온 이론이 삼세업보설(三世業報說)이다. 현재에 업인이 있는데 그 과보가 나타나지 않는경우와 과보가 있는데 그 법인이 현재에 발견되지 않을 경우의 둘로 갈라진다. 이러한 두가지 경우에 대해서 업설에 의해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면, 전자는 현재 업인의 과보가 현세의 이후, 즉 내세에 있다는 것이고,후자의 경우는 그 업인이 과거 전생(前生)에 지어졌다고 볼 수 밖에없다.
이러한 삼세업설은 필연적으로 육도윤회설을 가져오게 된다. 천(天)-인(人) ·수라(修羅) ·아귀(餓鬼) ·축생(畜生) ·지옥(地獄)의 여섯가지 갈래를 윤회한다고 한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삶을 단지 현세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시공(時空)속에 펼치게 하여 악을 소멸하고 선을 행하는 강력한 의지적 인간상을 부각시킨 것이다. 불교의 업설은 현실에 대한 굴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책임의지에 의해서 자기 삶의 모습이 드러남을 인식시켜 스스로 자유의지에 의해서 삶을 개척해 나가기를 바라는 데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2) 오계 (五戒)

오계는 재가 신도들이 받아서 지녀야 할 윤리적 덕목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위해 개인이 지켜야 할 기본적 질서이다.

①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不殺生)
생명있는 모든 것을 직접 죽이거나, 남을 시켜 간접적으로 죽이거나남이 죽이는 것을 칭찬하거나 기뻐하지도 말아야 된다.이 세상의 온갖 존재 가운데 생명이 가장 소중한 것이며,나의 생명을사랑하듯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사랑해야 하며, 사람이 그 생명을 가장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듯이 모든 중생의 생명들도 그렇게 아껴 주어야한다. 그러므로 산 목숨을 해치는 것은 악 가운데 가장 큰 죄악이며,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모든 금계(禁戒) 가운데 불살생을 첫번째로 하였다.산 목숨을 죽이면 자비의 종자(種子)가 끊어진다.

②주지 않는 것을 훔치지 말라(不愉盜)
남의 물건을 직접 훔치거나 남을 시켜서 훔치거나, 방편으로 훔쳐서도 안된다.
다른 사람이 훔치려고 계획하고 있으면 못하도록 하고, 항상 모든 사람을 힘따라 도와서 복을 받고 즐겁게 하여야 된다. 성실하게 노력하여얻어지는 자신의 분(分)을 지켜 항상 그 분의 정도에 만족함을 느끼며알뜰하게 근면한 마음으로 생활하여야 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복덕(福德)의 종자가 끊어진다.

③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不邪淫)
스스로 삿된 음행을 하거나 남을 시켜 삿된 음행을 하지 말며, 몸의어느 부분이든지 삿된 음행을 짓지 말라.불자는 항상 공손한 마음으로청정한 법을 배워야 하나니, 삿된 음행은 마음을 흐트러놓기 때문이다.
삿된 음행을 하면 청정(淸淨)의 종자가 끊어진다.

④거짓말을 하지 말라(不妄語)
스스로 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시켜 거짓말을 하지 말며, 방편으로도거짓말을 하여서는 안된다.
거짓말에는 네가지가 있나니, 첫째, 허황된 말이니, 옳은 것을 그르다하고,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본 것을 못 보았다고 하며,못본 것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 비단결같은 말이니, 구수한 말을 늘어놓으며애끓는 정열로 하소연하여 음욕을 이끌고 슬픈 정을 돋구어 남의 마음을 방탕케 하는 것이다. 세째,나쁜말이니,추악한 욕지거리로 남을 꾸짖는 것이다. 네째,두가지로 하는 말이니,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 말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 말을 하여 두사람 사이를 이간하고, 싸움 붙이는 일이다. 처음에는 칭찬하고 나중에는 비방하며, 만나서는 옳다하고, 다른 곳에서는 그르다 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진실(眞實)의 종자가 끊어진다.

⑤술을 마시지 말라(不飮酒)
술은 사람을 취하게 하는 독약이다. 한 방울도 입에 대지 말고, 냄새도 맡지 말며, 술집에 머물지도 말고, 남에게 술을 권하지도 말라. 맑은정신을 가지고도 살아가기 어려운 이 세상을 술을 마셔 스스로 취하는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술 한번 마시는데 여러가지 허물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라.술을 즐기는 사람은 죽어 똥물지옥에 떨어지며, 날 때마다 바보가 된다. 차라리 구정물을 마실지언정 술을 마시지 말라.술을 마시면 지혜의 종자가 끊어진다.

(3) 팔관재계 (八關齋戒)
어느 때 부처님은 사밧티 동쪽으로 가시다가 한 신도의 집에 들르셨다.유야라고 하는 여신도는 그 마을의 여러 부인들과 같이 목욕 재계하고부처님께 예배드린 후 지극한 마음으로 설법해 주시기를 청했다.이때 부처님은 여러 사람들에게 큰 복이 되고 좋은 공덕이 될 여덟가지 재계(八關齋戒)의 법을 설하셨다. 하룻밤 하루낮 동안만이라도 번뇌가 없는 아라한(阿羅漢)처럼 생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아라한은 산 목숨을 죽이려는 생각이없다. 자비로 중생을 사랑하여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모든 생명을 내몸처럼 여긴다.
둘째,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아라한은 탐하고 아끼는 생각이 없다.항상 깨끗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무엇이든지 주면서도 바라는 마음이 없다.
세째,음행하지 말라.아라한은 음란한 마음이 없다. 이성에 대한 부정한 생각을 내는 일이 없고, 청정한 마음으로 항상 정진을 즐긴다.
네째, 거짓말 하지 말라.아라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생각이 항상진실하여 조용히 하는 말은 그 마음과 같이 법에 맞으며, 거룩한 말에는거 짓이 없다.
다섯째, 술 마시지 말라. 아라한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 마음에는어지러운 일이 없고, 생각에는 게으름이 없으며, 밝고 바른 뜻에는 술을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여섯째,몸에 패물을 차거나 화장하지 말며,노래하고 춤추지 말라. 아라한은 생각을 방종하게 하지 않는다. 좋은 의복이나 패물로 호사하거나 연지와 분을 발라 화장하지 않으며,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쓰는 일이 없으며,오락은 구경도 하지 않는다.
일곱째 높고 넓은 평상에 앉지 말라. 아라한은 몸을 편히 하기 위해 높은 평상이나 좋은 자리에 앉거나 눕지 않는다. 비단으로 된 이부자리같은 것은 쓰지 않으며, 낮고 허술한 자리에 앉고, 항상 올바른 가르침을 생각한다.
여덟째, 제 때 아니면 먹지 말라. 아라한은 법답게 먹는 시간을 지켜정오에 한 때만 식사하며, 양에 맞추어 적게 먹고, 정오가 지나면 먹지않는다.
이 여덟가지 계법(戒法)은 온갖 나쁜 짓을 막는 문이며 한량없는 공덕을 얻게하는 길이다. 출가 수행승이 되어 도를 닦는 이들은 평생을 지키지만 세속에서 사는 신도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하루낮 하룻밤 동안만을 지키는 것이다.

삼장재월(三長齋月)인 1월, 5월, 9월달에나 육재일(六齋日)인 여드레,열나흘, 보름, 스무사흘, 스무아흐레, 그믐날만이라도 깨끗하게 받아 지키면 그 복과 덕은 열 여섯 나라의 보물을 한 곳에 쌓아두고 혼자서 수용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다. 모든 하늘의 선신들이 항상 보호하므로 온갖 재앙은 저절로 사라지고, 지혜의 길을 장엄하여 한량없는 공덕을 얻게 될 것이다. "(佛說齋經)

6. 이웃의 구제

초기 불교의 수행자들에게는 열반을 증득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관심사가 크게 강조되어서 이웃과 함께 깨달음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은 결여되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더 번쇄한 철학적 사유만을 발달 시켜가고 기득권을 가진 교단의 권위만을 계속화시켜 가면서, 동시대의이웃들을 이익케 할 어떠한 종교적 양심과 행동도 결여되었다. 이러한불교계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광범위한 새로운 불교운동이 전개된다. 이를 대승(mahayana)이라 한다.
대승불교운동이 전개되어 오면서, 참으로 인간다운 수행자는 자기의깨달음을 추구해 가면서도 이웃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이웃의 깨달음을 자기의 깨달음보다 앞세우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을보살(bodhisattva)이라 불렀다.
이러한 보살의 출현은 전 불교사를 새롭게 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는 중생들을 이익케하기 위한 여러가지의 실천적 방편들이 제시되었다.크게 보아서 육바라밀, 사섭법,그리고 사무량심등이다.

( 1 )육바라밀(六波羅蜜)
바라밀은 산스크리트어로는 pammita이다. '피안(彼岸)에 이르른 상태'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피안에 이르기 위한, 피안에 이르게 하는 여섯가지의 수행방법이 육바라밀이다. 참으로 보살이 되기 위해서 수행해야할 여섯가지 덕목이다.

①보시바라밀 (布施波羅蜜 :dana-pammita)
보시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나누어 갖는 것을 의미한다. 보시바라밀은 아함의 교설에서도 일찌기 '차제설법(淡第說法)'을 아아기하는가운데 시론(施論)으로써 언급되고 있다. 보시는 크게 '재물의 시여'(財施)와.'진리의 시여'(法施) 그리고 '평안의 시여'(無畏施)의 세가지로 나뉜다.
보시는 공덕이 크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보시는 적어도 보시바라밀이되기 위해서는 그런 결과를 바라보고 행하는 것이어서는 아니된다. 「금강경」에서는 "보살은 마땅히 법에 주(住)함이 없이 보시 할지니,소위 색·소리·냄새·맛·촉감·법에 주함이 없이 베풀어 주어야 한다. "고 설하고있다. 이처럼 아무런 곳-보시를 행하는 자,받는 자,보시되는 물건-에도 집착하지 않는 보시가 진정 보시바라밀인 것이다. (三輪空寂)

②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si)a-parauita)
계율을 잘 지켜서 윤리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이미 오계, 팔관재계에 대해서도 언급했지만 대승의 계율은 자리적(自利的) 지계가 아니라 이타적(利他的) 지계인 점에 특성이 있다. 또한 계율에 대한 심리적인 해석도 내려지고 있는데, 예컨대 육조 혜능스님은 "마음에 스스로허물이 없으면 이를 계라고 한다"고 하여 계율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열었다. 따라서 억지로 지키는 계율이 아니라 스스로 자율(自律)하는 것이 참된 지계바라밀인 것이다.

③ 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ksanti-paramita)
괴로움과 뜻에 거슬림을 참는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나의마음이 외부의 객관적인 경계(境界)를 만났을 때 움직이지 아니하고 무심(無心)하는 것이다. 이를 인욕바라밀이라 한다. 금강경에서 과거에 부처님이 인욕바라밀을 닦고 있었던 전생이야기가 있다. 가리(歌利)왕이라고 하는 왕이 인욕의 정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부처님의 팔을 잘리버린다. 그러나 보살은 전연 분노하지 않는다. 곧 이어서 하늘의 신(秉神)이 보살의 잘려진 팔이 붙도록 해준다. 그러나 이번에도 보살은 전연마음의 동요가 없다. 역경과 순경을 당하여 모두 부동(不動)하는 것o다. 그러므로 「대승기신론」에서는 인욕을 안인(安忍)이라고 하였다.

④ 정 진바라밀(精進波羅蜜 :virya-paramita)
부지런히 노력하여 게으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선법(善法)을 증징(增長)시키는 데에 있어서도 정진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인데, 아함의 고설에 있어서도 정진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五根과 五力에 모두 ?진이 들어 있음)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직전의 마지막 부촉(付囑)』이 정진바라밀에 대한 것이다.

⑤ 선정바라밀(禪定擴羅蜜:살yana-paramita)
禪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을 뜻한다. 절대자를 마음 밖에 따로이 상정해 놓고 전적으로 의존하는 다른 종교와는달리 불교는 스스로 깨달아가는 종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내향적이다. 內觀이야말로 禪定인 것이다. 이러한 선정바라밀은 이미 원시불교의四禪에서 그 구조가 잡혀졌으나 중국에 들어와서는 독자적인 조사선(祖師禪)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⑥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Prajna-paramita)
육바라밀 중에서도 반야바라밀은 보시에서 선정에 이르는 나머지 바라밀들의 주도자이며, 성립기반이 된다. 그 모든 바라밀이 반야지혜의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보시바라밀등은 사실은 보시반야바라밀, 지계반야바라밀 등이 되는 것이다.

(2) 사무량심 (四無量心)

육바라밀을 성취한 보살이 한없이 이웃들을 구제하기 위해 갖추고 있는 네가지 마음

①자무량심 (慈無量心)
사랑. 이웃들에게 끝없이 기쁨만을 주려는 마음이다.

② 비무량심 (悲無量心)
연민. 이웃의 괴로움을 자기의 괴로움으로 받아들여서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마음이다.

③ 희무량심 (喜無量心)
기뻐함.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이다. (隨喜) 수희의 공덕은 법화경의 수희공덕품(隨喜功德品)과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도 설하고 있다.

④ 사무량심 (捨無量心)
평등심. 선과 악,사랑과 미움등을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이다.

(3)사섭법(團擺法)

사무량심이 보살이 이익중생을 하기 위한 내적 마음의 상태라고 한다면,사섭법은 구체적으로 이웃들을 이익케 하는 네가지 방편들이다.

①보시섭 (布施攝)
나누어 가짐으로써 이웃을 부처님 진리의 세계로 섭수(攝受)하는 것.

②애어섭(愛語攝)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써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③이행 섭(利行攝)
이웃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스스로 해나가는 것.

④동사섭 (同事攝)
이웃들의 고뇌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이웃들 속에서 함께 생활하면서부처님 진리로 이끌어 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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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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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amun | 작성시간 06.01.04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작성자종심기 | 작성시간 06.11.26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작성자승승대디 | 작성시간 08.09.07 잘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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