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윤회와 인과법

[광명의 길] 고(苦)의 연구

작성자오직실천 행|작성시간17.11.24|조회수283 목록 댓글 13



 

 

[광명의 길] ()의 연구

 

 

오호라! 슬프도다.

우리들의 참다운 자유와 행복이 어디 있는가?

 

자유라는 것은 세계에 제일가는 천경지의(天經地義)의 아름다운 이름이요,

행복이란 일체 인류가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부르짖는 최상의 목적입니다.

무릇 헌법에서 보장한다는 것이나, 법률에서 변론하는 것이나,

보도기관의 논설이나, 사회사업의 시설이나,

크고 작은 것이 모두가 그것을 위하여 모으고 흩으고,

싸우고 근신하고, 살고 죽고 하는 것이 모두 자유 행복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자유 행복은 마치 고기()에게 물과 같고, 범에게 숲과 같습니다.

 

내가 보는 바로는, 세계 인류가 어느 한사람도 고를 여의고 낙을 얻어서,

자유 행복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마치 목마를 때 물 생각하듯, 배고플 때 밥 생각하듯,

조금이라도 얻을 때에는 흔연자득(欣然自得)하고,

만일 조금이라도 잃어버리는 때에는 추연불락(愀然不樂)하니,

얻었다고 즐거워하는 그 속에는 고가 얼마나 되며,

잃었다고 슬퍼하는 그 위에는 고가 얼마나 되는가?

 

크고 작고 한량없는 고를 쌓아 놓은 그것을 일러서 자유 행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큰 행복과 큰 자유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욕망이란 한정이 없어서 없을 때에는 있기를 원하고,

있으면 많기를 원하고, 아무리 많아도 자유와 행복에는 항상 부족을 느끼니,

만족한 자유 만족한 행복이 언제나 올 것인가?

자유 행복이 아직 오기도 전에 무궁한 고()만을 먼저 받으니, 그 아니 가엾은가.

 

고라는 그것을 분석하면 몇 가지나 되는가?

이른바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입니다.

 

고고한 무슨 말인가?

우리가 이 욕계(欲界)에 났으므로 인취(人趣)가 비록 삼악도는 아니지마는,

고를 받는 것은 삼악도와 얼마 차별이 없습니다.

계에 모두 고가 있지마는 우리의 욕계는 더욱 심한 곳이니,

그 고를 받느라고 고생하는 것이 고고이다.

 

괴고라는 것은 낙이 다되고 고가 오는 것을 이름이니,

즉 흥진비래(興盡悲來)하고, 태왕부래(泰往否來)하는 경계이니, 역시 삼악도나 일반입니다.

 

행고란 어떤 것인가!

()이란 걸어가는 것이니 모든 것이 념념부정(念念不停)하여 점점 변천하여서,

낙이라면 오래지 않고, 고라면 더욱 심해지는 것을 말한 것이니,

우리가 그 중에서 받는 고는 욕계뿐 아니라 무색계(無色界)까지도 동일한 것입니다.

 

욕계가 고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 체험하고 있으니, 의심이 없지마는

계가 모두 고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색계무색계는 곧 욕계를 초월하여서 훨씬 높이 있는 하늘들인데,

만일 거기에도 우리같이 고를 받는다면, 누가 천당에 가기를 원하며,

또한 천당이 즐겁다고 할 것이 무엇인가 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경중은 다르지마는 고가 되는 것은 동일합니다.

비근한 말로 비유를 든다면,

가령 어떤 사람이 무엇 하나에 욕심이 나서 그것을 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색도 하고, 설계도 하고, 운동도 하고, 주선도 하고, 힘도 쓰고, 애도 쓰고 하면

그 일이 완성되기까지에 한량없이 고생이 됩니다.

 

만일 그것을 하겠다는 욕심이 당초부터 나지 않았으면 그런 고는 없을 터인데,

공연한 욕심을 내어 가지고 그런 고를 스스로 받으니,

이것은 욕심 때문에 받는 고이므로 그것을 욕계의 고라 한다.

 

그리하여 그 일이 성취되면, 그때는 욕심이 쉬여지고 몸으로 그 결과를 받게 되니,

만일 괴로운 일을 성취했다면 그때는 몸이 한량없이 괴로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설사 즐거운 일을 성공하여 몸으로 낙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낙속에는 반드시 많은 괴로움이 내포 되어 있습니다.

 

자세히 해부해 보면 낙이라는 그것이 즉시 고이지마는,

그것을 고인 줄 모르고 받는 고이므로, 아까 성사되기 전 욕심에서 받던 고보다는 경미하니,

이것이 욕심을 떠나서 색신으로 받는 고이기 때문에 이것을 색계의 고라 합니다.

 

그러나 그 낙을 받는 속에는 어쩌면 이 낙을 오래 누릴까?

잘못하면 이 낙을 영원히 누리지 못하는 실패가 있지 아니할까? 하는

정신적 고통이 은연중에 끊임없이 잠재해 있습니다.

이것은 비교적 경미한 정신 고통이므로 이것을 일러서 무색계의 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사되기 전 욕심 중에 받는 고통이나, 성사한 후 몸에 내포되여 있는 고통이나,

또는 정신상에 잠재하여 있는 고통이나 모두 욕심에서 생긴 것이므로,

계중에 오직 욕계의 고가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

 

삼고를 다시 비유로 말하면,

가령 재산 없는 사람은 없는 고생이 본래 있는 그 위에 다시 재산을 구하려고 하여

모든 고생을 극복하는 것은 곧 고고이고,

애써 모은 재산이 나중에 소모가 된다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이 괴고이고,

처음에 모으기로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에 소모하여 다될 때까지 모으고 없애는 것을

자기 몸소 행해온 고생이니 이것을 행고라 하는 것입니다.

 

고는 또 무엇인가.

곧 생사와 애별리고(愛別離苦=사랑하는 사람과 갈리는 것)

원증회고(怨憎會苦=맞지 않는 사람과 모이는 것)

구부득고(求不得苦=구하는 것이 마음대로 아니 되는 것)

오음성고(五陰盛苦=이 몸이 업을 지어서 항상 핍박을 당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따로따로 보면 팔고가 각각 다르지마는,

기실은 여덟 가지가 서로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생()에서 볼 때에 늙지 않고 살고 싶은데 늙으니 고요,

병이 없이 살고 싶은데 병이나니 고요, 죽지 않고 살고 싶은데 죽으니 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은데 이별하니 고요, 미운 사람이 없이 살고 싶은데 만나니 고요,

구하는 것은 모두 잘 되어 살고 싶은데 되지 않으니 고요,

오음이 조화롭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데 그리되지 않으니 고입니다.

 

구부득고에서 본다면 오래 살기를 구하나 얻지 못하니 고요,

병이 없기를 구하나 얻지 못하니 고요, 죽지 않기를 구하나 얻지 못하니 고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않기를 구하나 얻지 못하니 고요,

미운 사람은 만나지 않기를 구하나 얻지 못하니 고요,

오음이 치성하지 않기를 구하나 얻지 못하니 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와 고를 하늘이 낸 것인가? 땅에서 솟은 것인가?

자연으로 된 것인가? 귀신이 준 것인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인가?

또는 자기가 지은 것인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서 어쩌면 이렇게도 우치한가.

자기의 재물을 자기가 도적하고 자기의 결박을 자기가 묶는 것입니다.

천작얼은 유가환이나 자작얼은 불가환(天作孽 猶可逭 自作孽 不可逭)’

예전 성인의 명훈입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망상으로 탐치 삼독을 내어서 악이라고는 아니 지은 것이 없습니다.

삼악도에 들어갈 죄악을 자주자주 지었으므로 목숨이 떨어진 후에 업을 따라

삼악도에 갈 것은 오히려 래두사(來頭事)이니 헐후(歇後)하게 생각할지라도,

우리의 현신으로 받는 것이 오히려 삼악도 보다 심하지 않은가?

 

삼악도의 고가 오히려 단순합니다.

확탕지옥에 간다면 목마를 때 구리()녹인 물을 먹이고,

배고플 때 뜨거운 철환(鐵丸)을 주고, 가마솥에 삶는 형벌을

야 동안에 만사만생(萬死萬生)을 한 대도, 그것만을 되풀이 할 뿐이며,

도산(刀山)금수(鈒樹)거해(鋸解)대마(碓磨)

어떤 지옥이라도 그 지옥에서 행하는 한 가지씩의 형벌뿐이지마는,

욕계에서 사는 우리 인류의 받는 고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기근(飢饉)도병(刀兵)질병도적수화풍우독사맹수국란(國亂)왕법(王法)폭군(暴君)

오리(汚吏)난민(亂民)횡액(橫厄) 등등이 자주자주 있어서 피하기 어려우며,

스스로 손 한번 놀리고 입 한번 열고 발 한 자욱 옮기는 것에 조금도 주의 없이,

위지(危地)와 사경(死境)으로 달려들고 있으니, 래두에 받는 고초는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또한 누구를 믿을 것인가? 자유 행복이 언제나 올 것인가?

 

모든 속박을 해탈하지 않고는 자유가 없고,

모든 고를 여의고 쾌락을 받는 것이 비로소 행복이니,

속박을 벗고 고를 여이려거든 업을 짓지 말라!

업을 아니 지으려면 선을 배워야 하고 선을 배우려거든 불교를 믿으라!

 

상담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 하였으니,

대자대비하고 지인지성(至仁至聖)하신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부처님의 행을 배우면

곧 부처는 되지 못할지라도 보리 종자는 심어지고, 선근의 뿌리는 자랄 수가 있으니

보리심과 선근에서 얻는 것이라야 참다운 자유와 행복이 되는 것입니다.

 

 

*권상로 박사 법문집 [광명의 길] 중에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수미산(須彌山) | 작성시간 17.11.25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
  • 답댓글 작성자오직실천 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1.25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 작성자진의성 | 작성시간 17.11.26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 답댓글 작성자오직실천 행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1.27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 작성자들마을(전법심) | 작성시간 17.11.28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